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김근태 의장의 가족사, 그의 삶에 대해 알 수 있는 자전적 소설이다.
그가 살아있을 때 고문의 트라우마로 치과에 가질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나 모진 고문을 받았기에 치과에 누워있질 못할까 하고 가볍게 지나쳐버렸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그가 남영동으로 끌려가 고문받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등장한다.
이전까지는 교장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이사를 다니며 가난 속에서 살았던 가족사!
입주과외를 하며 고등학교 대학교를 다녀야 했던 학창시절!
대학교에서 삶의 방향을 정하고 투쟁하는 삶 등에 대한 이야기가 소설의 대부분이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고문 장면은 읽는 자체로 공포영화보다 더한 서늘함을 준다.
권력의 꼭두각시가 되어 선량한 대학생을 원하는 답변을 얻기 위해 반죽음이 되도록 고문한다.
폭력으로 물로 전기로 굶주림으로 그의 몸은 망가졌다.
칠성판에서 반복되는 고문 속에서 그의 고통이 독자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국가를 위해 좀 더 역할을 할 수 있었지만 김근태는 고문 후유증으로 2011년에 사망했다.
고문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정체를 알게 되었지만 전기고문을 가했던 사람은 몰랐다.
우리는 그가 고문기술자 이근안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소설을 통해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온몸으로 투쟁했던 분들에게 빚진 심정이 되었다.
근태야.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그 공부를 무엇에 쓰느냐에 있다. (27)
자녀들에게 꼭 들려줘야 할 중요한 질문이다.
공부를 맹목적으로 잘하는 아이보다 왜 하는지 이해하는 아이로 자라야 한다.
"냉철한 머리가 없으면 무능한 경제학자가 되긴 하지만 괴물은 되지 않겠지요."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반박하지 못했다. "제군들, 강의실에서 해야 할 공부도 있지만 때로는 거리에서 배워야 하는 것도 있는 법입니다. 우리의 이웃이 갈망하고 절규하는 게 무엇인지 느끼고 이해하고, 해결하려는 가슴이 없다면 어떤 힘으로 경제학을 공부하지요?" (75)
냉철한 머리와 뜨거운 가슴, 변형운 교수의 말이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왔고 나는 더욱 흔들렸다. (77)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가진 사람이 되라는 '나가라우', 변형운 교수의 지적이다.
김근태는 거리로 나가지 않고 교실에 남아 강의를 듣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가 깨달음을 얻는 순간이었다.
인생에서 이런 훌륭한 스승을 만나고, 삶의 방향을 교정하는 과정은 축복이다.
내가 학원방위 투쟁에 참여하기로 결심한 것은 내가 강해서가 아니라 박정희가 무섭고, 그가 만들어 갈 세상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해 한 번도 해명하지 않았지만 그가 걸어가게 될 길이 무엇인지는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방법이 그가 앞으로 살아갈 방법이었다. 그것이 그가 걸어온 길을 설명하지 않는 진정한 이유라는 걸 나는 최근에야 눈치채기 시작했다. 그의 과거가 곧 그의 미래였다. (91~92)
김근태는 박정희와 김활란의 과거에 대해 모른 채 그들을 좋게 평가했다.
하지만 선배의 권유로 역사를 공부하며 그들의 실체를 보게 되었다.
박정희라는 한 인간의 과거를 통해 앞으로 그가 하려고 하는 식민주의적 통치행태를 예상한다.
박정희의 눈엣가시였던 장준하는 이미 한 달 전에 감옥에 가 있었다. 장준하는 남로당의 군부 프락치로 대한민국 군사 법정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박정희를 겨냥해서 '자기 사상을 갖지 못한 방랑아'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장준하는 국가원수 모독죄로 체포되었다. (104)
박정희라는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가 바로 식민주의와 군국주의였다. 이 하나의 열쇠를 통해서만이 박정희의 모든 것은 비로소 아무런 모순도 없이 설명 가능해진다. 일본 관동군 장료 다카키 마사오일 때나, 남로당 군대조직책일 때나, 대한민국 대통령 박정희일 때나 그는 변함없는 식민주의자였다. (191)
우리의 역사에서 박정희와 장준하는 상반된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나라를 위해 일관된 삶을 살았던 장준하는 박정희 군사정권 하에서 의문사를 당한다.
이 나라에는 안타까운 순간이다.
청년의 이름은 전태일이었다. 나는 학교로 가려던 발걸음을 돌려 그 청년이 안치되어 있는 성모병원으로 향했다. 명동성당 근처에 있는 병원에 도착한 나는 잘못 찾아온 줄 알았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경찰이 진을 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열 평 남짓한 지하 영안실에는 허름하기 짝이 없는 옷을 입은 대여섯 명이 황망한 표정으로 나무 의자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병원 영안실인데도 너무나 초라하고 썰렁했다. (136)
김근태는 전태일이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분신해 성모병원에 안치되었을 때 그의 장례식장을 찾았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병원 장례식장에서 마주친 썰렁함에 놀랐다.
수많은 노동자들을 위한 자신의 목숨을 버린 전태일의 죽음의 무거움이 너무나 가벼워 보여 놀랐을 것이다.
한 사람은 캠퍼스에서, 한 사람은 평화시장에서 권력과 돈에 대항해서 싸웠던 거다.
"이 죽음은 자살이 아니야. 잠자는 법이 그를 죽인 거고, 그걸 알고도 눈감고 외면한 법을 다루는 자들이 그를 죽인 거다. 대한민국에서 법 공부한다는 자들 중에 대가리 제일 좋다는 놈들이 모였다고 뻐기고들 있는데, 이 나라에서 법이 도대체 뭔지를 여기 와서 두 눈으로 똑똑히 봐야 되지 않겠어. 이 사람을 묻기 전에 이 사람보다 훨씬 먼저 죽은 법의 장례식부터 치러야지. 그걸 판사란 자들이 하겠어, 검사란 자들이 하겠어, 변호사란 자들이 하겠어? 그래도 양심이 멸치 꼬랑지 만큼이라도 살아있는 법대생들이 하는 수밖에 없잖아." (138)
현재의 법은 국민들에게 평등하게 적용되고 있는가 생각해 본다.
법을 다루는 자들의 입맛에 맞게 구부러지고,
돈을 다루는 자들의 바람에 맞게 제단 되고,
권력을 다루는 자들의 지시에 맞게 결정되는 법이 아니라고 하기 어렵다.
법 자체가 아니라 법을 다루는 사람의 문제, 즉 일부 판사, 검사, 변호사들의 문제다.
전학련은 대학이 폐쇄되는 한이 있어도 군사훈련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점을 재확인하면서도 남은 선거기간 동안에는 부정선거를 저지하기 위해 대학생 선거 참관단을 전국에 파견하는 일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이튿날 보안사령부는 서승, 서준식 형제를 비롯한 재일교포 출신 서울대생 네 명을 포함한 네 건의 대규모 간첩단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157)
박정희 군사독재 시기에 자신의 유신체제를 지속하기 위해 간첩사건을 조작했다.
그 피해자 중에 재일교포인 서승, 서준식 형제가 있다.
두 형제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정권의 조작으로 한 가족이 모두 고통을 겪는 모습에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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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1]소년의 눈물_재일교포의 정체성 고민과 책을 통한 성장 이야기
서경식의 은 해방 후 일본에서 살아야 했던 재일교포 1세와 후손들의 힘겨웠던 삶을 엿보게 한다. 일본에 거주하는 조선인의 정체성 혼란과 한국전쟁 이후 조총련과 민단으로 나뉘어 남한과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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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4]서준식의 옥중서한(1971~1988)①_억울한 사연
지난주에 서경식의 을 읽었다. 그 책에서 둘째형 서승과 막내형 서준식에 대한 언급이 있다. 형제들의 삶에 대한 관심이 커져 이전에 도서관 관심 목록에 저장해 두었던 을 읽고 있다. 이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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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7]나의 서양미술 순례_미술작품과 역사 이야기에 겹치는 안타까운 가족사
독서습관을 위해 지난 6년간 미술 작품을 소개한 책을 여러 권 읽었다. 그래서 읽기 전부터 이번에 만난 는 어떤 작품을 어떤 식으로 소개할지 궁금했다. 제목만 다른 책에서 추천받았는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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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가! 민주주의는 지식의 산물이 아니라 투쟁의 결과라는 것을, 금일 우리는 어제를 통탄하기 전에, 내일을 체념하기 전에, 치밀한 이성과 굳은 신념으로 이 처참한 일당 독재의 아성을 향해 불퇴전의 결의로 진격하자. (221)
이 책을 읽으며 민주주의가 투쟁의 결과라는 말을 실감한다.
김근태라는 인물의 저항과 고문의 과정은 투쟁의 어려움을 보여준다.
하지만 김근태와 같은 수많은 사람들의 투쟁은 결국 독재정권을 굴복시켰다.
그래서 현재의 국민이 주인 되는 민주주의 대한민국이 있을 수 있었다.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지를 사무치게 알게 된 다음에야 나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지금에야 당신이 느꼈을 아픔과 당신이 감당해야 했던 중압감을 이해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연이은 독재, 그 격동 속에서 잃어버린 잘난 세 아들...... 그 상실이 다만 상실로 끝나지 않고 남은 자식들에게 빨갱이의 낙인을 찍게 될까 봐 잔뜩 주눅 든 채 노심초사하며 살았을 당신에게 나는 어떤 아들이었던가. (267)
김근태가 아버지를 이해하는 순간이다.
역사의 혼돈 속에서 잃어버린 세 명의 형이 있었다는 사실을 소설은 보여준다.
자식을 잃은 슬픔은 부모의 가슴에 흔적을 남겼고, 그 상실의 후유증으로 김근태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은 왜곡되어 보였다.
그러다 어느 날 저에게, 네가 키우려고 하는 노동자들에게 뭔가 베풀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일을 하지 마라, 그러더군요. 왜요, 하고 물으니까, 그 친구가 너에게 잘하기를 은근히 기대하게 되고 그 기대에 차지 않으면 섭섭하고 야속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건 좋지 않다, 그러더군요. 뒤통수에 번쩍하는 게 있더군요. (296)
김근태가 사람들을 가르치며 냉철한 판단력을 보여준 사례다.
지금까지 광주학살 사진을 공개 전시한 적도 없었고 자료집으로 공개적으로 유포한 일도 없었다. 민청련은 한꺼번에 왕창 일을 저질러 버렸다. 추모집회의 모든 초점은 '광주학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맞춰졌다. (319)
민청련을 조직하고 그들은 전두환 군사정권의 광주학살 현장을 시민들에게 드러냈다.
추모집회를 하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외쳤다.
전두환은 사망할 때까지 자신의 책임을 회피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얼마나 많은 유능하고 아름다운 친구들의 삶을 저당 잡혀야 우리는 이 지긋지긋한 박정희의 어두운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겨울 끝자락의 찬바람은 자꾸만 내 등을 떠밀었다. (323)
독서습관1071_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_방현석_2012_박문수책(250628)
■ 저자: 방현석
울산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공부했다.
신동엽창작기금, 오영수문학상, 황순원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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