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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독서습관289_우리 역사의 현장을 가보는 책_변방을 찾아서_신영복_2012_돌베개(201103)

by bandiburi 2020. 11. 6.

 

 

■ 저자 : 신영복(1941~2016)

1941년 경상남도 의령에서 태어나 경남 밀양에서 성장하였고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1959년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여 4.19 혁명과 5.16 군부 쿠데타를 겪으며 학생운동에 참여하였다. 1963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학사 학위하고, 숙명여자대학교 강사를 거쳐 육사에서 경제학 교관으로 재직하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신영복은 전향서를 쓴 뒤 20년 20일을 복역한 후 가석방되었다. 감옥을 인간학, 사회학 교실로 여기며 사람에 대한 애정을 토대로 한 '관계론'을 일구었다. 수감 중 지인들에게 보낸 서신이 평화신문에 연재되었고, 출소 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출간했다. 경제학원론, 한국사상사, 정치경제학, 중국고전강독, 교육사회학 등을 강의하였다.

 어릴 적 할아버지 슬하에서 붓글씨를 시작했고, 대전교도소 시절 교도소 당국에서 초빙했던 만당 성주표 선생, 정향 조병호 선생으로부터 붓글씨를 옥중사사 받았다. 한학자인 노촌 이구영 선생과 같은 방에서 지내며 동양고전을 익혔다. 민중의 정서를 담은 글씨체를 모색했던 중 어머님의 모필에서 영향을 받아 연대체, 민체, 어깨동무체라고 불리는 신영복체가 탄생했다.

 독창적이고 민중적인 신영복서화 서화 작품과 신영복 강연듣기, 저서 등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려 노력하였다. 2016년 1월 15일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의 자택에서 향년 76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 소감

저자가 글을 써준 곳 8곳을 방문하며 그곳에 대한 이야기를 기초로 저자의 생각을 풀어놓은 책입니다. 경향신문에 연재된 것을 책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우리에게 익숙한 장소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미 방문했던 곳도 있고 근처를 지났지만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던 장소도 있습니다. 한 장소를 방문하더라도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합니다.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왜라는 호기심도 필요합니다. 많은 것을 봤다며 주마간산식으로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많았던 과거입니다. 이제는 나만의 생각을 접목할 수 있는 방문이 되야겠습니다. 

소설 <임꺽정>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벽초 홍명희가 연재를 중단하는 바람에 마무리가 안되어 무척 아쉬웠던 기억입니다. 당시에 홍명희를 알게 되었는데 이 책을 통해 홍명희의 부친이 1910년에 경술국치에 순국했다는 사실과 그가 월북하기 전에 재산을 나눠주고 갔다는 사실 등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의 평전을 통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책을 덮고 나니 가보고 싶은 곳이 생겼습니다. 해남, 박달재, 홍명희 생가, 전주 이세열 열사 추모비와 김개남 장군 추모비, 봉하마을입니다. 

■ 마음에 동하는 문구

30페이지) 사실 정조 자신이 비록 임금이기는 하였으나 변방의 군주였다. 노론 집권 세력의 집요한 음해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으로 즉위하였지만, 임금으로 즉위한 이후에도 그들의 포위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결국은 자신의 정치적 포부를 제대로 펼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른 임금이었다. 정조의 이러한 변방성이 조선조 최고의 개혁 군주, 철인 군주의 면모로 남는 것이다. 

[꿈은 가슴에 담는 것 - 해남 송지초등학교 서정분교]

47) 스테판 에셀(Stephane Hessel)은 그의 작은 책 <분노하라>의 마지막 구절에서 "저항이야말로 창조이며 창조야말로 저항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우리 시대에도 계속 호출해야 하는 코드 - 강릉 허균 허난설헌 기념관]

62) 호민론 - <호민이 두렵다>, <나는 나의 법을 따르겠다-허균 선집, 돌베개>
   천하에 두려워할 만한 존재는 오직 백성뿐이다. 백성은 홍수나 화재, 호랑이나 표범보다 훨씬 두려운 존재인데, 윗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업신여기며 모질게 부리니, 대체 무슨 이유에선가? 

이미 이루어진 일이나 함께 즐길 줄 알고, 항상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얽매이며, 순순히 법에 따라 윗사람의 부림을 받는 자들은 '항민'(恒民: 늘 그대로인 백성)이다. 항민은 두려워할 바가 못 된다. 

모질게 빼앗겨 살이 깎이고 골수가 부서지며, 집의 수입과 땅의 소출을 다 가져다 끝없는 요구에 응하면서 시름하고 한숨 쉬며 윗사람을 탓하는 자들은 '원민'(怨民: 원망을 품은 백성)이다. 원민도 반드시 두려워할 존재는 아니다. 

푸줏간 속에 자취를 감추고 몰래 딴마음을 품은 채 세상을 흘겨보고 있다가 행여 무슨 변고라도 일어나면 자신의 바람을 실현하고자 하는 자들은 '호민'(豪民: 호걸스러운 백성)이다. 이 호민은 몹시 두려워해야 할 존재다.

[통한의 비련 그 비극적 파토스 - 박달재]

75) 생각하면 우리의 산천 곳곳에는 고개마다 수많은 별리(別離)의 전설이 있고 그런 전설은 하나같이 비극적 사연들로 점철되어 있다. 이를테면 비극미가 서민들의 압도적 정서가 되고 있는 것이다. * 박달과 금봉이

[탈근대의 독법으로 읽는 <임꺽정> - 벽초 홍명희 문학비와 생가]

82) 홍명희(1888~1968)는 소설가이자 독립운동가, 정치가이다. 호가 벽초이고, 다른 호로 가인(假人)을 쓴다. 1910년, 당시 금산군수로 재직 중이던 부친 홍범식(1871~1910)이 경술국치에 항거하여 순국하자 1912년에 해외 독립운동에 투신하고자 중국으로 떠났다. (중략) - <홍명희 연보>, <벽초 홍명희 평전> 사계절, 2004

[지혜, 시대와의 불화 - 오대산 상원사]

100) 종소리는 긴 여운을 이끌고 가다가 이윽고 정적(靜寂)이다. 소리가 없는 것을 정(靜)이라 하고 움직임이 없는 것을 적(寂)이라 한다. 1만 문수보살은 다시 산천으로 돌아가고 세상은 적멸(寂滅)이다. 

101) 소리의 뼈는 침묵 - 기형도,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사, 2002
  이 시구는 기형도(1960~1989)의 시 <소리의 뼈>에 나온다. "김교수님이 새로운 학설을 발표했다. / 소리에도 뼈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 그다음 학기부터 우리들의 귀는 / 모든 소리들을 훨씬 더 잘 듣게 되었다."

102)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을 쌓고 소유하는 것으로 공부를 끝낸다. 공부란 깨달음이며 자기 변화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역사의 꽃이 된 죽음 앞에서 - 전주 이세종 열사 추모시, 김개남 장군 추모비]

107) 오늘 전주행은 마음이 무겁다. 두 개의 추모비를 찾아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하나는 전북대학교 학생회관 옆의 이세종(1959~1980) 열사 추모비이고, 또 하나는 덕진공원의 김개남(1853~1895) 장군 추모비이다. 이세종 열사는 1980년 5.18 광주항쟁의 최초 희생자이고, 김개남은 전봉준, 손화중과 함께 갑오농민 혁명의 지도자이다. 이 두 개의 비는 모두 비극적 죽음을 증거하는 추모비이다. 

112) 나에게 글씨를 부탁한 사람은 <신택리지>의 저자인 향토문화연구회의 신정일 선생이었다. 물론 김남주 시인이 작고해서 연결 고리가 끊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중략)

117) 전봉준이 일본의 침략에 대응하여 반봉건 투쟁을 일단 유보하고 항일 반제 투쟁에 주력하는 이를테면 주요 모순 우선 노선임에 비하여, 김개남은 어디까지나 계급 모순을 중심에 두는 기본 모순 우선 노선이었다. 그래서 이름도 개남(開南)으로 바꾸어 남쪽에 새로운 나라를 연다는 뜻을 담았다. 

[민초들의 애환, 700리 한강수 - 서울특별시 시장실의  <서울>]

128) 북악이 권력의 상징이라면 멀리 낮은 곳으로 흐르는 한강이야말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소통과 화해의 상징이다. 나는 서울시청이 북악이기보다는 한강수이기를 바란다. 민초들의 애환과 함께 유정하게 흘러가는 700리 도도한 강물이기를 바란다. 우리 시대가 잃고 있는 공감과 소통이 다정한 공간이기를 바란다. 

[새로운 시작을 결의하는 창조 공간 - 봉하마을 고 노무현 대통령 묘석]

136) 내가 쓴 글씨에 묘석을 받치고 있는 강판 앞부분에 새겨져 있다.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작은비석위원회'가 노무현 대통령의 어록 중에서 뽑은 글귀이지만 놀랍게도 이 묘비문 역시 '각성'을 호소하고 있다. 

137) <노무현의 무덤>을 출간한 건축가 승효상은 서문에서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 1935~2003)의 글을 인용하며 노무현을 '스스로를 추방한 자'라고 썼다. 그렇다. 자신의 모든 것을 스스로 추방한 자가 바로 노무현이다. 

141) 낡은 것에 대한 냉철한 각성과 그것으로부터의 과감한 결별이 변방성의 핵심이다. 그렇기 때문에 변방이 창조 공간이 되기 위한 결정적 전제는 중심부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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