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와 평등,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사회, 모든 국민이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받는 사회를 지지한다.
'일베'라는 단어와 그곳에서 쏟아내는 문장들을 아무런 이유 없이 멀리했던 게 사실이다.
김학준의 책 『보통 일베들의 시대』는 '일베'에서 글을 올리는 청년들의 실체를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다.
저자는 왜 '일베'가 탄생했고, 그곳에 참여하는 청년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생각을 보여준다.
군사독재와 산업화를 경험하며 민주화를 이끌며 현재의 대한민국을 이끌며 기득권의 위치에 있는 세대가 있다.
반면에 평범한 삶을 추구하며 자기계발에 힘쓰지만 목표에 도달하기 쉽지 않은 청년세대가 동시대를 살고 있다.
시스템을 만들고 이끌어온 기성세대들은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켜 왔다.
기득권을 가진 일부 계층을 제외한 다수의 국민들이 왜곡된 능력주의를 추종하며 자신을 착취한다.
개개인의 청년들이 자신의 소박한 꿈을 따라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살 수 있는 사회로 가야 한다.
소수만을 위한 시스템이 아니라 모든 청년들이 함께 갈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나아가 모든 국민이 최소한의 자존감을 유지하며 생계를 꾸려갈 수 있는 연대와 공존의 생태계가 필요하다.
이 책을 덮으며 '일베'에서 자신의 분노를 뿜어낼 수밖에 없는 청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기성세대들이 끊임없는 욕망을 추구하며 각자도생의 사회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세상을 이끌어갈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주어야 하지만 현실은 분노와 좌절을 남겼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는 책이다.
언론에서 자주 접했던 사건사고들이 많이 인용되어 있고 우리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라서 쉽게 읽힌다.
책에서 많은 것을 얻었는데 남기고 싶은 문장이 참 많다. 아래에 포스팅한다.
칙릿Chick-lit : Chick-Literature의 줄임말로, 주로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장르소설을 의미한다. 《브릿지 존스의 일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14)
한국에서 통용되어온 유머코드는 주로 우월적 웃음이었다는 지적이 새삼 설득력을 획득하는 순간이다. (...) 기획한 웃음의 상당수가 우월적 웃음, 즉 나보다 못한 사람을 보며 짓는 비웃음을 유도했다는 점에서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표상되는 한국적 웃음 모델은 "자신보다 못한 이들을 비하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가치를 발견하는 상호 모멸의 메커니즘"의 원형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32)
넷카마란 인터넷에서 활동하는 '여장 남자'를 칭하는데, 이는 오카마라는 일본의 성소수자 멸칭에서 유래했으며 대개 인터넷에서만 여성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넷카마는 '여성형'으로 받아들여지는 어투를 사용하며 이모티콘을 많이 쓰거나 자신의 프로필에 여성 사진을 올려놓는 식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속인다. 이들을 정체성 사기의 한 범주로 놓는 것은 이들 대부분이 온라인 커뮤니티나 게임에서 여성이 갖는 '특수 지위'를 노리기 때문이다. (62)
계급이나 성별 같은 생득적 요소가 아닌 '노력에 의한 성취'를 핵심으로 하는 능력주의는 연줄 사회로 대표되는 생득적 한계를 돌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해방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능력의 증명 또는 성취는 노력만으로 이루어지기는커녕 지극히 우연에 기대고 있다는 점에서 불평등한 자원 배분을 정당화하는 반동적 성격 또한 가지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사이버' 능력주의는 현실 세계에서 작동하지 않는 능력주의의 한계를 돌파한다. (65~66)
'어그로'란 '화'를 뜻하는 'aggravation'을 축약한(aggro) 말인데, 이는 원래 온라인게임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였다. (...) 이처럼 온라인게임에서 유래한 '어그로'라는 말은 사이버공간의 담화 상황에서 또 다른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데, 이때의 의미는 부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에 대한 주의 집중 상태로 달라진다. 어그로를 자주 끄는 사람은 통칭 '어그로꾼'이라고 불리고, 이들은 자주 격렬한 비난을 받는다. (...) 요컨대 어그로꾼의 목적은 '욕을 많이 먹는' 데 있고, 많은 질타를 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그의 전략이 성공했다는 것이며 이는 곧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의 증명으로 인식된다. (67~68)
그 반대편에서 호남을 타자화하는 일베 이용자들은 호남인들의 태생적 열등함을 주장하며 이등시민이라는 낙인을 정당화하고자 한다. 낙후된 비국토(또는 식민지)에 거주하는 야만스러운 비국민으로서의 호남인이라는 낙인은 '문명'의 지배가 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그 문명의 백기사가 (계엄)법을 앞세운 군경이라 할 때, 잠자코 맞지 않고 저항하는 것은 '폭동'일뿐 아니라 일종의 '내란'이다. 이처럼 겹겹이 쌓인 지역에 대한 혐오와 야만에 대한 공포는 5.18 당시의 계엄령 선포와 그 이후의 과정을 국가폭력이 아닌 정당한 법 집행이자 사회 혼란을 막기 위한 일종의 정상화 과정으로 인식하게 한다. (140)
이들의 '드립'이 어디까지나 '유머'였다는 자기 변호가 배후에 깔린 것은 물론, 더 중요한 것은 타자가 분노한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이처럼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듣고 감정이 격해져 몸서리치는 것을 보는 재미를 일베에서는 '부들부들잼'이라고 말한다. 일베가 보기에 '부들부들잼'은 무식한 도덕주의자인 '씹선비'들을 공격할 때 가장 잘 나타나는 반응이며, '씹선비'에는 5.18의 성스러움을 신봉하는 이들에서부터 여성, 진보주의자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이들이 포함된다. (158~159)
(...) 이러한 사례를 나열한 후 글쓴이는 현 정권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반국가세력"이라고 단정하며 곧 종북으로 치환한다. "내부의 분열을 조장하고 그것에 의해 이익을 얻는 단체"가 "바로 북한"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글쓴이는 이들 "반국가세력"이 "자신들이 할 일을 다 내팽개치고 데모질, 선동질"을 하며 "허위 사실"을 유포해 국가의 혼란을 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종북'의 반대편에 있는 "진짜로 깨어 있는 시민들"은 "사회에서 묵묵히 자신이 맡은 일을 수행하고 최선을 다할 뿐"이며 "진정한 민주시민"이란 "진실을 추구하며 참된 정의를 실천"하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167~168)
이는 차라리 '나대지 말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 갈등 자체에 대한 혐오이다. 이들이 보기에 '종북' 혹은 '좌파'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틀린' 사람으로 규정하고 '계몽'하려는 오만한 '엘리트'들이다. 좌파는 그들 스스로의 지성과 도덕성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자신들의 생각을 강요한다고 여겨지고, 이에 대한 반응은 반발감으로 귀결된다. 이는 일베 이용자들이 386 세대를 비난하는 논리와도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며, 능력주의로 인한 모멸감과도 공명하는 반응이다. (171~172)
일베에서는 그곳에서 사용되는 사회방언('민주화' 등)이나 자음만의 표기(ㅇㅂ:일베, ㅈㄱㅈ:x고전), 종결어미('~노盧') 같은 일베적 표현을 제외한 일상 언어를 표준어에 맞게 써야 한다. (...) 또한 일베 이용자들에게 맞춤법에 맞는 문장은 교육을 받았다는 최소한의 표지이며, 이는 온라인에서 각종 외계어 사용 등 어법에 맞지 않는 언어생활을 한다고 여겨지는 여성들과 자신들을 구별짓는 중요한 기호이다. (191)
울리히 벡Ulrich Beck의 《위험사회》는 불안의 사회학적 이론화를 위한 초창기 작업인 만큼이나 불안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함의를 제공한다. 현대 사회에서 위험risk은 체계적으로 재생산되는 확률과 가능성의 문제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으로서 모두에게 적용된다. (202)
일베 이용자들이 보이는 불안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그들이 처한 사회경제적 위기에 따른 불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고, 두 번째는 그러한 경제적 위기와 고립감을 해소할 수 있는 친밀성의 영역이 붕괴되었다고 느끼는 데서 기인한 불안이다. (203)
한병철은 《피로사회》를 통해 타자와 적이 사라지고 자유의 이름으로 자신을 착취하는 사회로 피로사회를 정의했다. (...) 현대 사회에는 더 이상 분노할 대상도, 연대할 대상도 없이 체계만이 살아남는다고 주장한다. (224)
일베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선동에 대한 증오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일베 특유의 '팩트' 중심주의와도 깊게 연관되어 있다. (...) 이는 자신의 이성(그리고 일베가 제공하는 데이터베이스) 말고는 어떠한 것에도 영향받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236)
오늘날 감정장에서 '사랑'이 중요해진 만큼 분노를 드러내는 사람은 누구보다 시급하게 감정 관리 기술을 전수받고 '치료'받아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문명화되지 못한 '미개인'이라고 손가락질받거나, 감정자본이 부족한 하층 계급임을 자임하는 것 외에 어떠한 의미도 없게 되었다. (...) 친밀성의 영역이 공적 연대를 배태하지 못하는 원인은 공적 분노의 퇴출에 있으며, 공적 분노의 퇴출은 모든 것을 '친절'하게 용인하며 모든 게 각자의 자유임을 인정하는 타자지향적 태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일베가 뿜는 감정을 기억한다면 '퇴출'된 분노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으며 그것이 새롭게 찾은 터가 사이버공간임을 알 수 있다. (240)
연구참여자들에게서 보이듯이 이들은 '자기경영'의 이름으로 스스로를 착취하는 동시에 그러한 대세에 따르지 않는 이들을 비난한다. 이 새로운 무능과 구속에의 집착은 자유의 이름으로 생애경로를 획일화한 후기자본주의의 체제의 진정한 힘이며, 이는 유동적 근대의 '유동화' 원리가 사람들을 공포로 경직시킴으로써 상상력과 사유의 능력 자체를 빼앗아 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49)
신자유주의 체제의 감정적 분할통치 전략은 노동자들 사이의 연대를 불가능하게 한다. (...) 불안과 공포는 같은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각자의 위치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예컨대 퇴직의 공포를 내사화해 적극적으로 체제에 순응하는 정규직 노동자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멸시하는 식으로 철저한 구별짓기 전략을 구사할 뿐 아니라 연대가 아닌 개인적 야망을 증대시킴으로써 "노동자들 간의 무한경쟁과 상호불신의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한다. (251~252)
청년실업 지표가 나날이 악화되며 교육도 취업도 포기한 니트족이 증가하는 최근의 경제 상황에서 자신이 점점 쓸모없어지고 있다는 '잉여'로움의 '느낌적인 느낌'이 확산되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이다. (253)
이렇게 일베의 정치적 인식은 결과론이 지배하는 현실주의적 세계관을 전제로 하면서도 승리하는 선한 지도자라는 불가능한 환상을 가진다는 역설을 품고 있다. 하지만 백마 탄 초인과 같은 지도자의 등장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 또한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남는 것은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개발하여 각자도생하는 것뿐이다. (266)
평범 내러티브는 입시나 취업처럼 누구나 겪는 일상생활에서의 어려움은 물론, 흙수저라는 태생적 환경, 왕따, 심지어 세월호 사건과 같은 사회적 참사에 이르는 고통까지도 모두 개인이 감당해내야 하는 것으로 만들고, 그러한 고통을 간당함으로써 생존자 또는 감수感受자로서의 능력을 입증할 것을 요구한다. 순응하는 이에게 복이 있고, 참는 자에게 차례가 올 것이라는 믿음하에 평범 내러티브는 타인의 고통의 현존을 부정한다. (269)
윤보라는 스마트폰의 등장이 단순히 연결성의 극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실존하는 자아가 그대로 디지털에 투영되게끔 만들어 사이버, 곧 '가상' 공간을 마치 실재하는 곳처럼 느끼게 한다고 지적한다. 거의 모든 국민이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현시점에서 디지털 자아와 실재 자아는 사실상 떨어져 있지 않다. (283)
신상이 공개된 후 처음으로 포토라인에 선 장대호는 자신의 '당당함'을 드러내며 뜬금없이 고려시대 무신 정중부를 거론했다. 정중부가 아비의 권세를 믿고 자신의 수염을 태웠던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의 행동을 잊지 않고 있다가 훗날 복수했듯이, 본인도 '복수'를 통해 '정의'를 구현했다는 것이다. (294~295)
시험과 절차에 대한 이처럼 당혹스러울 정도로 절대적인 신뢰는 한국 사회의 사회적 자본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한편, 일베에게서 확인했던 평범 내러티브가 '일베만'의 멘털리티가 아닐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336)
(...) 우리는 여러 방법으로 일베에서 나타나는 혐오의 배후에 평범함에의 추구와 그에 대한 좌절이 있음을 살펴보았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평범'이라는 말에 투사된 욕망은 비범하기 이를 데 없다. 삼성으로 대표되는 대기업 정직원과 (가급적 서울에 있는) 아파트라는 경제적 토대를 갖추어 사랑하는 이와의 연애와 결혼, 그리고 자녀를 낳아 '가정'을 꾸리는 '평범'한 삶이란 한마디로 현대 한국의 중산층 정상가족을 이룩하는 것이다. (339)
일베는 유구한 일등시민의 우상을 21세기 버전으로 갱신한다. 이들은 누구나 그렇게 하듯이 학점과 영어시험, 자격증, 공모전 따위의 자기계발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려 한다. '스펙 쌓기'로 요약할 수 있는 청년기 이행경로를 충실히 따르며, 생계유지를 위한 경주에 나선다. (...) 일베를 통해 업그레이드된 수치심은 순응하는 국민을 기획하는 국가가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산출물이다. 수치심은 개인의 불만을 제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타인의 불만까지 적극적으로 억압하게 한다. 이들에게 스펙이라는 게임의 룰은 절대적이다. 이 판을 흔드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341)
이준석에게서 느껴지는 일베의 그림자란 각자의 특수한 경험과 환경과 조건이 무시되고, '공정한 경쟁'이라는 이름의 경직된 평가체계에 모두가 사활을 걸고, 그 결과에 따른 열패감과 모멸감, 그리고 빈곤까지도 기꺼이 받아들이는 능력주의적 디스토피아의 도래다. (362)
평범한 삶이 도달 불가능한 것이 된 지금, 엉뚱하게도 그에 대한 좌절의 책임을 구조가 아닌 소수자에게 묻고 있다고 할 때, 그래서 사회가 점점 더 파편화되고 있다고 할 때, 다시 사회를 만들어낼 새로운 도덕의 단초는 능력주의가 아닌 평범함을 다변화하는 데 있을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평범해지는, 즉 소박하지만 분명히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세울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고용안정을 포함한 여타의 사회적 안정망은 물론, 서울 대 지방이라는 지역 간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것까지 폭넓은 대책이 요구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엄기호의 말대로 "역사를 믿는다는 것"이 광장의 "조울증에서 벗어나 평상심을 회복하는 일"이라면, "절망보다 좀 더 긴 시간 감각을 가지고 삶의 현장을 보는 것, 광장의 찰나에 흥분하기보다 좀 더 긴 시간 감각을 가지고 광장을 보는 것"이라면,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조금 더 믿을 필요가 있다. (366~367)
독서습관1022_보통 일베들의 시대_김학준_2022_오월의봄(250316)
■ 저자: 김학준
유니텔부터 프래챌, 디시인사이드, 인스타그램을 거친 인터넷 죽돌이 출신 사회학 연구자. 2014년 논문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저장소에서 나타나는 혐오와 열광의 감정동학>으로 석사학위(서울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를 받았고, 이후 (주)아르스프락시아 미디어분석팀장과 서울시청 빅데이터담당관 데이터 분석 요원을 거쳐 현재 LG CNS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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