체코의 프라하는 아주 아름다운 관광지로 가볼 만한 곳이라고 주변 분들이 추천합니다. 언젠가는 가보고 싶은 도시입니다. 하지만 율리우스 푸치크의 책 <교수대의 비망록>을 읽으며 그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과 독일 게슈타포의 영향 하에서 체코가 얼마나 고통당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체코가 아름다운 도시이면서 우리가 일제 치하에서 고통받았던 것과 유사한 고통당한 도시라는 확장된 시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율리우스 푸치크는 공산당 활동을 하다 1943년 4월 24일 프라하에서 다른 동지들과 게슈타포에 체포되었습니다. 그리고 정신을 잃을 정도로 혹독하게 고문을 받았지만 조직에 관한 어떠한 정보도 발설하지 않습니다. 이 책은 그가 체포된 이후 1943년 9월 8일 처형되기 전까지 감옥에서 한 간수의 도움을 받아 글로 남긴 것입니다. 전쟁이 끈난 후 부인인 아우구스티나 푸치크가 남편의 옥중수고를 모아 1947년에 <교도소의 비망록>을 출간했습니다.
자신이 잡히던 날부터 고문을 당하던 장면을 세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글을 쓸 수 있는 연필과 종이를 얻었을 때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서 썼을 테지만 상황이 머리에 그려질 정도로 흥미있으면서도 끔찍합니다. 그리고 간수들의 성격과 외모에 대한 글도 있습니다. 가족에게 보낸 글 중에서 아래와 같이 어두운 감옥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보고 싶다는 그의 갈망이 눈물겹도록 공감되었습니다.
우리의 방은 북향이다. 여름날 날씨가 좋으면 아주 이따금 우리에게도 지는 해가 보인다. 아아, 아버지. 그래도 저는 다시 한 번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혹은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사형을 당하는 사람들이 옆에서 앞에서 사라지는 교도소에서 어떤 인간적인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요. 언젠가는 내 차례가 오는 것은 분명한데 오늘도 수천 명의 사람들이 처형되고 나는 살아있다고 한다며 그것은 살아있는 삶이 아닐 것입니다. 다음날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일 뿐입니다. 희망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절망입니다. 푸치크에게 하루하루가 죽음 앞에 모든 것을 내려놓은 삶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내일은 지나간다. 수천의 사람들이 쓰러진다. 그 수천의 사람들에게 이미 다음날은 없다. 그렇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변함없는 희망을 안고 살아간다. 내일이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 모든 것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위대한 작가 율리우스 푸치크는 그의 흔적을 남기지 못하고 처형장에서 사라지고 잊혀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교도소에서 콜린이란 SS제복을 입은 간수가 그의 짧은 인생의 흔적을 남기도록 도왔습니다. 이는 아주 극적인 장면입니다. 콜린이란 간수는 실제 어떤 인물이었는지 나와 있지는 않았지만 푸치크를 알고 그를 간접적으로나마 도우려고 하는 인물로 추정됩니다. 우리에게 체코 프라하의 1942년 풍경을 알려준 푸치크를 남겨준 사람 콜린입니다.
글을 쓰고 싶지 않느냐고? 너무나 열망해 마지않는 내 바람을 그가 딱 알아맞췄다. 그는 곧 종이와 연필을 가지고 왔다. 나는 그것들을 어떤 검사를 받더라도 발각되지 않도록 정성 들여 숨겼다.
푸치크는 1943년 5월 독일로 이송된 것을 자신의 죽음이 임박한 것으로 보입니다. 아래와 같이 <교도소의 비망록> 마지막 옥중 글은 자신의 연극이 이제 마지막 대단원을 마치려하고 있다고 적습니다. 실제 이 글이 마지막 글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공산당에 대한 헌신을 온몸으로 고문을 감당하며 보여주었고 죽음이 늘 주변을 맴도는 상황에서도 글로 자신의 생각과 가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 사람 율리우스 푸치크를 생각하며 나의 삶에 대해 감사하게 되는 시간입니다.
내 연극도 끝나려 하고 있다. 연극의 대단원을 미리 쓸 수는 없다. 나로서는 그것이 어떨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미 연극이 아니다. 생활이다. 그리고 진실한 생활에는 관객이 없다. 종막이 오른다. 사람들이여. 나는 그대들을 사랑했다. 부디 늘 깨어있기를! 1943년 6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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