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대해 '24년 영화를 볼 때까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내용인지 몰랐다. '24년 말에 다른 책에서 언급되었기에 유튜브에서 찾아봤다. '로렌스'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였다. 유튜브에 무료로 영화를 볼 수 있어 길지만 재미있게 봤다. 영화만으로는 로렌스가 특이하고 대단한 인물이었고, 오토바이 사고로 갑자기 사망했다는 정도를 알 수 있었다.
영화와 책을 동시에 보면 늘 책이 훨씬 재미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도 동일하다. 한정된 시간 안에 주요 내용을 담아야 하는 영화와는 달리 책은 더 자세히, 더 많은 인물을 포함해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상황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영화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스케일이 넓고 1차 세계대전 중에 중동 지역에서 활약한 로렌스의 강점과 약점을 온전히 담고 있다. 영화에서는 군인 같지 않은 군인이 되어 엄청난 인내력을 가지고 아랍인들과 융화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책에서는 어설픈 군인의 모습은 유사하지만 부러지고, 고문당하고, 총상을 입고, 죽을 고비를 넘기는 현실적인 로렌스가 주인공이다. 그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아라비아반도 홍해 지역을 따라 이동하며 영국과 아랍민족 사이에서 아랍 지역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어느 군인보다 아랍민족을 이해하며 그들을 위해 전장을 누빈다.
로렌스라는 인물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중동지역이 오스만투르크와 제국주의 지배에서 벗어나며 어떻게 국가의 형태를 만들어갔는지 이해할 수 있다.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유대인 자치국가 수립을 위한 노력이 이미 1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영국 외무장과 벨푸어가 이스라엘이란 국가를 인정한 것이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갈등의 원인이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유대인 시온주의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들만의 국가 수립을 꿈꾸며 활동하고 있었다. 이 책에서는 아론손이라는 농학자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활동하며 적극적으로 그들만의 자치국가 수립을 위해 활동한다. 그는 영국의 시온주의자와 미국의 시온주의자들과도 소통한다. 결국 주요 국가의 요직에 있는 유대인들, 금융으로 부유한 유대인들이 서로 협력하며 오랜 기간 기회를 모색했고 구체화된 시점이 벨푸어가 외무장관으로 재임하던 시점이었을 뿐이다.
책에서 인상깊었던 부분은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발표한 민족자결주의에 대해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은 순진한 생각으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반면에 일제 강점기에 있던 우리 민족을 포함해 식민지나 반식민지에 처해 있던 민족들의 해방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제국주의국가와 피지배국가 사이에 받아들이는 눈높이가 완전히 달랐다는 점이다. 윌슨 대통령은 이상적인 말만 내뱉고 행동이 없는 사람으로 인식되었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오스만제국이 멸망하며 새로운 국가로 쪼개지는 과정에서 민족에 따라 국가를 허용했을 때 엄청난 혼란을 우려했다.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 지금도 한 국가 안에서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갈등을 겪는다. 그러니 민족에 따라 국가를 허용한다고 했을 때 수많은 민족이 서로 더 많은 땅을 가지고 아귀다툼을 할 수도 있었겠다는 상상을 해본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영국인 토머스 애드워드 로렌스, 미국인 윌리엄 예일, 독일인 쿠르트 푸뤼퍼, 유대인 아론 아론손이라는 인물들의 활약이 교차하며 이야기가 진행된다. 8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지만 중동 이곳저곳에서 동맹군과 연합군 간에 정보전, 유대인들의 자치 국가를 위한 노력, 아랍민족의 입장을 이해하며 그들의 위해 분투하는 로렌스의 활약이 이어지기에 소설처럼 읽히는 책이다. 일독을 강력 추천한다.
수많은 중동 역사학자가 지적하듯이, 서구가 선호하는 이러한 이름들(오스만 제국이 아닌 터키, 이스탄불이 아닌 콘스탄티노플)은 유럽 열강의 제국주의적 역사관을 가장 사악한 방식으로 정당화하려는 서구 중심적 사고방식의 지표라 할 수 있다. (31)
그러나 로렌스는 왕 앞에 무릎을 꿇지 않았다. 대신 예식을 진행하는 도중에 국왕에게 영광을 거두어달라고 조용히 아뢰었다.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시간이 잠시 흘렀다. 900년이 넘는 역사를 통틀어 기사 작위 사양이란 극히 드문 사건이었다. (...) 조지 5세는 메달을 어정쩡하게 들고 있다가 결국 시종관이 받치고 있던 쟁반에 도로 내려놓아야 했다. (36)
로렌스란 인물이 어떤 사람인지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아론손은 열성적인 시온주의자로서, 길쭉하고 광대한 팔레스타인 땅을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빼앗아 유대인 조국을 재건하겠다는 구상에 1911년부터 관여하고 있었다. 물론 이런 의견을 표명한 시온주의자들은 오래전부터 많았다. 하지만 그 지역의 식물군과 토양 조건 및 지하수층 등에 관해서 백과사전적 지식을 보유한 사람은 아론손뿐이었다. (56)
수천 년 동안 동양은 정복, 탐험, 착취의 대상으로서 서양을 끌어당겼다. 중세에는 기독교 십자군이 300년 주기로 근동 지역에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1790년대에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라는 프랑스 장군이 파라오가 되겠다는 환상을 품고 이집트를 공략했다. 1830년대에는 유럽 최고의 고고학자들이, 1870년대에는 서구의 석유 재벌과 투기를 일삼는 채굴자 및 사기꾼 등이 카스피 해 주변으로 밀려들었다. 그리고 20세기 벽두, 서로 다른 듯하지만 어쩌면 비슷한 이유로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 윌리엄 예일, 쿠르트 프뤼퍼, 아론 아론손이라는 네 사내가 중동 땅에 발을 딛고 있었다. (57)
이런 열정으로 인해 로렌스는 20세기 초 가장 중대한 흐름 가운데 하나, 즉 사경을 헤매는 오스만 제국에 대해 독특한 시각을 갖게 되었다. 서구인들은 대부분 중동 곳곳의 대도시에 머물면서 오스만 제국의 임종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로렌스처럼 오스만 제국의 충직한 신민들이 살아가는 시골 마을에서 그 과정을 낱낱이 목격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85)
오스만 제국이 멸망하고 유럽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통제권을 획득할 경우 시온주의자들은 유럽의 보호막 안으로 들어갈 수있다고 생각했고, 아론손이 생각하기에 그런 보호를 제공할 가능성이 가장 높고 또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나라는 영국이었다. (116)
실로 그는 청년튀르크당의 심장부에 도사린 내적 모순, 즉 동양과 서양, 현대와 전통, 유럽의 힘에 대한 경외감과 극렬한 적개심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내면을 지닌 존재였다. 제말은 범이슬람 지하드에 대해서 확고한 믿음을 견지하는 독실한 무슬림인 동시에, 제국 내 민족적 · 종교적 소수 집단에게 온전한 시민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가장 강력히 주장하는 청년튀르크당 지도자였다. (174)
이러한 아랍의 보수주의자들은 5월 말 청년튀르크당의 현대적인(그들 눈에는 세속적인) 개혁에 분노를 표출하면서 제말에게 다시 한번 위기를 안겼다. 이 위기는 불만 가득한 보수주의자들을 대표하여 파이살 이븐 후세인이라는 부드러운 말투를 지닌 31세의 사내가 총독 집무실 문을 두드리는 것으로 현실화되었다. 파이살은 아라비아 서부의 광활한 헤자즈 지역을 다스리는 에미르 Emir(태수) 후세인의 네 아들 가운데 셋째였다. 파이살의 아버지 후세인은 무슬림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도시 메카와 메디나의 셰리프 Sherif, 즉 종교 지도자로서 10세기 이후 이슬람 성지를 지켜온 하심 가문의 직계 후손이다. (204)
하지만 이 정도로 스토스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는 정치적 음모로 얼룩진 중동에서 가장 위험한 비밀을 간직한 인물로, 카이로와 영국 그리고 메카의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 극히 민감한 게임에서 핵심적인 통로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런 스토스가 위험한 비밀에 끌어들인 자가 바로 T. E. 로렌스였다. 요컨대 스토스는 정보대 소속 애송이 장교 로렌스를 명예로운 영광의 길로 안내한 당사자다. (209)
로렌스는 전장에서 겨우 넉 달을 보내는 동안 터키를 손쉽게 이길 것이라는 영국의 낙관적인 바람이 다른 어떤 이유도 아닌 정치적 · 제도적 타성으로 인해 보류되는 과정을, 말하자면 '위대한 사색가들'이 갈리폴리 작전을 도출하는 과정을 낱낱이 지켜볼 수 있었다. 옥스퍼드 출신 학자의 눈으로 지켜본 군대 문화란 결국 기사 작위나 훈장을 탐하는 편협한 출세주의자들 그리고 상관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는 하급자들 때문에 수없이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는 세계였다. (223)
아랍 반란에 관한 한 후세인이 영적 지도자라면, 압둘라는 야전 사령관이었다. 이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로, 헤자즈 사태에 관여하는 영국군 장교나 외교관들 사이에 이견이 없었으므로 화젯거리도 아니었다. 압둘라는 아버지의 가장 믿음직한 아들이었다. (...) 그러나 로렌스는 첫 만남 이후로 압둘라에게 믿음이 가지 않았다. (331~332)
그 뒤 3주 동안 로렌스는 경쟁자를 누르고 자기 주장을 관철하려는 수많은 영국 정부 관료의 척후병을 떠맡게 되었다. 28세의 대위에 불과한 로렌스였지만 그런 역할을 노련하게 수행하면서 헤자즈 지역에 대한 프랑스의 제국주의적 구상에 지독한 타격을 입혔고, 과도한 권력을 휘두르던 정부 관료의 세도를 꺾었으며, 영국의 아라비아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의 물꼬를 텄다. 이 과정에서 로렌스는 아랍 반란의 미래 그리고 반란에 연루된 본인의 역할까지도 바꾸었다. (354)
1915년 3월, 내무성 장관 허버트 새뮤얼은 전후 팔레스타인을 영국의 보호국으로 만들고 유대인 이주를 적극 부추기더니 마침내 유대인 중심의 국가 건설이라는 방안을 내각에 제시했다. 내각은 그렇게 중대한 계획을 지지하기에는 그 잠재적 여파가 심각할 것을 예상하여 새뮤얼의 제안을 신속하고도 조용하게 폐기했지만, 그의 발상 자체는 오랜 울림을 남긴 게 분명했다. 마크 사이크스가 전후 중동 문제에 대한 기본 방침을 놓고 조르주피코와 협상하는 책임을 맡았을 때 다시금 이 안을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385~386)
사이크스-피코 협정 때문이다. 협정이 체결된 이상 영국이 프랑스를 존중하여 아랍을 배신하고 맥마흔-후세인 서한에 담긴 모든 약속을 무효화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실제로 그 협약으로 인해 영국은 아랍인들을 아카바라는 상자 안에 몰아넣을 강력한 구실을 얻은 셈이었다. 아랍인들이 시리아를 비롯한 여타 아랍 땅의 해당 과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제거할수록 영국은 그들에게 약속한 조항들을 지키지 않아도 될 명분이 생기지 않겠는가 (448)
사이크스에게는 10월과 11월에 아론 아론손과 나누었던 대화 역시 중요했다. 두 사람의 대화 이후로 팔레스타인을 영국 편으로 끌어들이는 데 시온주의를 활용하는 방안을 재차 주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1917년 초, 사이크스는 영국의 시온주의 지도자들과 연이어 만났다. 이런 흐름에 정점을 찍은 것은 1917년 2월 7일 오전 런던 시내 한 저택에서 열린 영국 최고의 '유대인 신사들'과 함께한 특별 회담이었다. (...) 참석자 여덟 명 중에는 월터 로스차일드 경, 허버트 새뮤얼 전 내무장관, 사이크스의 팔레스타인 구상에서 핵심 인물로 부상하게 된 영국시온주의협회의 신임 회장 차임 바이츠만이 있었다. (487~488)
데이비드 린 감독의 걸작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로렌스가 가심을 구조하는 장면은 불멸의 10분으로 통한다. 특히 동료들의 열렬한 환호와 안도의 한숨 속에서 로렌스가 가심을 데리고 돌아오는 순간 감동은 절정을 이룬다. 이런 고귀한 행동 덕분에 로렌스는 진정한 '사막의 아들'이라는 이미지를 한층 확고하게 다지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는 영화와 무척 달랐다. 그토록 가혹한 환경에서, 잠시 쉬어가려다가 낙타 행렬로부터 낙오된 가심은 죽음의 위기를 자초했고, 로렌스는 어리석은 한 명 때문에 목숨을 내걸었다는 이유로 일부 동료들로부터 칭찬이 아닌 질책을 당해야 했다. 게다가 원정대 지휘고나은 로렌스가 혼자 대열을 이탈하도록 내버려두었다며 다우드와 파라즈에게 매질의 벌을 내렸다. (519)
아랍 반란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T. E. 로렌스에게는 결코 달갑지 않은 말이었다. 그러나 로렌스를 만난 자리에서 아론손은 상대를 자극할 작정이었는지 평소보다 훨씬 더 과격한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팔레스타인의 궁극적 미래는 유대인 소수 집단이 보호받는 영국의 보호국이 아니라 실질적인 유대인 독립국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미래는 시온주의자들이 가자부터 하이파에 이르는 땅을 모조리 사들인 다음 펠라헨들을 내쫓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아론손에게 정치적, 경제적으로 얼마든지 성취할 수 있는 목표였다. 로렌스는 사납게 응수했다. 팔레스타인의 유대인은 두 가지를 선택할 수 있는데, 하나는 다수의 아랍인과 공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목이 잘리는 것이라고 말이다. (587~588)
로렌스가 전쟁문학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아랍의 대의명분을 공공연히 옹호한 것과 별개로, 전쟁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려고 충실히 노력했다는 점일 것이다. 『일곱 기둥』에 명료하게 드러내고 있듯이, 수많은 아랍인은 터키를 물리치겠다는 충심으로 반란에 동참하긴 했지만 그 충심에는 영국의 금화와 넉넉한 전리품에 대한 기대가 포함되어 있었다. (600)
시온주의 운동의 두 지도자는 곧 대회의실 내부로 안내를 받았다. 그리고 장장 6개월에 걸친 협의 끝에 방금 전 팔레스타인 유대인의 미래에 대한 선언 문구를 최종 승인한 데이비드 로이드조지 총리, 아서 벨푸어 외무장관 등의 정부 요인들을 만났다. 하지만 지난한 과정과 수많은 영국 고위 관료의 고심을 증명이라도 하듯 선언문은 괴상하기 짝이 없었다. 즉석에서 휘갈긴 것처럼 보이는 세 문장짜리 선언문은 마치 외무장관 벨푸어가 영국 정부에 돈을 대는 월터 로스차일드에게 전하는 편지글 같았다. 가장 중요한 구절은 다음과 같다. "영국 정부는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의 고향을 세우는 것에 대하여 우호적인 입장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노력을 바탕으로 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도울 것입니다." (634)
(...) 말하자면 그의 임무는 미국 시온주의 지도자들로 하여금 윌슨 정부를 압박해서 벨푸어 선언을 공개 지지하도록 유도하고, 나아가 미국이 방침을 완전히 뒤집어 터키를 상태로 전쟁을 선포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646)
마크 사이크스는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인구가 늘어나도 아랍인들은 개의치 않을 것이라고 했던 과거의 견해를 재고하면서 벨푸어 선언 소식이 아랍세계 전체에 퍼지지 않도록 부지런히 단속해야 했다. 그러나 그해 11월 이집트 사회에 벨푸어 선언 소식이 퍼졌고, 대중의 실망은 곧장 분노로 바뀌었다. (663)
1918년 2월, 이미 청년튀르크당은 러시아군의 철수로 텅 비어버린 터키 땅을 되찾는 데 화력을 집중하려던 터였기 때문에 황폐하고 소란스러운 아랍 땅을 기쁜 마음으로 포기하려 들었다. (696)
예일은 자국 정부를 원망하는 입장이었다. 그가 보기에 파리에서 벌어지는 엄청난 모험은 우드로 윌슨 특유의 이상주의와 거만함이 반영된 것이었다. 미국 대통령은 '14개조'에 이어 '4개 원칙'과 '4개 목표'를 거쳐 '5개 세목'에 이르기까지, 깔끔하게 정리된 목록을 코미디에 가까울 만큼 애호하는, 사고방식이 단순한 사람이었다. (...) 윌슨의 이런 성향은 본인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자결권' 개념과 관련해서 가장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 (...) 유럽과 중동의 문화가 뒤섞인 곳에서, 종교적 신념과 민족주의와 국가주의가 폭발적으로 발흥하는 20세기 초에, 어떤 민족이 누구를 상대로 자결권을 쟁취한다는 말인가? 런던과 파리는 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히는 위험성에 대해서 윌슨에게 반복적으로 경고해왔으나 미국 대통령이 귀를 기울였다는 증거는 아무 데도 없었다. (787)
로렌스는 1929년 윌리엄 예일에게 보낸 편지에 설명한 것처럼, 파리에서 만난 대영제국과 프랑스는 가뜩이나 신뢰를 잃은 사이크스-피코 협정을 더 나쁘게 고쳐서 실제에 적용했다. 이와 동시에 중동 전역에서 저항의 불길이 무수히 치솟은 것을 보면 개악의 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793)
그는 당시 '전쟁신경증'으로 불리던, 오늘날에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로 알려진 증상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로렌스는 끝없는 악몽과 몇 차례 자살을 생각했을 만큼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나머지 생에를 견뎌야 했다. 혼자 떨어져 지내고 싶은 마음 때문에 예전 친구들과도 대부분 절교했다. (811)
독서습관1019_아라비아의 로렌스_스콧 앤더슨_2021_글항아리(250309)
■ 저자: 스콧 앤더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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