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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인물]77_거친 밥 한 그릇이면 족하지 않은가_이승환_2009_이가서(180617)

by bandiburi 2018. 6. 17.

저자 이승환은 소설가를 꿈꾸는 철 지난 문청으로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줄곧 농민신문사에서 일하고 있다. 농민신문사 월간 <전원생활> 기자로 활동하던 1999<무늬가 있는 삶>이라는 코너를 만들었다. 이 코너를 통해 전국의 내로라하는 인물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한잔하는 재미에 빠져, 매달 매년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보냈다. 그렇게 수년간 연재하는 가운데 그들 덕에 그의 삶에도 무늬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기록의 일부가 이 책이다.

 

 이 책은 회사 화장실에 감사와 관련된 표현을 인용한 책이라서 특이한 제목의 책이다라고 생각하고 도대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인지 읽어보고 싶었다. 읽기 전에 둘째 아들에게 읽어보라 하고 독후감을 보니 아직 청소년이라 공감을 하지 못한 면이 많은지 왜 이런 책을 만들었냐 이해를 못하겠다는 불만이 묻어났다.

 

 직장생활 2020년 차에 중고등학교 자녀를 둔 성인의 입장에서 여기에 소개된 18명의 한 분 한 분의 삶이 귀하게 다가온다. 한 마디로 세상적인 가치관을 과감히 버릴 수 있고 자신만의 분명한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을 위해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내게는 낯선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지금이라도 아하! 이런 분들이 함께 동시대를 살고 있구나(일부는 이미 작고하셨다) 알게 된 것을 위안으로 여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인생이 다른 사람을 위해 살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내 삶을 찾고 싶은 마음이 문득 들 때가 있다. ‘내 삶이란 내가 추구하는 바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이겠다. 거대한 기업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존재에서 좀 더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역할을 갈구하는 것이겠다. 이렇게 책을 통해서라도 힘들 것 같지만 몸소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먼저 간 분들을 접할 수 있기에 감사한 생각이 든다.

 

책의 내용 중 남기고 싶은 부분을 발췌했다.

 

[14] 그의 작품이 주는 감동도 이랬다. 산비탈에 간신히 매달아놓은 천막 밖으로 나와 날품팔이 나간 부모를 기다리는 아이, 지저분한 선거 벽보 아래 <필론의 돼지>처럼 잠들어 있는 거지 노인, 낙서 가득한 담 밑에서 고구마를 팔다가 찢어져라 하품을 하는 행상 여인, (중략)

 

[15] 도쿄에서 학원을 다니며 미술을 공부하던 어느 날 헌책방에 들렀을 때, 그는 미국의 사진가 스타이켄이 편집한 사진집 <인간 가족>을 보았다. 빨려들 것 같았던 인간 본연의 사진 503. 그때부터 그의 인생이 정해졌다.

 

[16] 최민식의 주된 피사체는 혼이 담긴 얼굴이다. 그는 지금까지 10권이 넘는 <인간>들의 혼을 빼내 왔다.. 그의 <인간> 시리즈는 계속된다.

 

[35] 시절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 그 당시에는 목판화가 뭔지도 몰랐고 누구의 작품인지 관심도 없었지만, 아마도 내가 이철수의 작품을 처음 접한 것은 중학 시절에 읽은 권정생의 동화 <몽실언니>에서였을 것이다. 권선징악류의 예의 바른 동화책만 봐왔던 나에게 가난과 전쟁으로 얼룩진 몽실이의 삶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79] 안도현을 일러 시만 써서 밥 먹고 사는 시인이라고 언론은 떠들었지만, 그때마다 그는 실소했다. 너희가 시인의 삶을 알아? 굳이 글에만 국한하자면 그를 먹여 살린 건 <연어>로 대표되는 어른을 위한 동화였다. 이 책은 소설 같은 동화이면서 동화 같은 소설이다.

 

[82] “시인들이 관찰해서 펼쳐놓은 것을 보는 것은 큰 즐거움입니다. 잘 보면 서성거린 것까지 다 보여요. 그런데도 오늘날 시 안 읽는 세상이 된 건 학교 교육 때문입니다. 원래는 한 편을 읽고 나면 열 편이 더 읽고 싶어져야 하는데, 지금의 입시체제 아래서는 배우면 배울수록 시가 싫어져요. 시 읽어서 나쁜 길로 빠지는 법은 없습니다. 모두 시 좀 읽었으면 좋겠어요. 인터넷 그만 들락거리고.”

 

[95] 

닷새 만에 헛간에서 발견된
월평 할매의 썩은 주검에서
수백수천의 파리 때가 우수수,
살촉처럼 날아오르는 처참에 울고

빈대 뛰는 온 방안 뒤지고 뒤져
찾아낸 전화번호 속의 일곱 자녀들
기름때 묻은 머리로 하나둘 달려와
뒤늦게 뉘우치며 목놓는 아픔에 울고

급기야 상여를 멜 남정네들 모자라
경운기로 울퉁불퉁 북망길 떠난 월평 할매

 

 - 고재종의 네 번째 시집 <날랜 사랑>에 실린 시 분통리의 여름중에서

 

[155] 유기농을 하면서도 소출을 유지할 방법을 찾던 그는 기초적인 벼의 생리부터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때 도움을 준 책이 일본의 유기농업서인 <오르막의 농사>, 그는 그 책이 너덜너덜 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176] 끝으로 전우익 선생이 요즘 사람들이 꼭 읽어야 한다며 권한 책 하나, 미술사학자 김용준 선생(1904~1967)이 쓴 <근원수필>이다. 책 전체가 사표가 될 만한 좋은 글로 빼곡했지만, 가장 기억 남는 부분은 예술에 대한 소감을 피력한 이 구절이다.

 

인간이 되기 전에 예술이 나올 수 없다. 미는 곧 선이다.’

 

[177] 고 전우익의 저서로는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 <사람이 뭔데>가 있다.

 

[195] 지금이야 등 따습고 배부른 농부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윤구병은 충북대학교와 서울대학교에서 존재론을 강의하던 철학과 교수였다. 그러나 누구나 선망하는 직업을, 한 번 찼으면 그만인 철밥통을 그는 굳이 내려놓았다. 교단에 섰던 15년 동안 한 순간도 행복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삶에 대한 진정한 고민은 가슴에 묻어둔 채 학점을 위한 질문만 던지고, 나는 하나마나한 물음에 답을 해주기 위해 이런저런 책을 뒤지고강의실에 들어갈 때마다 이번에는 또 무슨 거짓말을 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나를 괴롭힙디다.”

 

[198] 나이, 신체, 주변 환경에 따라 아이들이 산을 오르는 길은 천차만별입니다. 그러한 아이들을 제도권이라는 틀에 가둠으로써 스스로를 앞가림하는 힘과 더불어 살 줄 아는 열린 마음을 빼앗게 되는 것입니다.

 

[216] 요즘 임락경 목사는 행복하다. 소싯적 이현필 선생이 강조한 가르침 세 가지-평생 농사짓겠다, 학교 안 가겠다, 병원 안 가겠다-를 모두 이루었기 때문이다. 군대 3년 빼고는 한 번도 농사를 떠난 적이 없다. 국졸 학력만으로도 잘 먹고 잘 산다. 스스로 터득한 돌파리 잔소리대로 건강하게 사니까 비싼 돈 들여 병원에 안 가도 된다. 그의 이러한 삶의 실천은 기독교를 따라 들어온 서구문명의 병패나 진정한 우리 것을 잊고 사는 우리 사회를 향한 일생의 저항이기도 했다.

 

[223] 임락경의 저서로는 <돌파리 잔소리><그 시절 그 노래 그 사연><먹기 싫은 음식이 병을 고친다>가 있다.

 

[239] 한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이 말해주는 것, 어찌 보면 조화순 목사는 목사라기보다는 투사가 더 어울릴지 모른다. 우리나라 여성노동운동사는 조화순 목사를 빼면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조 목사는 여성노동자의 친구였고 언니였고 어머니였다. 안기부 직원들 말처럼 식모 타입의 공순이를 대학생 타입으로바꿔놓은 것도 그였고, 동일방직 똥물 투척 사건을 통해 노동운동에 불을 치른 것도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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