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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_고민 상담 이야기(딸의 관점)

by bandiburi 2025. 5. 12.

늘 베스트셀러 순위권에 올라와 있는 책이다. 중학교 시절 읽었던 것 같은데 결말이 기억나지 않아서 한 번 더 읽어봤다. 45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글자가 크고 문장이 간결해서 후루룩 국수를 흡입하듯이 읽을 수 있었다. 나같이 평소에 책 읽기를 즐기지 않는 사람도 순식간에 해치울 책이니, 괜히 명작이 아니다.

나미야 잡화점은 나미야라는 성씨를 가진 할아버지가 운영하던 잡화점이다. 일본어로 고민이라는 뜻의 나야미와 비슷해서 아이들이 놀리자, 고민 상담소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할아버지를 쩔쩔매게 할 법한 엉뚱한 고민이 다수였지만, 할아버지는 늘 성심성의껏 답해주었다. 그 고민들과 답장을 담은 편지는 가게 벽에 붙여져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구체적이고 무거운, 앞으로의 인생과 관련된 고민의 편지가 늘어났다. 당연히 프라이버시보호를 위해 할아버지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했다. 사람들이 고민편지를 우편함에 넣으면 다음 날에는 할아버지가 답장을 우유상자에 넣어두기로 한 것이다.

모든 일은 환광원(고아원)과 관련이 있다. 아쓰야, 쇼타, 고헤이 세 사람은 환광원 출신이다. 형편이 안 좋아져 함께 도둑질을 일삼았다. 경찰을 피해 급히 피신하다가 이른 곳이 아무도 살지 않는, 이미 폐가인 나미야 잡화점이다. 거기서 그들은 나미야 잡화점에 신비한 힘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약 삼심 년 전 우편함에 들어간 편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모두 나미야 잡화점의 주인 할아버지의 답장을 기대하고 쓴 편지였지만 세 도둑들은 과거에서 온 편지라는 비현실적인 상황에 흥미를 느끼고 대신 답장을 써 주기로 결정한다.

첫번째 편지는 다가올 올림픽 선출을 위해 훈련에 집중할지, 아니면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남자친구 곁을 지킬지에 대한 달 토끼의 고민 글을 담고 있었다. 일본이 올림픽을 보이콧한 해를 알고 있던 세 도둑들은 당연히 후자를 선택하기를 적극 조언했지만 달 토끼는 자신이 올림픽에 출전하기를 바라는 남자친구를 위해서 훈련을 하기로 결정했다(잡화점의 문을 닫으면 바깥 시간보다 더 빠르게 시간이 흐르기 때문에 그들은 답장을 우유상자에 넣자마자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결론은 잘 되었다. 달 토끼는 훈련에 집중했지만 다행히 남자친구의 임종을 지킬 수 있었고, 남자친구도 걱정 없이 세상을 떠날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받은 신랄한 비판과 조언이 자신을 일깨워줬다고 되려 감사하는 태도를 보였다.

생선 가게 뮤지션의 편지는 아쓰야를 특히 화나게 만들었다. 취업하기 힘든 현재로선 이해하기 힘든 고민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가게를 물려받을지, 성공이 보장되지 않은 음악을 계속할지 고민하는 모습이 그에게 한해선 사치였다. 하지만 과거에서 들려온 하모니카 소리를 듣곤 금세 마음을 바꾼다. 생선 가게 뮤지션이 환광원에서 큰 힘이 되었던 재생이라는 곡의 작곡가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환광원에 공연을 하러 갔다가 일어난 화재에서 목숨을 바쳐 아이를 구했다. 그리고 그 아이의 누나가 재생덕분에 가수로서 성공한다. ‘당신의 노력은 절대로 쓸데없는 일이 되지는 않습니다. 마지막까지 꼭 믿어주세요.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믿어야 합니다라는 답장은 불안한 뮤지션에게 소소한 힘이 된다.

과거에 편지를 쓴다면 현재까지 일어난 일, 미래의 일을 알려주고 싶을 것이다. 빈집털이한 집의 주인이 잘 나가는 여사장이고,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게 방금 한 조언 덕분이었다면 정말 놀라울 것이다. 세 도둑들은 그런 기적을 경험했다. ‘길 잃은 강아지였던 여사장이 호스티스의 길을 걷다 비참해질 것이 뻔했던 그런 운명을 단지 편지 몇 장으로 단숨에 바꿔 놓은 것이다.

책을 읽으며 인연은 참 지독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등장인물이 모두 환광원과 나미야 잡화점이라는 공통된 시설에 연결되어 있어 상당히 작위적이고, 뒤의 내용이 예상이 되는 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기엔 적합한 내용이었던 것 같다. 인연의 끈은 그리 쉽게 끊기는 게 아니라는 옮긴이의 해석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상담가는 누가 되는 것일까? 당연히 전문지식이 있는 사람이 상담가의 자격을 얻는다. 세 도둑들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과거의 사람, 평생 마주칠 리 없었던 사람들을 위해 고민하고 조언해 줬다.비록 나미야 잡화점의 할아버지만큼은 못하더라도. 이처럼 우리는 일상에서 지인들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진심으로 조언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을 향한 관심과 올바른 길로 이끌어주려는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상담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책은 현실에서 일어난 다양한 사연을 담는다. 실제로 뉴스에서 자주 본 동반자살, 야반도주 후 자살하는 사건도 포함된다. 표면적으로 두 사건은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지 않고 자식의 삶까지 내친 걸로 보인다. 그러나 책에 그려진 부모들은 아이를 위해 기꺼이 희생함으로써 사랑을 표현한다. 사건의 전말을 알기 전에는 궁지에 몰린 이들의 선택을 가볍게 비판해선 안 되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나미야 할아버지는 장난 편지라도 정성껏 답해주었다. 그가 장난 편지에 답장하며 했던 말을 옮겨본다.

해코지가 됐든 못된 장난질이 됐든 나미야 잡화점에 이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다른 상담자들과 근본적으로는 똑같아. 마음 한구석에 구멍이 휑하니 뚫렸고 거기서 중요한 뭔가가 쏟아져 나온 거야. 증거를 대볼까? 그런 편지를 보낸 사람들도 반드시 답장을 받으러 찾아와. 우유 상자 안을 들여다보러 온단 말이야. 자신이 보낸 편지에 나미야 영감이 어떤 답장을 해줄지 너무 궁금한 거야. 생각 좀 해봐라. 설령 엉터리 같은 내용이라도 서른 통이나 이 궁리 저 궁리해가며 편지를 써 보낼 때는 얼마나 힘이 들었겠냐. 그런 수고를 하고서도 답장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없어. 그래서 내가 답장을 써주려는 거야. 물론 착실히 답을 내려줘야지. 인간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소리는 어떤 것이든 절대로 무시해서는 안 돼.”

그의 심성을 알 수 있는 대목인 동시에 상담사에게 필요한 자세를 배울 수 있어서 인상 깊었다.

그리고 아쓰야가 시험 삼아 넣어본 백지의 편지에도 과거의 나미야 할아버지는 이렇게 답했다.

나에게 상담을 하시는 분들을 길 잃은 아이로 비유한다면 대부분의 경우, 지도를 갖고 있는데 그걸 보려고 하지 않거나 혹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알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백지이기 때문에 어떤 지도라도 그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신 하기 나름인 것이지요.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가능성은 무한히 펼쳐져 있습니다. 이것은 멋진 일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믿고 인생을 여한 없이 활활 피워보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렇다. 우리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현재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우선 나를 믿어보자. 내가 나를 못 믿는다면 어떻게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그러고보니 책에서 고민편지를 썼던 등장인물들은 모두 조언을 구하는 듯했으나, 결국 본인의 의지대로 했다. 미래는 결코 알 수 없으니 어떤 선택이 더 나았는지 저울질할 순 없겠으나, 본인이 후회없고 만족했다면 그걸로 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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