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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독서습관238_삶에 대한 사색이 풍성한 책_꿈을꾸는 영혼에게_헤르만 헤세_1989_가람문학사(200626)

by bandiburi 2020. 6. 21.

■ 저자 : 헤르만 헤세(1877~1962)

헤르만 헤세는 1877년 남독일의 뷔르덴베르크의 칼브에서 출생했으며, 시인이며 소설가인 동시에 회화나 음악에도 조예가 깊은 순수한 예술가다. 그의 문학과 예술의 저류에는 동양적 철학의 바탕 위에 유럽 문화에 대한 회의와 비판 현실을 담고 있다. 젊은 날의 숱한 번민과 방황은, 어느 서점의 견습 점원으로 정착하면서 그때서야 비로소 괴테를 만나게 되고 시와 음악과 생활을 사랑하는 운명적인 영혼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는 여든 삶의 일기로 스위스 몬타놀라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많은 한 시대의 고뇌하는 젊은이들의 사랑과 인생을 밝혀 주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시대의 혼돈 속에서 청춘과 사랑, 고독과 방랑, 자연과 향수를 바탕으로 하는 문학 세계를 구축하였다. 1946년 <유리알 유희>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고 <크놀프>, <수레바퀴 밑에서>, <데미안>, <싣달타>, <지성과 사랑>, <황야의 이리>를 발표하여 독일 문단은 물론 세계 문단에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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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감

집안 서재에서 읽어보지 못한 헤르만 헤세의 책이 있어 읽게 되었습니다. 헤세의 책은 저자의 경험과 사색이 녹아 있어서인지 장황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집중하지 않으면 읽고는 있으나 잡념에 빠지기 쉽습니다. 시간의 제약 없이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조금씩 생각하며 읽기에 좋은 책입니다. 

지방에서 대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친 큰아들이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왔는데 헤세의 책 <데미안>이 보입니다. 샀냐고 하니 사서 읽어봤다고 합니다. 공교롭게도 부자가 모두 헤세의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1877년에 독일에서 태어나 1962년까지 살았으니 산업혁명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 유럽의 한가운데에서 급변하는 모습과 전쟁 속에서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손 안의 컴퓨터로 언제든지 연결되어 살아가는 21세기 현재의 우리에게 헤르만 헤세가 살았던 시기의 고민이 우리에게도 적용될까 살짝 고민도 했습니다. 하지만 100년 전후의 인생을 살다가는 인간의 존재가 얼마나 미약한 나비의 날갯짓보다 약한 것인지 안다며 시대와 관계없이 현재도 유효할 것입니다.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고 우리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성인이라면 충분히 헤세가 전해주는 에세이에 공감할 수 있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부동산이 올랐다고 언론에서 난리고, 미국 주식이 좋다고 유튜브에서 많은 조각들이 올라와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의식주에 대한 고민이 사라지면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습니다. 나와 가족만이 아니라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나는 지금 나의 인생을 살고 있는가, 남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스스로의 주체적인 인생을 꾸려가야겠습니다.

■ 책에서 발췌

29페이지) <수레바퀴 밑에서>가 일본어로 번역되었다. 그리고 한 젊은 독자로부터 아름답고 감동적인 편지가 왔다. 상당히 능숙한 독일어로 써진, 약간 열광적인 청년의 편지였는데, 사라진 슈바벤의 소년 가벤라트가 그쪽 일본에서 다시 젊은이들의 동반자가 되고 위안자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32) 이러한 기쁨들 중에서 매일매일 자연과 접촉함으로써 생겨나는 기쁨이 최상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눈은, 즉 남용되고 초긴장된 현대 인간의 눈은 원하기만 한다면 완전히 지칠 줄 모르는 향락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 

34) 매일 가능한 한, 많은 조그마한 기쁨을 체험하고 보다 크고 긴장감을 주는 향락을 절약하였다가 휴가 동안이나 행복스런 시기에 즐기도록 분배하자는 것, 이것이 내가 시간의 결핍과 불만족으로 괴로워하는 모든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 것이다. 무엇보다도 기분 전환을 하고 매일매일의 구원과 균형을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기쁨이 아니라, 작은 기쁨들이 주어진 것이다. 

65) 이렇게 몹시 갑갑하고 옹졸한 기독교와 약간은 달콤한 시구와 그리고 대개는 너무나 지루한 목사의 설교 등에 비하면 인도의 종교와 문학 세계는 훨씬 더 유혹적이었다. 그곳에서는 친근성 때문에 마음을 괴롭힘 당하지는 않았고, 회색칠을 한 무미건조한 설교단의 냄새나 경전주의의 성경 시간 냄새도 없었다. 나의 공상을 활동하게 하는 공간이 있었다. 인도의 세계에서 가져온 최초의 복음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으며 그 복음은 평생 동안 감화를 주었다. 

66) 분명히 가톨릭 교회도 종교를 위한 이상적인 영역은 못 되었다. 그곳에서도 분명히 야심과 잘난 체하는 것, 싸움질과 조잡한 권력 의지가 작용하고 있었다. 또한 그곳에서도 분명히 기독교적 생활은 개인적인 마음 깊숙이 틀어박히기 일수였다. 

69) 그 염원의 배경은 슈바벤의 목사, 세상을 등지고 아무 일도 없이 시골에 파묻혀 시를 썼던 크리스티안 바그너의 시구였다. 
  세상이여 부탁이다
  나를 간섭 말아다오.

77) 잠이란 자연의 가장 값진 보시 중의 하나로서 그것은 당신의 친구이자 애인이며, 마술사이자 동시에 조용한 위안자이다. 계속되는 불면의 고통을 아는 자, 반 시 정도 열병처럼 졸다가 겨우 잠이 드는 것으로 만족하는 자는 모두가 진실로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79) 부드럽게 관찰하고 사랑이 가득한 마음으로 사물을 신중하게 고려하여, 영혼 깊숙이 꿰뚫어 보고 인간적인 모든 약점을 선한 마음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의 고독한 정적 속에서 자유분방하게 사고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81)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몸부림친다.
     알은 세계와 같은 데서 태어나려고 하는 것과 같이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의 곁으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루삭스라 한다. 

85) 한 번이라도 자신을 내놓았던 사람이라면, 한 번이라도 위대한 확신을 실행했고, 운명에 자신을 맡겼던 사람이라면 자유로운 사람이다. 그는 더 이상 지상의 법을 따르지 않고, 세계 속으로 떨어진 채 전체의 움직임과 함께 떠다녀야 한다. 그것은 매우 간단해서 어떤 어린아이라도 이해할 수 있고 알 수 있는 그런 것이다. 

88) 오늘날 우리의 문화가 빈약하고 비참해져서 우리의 생이 타락하고, 또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행위는 끝없이 축소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중세 때와 같은 경건하고 건전한 생의 질서와 신앙이 끊임없이 더욱 좋고 순수하고 열망적으로, 확실하고 선명하게 중심에 놓인다는 것 또한 의심할 수가 없다.

91) 인간이란 어떻게 피할 수도 없이 고독하게 혼자서 살아 가며 모든 고통과 공포와 죽음을 혼자서 맛보고 참아내야만 한다는, 그 무서운 감정이 모든 생각 속으로 살며시 스며드는 것이다. 건강한 젊은이에게 있어서 이것은 한 줄기의 그림자이고, 경고가 된다. 그러나 약한 사람에게 있어서 이것은 고독의 전율이 된다. 

97) 사색으로 고민하고 있지 않은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서 먹거나 마시거나 하는 일을 기뻐하고 그것에 만족하고 그것을 바꾸려고 하는 따위의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99) 만약에 당신의 병이 육체적인 것으로써 의사가 당신에게 양치질을 하라든지 약을 먹으라든지 해안으로 가라든지 권한다면 아마 당신은 어째서 그러한 방법이 도움이 되는지는 모르더라도 일단 의사가 시키는 대로 해보게 된다. 내가 지금부터 권해 드리는 것도 그와 같은 것이다! 당분간 당신 자신의 일보다도 자신 이외의 사람들 일을 생각하는 연습을 해 보십시오. 그것이 유일한 치료법입니다.  

180) 죽은 친구의 얼굴을 보고 나는 느낀 바가 무척 많았고, 또한 슬픔에 잠기기보다는 기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204) 제멋대로 생각해 낸 <뜬소문>에서부터 선동적인 논설에 이르기까지, <적>의 예술의 보이콧에서부터 모든 국민에 대한 모욕적인 말에 이르기까지 그러한 모든 발언은 사고의 빈곤과 정신적인 안일에 기초하고 있다. 

205) 괴테는 1813년에 애국가를 짓지는 않았지만 열등한 애국자는 아니었다.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독일을 알고 사랑하고 있었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독일에 대한 기쁨보다도 인류에 대한 기쁨이 더 컸었다. 그는 사상이나 내적 자유나 지적 양심이라는 국제 세계의 시민이며 애국자였다. 가장 깊이 사색할 때 그는 극히 높은 경지에 있었으므로 여러 국민의 운명이 그에게는 이미 개개의 중요성에 서가 아니라 전체에 종속된 움직임으로서 나타나는 것이었다. 

231) 사람이란 자신만을 위하여 사는 것보다는 남을 위하여 살 때에 더 만족스러운 법이다. 단 노인이라고 해서 그것을 너무 영웅적인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실지로는 그런 것이 아니다. 가장 열의 있는 청년이 가장 훌륭한 노인이 된다. 학교 시절에 이미 노인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가장 훌륭한 노인이 되는 것은 아닌 것이다. 

232) 사색과 고민하지 않는 자는 아침의 기상이나 음식을 즐기고, 거기에서 만족을 발견하여 세월의 변화를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을 자명한 것으로 생각할 수 없게 된 자는 흐르는 나날 속에서 굶주린 듯이 주의 깊게 참다운 생활의 순간을, 그 반짝임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시간의 감정을 전체의 의의와 목적에 대한 모든 생각과 함께 씻어 가는 순간을 추구하는 것이다. 

253)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을 신으로 하고, 인간이 신임을 상기시키는 한 가지의 일이 인간에게 주어졌다. 그것은 바로 운명을 인식하는 일이다. 짜라투스투라는 운명을 인식했다는 점에서, 스스로의 생활을 살았다는 점에서, 나는 짜라투스트라다. 스스로의 운명을 인식하는 자는 적다. 스스로의 생활을 사는 자는 또한 적다. 스스로의 생활을 사는 것을 배우라! 스스로의 운명을 인식하는 것을 배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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