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박완서
소감
모처럼 소설을 읽었습니다. 박완서 작가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통해 조금 알게 되었는데 다른 책에서 작가의 아들을 잃은 슬픔이 오롯이 담겨 있는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글이 소개되어 읽게 되었습니다.
도서관에서 책을 찾으며 박완서 작가가 1970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아주 많은 글을 남겼고 그것이 전집이 되어 출판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계사에서 나온 전집 중 15권에는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한 말씀만 하소서>, <서울 사람들>이 담겨 있습니다.
소설을 읽을 때면 쉽게 상황 속으로 빠져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소설은 늘 즐거움을 줍니다. 오랜만에 읽어보는 국내소설을 통해 빠르게 발전하는 한국 현대사의 한 구역으로 잠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는 35세의 이혼녀이자 교사인 차문경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어쩌면 이리도 운이 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라는 인상을 받습니다. 혁주라는 어른스럽지 않은 마마보이를 만난 것부터가 일이 꼬이게 된 시작이었습니다. 짧은 소설 속에 담아야 하기에 작가의 특권으로 많은 환상과 현실을 담았습니다. 재혼에 대한 달콤한 상상과 임신, 학교에서의 퇴직 그리고 아이의 탄생과 억척스럽게 생활을 꾸려가는 모습 하지만 마지막에 아들을 둘러싼 혁주 가족과의 법정다툼까지... 주변에서 보지 못했던 광경이지만 아무래도 이와 비슷한 삶의 굴곡을 겪은 분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소설의 장점은 타인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내가 살지 않았다고 해서 그런 삶이 없다는 것은 아니니까요.
< 한 말씀만 하소서>는 소설이 아닌 작가가 1988년 창창한 미래를 앞둔 의사였던 아들을 먼저 보내고 겪는 심리적 육체적 갈등과 고민을 담은 일기를 모아놓은 글입니다. 이제 고3, 고2, 중3 세 자녀를 키우는 아버지로서 상상만 해도 가슴이 저려오는 상황입니다. 2014년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을 때 수많은 아이들을 먼저 보낸 부모들의 심정이 똑같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5년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마음의 상처는 여전히 피가 철철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밥조차도 먹을 수 없고, 아들을 따라가야 한다는 마음, 하지만 죽지도 못하고 누룽지를 끓여 근근이 시간을 보내던 중 수녀원에 들어갑니다. 자신의 상황을 위로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밝게 감사하며 살아가는 수녀들과의 생활을 통해 회복을 하고 딸의 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작가란 삶의 지극히 슬픈 상황 속에서도 그 마음을 이렇게 풍성한 글로 표현할 수 있구나라는 놀라움도 남았습니다.
<서울 사람들>에서는 주인공 혜진의 가족을 중심으로 서울 사람들의 대표적인 모습을 담았습니다. 혜진이 주택에서 살다가 미분양 아파트로 옮기면서 몇 십만 원의 월급을 받는 남편의 노력보다 1년 만에 몇 천만 원이 오르는 부동산 투기의 광풍을 체험하게 됩니다. 혜진이 이런 풍조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게 되는 것은 부동산으로 한몫 벌고자 하는 그 시대를 살았던 수많은 아줌마들의 모습을 대변합니다. 부동산은 현재도 수도권에서는 아니 전국에서 재산을 늘리는 방법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언제가 끝일까요. 건전한 노동에 대한 보상으로 받는 급여로는 구입할 수 없는 10억 원을 거뜬히 넘는 아파트가 즐비해진 서울의 모습입니다. 씁쓸한 현실이며 언젠가는 버블이 터지고 합리적인 수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설 속에는 중매쟁이 윤선생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연애결혼을 한 혜진에 만족하지 못하고 여동생인 혜숙을 통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집안과 관계를 맺고자 하는 조그만 회사 사장인 부모님의 욕심이 드러납니다. 윤선생을 통해 다리를 놓아달라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윤선생에게 돈이 들어가고, 사회적인 격차를 느끼는 혜숙은 점점 순수성을 잃어갑니다. 가까스로 소개받은 인턴을 밟고 있는 의사는 연애감정이 없습니다. 그래도 큰돈을 들여 약혼식을 합니다. 그리고 윤선생이 찾아와서 하는 말이 3개의 열쇠 중 하나는 최소한 신부 측에서 해줘야 하는 게 통례라고 합니다. 이 장면에서 혜진의 부모는 뜨악합니다. 그리고 혜진의 남편을 불러 사위가 제일이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허상을 쫓다가 현실을 직시하게 된 부모의 모습이자 우리 사회의 잘못된 모습의 간접적인 비판일 것입니다.
책에서 발췌
194페이지) 이해인 수녀로부터 받은 세 권의 책 중 <샘>과 <종교박람회>도 <법구경>처럼 단숨에 읽었다. 두 권 다 안소니 드 멜로라는 처음 들어보는 신부님이 쓴 짧고 재미있는 이야기 모음이었다.
195) 나머지 한 권은 <죽음이 마지막 말은 아니다>(G.로핑크 지음)라는 50쪽 정도의 얇은 소책자였지만 그 속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한 편의 시 때문에 날이 샐 때까지 한잠도 이루지 못하고 말았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고유의
비밀에 싸인 개인적인 세계를 지닌다.
이 세계 안에는 가장 좋은 순간이 존재하고
이 세계 안에는 가장 처절한 시간이 존재하기도 한다하지만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는 숨겨진 것
한 인간이 죽을 때에는
그와 함께 그의 첫눈도 녹아 사라지고
그의 첫 입맞춤, 그의 첫 말다툼도...
이 모두를 그는 자신과 더불어 가지고 간다벗들과 현제들에 대하여 우리는
무엇을 알고 있으며,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이에 대하여
우리는 과연 무엇을 알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의 참 아버지에 대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그 모든 것은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사람들은 끊임없이 사라져가고...
또다시 이 세계로 되돌아오는 법이 없다
그들의 숨은 세계는 다시 나타나지 않는다
아하 매번 나는 새롭게
그 유일회성을 외치고 싶다248) 방에서 소화 테레사의 자서전을 읽었다. 읽다 만 <십자가의 성요한> 때문에 성인에 대한 이야기라면 읽기도 전에 뜨악하여 경원하는 마음이 앞섰는데 이 성녀의 자서전엔 깊이 빠져들었다.
독서습관
독서습관183_그대 아직 꿈꾸고 있는가 한 말씀만 하소서_박완서소설전집15_박완서_2008_세계사(19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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