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학교 교육을 논할 때면 교육제도나 학교, 교사 등을 언급합니다. 그리고 변화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지난주 TED 강의 요약 시 켄 로빈슨이 '학교혁명'이란 책을 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로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 시작했는데 167페이지에 소개된 '레이프 에스퀴스(Rafe Esquith)' 교사의 모습이 감동적이어서 바로 블로그에 소개한다.
책을 통해서 느낀 나의 감동을 그대로 전하기 위해 원문을 인용한다.
[학교혁명 167~172페이지]
레이프 에스퀴스는 LA에 인접한 코리아타운의 호바트초등학교에서 30년 동안 똑같은 교실인 56호실에서 수업을 했다. 호바트초등학교의 학생들은 대부분 아시아계나 라틴계의 이민자 가정 출신이며 입학 당시 영어를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 이 지역은 저소득층 지역으로 전반적 학업성취도와 졸업률이 낮은 편이다. 하지만 레이프의 교실에 들어와 수업을 받았던 학생들은 대다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영어도 완벽하게 구사했다. 그중엔 아이비리그 등 상위권 명문 대학에 진학해 전문가로 성공한 학생도 많았다. 몇몇 졸업생은 그를 따랐던 여러 세대의 학생들과 힘을 모아 그의 활동을 지원하는 재단을 창설하기도 했다.
정말 감격적이고 놀랍지 않은가? 하지만 훨씬 놀라운 부분은 따로 있다. 이 모든 일이 레이프가 학생들에게 셰익스피어를 가르침으로써 이뤄낸 성과라는 사실이다. 그는 매년 셰익스피어의 희곡 한 편을 골라 스토리, 인물, 언어, 역사, 연기 등의 전면적 관점에서 학생들과 수업을 한다. 이곳의 '호바트 셰익스피어 학도들'은 거의 모두 레이프의 교실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자기들보다 나이가 3배는 많은 사람들마저 놀라게 할 만큼 셰익스피어에 대해 박사가 되었다.
나는 지난 30년 동안 전 세계에서 찾아온 관중들이 빽빽이 들어찼던 56호 교실에서 <템페스트(The Tempest)> 공연을 보는 영광을 누렸다. 그날 35명의 들뜨고 재간 있는 9, 10세의 아이들은 수많은 비평가들에게 셰익스피어의 명작으로 꼽히는 그 작품을 탁월한 앙상블을 연출하며 공연해냈다. 아이들은 대사를 멋지게 소화했을 뿐만 아니라 10개가 넘는 악기로 음악을 연주하며 그해 내내 갈고닦았던 실력을 뽐냈고, 3중주와 4중주로 합창까지 했다. 나는 아리엘 역을 맡은 한국계 여학생에게 특히 눈길이 갔다. 그 여학생은 무대에서 내려와 있는 동안 다른 등장인물의 모든 대사를 소리 내지 않고 입모양으로 따라 하고 있었다. 막간에 나는 레이프에게 가서 그 여학생이 작품 전체를 암기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을 걸었다. 레이프는 싱긋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맞습니다. 아이들 모두가 다 외우고 있죠."
제2막이 시작되기 전에 그는 꼬마 배우들에게 내가 했던 말을 전해주며 정말로 작품 전체를 외우고 있는지 물었다. 아이들 역시 싱긋 웃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어서 레이프가 다 같이 미란다의 첫 대사를 말해보라고 하자 아이들은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낭송했다.
이 아이들은 암기술을 잘못 이해한 경우가 아니었다. 아이들은 그 작품을 확실하게 이해했고, 또 좋아했다. 호바트 셰익스피어 학도들의 공연을 자주 관람하는 사람 중에는 세계 최고의 고전 배우 이언 맥켈런(Ian Mckellen) 경도 있었다. 그는 아이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이들은 단어 하나하나까지 다 이해하고 있어요.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연기하는 배우들이 모두 그렇지는 못한데 말이에요."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호바트초등학교 56호 교실의 커리큘럼에서 작은 일부분에 불과하다. 사실 희곡 공부는 정규 수업이 끝난 다음에야 시작하는 방과 후 수업이다. 다른 수업 시간에는 자기 학년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글을 읽고 대부분이 고등학교 수준에나 맞을 만한 수학 문제를 푼다. 56호 교실의 벽에는 예일, 스탠퍼드, 노트르담 같은 대학교 펜던트들이 덮여 있는데, 모두 레이프가 가르쳤던 학생들이 들어간 대학의 펜던트다. 그리고 이 명문대 진학생들 가운데 대다수는 집안에서 처음으로 대학에 들어간 경우다.
레이프는 학생들의 학습열을 잘 유도해왔다. 그것도 학생들이 학교에 일찍 등교하고 방학에도 학교에 나오는가 하면, 그의 수업을 듣는 1년 동안 TV를 끊겠다고 약속할 정도로, 그가 내세우는 수업 모토는 '지름길은 없다'이며 아이들은 말도 안 될 만큼 열심히 공부한다. 하지만 그는 그런 노력을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지 않는다.
"제가 아이들에게 열심히 공부하길 바란다면 저 자신이 가장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편이 좋습니다."
<CBS 이브닝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했던 말이다. 그는 실제로 일주일에 6일씩 일하면서 토요일에도 학교에 나와 졸업생들의 SAT 준비까지 봐주는 식으로 모범을 보였다.
그는 자신의 책 <에스퀴스 선생님의 위대한 수업>에서 자신의 혁신적 순간에 대해 털어놓았다.
"항상 무리에서 가장 인기 없는 축에 들었고 자기 스스로도 자신은 절대 특별한 사람이 될 수 없다고 포기한 듯한, 말수가 없는 어느 여학생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화학 수업 중에 알코올램프로 실험을 하고 있었다. 이날도 그 여자아이의 램프에는 불이 켜지지 않았고 아이는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이는 레이프에게 다른 아이들과 수업을 계속 진행하라고 했지만 그는 그 아이를 그냥 내버려 두고 딴 데로 가지 않았다. 그렇게 옆에서 살펴보니 램프 자체가 문제여서 램프를 고쳐줬다.
어떻게 된 일인지 알코올램프의 심지가 너무 짧았다. 심지가 있기나 한 건지 잘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최대한 허리를 바짝 숙여 길쭉한 성냥으로 불을 붙여보려고 했다. 어찌나 성냥에 몸을 바짝 붙였던지 램프에 불을 붙이려고 할 때는 불꽃이 다 느껴질 정도였다.
그때는 어떻게든 램프에 불을 붙여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램프에 불이 붙었다! 심지어 불이 붙는 순간 나는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들었다. 환한 미소가 번져 있을 아이의 얼굴을 기대하면서.
그런데 아이는 나를 보더니 겁먹은 얼굴로 비명을 질렀다. 다른 아이들까지 덩달아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나를 가리키고 있는 모든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무슨 영문인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램프에 불을 붙이던 중에 내 머리에 불이 붙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어느새 불이 붙은 머리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고 아이들은 완전히 겁에 질려버렸다.
레이프는 별 어려움 없이 불을 껐다. 아이들이 그의 머리를 마구 때리면서 불을 끄게 도와준 덕분에 말이다. 그 뒤로 그날의 실험은 더 이상의 사건 없이 원활히 진행됐다. 하지만 그 일이 그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일으켰다.
그 몇 주 사이에 처음으로 선생님이 되길 잘했다는 뿌듯함을 느꼈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런 일쯤이야 현장의 모든 교사들이 겪는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흘려 넘길 만도 했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를 도와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특별히 잘하지는 않았지만 노력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머리에 불이 붙은 줄도 모를 만큼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 몰두할 수 있다면 나는 지금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순간 결심했다. 머리에 불이 붙은 듯한 열정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겠다고.
레이프 에스퀴스는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 단순히 일이나 직업이 아님을 아는 교사다. 제대로 이해하고 보면 교직도 일종의 예술이다. 이 점은 레이프가 교사로는 처음으로 백악관에서 수여하는 미국 예술상(National Medal of the Arts)을 수상하면서 부각됐고, 나로선 현장의 훌륭한 교사들을 볼 때마다 그 확신이 더욱 굳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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