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 최진석
서강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건명원'의 초대 원장을 맡고 있다. 서강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 북경대학교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개인과 사가 나아갈 방향에 관한 깊은 고뇌를 안고 산다. 새로워진 사람들이 이루는 새로운 나라를 꿈꾼다.
■ 소감
좋은 책은 독자에게 생각하게 만듭니다. 최진석 교수의 강의나 책은 그런 면에서 좋은 강의이고 좋은 책입니다. 책중에는 여러 가지 의미 있는 문장들을 담고 있지만 기억에 남는 두 가지를 남깁니다.
첫째, 대답과 질문의 차이입니다. 아이들에게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배우는 과정에서 혹은 일상생활 중에 많은 질문을 던지라고 합니다. 질문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나만이 아닌 설명해주는 사람의 부족한 부분을 서로 보완해 주고 강화해주는 지적 활동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궁금증이나 호기심이 토대가 돼야 한다고 합니다.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대한민국에서 교육을 받고 자란 우리들은 교사들이 교과서를 통해 알려준 내용을 잘 외우고 정해진 시간에 아는 것을 시험을 통해 숫자로 우열을 가리는 환경에 익숙합니다. 질문이래야 자신의 생각보다는 단답형의 대답을 요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장황하게 자신의 생각을 풀어나가는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모난 돌이 정을 맞듯이 좋은 질문은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어쩌면 당시의 교육자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마인드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더 이상 단답형 대답을 요구하는 시대가 아니라 자기만의 생각이 있는 즉 철학이 있는 주체적인 인격체로 자란 아이들이 필요한 세상입니다.
회사 내에서도 명문이라고 하는 대학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지만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능력을 질문을 통해 드러내는 것이 익숙하지 못합니다. 나 자신은 의도적으로라도 회의나 설명회가 있으면 많은 질문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교환하는 자리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호기심을 전염시키려는 의도입니다.
둘째, 장르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사회가 선진국이라는 점입니다. 1900년대 초가 되어서야 일본에서 들어온 '철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나라입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철학이라고 하면 쇼펜하우어, 니체 등을 운운하고 그 사람들이 어떤 말을 했다는 등을 언급하면서 철학자 흉내를 내는 사람들을 철학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과거에 정립되었던 세상을 뒤바꾸었던 사상의 체계를 과거의 유물로서 이 나라에 가지고 들어와 현재에 그것을 적용하려고 하는 것은 철학이 아니라 단지 머릿속에 지식으로 가져온 것뿐인 것입니다. 지식을 바탕으로 새로운 장르를 개척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철학인 것입니다.
산업이 선진국을 추적하면서 급성장을 해왔습니다. 이제는 장르를 개척해서 선진국으로 점프업 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국민 개개인이 피곤한 경쟁시스템을 극복하고 자신만의 장르를 만들어 가는 생각하는 힘, 철학하는 개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경쟁을 부추기는 사회에서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다른 나라의 시각에서 우리의 모습은 혀를 내두를 정도일지도 모릅니다.
최근에 탈북한 모자가 굶어 죽었다는 기사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많은 탈북민들이 대한민국에 와서 가장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것이 과도한 경쟁이라고 합니다. 이 사회에서 어려서부터 자라온 사람들은 잘 느끼지 못합니다. 하지만 느리게 변하는 사회에서 살다 빠르고 경쟁 속에서 허덕이는 사회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이 속도와 분위기는 적응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변을 둘러보고 함께 갈 여유가 없는 것일까요?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태연자약'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을까요? 바로 우리 자신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 책에서 발췌
9페이지) 최연혁 교수의 책 <좋은 국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10) 우리나라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돈이 자본으로 바뀌고, 부자가 자본가로 바뀌어야 한다. 백성이 시민으로 바뀌어야 한다. 돈, 부자, 백성이 자본, 자본가, 시민으로 바뀐다는 것은 사적인 범위 안에 갇혀 있는 시선을 깨고 나와 역사적으로나 공적으로 책임성을 발휘한다는 뜻이다.
75) 제가 <인간이 그리는 무늬>라는 책에서 밝혔듯이 '인문'이란 인간이 그리는 무늬, 즉 인간의 동선입니다.
76) 스스로 자신이 나아갈 길을 결정하지 못하는 한 항상 종속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종속적인 삶을 사는 한 자신이 주도권을 잡고 스스로의 삶을 꾸리거나 자신이 몸담고 있는 사회를 효과적으로 관리해나가기란 쉽지 않습니다.
79) 선진국은 선진국을 유지할 시선의 높이에서 운영되고, 후진국(중진국)은 후진국(중진국)적 시선의 높이에서 운영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시선의 높이가 생각의 높이이고, 생각의 높이가 삶의 높이이며, 삶의 높이가 바로 사회나 국가의 높이이기 때문입니다.
91) 보통 우리는 무엇을 하고 살 것인지에 몰두해 깊은 고민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중략) 그런데 이런저런 구체적인 일을 중심으로 고민하다가 어느 순간에는 갑자기 "그런데 말이야... 산다는 것이 도대체 뭐지?"라고 하면서 생각을 다른 차원으로 끌고 가버리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됩니다. (중략) 이렇게 되면 사유의 시선이 이전보다 훨씬 높아지게 되는데, 이때 바로 철학적인 높이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108)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우선 자신을 지성적으로 튼튼하게 하는 일입니다. (중략) 이렇게 철학적으로 튼튼해진 그 사람은 새로운 개념을 창출하고 새로운 빛을 발견함으로써 세계에 진실한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중략) 결국 우리 내면이 얼마나 튼튼한가가 얼마나 사회적 역할을 진실하게 할 수 있는가를 결정합니다.
121) 저는 어떤 나라가 문화적인가 아닌가 하는 점은 바로 장르를 만들 수 있는지의 여부가 결정한다고 봅니다. 장르를 만드는 나라는 문화적 차원에서 움직이고, 장르를 만들지 못하고 수입하는 나라는 아직 문화적이지 않습니다. 장르를 만들면 그 장르가 새로운 산업이 되어서 경제적인 성취를 이루고, 경제적인 성취가 힘을 형성하여 앞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장르-선도력-선진은 이렇게 연결됩니다.
123) 관념적인 포착은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중략) 그 시작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 평범하고도 대중적인 관심에 빠져 있을 때, 거기에서 슬그머니 이탈해 흐름 자체에 궁금증을 가지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대다수가 공유하는 관념에서 이탈하여 자기만의 호기심과 궁금증을 발동시키는 것이지요.
124) 독립적인 주체들은 대답하는 일에 빠지지 않고 질문을 시작합니다.
125) 질문이 일어나려면 우선 궁금증과 호기심이 작동해야만 합니다. (중략) 여러분은 아는 지식을 내뱉는 대답에 익숙합니까? 아니면 자신만의 고유한 궁금증을 발동시키는 질문에 익숙합니까?
126) 질문-독립적 주체-궁금증과 호기심-상상력과 창의성-시대에 대한 책임성-관념적 포착-장르-선도력-선진국은 이렇게 연결됩니다. 사실 질문이 성한 나라가 선진국입니다.
137) 이렇듯 인간의 움직임이 만들어낸 패턴을 읽는 능력 때문에 인간은 탁월해지는데, 이것을 읽은 사람들은 그 내용을 표현하고 싶어 합니다. 그 표현들이 인문학이 되기도 하고 예술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175) "나는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 "나의 삶이 내 꿈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되어 있는가?" 아니면 해야 하는 일들을 처리하는 과정으로 되어 있는가?" 꿈이 없는 삶은 빈껍데기입니다.
192) 기존의 정해진 것들이 낯설어지거나 이미 익숙해진 것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히 어느 정도 독립적인 사람입니다. 낯섦이나 생소함 등과 같은 감정은 정해진 것들이나 익숙한 것들과 갑자기 분리되는 경험이 생길 때 엄습해오는 불편한 느낌입니다.
195) <메이지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를 쓴 박훈 교수는 그 책안에서 서양의 외압에 반응하는 일본의 태도를 '과장된 위기의식'이라고 표현합니다.
212) 관찰을 유지시키는 힘, 그것이 바로 집요함이고 몰입입니다. 인생의 다양한 방면에서의 승패는 자신을 이 몰입의 단계까지 집요하게 끌고 갈 수 있느냐 없느냐가 좌우합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궁금증과 호기심을 발휘하여 진실하게 보고, 거기서 더 나아가 집요한 관찰을 통해 어떤 사물이나 사건에 몰입한다는 것은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 아주 높은 단계에 도달해 있음을 증명합니다.
221) 버트런드 러셀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지적 모험심은 어른보다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훨씬 흔하게 볼 수 있다. 그것은 어린이들 사이에서는 아주 흔하게 볼 수 있고, 가상 놀이와 공상의 시기를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성장한다. 나이가 들면서 그것이 희귀해지는 까닭은 모든 교육 과정이 그것을 말살하는 방향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사고는 전복적이고 혁명적인 것, 파괴적이고 가공할 만한 것이다. 사고는 특권과 기성 제도와 편안한 습관을 무자비하게 다룬다. 사고는 무정부적이고 법률로 제어할 수 없으며 권위를 중시하지 않고 여러 세계를 거치면서 정교화된 지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235) 한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의 수준은 사실 그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가 작동시키는 생각의 높이일 뿐입니다. 생각의 높이가 시선의 높이를 결정하고, 시선의 높이가 활동의 높이를 결정하며, 활동의 높이가 삶의 수준을 결정합니다. 결국 그 사람들이 이루는 세계의 수준을 결정합니다. (중략) 다른 사람이 해놓은 생각의 결과들을 수용하고 해석하고 확대함으로써 자기 삶을 꾸리고 세계를 운용하는 분위기를 '훈고'적이라고 합니다.
239) 지적인 편안함에 빠져들면 들수록 인간은 급격히 늙어갑니다. 반면 궁금증과 호기심이 살아 있다면, 그는 결코 늙은 사람이 아닙니다.
248) 앞서 장자 이야기를 하다 보니 '종속적 주체'와 '능동적 주체'를 말한 서양의 철학자 미셰 푸코가 떠오릅니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왔던 근대 사회는 주로 종속적 주체들로 구성되었지만,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능동적 주체로 구성된 삶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262) 경쟁이 치열한 사회는 진보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 경쟁 구도 속으로 들어가는 한, 우리는 그 경쟁이 벌어지는 판을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새로움, 고유함, 선도력은 시도되지 못합니다. 누구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경쟁구도 속에서는 승리자도 패배자도 모두 행복하지 않고 피곤할 따름입니다. (중략) '자약'한 사람만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존재감이 항상 자신에게서만 확인되기 때문입니다. '자약'하면 이미 존재하는 경쟁의 틀 속으로 들어가려고 급급해하지 않고 자신의 의도에만 집중합니다. 다른 사람과 경쟁하려 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삶을 꿈꿉니다.
271) 이 모든 문제점들은 바로 덕의 두께나 지성의 높이를 아직 갖추지 못해 생기는 일들입니다. 지성의 근본적인 힘은 지식의 두께나 이론의 깊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궁금증이나 호기심 같은 원초적인 힘이 결정합니다. 그 원초적인 힘이 자리하는 공간, 그곳이 덕의 공간입니다. 그래서 덕과 지성은 한 덩어리가 되는 것이죠.
281) '직'은 자기가 맡은 역할이고, '업'은 사명 혹은 자아실현을 의미합니다. 직업이라는 말의 의미는 자신이 찾은 그 역할을 통해 가지를 완성해가는 것입니다. '직'은 자신의 삶을 완성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그래서 '직'과 '업'은 일체가 되지요. (중략) 그러나 이 직과 업이 누구에게나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점점 '직'에 익숙해지면서 긴장감이 떨어지다 보니 '업'에 대한 각성이 느슨해지고, 결국 서서히 자신과 '업'이 분리되지요. 그래서 자신이 맡은 역할은 그저 생계를 유지하거나 돈을 만드는 수단으로 전략합니다.
284) 다산 선생은 <경세유표>의 서문 격에 해당하는 <방례초본인>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 나라는) 털끝 하나라도 병들지 않은 것이 없다.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고 나서야 그칠 것이다.
295) 다른 사람들은 어린 나이에 알게 된 것을 저는 서른두세 살 정도가 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저는 그것을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고, 이제라도 알게 된 것에 매우 기뻐했습니다. 학문 간의 위계질서가 어떠한지를 알게 되고, 또 그 안에서 철학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게 되니, 자연스럽게 공부가 매우 즐거운 것이 되었습니다.
296) "참된 사람이 있고 난 다음에야 참된 지식이 있다." (중략) 사람이 달라지면 세계를 보는 눈이 달라지고, 세계를 보는 눈이 달라지면 삶에 대한 관점도 달라지며, 그에 따라 사람의 태도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진실한 사람은 태연자약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298) 사실 보편적이라고 인정되는 기준에 견주어 부족하게 보이지 않을 인간은 없습니다. 그 기준과 경쟁하려 하다가는 자신은 결코 결함과 부족을 매울 수 없습니다. 큰 인간은 외부의 것들과 경쟁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 자신과 경쟁할 뿐입니다.
310) 행복을 추구하지 마십시오. 차라리 행복할 수밖에 없는 곳으로 인도하는 좋은 습관이나 근면성을 기르십시오.
312)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고 거기에 몰두하는 일이 '적토성산'입니다. 의도하지 않아도 주어지는 행운이나 선물이 바로 '카리스마'이고요. 내공이 갖춰진 내면은 향기처럼 발산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선 각자의 향기를 준비하는 일에 몰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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