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블랜더 거실
라이프

[종교] 신앙생활 회고 및 아마겟돈 설교말씀(191215)

by bandiburi 2019. 12. 15.

대학시절 군대 제대 후 복학하면서 기독교 동아리에서 시작된 신앙생활입니다. 어느덧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성경 자체에 대한 말씀 훈련을 요한복음, 창세기 등을 배우며 진행했고 결국은 신앙고백이란 이름으로 믿음의 여부를 언급해야 하는 단계에 이르렀던 기억입니다. 돌이켜보면 대학생 시기가 순수한 마음이었고 그 순수한 마음판에 신앙이란 글자를 새겨넣었기에 흡수가 잘 되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받아들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 이후 직장을 가지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양육하면서 주일마다 교회를 다녔습니다. 설교에 대한 내용은 잠과의 싸움이면서 기억의 시간과이 싸움이었습니다. 형식적인 Church-goer가 되었습니다. 

블로그에 주일예배 후 내용을 남기고자 하는 것도 더 이상 형식적인 선데이신자가 아니라 뭐라도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유익한 시간이 되고자 하는 노력의 일부입니다. 예배시간에 말씀에 대해 휴대폰으로 열심히 정리하고 예배 직후에 블로그에 단상과 함께 정리합니다. 모든 내용을 적었는데 생각해 보니 나의 생각으로 소화한 내용이 기록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는 내 것이 아닌 것이지요. 나의 생각으로 흡수된 것이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동인이 되는 것입니다. 

2019년 길가에교회 12월 2주 차 예배 말씀은 요한계시록 16장 10절에서 21절의 내용이었습니다. 말씀 중에 얻은 것을 중심으로 짧은 생각을 기록해 봅니다. 

8시 15분 경에 소리모아 찬양대 연습이 있었습니다. 101장 '이새의 뿌리에서'를 4부로 불렀습니다. 악보를 보며 베이스 음표를 보며 음을 맞추고 가사를 따라가기 급급합니다. 연습이 부족한 것이지요. 2019년 성가대로 봉사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하지만 일주일에 찬송가 하나를 부르는 것에도 수동적으로 끌려다니며 자리를 채우는데 만족했지요. 삶이 주도적이 되어야 한다고 좋은 글을 많이도 봤지만 나는 수동적이었습니다. 연습 중에도 지휘자께서 가사를 음미하며 노래를 부르라고 하시는데 음을 따라가는데 바쁘다 보니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일주일간 반복해서 듣고 가사를 외우고 음미한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요즘은 유튜브로 연습도 할 수 있는데 관심과 노력의 부족입니다. 세상에 주어진 환경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긍정적으로 삶의 활력소로 받아들일 것인가는 나의 태도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1년이면 55곡을 외우고 음미하며 삶의 여러 환경 가운데 힘을 덧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대림절 기간이라고 합니다. 절기에 대한 얘기가 언급되면 그런가보다라며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이제 호기심을 가지고 이해하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예배 중에 강대상 뒤쪽으로 촛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불이 붙어있는 것은 일부였습니다. 왜 그렇지? 다른 분이 나에게 묻습니다. 글쎄요. 예배후 아내에게 물어보니 대림절 기간에 매주 하나씩 촛불을 켠다고 합니다. 마지막 주에는 5개의 촛불이 모두 켜지는 것이죠. 

대림절은 영어로는 Advent라고 합니다. 성탄절 전의 4주간 주님의 탄생과 다시오심을 기리는 절기라고 합니다. 즉 주님을 기리는 절기이면서 감사하는 시기요 재림을 기다리며 성도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생각해 보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성탄절이 점점 변질되어 흥청망청 즐기는 날이 되어버려 철저한 기독교인들은 성탄절을 지키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는 재림의 날을 믿음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지막 날에 최후의 전쟁 아마겟돈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아마겟돈(Armageddon)'이란 용어는 책에서, 영화에서, 만화에서 많이 접해본 용어입니다. 하지만 이 말이 성경적으로 의미를 가지고 나 자신에게 와 닿는 것은 없다는 것이 고백입니다. 설교말씀에 의하면 사탄의 군대가 결집을 하지만 결국은 멸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선과 악을 오가는 경험을 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선한 삶을 살고자 합니다만 원치 않게 반대 방향으로 폭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탄의 힘에 사로잡혀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어떤 경험이 그/그녀에게 사탄의 힘에 사로잡혀 사는 삶으로 이끌었을 것입니다. 사탄의 힘이란 너무도 커서 혀를 깨물고 죽어가면서도 하나님의 비방하는 완악함을 보여준다고 합니다. 우리의 이성으로 판단하고자 해도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분도를 자아내는 사건을 일으키는 분들의 뉴스를 통해서 듣고 봅니다. 설교 중에도 몇 가지 예를 들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 함께 있었던 두 강도중에서 끝까지 저주하며 죽어간 강도가 사탄의 힘에 휘둘리는 예이며
둘째는 출애굽기에 등장하는 바로왕의 완악함입니다. 10가지 재앙에도 굽히는 듯 굽히지 않는 그의 행동에 장자까지 죽지만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삶에 임할 때 삶은 아름다워집니다. 부두에 정박한 배에는 양다리를 걸치고 있을 수 있지만 배가 출항할 때는 선택해야 합니다. 30년간 교도소에서 죄수들을 위해 언니 엄마처럼 사랑으로 대한 여인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도 10퍼센트 정도만이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이가 되지 나머지 분들은 여전히 마음을 열기 힘들다고 합니다. 이는 사탄의 영 가운데에서 아직도 완전히 헤어 나오지 못하는 죄수들의 모습일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꽃보다 예쁘기도 하지만 한없이 추악해질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 자신이 예배의 자리로 와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죄악의 삶에서 하나님의 영이 이끄는 삶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마겟돈 전쟁에서 어느 편에 설 건인지 분명해야 합니다. 회색지대는 없습니다. 

디아볼로스, 즉, 사탄은 미가엘 천군천사에게 져서 세상에 내려와 거짓의 영으로 사람을 유혹합니다. 역량을 끌어모아 싸움을 걸고자 합니다. 사탄의 영이 이끌면 벌거벗고 있어도 부끄러운 줄 모르며 세상의 욕망을 추구합니다. 성경에 부끄러움을 알고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의 삶이 부끄러워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우물가를 찾았고 예수님이 만나주셨습니다. 또한 간음하다 잡혀 돌에 맞을 여인도 부끄러움을 알고 있었고, 세리장 삭개오도 부러운 줄 알고 편치 않은 삶을 살다 결국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우상이 있습니다. 돈, 명예, 성공과 성취, 성적 타락, 증오와 폭력입니다. 달콤한 말들입니다. 막상 눈앞이 이런 것들이 주어졌을 때 우리는 과감하게 우상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강하고 담대해져야 합니다. 우리의 감정보다도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서 인생을 살아가야겠습니다. 로마서 말씀과 같이 빛의 갑옷을 입고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