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압살롬, 압살롬!』은 이렇게 남북전쟁에서 패배한 남부가 무너지는 과정을 악으로 점철된 서트펜가의 비극을 통해서 형상화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작중 인물들이 비극적인 운명과 싸우며 인간의 의지와 견인력을 통해서 보이는 역사 의식은 이 작품을 서사시로 만들 만큼 탁월한 도덕성을 부여하고 있다. (566)
미국의 남북전쟁 시기에 남부 미시시피주에서 토머스 서트펜이 정착해서 대농원을 만들며 그의 가족사가 펼쳐진다. 소설은 등장인물이 많고, 시간적인 순서가 뒤섞여 있고, 상황을 묘사한 글이 많아 독자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따라가기 쉽지 않은 책이다. 소설이 끝나는 지점에 '서트펜가(家) 연보'라고 해서 시계열에 따라 등장인물들의 이벤트를 정리한 것이 있다. 이 자료를 참고하면 소설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던 상황을 알 수 있다.
1860년대 남북전쟁 시기에 노예제도에 기반한 대농장주를 중심으로 한 남부의 변화를 알 수 있다. 전쟁에 패하며 대농장을 소유했던 귀족들이 서서히 소멸해 가는 모습이 서트펜 일가에서 드러난다. 또한 백인과 흑인으로 분리된 사회지만 그 사이에서 태어난 유색을 가진 자녀들의 등장과 그들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를 볼 수 있다. 서트펜이 아이티에서 결혼해서 찰스 본을 나았지만 아내에게 흑인의 피가 섞여 있는 것을 알고 절연한 것은 당시의 백인의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의식을 보여준다.
소설을 읽으며 늘 '압살롬'은 언제 등장하지? 왜 압살롬이란 이름으로 제목을 지었을까?라는 궁금증을 해소할 근거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읽을 때까지 직접적인 관계를 찾지 못했다.
모두 읽고 나서 압살롬이 어떤 사람인지 찾아봤다. 성경에서 압살롬은 다윗의 둘째 아들이다. 첫째 아들은 암논이다. 암논은 압살롬의 친여동생이자, 이복여동생인 다말을 꼬득여서 겁탈한다. 압살롬은 다윗의 처분을 기다리지만 다윗 자신이 우리야의 아내인 밧세바와 불륜을 저지른 일이 있어서인지 조용하다. 결국 압살롬은 암논을 살해한다.
다윗의 가족의 이야기는 소설의 서트펜 일가의 이야기와 닮은 점이 있다. 서트펜은 아이티에서 첫 번째 결혼을 해 찰스 본이란 아들을 두었지만 흑인의 피가 있다는 사실로 결연하고 미시시피 주에서 엘렌과 두 번째 결혼을 해서 헬리와 주디스라는 남매를 둔다. 남북전쟁에 참전 후 돌아와서는 엘렌이 죽었다는 이유로 그녀의 여동생인 로자와 약혼했지만 결혼에 이르지 못했다. 암논은 찰스 본, 압살롬은 헨리, 다말은 주디스와 연결되는 구조로 보인다.
소설 속에서는 백인과 흑인이 결혼구조를 통해, 혹은 농장주와 노예의 관계를 통해 자녀를 낳으며 세대를 거듭할수록 구분이 희미해지는 점도 볼 수 있다.
쉽지 않은 소설이지만, 미국 남북전쟁 시기에 남부 귀족들과 노예들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역사적인 면에서도 도움이 되는 내용이다. '서트펜가 연보'를 참고하며 읽으면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겠다.
아래는 책의 이해를 돕기 위해 도움이 될 문장들을 인용했다.
그것은 1838년 6월의 일이었어. 그가 흰 털이 섞인 밤색 말을 타고 마을에 들어왔던 그 일요일 아침부터 거의 오 년이 지났지. 미스 로자의 말에 의하면, 그것(결혼식)은 그가 처음 엘런을 보았던 그 감리 교회에서 이루어졌어. 식을 올릴 때 고모가 콜드필드 씨를 집요하게 괴롭히고 강요하기까지 해서 엘런이 얼굴에 분을 바르도록 했지. (...) 그녀는 마차를 타고 그 (비) 속에서 서트펜 농원으로 출발했어. (68)
그때에도 그는, 자나 깨나 입고 있던 그 양복처럼, 후일에 말이 통하지 않는 고장에서 밤낮 없이 늘 몸에 걸치게 될 그런 경계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었지. 그것은 잘못이 단 한 번밖에 용서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데서 오는, 잠도 이룰 수 없는 그러한 경계심이었음이 분명했지. 그것은 만일의 사태와 인간성을 거스르는 환경에 대해 측정해 보거나 가늠해 보고, 자칫 오류에 빠져들기 쉬운 자신의 판단력과 육신을 인간적인 힘뿐만 아니라 대자연의 힘과 대립시켜 취사선택을 거듭해 가며, 자신의 꿈과 야망에 합치시켜 나가는 그런 경계심이었지. (74)
그녀가 계속 옷을 만들고 있는 동안 미시시피 주가 분리되었고, 남군 군복을 입은 최초의 병사가 제퍼슨 읍에 나타나게 되었지. 사토리스 대령과 서트펜은 제퍼슨 읍에서 연대를 조직하고 1861년에 읍에서 출정했어. 부사령관인 서트펜은 사토리스 대령의 왼쪽에 자리 잡고, (...) (114)
오빠인 헨리는 어떻게 해서라도 존재하기 위해서 누이동생의 처녀성을 파괴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생각하여, 자기가 이상으로 생각하는 인물인 본, 애인이며 남편인 본이 그 처녀성을 빼앗아야 하며, 만약 강탈당하게 되어 그 자신이 누이동생이나 정부나 신부로 변신할 수가 있다면, 그는 기꺼이 본에게 처녀성을 바치리라 생각하고 있었던 거야. 아마 그런 생각은 헨리의 마음속에서가 아니라 영혼 속에서 일어난 것이 분명했어. 왜냐하면 그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었어. 그는 느끼면 즉시 행동에 옮기는 사람이었지. (138)
그야 하느님도 한때는 젊으셨음에 틀림이 없었고, 확실히 한때는 젊으셨지만, 하느님처럼 오래 산 누군가 존재한다면, 그 사람은 우아함이나 절제 혹은 품격 같은 것이 전혀 없이, 거칠고 난잡한 죄를 하느님처럼 많이 보아 온 사람이겠고, 그 사람도 결국 이런 사례는 그렇게 드문 것이 아니지만, 자네들 앵글로 색슨족이 색욕이라고 부르기를 주장하고 그것을 만족시키는 과정에서 안식일에 원초적인 동굴로 돌아가는, 완전히 정상적인 인간 본능에 적용된 명예, 단정, 우아함 등의 원칙에 대한 명상을 새롭게 할 거야. (166~167)
1865년의 오늘 메이슨 딕슨 경계선 밑에 있는 숙녀나 여자들에게 그 말은 마치 호흡을 하고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순전히 불필요한 군말로 생각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87)
* 메이슨 딕슨 경계선: 미국 펜실베이니아, 메릴랜드, 델라웨어, 웨스트버지니아 주에 그어진 경계선, 노예 제도 폐지가 문제가 되었을 때, 이 선을 경계로 북부와 남부로 갈라져 자유주의와 노예주의의 분계선이 되었다.
그로부터 사 년 동안 그녀는 나와 마찬가지로 기다렸다고 나는 믿고 있었어. 우리가 배워서 알고 있던 안정된 세계가 전화와 전진 속에 사라져 버렸고, 평화와 안전과 사랑과 희망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으며, 상처 입은 명예를 가진 재향 군인들과 사랑만이 남아 있었어. (218)
그런데 1월 어느 날 오후, 토머스 서트펜이 집에 돌아왔어. 우리가 다음 해에 먹을 것을 마련하기 위해서 채소밭에서 일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얼굴을 들었고, 그래서 우리는 그가 말을 타고 찻길로 오고 있는 것을 보았어. 그리고 어느 날 저녁, 나느 그와 약혼한 거야. (230)
1910년 1월 10일 미시시피 주 제퍼슨으로부터라는 낯익은 기계적인 글씨가 흐릿하게 보였는데, 안을 열어 보니, 사랑하는 아들에게로 시작되는 아버지의 경사진 아름다운 글씨체가 그가 하버드 대학교 입학 준비를 하던 그 후텁지근하고 먼지 뿌연 여름을 생각나게 해서, 마치 아버지의 손이 지금 이 케임브리지의 램프로 불 밝힌 낯선 탁자 위에 놓여 있는 것 같았다. (253)
하지만 나는 알아야만 했습니다. 아마 인간이란 한 가지 이상의 여러 가지 방법으로 미래를 위하여 자신을 만들어 가나 봅니다. 내일이나 내년의 몸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미약한 감성과 지성이 예견하지는 못하지만, 십 년이나 이십 년이나 삼십 년 후에 살기 위해서 아무래도 취하게 될 것이고 또 취해야만 할 행동이나 거기에 뒤따르는 되풀이할 수 없는 과정을 위해서도 자기 자신을 만들어 가는 거겠죠. (350)
본이 서트펜이 자기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았는지 아닌지, 처음에는 자기 어머니의 원수를 갚을 의도였는지 아닌지 그 누구도 알지 못했고, 나중에 가서야 미스 로자가 말했던, 서트펜 탓으로 자기의 피 속에 흑인의 피와 백인의 피가 함께 섞이도록 운명 지어진 인과응보와 숙명의 거센 물결에 몸을 맡긴 채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사랑에 빠져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는 거야. (384~385)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워시는 순간 발밑의 대지가 무너지는 것을 느꼈음에 틀림었다는 거야. 그는 꿈꾸는 듯 조용히 생각했겠지. 내가 들은 말이 사실일 수가 있을까? 이럴 수가 있나? 그가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그것 때문이었구나. 그 망아지 때문이었어. 나 때문도, 그 손녀 때문ㅇ도 아니야. 그가 일찍 일어난 것은 제 자식 때문이 아니었어. 그리하여 몸의 중심을 잃고 서트펜과 대면하고 섰을 때,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만일 내 손녀가 암말이라면 마구간에 근사한 방을 하나 만들어 줄 수 있을 거라고 했겠다?' 하고 말했지. (...) 그러나 '대령님, 내가 버릇 좀 가르쳐 드리겠소.' 하고 대답한 걸 보변 서트펜의 말을 듣긴 들었음에 틀림없어. (412)
(...) 그저 이 옥스퍼드에서 서트펜 농원까지는 말을 타고 하루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과 헨리는 벌써 그 학교에 안착해 있다는 것밖에 생각지 않았지. (447)
네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찰스 - 슈리브, 퀜틴 - 헨리이고, 그 두 사람 모두 믿고 있는 것은, 헨리는 그(그의 아버지를 의미한다.)가 이미 이런 것을 알고 있거나 혹은 적어도 느끼고 있었음에는 틀림없다. 그러니까 그가 저렇게 행동했던 것이고, 금년 여름 내내 주디스에게도 편지를 보내지 않았던 거야. 그리고 그가 주디스에게 자기와 결혼할 것인가를 한 번도 묻지 않는 이유도 결국 그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야. (475)
그는 이전부터 이 모든 걸 알고 싶어 했고, 또 그것을 알 충분한 이유가 있었어. 그는, 자기가 아는 한 자기에게 부친이란 없고, 다른 아이들과 노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어머니와, 어머니가 사 가지고 오는 고기 한 조각이나 빵 한 덩어리에도 일일이 잔소리를 하는 변호사와의 사이에서 만들어진 인간이었던 거야. (483)
이리하여 찰스 본과 그의 어머니가 토머스 서트펜을 죽게 했고, 찰스 본과 혼혈의 여인이 주디스를 죽게 했으며, 찰스 본과 클라이티는 헨리를 죽게 했고, 찰스 본의 어머니와 할머니는 찰스 본을 죽게 했단 말이군. (538)
퀜틴이 독자들에게 이야기한 서트펜가의 비극은 남부의 역사를 기록한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전설로서 몰락한 남부의 역사에 대한 상징과 은유가 되고 있다. 그래서 포크너가 이 작품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제시하려고 하는 주제는 노예 해방을 위한 남북전쟁에서 패배한 남부의 역사를 반영하는 서트펜가의 비극의 원인을 밝히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는 것 같다. (556)
그런데 이 작품 『압살롬, 압살롬!』이 토머스 서트펜이라는 인물의 성격이 지닌 비극의 오점인 '순진성'만을 탐색한 결과에 머물렀다면, 시간을 이기고 영원히 살아남을 고전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비록 이 작품은 시대적인 변화에 유동적으로 순응하지 못하는 낡고 고착된 비인간적인 사회 질서가 무너지는 과정을 서트펜가의 몰락을 통해서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지만, 우리는 여기서 산속에서 자란 서트펜이 개척자적인 정신으로 서인도 제도로 가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변신해서 남부의 벽지인 요크나파토파 군으로 흑인 노예를 데리고 들어와 대저택을 짓고 농원을 갖게 되는 과정에서 보여 준 파우스트적인 강인한 인간 의지의 위대한에서 서사시적인 비장으로 읽을 수 있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559~560)
독서습관1025_압살롬 압살롬_윌리엄 포크너_2018_민음사(250323)
■ 저자: 윌리엄 포크너 William Faulkner
1897년 미국 미시시피 주 뉴올버니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미국 남부의 명문가로서 선조들은 멕시코 전쟁과 남북 전쟁에서 활약했다. 어릴 때 가족이 미시시피 주 옥스퍼드로 이사를 간 후 그곳에서 생애의 대부분을 보냈다. 혼자만의 독서와 사색에 심취하여 고등학교를 자퇴한 후, 여러 직업을 전전하고 군대에 자원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통해 작가 수업을 쌓으며 첫 소설 『병사의 보수』를 출간했다. 소꿉친구였던 에스텔 프랭클린과 결혼한 다음
『음향과 분노』를 내놓으면서 소설가로서 기틀을 다졌고 곧이어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성역』, 『8월의 빛』, 『압살롬 압살롬』과 같은 문제작을 완성했다.
포크너는 특히 남북 전쟁 이후 남부 오지의 쇠퇴상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소설은 남북 전쟁 이후 남부 오지의 쇠퇴상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소설은 마북 전쟁과 재건기 동안 남부의 전통적 가치와 삶의 방식이 파괴되면서 남부 귀족 사회가 급격히 몰락하는 과정을 정묘하게 그렸다. 무엇보다도 그를 20세기 가장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은 그의 실험적인 문체였다. 그는 미국 모더니즘 문학의 개척자로서 전통적인 소설 형식을 파괴하고 소설 문법에 혁신을 가져왔다. 의식의 흐름 기법을 이용해 등장인물의 내면 심리를 묘사하며, 소설 구성에서 연대기적 서술기법을 탈피하고, 현재 시제와 과거 시제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 불가능할 정도로 길고 복잡한 문장을 구사했다. 이러한 독특한 작품 세계를 인정받아 전미 도서상, 퓰리처 상,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1962년에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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