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블랜더 거실
독서습관

[1024]스틸 앨리스_하버드 대학 교수 앨리스의 조발성 알츠하이머 진단과 삶의 변화

by bandiburi 2025. 3. 20.

조발성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스틸 앨리스』는 하버드 대학 신경학 박사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닌 리사 제노바의 처녀작이다. 리사 제노바는 자신의 전문 분야인 신경학을 바탕으로 수년 간 알츠하이머병 질환의 증세와 진단, 치료, 환자, 보호자에 대해 연구하여 정확하고 명쾌한 알츠하이머 이야기를 엮어낸다. 이 소설은 앨리스 하울랜드라는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2년 동안의 병상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신을 앗아가는 병인 알츠하이머에 관한 작품으로는 유례없이 환자 자신의 관점으로 서술되어 있어서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이들의 세계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인공 앨리스가 알츠하이머병의 희생자가 되기엔 너무도 젊은 쉰 살인데다 지성의 최고봉인 하버드 심리학 교수이기에 몹시도 비극적인 동시에 감동적이다. (413~414)

최근에 읽었던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서 치매로 더 이상 글을 읽을 수 없는 사례에서 언급된 책 『스틸 앨리스』를 푹 빠져들어 읽었다. 명문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앨리스가 알츠하이머 증상을 경험하고, 진단받으며 점차 기억을 잃어가는 과정을 환자인 앨리스의 관점에서 서술되었다. 

https://bandiburi-life.tistory.com/2761

 

[1020]읽지 못하는 사람들_난독증 자폐증 실독증 공감각자 치매 환각 등의 사유를 이해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란 제목만으로는 스마트폰을 과도하게 사용하며 책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로 생각했다. 아니었다. 난독증, 실독증, 치매 등의 다양한 이유로 글을 읽지

bandiburi-life.tistory.com

 

명석한 두뇌의 소유자였던 앨리스가 알츠하이머병을 인지하지 못하고 단순한 폐경 증상으로 간주하며 캠퍼스에서 작은 실수를 하게 된다. 독자의 입장에서 앨리스가 캠퍼스에서 다음에는 어떤 실수를 할까 조마조마한 입장이 되기도 한다. 환자의 관점에서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지 기술한 점은 독자에게 알츠하이머 환자가 어떤 과정을 경험하는지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누구나 부러워할 가족 구성원을 가진 앨리스다. 하버드대 교수인 남편 존, 변호사인 큰딸 안나, 의사인 아들 톰, 연극배우  둘째딸 리디아, 모두가 전문직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가족이다. 알츠하이머병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노인이 아닌 65세 이전에도 찾아올 수 있다. 조금씩 기억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버리며 단기 기억부터 앗아가는 병이다. 결국은 스스로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다른 사람의 도움에 의지해서 서서히 시들어가는 무서운 병이다. 이 책은 앨리스의 정신적 쇠퇴를 통해 독자에게 두려움과 함께 가족의 관계 회복에 대한 감동을 전달한다.

2023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의 추정 치매 환자수가 100만 명을 넘었다. 그 중에서 65만 명이 알츠하이머성 치매라고 한다. 인구 5000만 명 중에 젊은 인구를 제외하면 적지 않은 숫자다. 나이가 들수록 치매를 앓을 확률이 높아진다. 주변을 둘러보면  가족 중에 치매 환자를 두신 분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런 현실에서 알츠하이머성 치매는 과거 공동체 중심의 가족이 분해된 핵가족, 소가족 공동체에 돌봄 충격을 가져올 수 있다. 가족 중심의 치매 환자 돌봄은 전쟁터와 같다. 치매 환자 한 명을 가족이 24시간 돌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한 사람의 시간을 온전히 쏟아야 한다. 물귀신처럼 다른 가족의 삶까지도 극단의 상태로 몰고 갈 수 있다. 누구나 잠재환자라는 생각으로 가족들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하도록 국가적 돌봄이 지원해야 한다. 

앨리스는 진짜로 알츠하이머병에 걸렸고 병을 고칠 가망도 없는 두 가지 약에 의존하고 있으며 알츠하이머병을 다른 치유 가능한 병과 바꿀 수도 없는 마당에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시험관 아기 시술이 성공한다면 안나의 아기를 안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리디아가 자랑스러워하는 연극 무대에 선 모습도 보고 싶었다. 톰이 사랑에 빠진 모습도 보고 싶었다. 존과 안식년을 한 번 더 보내고 싶었다. 읽는 능력을 잃기 전에 원 없이 책을 읽고 싶었다. 앨리스는 방금 든 생각들에 놀라며 실소했다.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에 언어학이나 강의, 하버드와 관련된 건 하나도 없었다. (170)

평소에는 무엇이 소중한지 깨닫지 못한다. 부와 권력과 명성을 추구하며 자신의 시간을 쏟아 넣는다. 하지만 건강을 잃었을 때 비로소 무엇이 중요한지 보인다. 가족들이 보인다. 더 이상 부, 권력, 명성은 안중에도 없다. 어쩌면 질병이란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기 위한 신의 선물인지도 모른다. 

앨리스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복잡한 대화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말이 아닌 것, 즉 몸짓이나 말로 표현되지 않은 감정들은 더 예리하게 감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2주 전쯤 리디아에게 그런 현상에 대해 설명했는데 리디아는 그게 배우들이 부러워하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배우들이 서로의 행동과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말과 언어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241~242)

대학을 졸업하고 변호사와 의사로 살고 있는 큰딸과 아들에 비해, 대학진학을 거부하고 연극에 빠져 있는 막내 리디아에게 앨리스는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서로 진로에 대한 말다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알츠하이머는 앨리스와 리디아서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앨리스가 기억을 잃고 말을 이해하기 어려워졌을 때 그녀의 세상적인 사고는 사라지고 진정한 액기스만 남은 듯 보인다. 자신의 딸이 아닌 제삼자에게 조언을 하듯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라'라고 한다. 몸짓과 표정을 보고 상대방을 이해한다. 그때 앨리스에게 진정한 딸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전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애쓰고 있을 뿐입니다. 이 세상의 일부가 되기 위해, 예전의 나로 남아 있기 위해 지금 이 순간을 살라고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전부니까요. (357)

앨리스가 뉴런의 기능을 많이 잃어버리고, 원고를 가까스로 읽어나가며 했던 마지막 강의에서 했던 말이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모든 환자들의 말이라고 생각된다. 조금씩 악화되는 병이기에 오늘,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이 최선인 것이다. 


독서습관 1024_스틸 앨리스 Still Alice_리사 제노바_2015_세계사(250320)


■ 저자: 리사 제노바 Lisa Genova

하버드 대학교에서 신경학 박사 과정을 밟던 중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할머니에게 영감을 받아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보호자가 아닌, 알츠하이머병을 겪는 환자 본인의 마음을 진솔하게 그리고 싶어서였다. 

출간 첫 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라 지금까지 200만 부 넘게 팔린 밀리언셀러 『스틸 앨리스』는 알츠하이머병으로 기억을 잃어가는 환자들 역시 고독과 두려움, 그리고 사랑을 느낀다는 공감과 감동의 이야기로 전 세계 30개국 독자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평단에서도 실제 알츠하이머병 환자들과 가족들, 전문가들을 심층적으로 인터뷰한 리사 제노바의 사실적 묘사가 탁월하다는 호평이 줄을 잇는다. 루게릭병을 앓던 리처드 글랫저 감독 역시 이 소설에 감동을 받아 메가폰을 잡았으며, 동명 영화 <스틸 앨리스>가 그의 유작이 됐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