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블랜더 거실
독서습관

독서습관260_가족이 기록한 화가의 삶에 대한 책_내 아버지 박수근_박인숙_2020_삼인(200814)

by bandiburi 2020. 8. 14.

■ 저자: 박인숙

1944년 화가 박수근과 김복순 여사의 장녀로 평양에서 태어났다. 현재의 세종대학교인 수도사범대학교에 들어가 미술을 전공하고 중학교 미술교사로 재직했으며 교육청 장학사를 거쳐 교감과 교장직을 역임하며 교직을 은퇴했다. 현재 시니어 모델로서 성공적인 인생이모작을 즐기고 있다. 

 

■ 소감

 미술수업 시간에 배웠던 화가 박수근을 기억합니다. 그의 그림은 단순하고 소박하면서 한국의 어렵던 시기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삶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습니다. 이 책은 그의 장녀인 박인숙 씨가 아버지 박수근을 기억하며 써내려간 가족의 역사입니다. 

표지 사진에 박수근 화가가 마루에 앉아 있고 그 뒤로 현재는 너무나 유명해진 그림들이 벽면에 가득 걸려있습니다. 그의 그림이 1990년대 이후가 되어서야 유명세를 타고 고액으로 거래될 줄은 누구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51세의 나이에 간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그와 가족의 삶은 가난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분명히 박수근 화백이지만 장녀의 입장에서 봤을 때 실제 주인공은 어머니 김복순 여사처럼 느껴집니다. 어렵고 힘든 시기에 딸의 눈에 덩치만 크고 싫은 소리 하지 못하는 유순한 아버지에 비해 어머니는 양육과 남편 뒷바라지, 그리고 외삼촌과 작은아버지 가족까지도 돌보는 대단한 분으로 비칩니다. 

화가 박수근의 그림의 독창성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아들 박성남 씨의 해설도 언급되어 있듯이 가정형편상 배우지 못했기에 그림에 대한 열망으로 독학을 한 것입니다. 독학을 하며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간 것입니다. 

독학, 독창성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보며 현재 우리의 자녀들을 생각해봅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초중고에서 대학교까지 유사한 교육과정을 거치며 서로 비교하교 경쟁하며 배움의 시기를 보냅니다. 주입식, 암기식으로 하다 보니 스스로 고민해서 문제를 만들고 협력해서 해결하는 법을 배우지 못합니다. 자신만의 해법, 독창성이 부족합니다. 경쟁에서 우위에 서는 것이 아이들의 삶의 목적이 아닙니다. 스스로 독립해서 우뚝 설 수 있는 분야를 찾고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 가는 것입니다. 

이 책의 또다른 재미는 박수근 화백이 그린 각각의 그림에  어떤 배경이 있었는지 설명해주는 부분입니다. 그냥 전시회에서 그림을 보는 것과 달리 딸이 아버지의 그림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설명이 담겨있어 앞으로 그 그림을 보면 박수근의 가족들이 떠오를 것입니다.  

 

■ 책에서 발췌

15페이지) 12세가 되던 어느 날, 아버지는 우연한 기회에 밀레의 <만종>을 눈으로 접하게 되는데, 그 이후부터 마치 흘린 사람처럼 밤낮으로 밀레 같은 훌륭한 화가가 되게 해 달라 기도했다고 한다. 전쟁 이전 강원도 시골 깡촌에 서양화 원색도판이 들어온 것도 기막힌 우연이지만, 그것이 밀레의 그림이었던 것은 아버지에게 굉장히 특별한 자극이 되었다. 예술은 언제나 우리의 심장을 두드리고, 때로 인간의 운명을 통째로 좌우한다. 주어진 재능과 실력으로 당신 내부의 무언가를 세상에 전달해야만 한다는 사명감을 가진 것이다. 

59) 편지들을 읽다 보니 나도 모를 기쁨이 벅차오른다. 편지라는 것은 추억의 실물이다. 한낱 편지들이 어떤 유산보다 귀한 보물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두 분이 일생을 함께하는 동안 틈틈이 이 편지들을 꺼내 보면서 그림처럼 다시 돌아오는 기억 속 그날들에 얼마나 다정한 미소를 지었을까? 

79) 요즘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그 시절은 맺고 끊어지는 일이 수시로 일어났다. 혈연이든 지연이든 조금이라도 연이 닿으면 식구가 되었고, 그렇지 않으면 돌연 남이 되었다. 자의든 타의든 멀어지고 떠나는 일이 이승과 저승을 가리지 않고 비일비재했다. 자식도 부모도 순서 없이 떠났다. 

103) 어머니가 되는 일이란 분신처럼 늘어난 어린 육체에 자신의 하나뿐인 의지를 쪼개어 나눠야 하는 일이다. 아이의 성장은 그렇게 어머니의 시간을 흡수하며 이루어진다. 

728x90

134) 현대를 사는 옛날 사람들, 전쟁을 지나온 사람은 그것을 안다. 이웃사촌은 괜한 말이 아니다. 절대로 또다시 일어나서는 안 되겠지만 비극이 되풀이된다면 비로소 알게 될까. 우리를 둘러싼 타인들이 사실은 얼마나 서로에게 밀접한 존재들인지 말이다. 나는 민족이라는 단어가 가족이라는 단어와 닮아 좋다. 

172) 나는 아버지의 이런 따뜻한 모습을 만날 때면 아버지가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의 삶까지 함께 대하는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 앞의 한 사람과 그 사람 뒤에 있을 가족들, 상대방의 숨이 있는 시간과 사연을 보는 것이다. 어쩌면 아버지는 드러나지 않았을 뿐, 그림 실력보다 공감 능력이 더 발달한 분일지도 모르겠다. 

195) 많은 부모들이 자식들에게 훌륭한 지식을 채워주기 위해 악착같이 노력하지만, 사실 그것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은 지식을 채울 예쁜 그릇을 만드는 일이다. 가족들이 함께 노래 부르고 같은 그림 속에서 느낀 서로의 생각을 인정해 주는 것, 적당한 간절함과 기다림 속에서 기회를 얻고 소중함과 감사를 느끼는 것, 지식은 그다음에 채워도 결코 늦지 않다. 예술은 그 그릇을 만드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가 되어준다. 

200) 그저 기억나는 거라곤 "네가 하고 싶은 걸 열심히 하렴"이라는 한마디 말씀뿐이었다. 그런데 그때 내가 부모님께 느꼈던 감정이 서운함이라면 천만의 말씀이다. 내 미래를 직접 설계하고 나 자신을 스스로 지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어서 그것은 어떤 감정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 아버지 밑에서 그만큼 주체적인 아이로 자랐던 것이다. 

223) 그날 이후로 시계를 잃어버렸던 내 부담감도 옅어졌지만, 동시에 부부가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도 배우게 되었다. 어머니 아버지가 서로에 대한 사랑을 아낌없이 표현하실 때마다, 나는 우리를 지키고 있는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얼마나 견고한지 그때마다 확인했다. 

286) 그들은 모두 작자의 원칙과 준거를 가지고 이 삶을 대하면서 모두 독학을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서두 부분에서 얘기한 것처럼 젊은 시절 홀로 강원도 일대와 경기도, 서울로 거처를 옮겨가며 치열하게 습작을 했던 것이 아버지의 작품 세계의 근원이 된 셈이다. 내 아버지를 보더라도 무릇 예술가의 오리지널리티란 독학이 바탕이 되는 것이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290) 그토록 가난에 시달리고 시대의 비극에 휘말렸던 아버지가, 살면서는 고생만 하시다 이 모든 영광을 두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하고 가셨다는 게 아쉽기는 하지만 그것 역시 뛰어난 예술가의 숙명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가족과 떨어져서 외로움과 빈곤 속에서 짧은 삶을 살다 가신, 거의 아버지와 동년배인 이중섭 선생님 같은 분을 생각하면, 그래도 내 아버지는 사정이 좀 나은 편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293) 2002년 10월에 아버지 고향 양구에 박수근 미술관이 개관한 것이다. 

299) 전문가에 의하면 문화선진국에서는 추급권이라고 해서 대가들의 작품이 매매될 때마다 그 가족들이 그 금액의 2퍼센트~5퍼센트의 내외로 유족에게 돌려주는 제도가 시행 중이라고 한다. 그렇게 하면 예술가를 생생하게 증언할 수 있는 가족들의 기본적인 생활도 돕게 되고 작품의 정확한 정보도 보존된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