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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203]이반일리치의 죽음_19세기 러시아 농촌과 물욕에서 벗어난 진솔한 삶을 보여주는 소설

by bandiburi 2020. 1. 19.

 결국 톨스토이가 위의 세 작품에서 보여주고자 한 것은 물욕에서 벗어나 인간미를 잃지 않는 진솔한 삶의 중요성이라고 할 수 있다 (249)

회사 월간 조조강의에서 소개한 책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읽었습니다. 톨스토이의 단편 3개가 들어있는 책이었습니다. <세 죽음>, <주인과 하인> 모두 죽음을 포함하고 있어 어두운 면이 있습니다. 

1800년대 후반의 러시아 농촌의 상황을 상상하면서 읽었습니다. 판사로서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고자 노력하지만 적자 인생을 살고 있는 이반 일리치는 어느 날부터 몸의 이상을 느끼고 결국은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자기 주변의 친구와 아내, 딸의 태도 속에서 고독을 느끼고 자신의 죽음에 대해 진지한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오직 하인밖에 없음을 깨닫습니다. 

1997년 경제위기에 많은 가장들이 믿었던 직장에서 나오며 현실의 냉혹함을 느낀 바 있고 그 이후로 대한민국의 직장인들은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반 일리치의 삶이 우리의 현재 모습과 무엇이 다를까요? 

자녀들의 명문대 혹은 인서울 대학입시가 부모의 삶의 목표인 양 살거나, 혹은 서울이나 수도권에 부동산 투자를 잘해서 재테크에 성공해야만이 성공한 삶을 산 것처럼 우리의 시간을 사용하고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됩니다. 마치 <주인과 하인>에서 주인인 '바실리 안드레이치'와 같이 하루하루 자신의 재산을 늘려가는 것이 삶의 가장 큰 가치인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이반 일리치'의 모습은 열심히 가족을 위해 살다가 40대에 불치의 병을 확인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가장들을 한 면과 같이 느껴졌습니다. 

톨스토이는 세 편의 단편에서 '죽음'을 논하면서 살아있는 존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대한 고민을 소설로 던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돈, 명예, 자녀 등 우리 자신을 대변한다고 하는 것들이 죽음 앞에서는 어이없이 부질없는 것으로 녹아버립니다.

<주인과 하인>에서 주인인 '바실리 안드레이치'는 눈보라 속에서 살아보려고 발버둥을 치지만 광활한 평야에서 눈보라 치는 밤은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그의 머릿속에서 늘 계산하던 돈에 대한 것은 하인을 살리고자 하는 사랑으로 변합니다. 이것이 톨스토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라고 생각됩니다.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앞에 두고 생각하면 의미가 급격히 사라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을 할 때 결국 한 번은 대면해야 하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뭔지 알고 추구해야 할 방향을 찾아갈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다음은 책에서 남기고 싶은 문장을 인용했습니다. 

12페이지) 비록 친한 동료가 죽었지만 막상 사망 소식을 접하자 사람들은 으레 그렇듯이 자기가 아니라 그가 죽은 데 대해 안도하는 기분이었다. '난들 어쩌겠어. 그는 죽었지만 난 살아 있는데'라고 저마다 생각하거나 그렇게 느꼈다.

15) 게다가 살아 있을 때보다 더 의미심장해 보였다. 얼굴에서는 할 일을 했다는, 아니 할 일을 제대로 했다는 걸 읽을 수 있었다.

32) 하나는 그런 여성을 얻음으로써 자기 자신에게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동시에 높은 사람들이 옳다고 여기는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34) 아내의 짜증과 요구의 강도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이반 일리치는 자신의 인생에서 무게중심을 공무 쪽으로 조금씩 조금씩 꾸준히 이동시켰다. 그는 공무를 더 좋아하기 시작했고 공명심도 예전보다 더욱 강해져 갔다.

39) 목표는 오천 루블의 수입이 보장되는 자리를 물색하는 것 하나였다. 부서의 명칭이나 성향, 업무의 종류 따위는 문제 되지 않았다. 그에게 중요한 건 오로지 오천 루블이 보장되는 자리뿐이었다.

41) 프라스코비야 표도로브나는 다 믿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의 얘기를 들어주었다. 그녀 또한 일절 반박을 삼간 채 이사하게 될 도시에서 어떤 삶을 꾸며야 좋을지에 관해서만 얘기했다. 그러나 이반 일리치는 그녀의 생각이 자신의 것과 같다는 것을 알고 기뻐하였다.

51) 바로 남편의 죽음조차 자신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에 그녀는 자신을 지독히 운도 따르지 않는 여자라고 여기며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감추었다.

58) 그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경험하지 못했던 무섭고 낯설고 의미심장한 무엇인가가 그의 몸 안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건 오직 그 자신만 알고 있었고 주위의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하려 들지도 않았고 세상만사는 예나 다름없이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게 이반 일리치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다.

81) 오랜 기간 고통에 시달린 후 어느 순간 이반 일리치는 고백하는 게 지독히 창피했지만 누군가 자기를 병든 어린애처럼 불쌍히 생각해주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다.

82) 그러나 무엇보다도 바로 이러한 그 자신과 그 주위의 거짓이 그의 생애의 마지막 날들을 망쳤다.

96) 그는 의지할 데 없는 자신의 처지, 절대 고독, 사람들의 냉혹함, 신의 냉혹함, 신의 부재가 서러워 울었다.

98) 최종 결과가 지금의 자기 자신인 회상이 시작되자마자 당시 기쁨이라고 여겼던 모든 것들은 이제 그의 눈앞에서 녹아내려 부질없는 것으로 그리고 왕왕 추한 것으로 변했다. 
(중략) 항상 똑같았던 삶, 계속되면 될수록 생명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삶, 산에 오른다고 상상했었지. 그런데 사실은 일정한 속도로 산을 내려오고 있었어. 그래 그랬던 거야.

106) 그는 그들에게서 자기 자신, 자신의 삶이 지향하던 모든 것을 보았고 이 모든 것은 다른 게 아니라 삶과 죽음을 가리고 있는 거대한 기만이라는 걸 똑똑히 보았다. 이 깨달음을 자꾸만 커져갔고 육체적인 고통을 열 배로 가중시켰다.

112) 그는 그 말을 듣고 그 말을 마음속으로 되풀이했다. "죽음은 끝났어"라고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205) 그건 그의 인생의 유일한 목표이자 의미이며 즐거움 그리고 자랑인, 바로 자신의 돈을 얼마나 벌어들였고 또 얼마나 더 벌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이 아는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돈을 모았고 또 가지고 있는지, 얼마나 벌어들였고 또 얼마나 벌어들일 것인지였고, 또 자신도 이들처럼 앞으로 아주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라는 것이었다.

218) '몸에 배고 익숙한 것을 포기하는 게 아깝다고? 어때, 할 수 없지, 새로운 것에 적응하면 되지.'

225) 여기서 그는 성상의 얼굴, 금색 장식, 양초, 사제, 기도 등 이 모든 게 교회에서는 대단히 중요하고 또 필요하지만 지금 여기서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 양초며 기도와 그 자신이 지금 처한 처량한 상황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고 또 없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히 그리고 확실히 깨달았다.

230) 그렇지만 그는 양다리, 양손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았고 오로지 자신의 아래에 누워 있는 농부의 몸을 어떻게 하면 따뜻하게 할 수 있을까에만 정신을 쏟았다.

237) 그는 자신이 죽음으로써 아들과 며느리를 자신을 먹여 살리는 짐에서 해방시켜주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지겨운 이 세상의 삶을 뒤로한 채 해가 가고 시가 바뀜에 따라 자신이 훨씬 이해하기 쉽고 마음이 끌리는 저세상의 삶을 살러 갔다.


239) 여기에 소개하는 세 작품은 이 중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룬 것으로 얼핏 보기에는 죽음에 초점을 맞춘 것 같지만 좀 더 들여다보면 사실은 삶, 즉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더 무게를 두고 기술한 것임을 알 수 있다.

241) 이런 이들의 비인간적인 모습을 작가는 위선으로 규정짓고 있다.

242) 10장에서는 죽음이 현실로 다가오고 11장에서는 자신이 여태까지 살아온 '쉽고 편하며 점잖은 삶'이 사실은 위선으로 가득한 '그게 아닌' 인생, 물질적인 행복을 정신적인 행복으로 착각한 인생, 거짓된 삶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245) 이들은 죽음 또한 삶처럼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마부의 죽음은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나무의 죽음과 비슷하다.


독서습관 203_이반일리치의 죽음_톨스토이_2005_작가정신(200118)


■ 저자: 톨스토이

남러시아 툴라 근처 영지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명문 백작가의 사남으로 태어났으나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모를 후견인으로 성장했다. 카잔 대학에서 3년 동안 공부한 후 대학교육에 실망을 느껴 영지로 돌아가 농민생활 개선에 힘썼으나 실패했다. 잠시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했던 톨스토이는 1851년 3월 <어제 이야기>를 썼으나 미완성으로 남겼다. 이해에 사관후보생으로 입대했으며 이듬해 <소브레멘니크>에 <유년시절>을 발표하면서 전역하기까지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였다. 1862년 34세 때 궁정 의사의 딸인 18세의 소피아 안드레예브나 베르스와 결혼, 교육잡지를 발간하기도 하면서 문학에 전념하여 불후의 명작 <전쟁과 평화>를 발표하였으며 이어 <안나 카레니나>, <부활> 등의 역작을 남겼다.

그러나 <안나 카레니나>를 완성할 무렵부터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에 대한 무상함으로 심한 정신적 갈등을 겪은 톨스토이는 1880년에 들어 위선에 찬 러시아 귀족사회와 러시아 정교에 회의를 갖고 마침내 초기 기독교 사상에 몰두, '톨스토이주의'라고 불리는 사상을 체계화함으로써 예술가 톨스토이에서 도덕가 톨스토이로 변모한다. 지주 생활 청산을 선언, 모스크바 빈민굴 인구센서스에 참여하고 대기근에 시달리는 농부들을 돕기 위한 캠페인도 조직한 이 위대한 작가는 1910년 10월 28일 가족들 몰래 가출하여 11월 7일 라잔 우랄 철도의 작은 간이역 이스타포브(현 톨스토이 역) 역장 관사에서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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