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권일의 <한국의 능력주의>를 상당 부분 공감하며 읽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의 고시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특히 한국에서 승자독식과 빈익빈 부익부를 낳는 지대추구를 강하게 비판했다. 자기표현의 가치가 약하고 세속적 합리성, 생존적 가치가 강한 사회는 가치가 획일적인 사회라고 비판하며 한국이 그런 사회라고 했다. 한국이 형식적인 민주주의는 달성했지만 효과적인 민주주의 수준은 낮다고 한다. 한국 사회는 갈수록 경제적 불평등이 심해지고, 기회의 불평등도 심해지고 있다. 이런 사회적 흐름 속에서 박권일의 책 <한국의 능력주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의 능력주의>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세 가지로 정리해 포스팅한다.
첫째, 능력주의의 한계와 문제점을 제시한다.
박권일은 한국 사회에서 능력주의가 어떻게 왜곡되고 있는지를 비판한다. 능력주의는 개인의 능력과 성과에 따라 보상받는 시스템을 의미하지만, 한국에서는 이 시스템이 승자독식 구조와 결합하여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고시제도와 같은 경쟁적인 시스템은 소수의 승자에게만 혜택을 주고, 다수의 패자에게는 좌절과 불평을 안겨준다. 이는 사회적 이동성을 저해하고,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능력주의의 핵심 기능은 불평등이라는 사회구조적 모순을 온전히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것이다. 그 결과 불평등으로 가야 할 문제의식은 모두 불공정 논란에 빨려 들어가고 만다. 이 책의 목표는 그러한 사태가 어떻게, 왜 일어나는지 밝히고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9)
본래 비정규직은 고용불안정을 감수하는 대신 임금을 더 받아야 하는 고용 유형이었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는 사실상 같은 일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임금도 적게 주고 해고도 마음대로 해왔다. 이런 부정의하고 비생산적인 규칙을 만든 근본 책임은 국가에 있다. 그런데 왜 비정규직 노동자를 비난하는가? (18~19)
"지금 대학생들은 수능점수의 차이로 모든 능력의 차이로 확장하는 식의 사고를 갖고 있으며, '더 높은' 곳에 있는 학생들이 자신을 멸시하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기보다 자신보다 더 '낮은' 곳에 있는 학생들을 멸시하는 편을 택한다." (19)
한국에는 여전히 유사-과거제도 들이 너무 많이 남아있다. 한국은 도덕적 성숙, 더 많은 신뢰, 현장의 암묵지tacit knowledge와 숙련 등과 같은 중요한 사회적 가치에 고루 보상하는 대신에, 단지 '시험 치는 기술'에만 보상을 주고 시험에 탈락한 모두에게 불이익을 주는 사회로 진화했다. (38)
1883년 유길준은 한국 최초의 도미 사절인 보빙사의 일행으로 미국에 가게 됐는데, 이때 모스 교수를 직접 찾아가 다윈의 진화론을 사사했다. 진화론과 사회진화론에 심취한 유길준은 <경쟁론>이라는 글과 <서유견문> 등의 저서에서 한국 현실을 논하며 당시 지식인과 대중에게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 전복희에 따르면 <독립신문>의 논설은 "약육강식과 강자의 권리만이 인정되는 사회진화론적 관점에 입각해서 국제 사회의 인종이나 국가간의 갈등과 싸움을 설명하고, 국민에게 약자의 입장에 있는 한국의 현실을 인식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됐다. (50~51)
둘째, 지대추구와 사회적 불평등을 비판한다.
박권일은 지대추구(rent-seeking) 행위를 강하게 비판한다. 지대추구는 개인이나 집단이 생산적인 활동보다는 기존의 자원을 독점하거나 특권을 유지하려는 행위를 의미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지대추구가 만연해 있으며, 이는 경제적 불평등과 기회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박권일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사회적 불평등이 계속해서 악화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 근대화 과정이 진행되면서 개인의 공적 측면이 옅어지고 사적 측면이 강화됨에 따라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한 대응까지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게 된 현상을 가리킨다. 이러한 '개인화'는 입신출세주의와 교양주의뿐 아니라 앞으로 살펴보게 될 학력주의나 능력주의의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62)
'빈곤은 온전히 개인의 무능과 게으름 때문'이라는 스마일스의 주장은 당시 부르주아 계급의 생각을 잘 대변해주었기에 책은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대중의 정치적 저항을 억압하면서도 그들의 노동력을 효과적으로 추출하고 싶었던 세력들, 즉 노동규율에 대한 탈정치적 정당화 논리가 절실히 필요했던 여러 국가의 지배계급과 지식인들에게도 이 책은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65)
민주적인 형태의 정치제도를 구축하는 데 불가결한 이익집단의 결성 및 논쟁과 타협이라고 하는 것은 시작도 되기 전에 거의 토대가 무너져버렸다. (86)
각자의 출발선이 아무리 달라도 객관적 지표나 성적에 따라 대우받아야 한다는 이런 생각은, 아마도 약자 소수자에 대한 적극적 배려정책에 대한 집단적 적대감의 원천일 수 있을 것이다. (89)
또한 자원을 독점한 승자들은 '지대추구'와 '사다리 걷어차기'에 몰두하며 공동체의 장기적 생산성마저 떨어뜨린다. 극도로 불평등한데다 불합리하기까지 한 자원 배분 시스템이야말로 '암흑의 핵심'인 것이다. (94)
이 비용은 고시생 개인만이 아니라 그의 가족, 나아가 사회 전체가 부담하는 것으로서, 어떻게 보더라도 개인에게 온전히 귀속한 자원으로 환원될 수 없다. 그럼에도 저 글은 마치 고시가 '순수한 개인의 기량'을 경쟁하는 제도인 양 호도하고 있다. 양병호의 글은 특정 제도의 혜택을 입은 이가 얼마나 그 제도의 정당성 또는 필연성을 과잉 확신하고 있는지, 그 인식이 얼마나 몰사회적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해둘 만하다. (108)
셋째, 형식적 민주주의와 효과적 민주주의의 괴리를 지적한다.
박권일은 한국이 형식적인 민주주의는 달성했지만, 효과적인 민주주의 수준은 낮다고 지적한다. 형식적인 민주주의는 선거와 같은 절차적 요소를 갖추고 있지만, 실질적인 민주주의는 시민의 참여와 권리 보장이 충분히 이루어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한국 사회는 경제적 불평등과 기회의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실질적인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이는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민주주의의 질을 저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실제로 많은 경우 고시란 개인의 자질이나 노력만이 아니라, 가족 전체의 역량이 투입되는 '가족전쟁'이었다. 아무리 시험공부에 재능이 있더라도 하루 벌어 하루 먹기도 힘들 정도로 가난하거나, 자신이 일하지 않으면 가족을 부양할 방도가 없는 사람인 경우, 시험의 허들은 그에 비례해 높아진다. 2019년 조사에 따르면 가구소득이 적을수록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비율은 높지만 합격률은 눈에 띄게 낮게 나타났다. (119)
한국의 고시제도 하에서는 거의 필연적으로, 평범한 국민들을 무시하고 민주주의를 냉소하는 엘리트가 양산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고시는 과소한 민주주의 교육이 과도한 능력주의 신화와 결합할 때 어떤 '괴물'이 만들어지는지를 보여준 거대한 사회 실험이었다. (121~122)
문제는 지대추구가 아니라 승자독식과 부익부 빈익빈을 낳는 지대추구다. 그리고 문제는 모든 시험이 아니라 '고시'와 같은 지대추구적 시험이다. 사회적으로 비판받는 지대추구가 바로 이런 종류다. 한국의 대입시험 역시도 지대추구적 성격을 가진다. (...) 이 시험은 대학 진학 이후의 학습 잠재력을 측정하기 위해 개발된 시험이며 어떤 사회적 기여나 성취의 지표조차 아니다. (126~127)
공채시험과 면점시험으로 언론인의 취재력을 검증할 수 없지만 문화자본과 사회자본을 확인하는 데는 나름의 쓸모가 있는 셈이다. (133)
한국인은 '모두가 같아지는' 평등, 이를테면 "의사사회주의적 평등" 따위를 선호하지 않는다. 한국인이 선호하는 평등은, 그것을 여전히 평등이라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좀 다른 종류의 평등이다. 한국 사회의 극단적인 입시경쟁과 대학서열 체제는 일반적 평등주의가 강했다면 성립되기 어려운 시스템이었다. 그런 사회는 한날한시에 같은 시험을 보는 '기회의 평등'과 전국 1등부터 전국 꼴찌가지 촘촘하게 위계서열을 나누어 보상을 차별하는 '결과의 불평등'이 철저히 정당화됐기에 비로소 성립 가능하다. (146~147)
요컨대 기회균등의 원칙은 능력을 계발하고 노력을 경주할 실질적 여건의 보정을 뜻한다. 하지만 '테스토니아'는 격차를 제대로 보정하지 않는다. 그 나라에서 우연히 좋은 조건에 있는 사람은 쉽게 원하는 것을 얻는 반면, 우연히 나쁜 조건에 있는 사람은 노력해도 원하는 것을 얻기 어렵다. 다만 연아가 굶어 죽기 직전에 도움을 요청하면 겨우 연명할 정도의 돈을 마지못해 지원해주기는 할 것이다. (161)
결론적으로 박권일의 <한국의 능력주의>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심도 있게 분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향성을 제시한다. 능력주의의 왜곡, 지대추구의 만연, 형식적 민주주의와 효과적 민주주의의 괴리 등은 한국 사회가 직면한 주요 문제들이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 합의와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인은 불평등에 분노하는 게 아니라 불공정에 분노한다. 불평등에 분노하기는커녕 불평등(차등 분배)을 지고의 사회정의로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또한 특권의 불평등에 분노해 그것을 없애려는 게 아니라 특권에 접근할 기회의 불평등에 분노하며 특권은 그대로 유지하려 한다. 이 경향은 계층, 세대, 이념까지도 초월한다. (162)
자기표현 가치가 약하고 세속 합리성과 생존적 가치가 공히 강한 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가치 획일성이다. 한마디로, '모두가 서울대와 강남 아파트를 열망하는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는 가치의 위계서열이 명확하기 때문에 투입 대비 산출이 가장 큰 선택, 즉 '합리적 선택'이 무엇인지 알기 쉬운 반면, 대안적 삶의 모델은 좀처럼 제시되기 어렵다. (174~175)
잉글하트와 웰젤은 이렇게 말한다. "자기표현 가치에서 높은 수준에 있는 사회들은 경제적 신체적 안전보다 개인의 자율성과 삶의 질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자기표현 가치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민주주의의 심화와 결정적 관련성을 갖기 때문이다. (182)
한국은 매우 높은 수준의 형식적 민주주의를 달성했으면서도 효과적 민주주의 수준은 소위 선진국들보다 상당히 낮다. 일본은 물론이고 대만, 이탈리아보다도 아래다. (...) "형식적 민주주의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보다 효과적인 민주주의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184)
불평등은 인간의 권리를 침해한다. 많은 경우 개인의 빈곤은 그 사람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사회구조나 불운에서 비롯하는데, 이 빈곤은 개인이 다양한 삶의 선택지들에 접근할 수단을 앗아가며 잠재력을 개발할 기회 또한 제한한다. 한마디로 불평등은 인간의 기본적 권리들과 자유를 직접적으로 침해한다. (201)
능력주의가 강해질수록 자원이 많은 집단은 유리해진다. 돈은 물론이고 명예까지 갖길 원하는 기득권 집단의 기회 비축 기술은 정교해질 것이다. 불평등은 그만큼 더 커지고 더 공정한 것으로 치장될 것이다. (208)
능력주의에는 분명 지배 집단에 위협이 되거나 피지배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요소가 내장되어있다. 실제로 근대의 능력주의적 분배는 봉건시대의 분배에 비하면 말할 나위 없이 정의롭고 피지배 집단에도 유리하다. 문제는 그러한 상대적 개선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이다. 능력주의 이데올로기는 현존하는 불평등을 세습 신분제와는 다른 방식으로, 어쩌면 더 나쁜 방향으로 재생산할 수 있다. 마이클 영이 '능력주의 meritocracy'라는 말을 발명해 경고하려 했던 현실이 바로 그것이다. (221)
샌델이 보기에 개인의 성공은 '운'에서 온다. 재능이나 노력은 그에 비하면 지극히 미미한 요인이다. (246)
요컨데 능력주의 대안의 주된 기조, 큰 방향은 특권의 해소여야 한다. 이를 정치의 언어로 번역하면 권력의 분점이기도 하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검찰과 법원의 전횡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초헌법적 사면권을 포함한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축소하며, 특정 계급의 이익을 주로 대의하는 의회 권력의 대표성 왜곡을 교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 이런 프로그램들을 하나하나 실현해가는 과정이 바로 형식적 민주주의에서 효과적 민주주의로의 이해, 다시 말해 실질적 민주화다. (252)
지나친 부는 특권의 가장 큰 원천이다. 누진세 강화 같은 재분배 정책의 개편은 불평등을 줄여나가기 위해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애당초 부의 집중 자체를 제한하는 사전분배predistribution 정책은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부의 과도한 축적을 제한하는 것은 곧 특권을 해체하는 것이다. 이는 불평등의 직접적 해결책이나 능력주의의 효과적 해독제가 될 수 있다. (272)
한국은 건국 이후 지금까지 초지일관 개인 해법의 사회였다. 냉전기 분단국가의 강력한 반공주의는 집단적 분배 요구를 진압하는 데 엄청난 효과를 발휘했다. 개인 해법은 지위경쟁의 유일한 수단이 됐고 경쟁의 승자들에게 능력주의는 금과옥조처럼 숭배됐다. (280)
그(페케티)는 이 구조를 떠받치는 두 계층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학력과 지식수준이 높은 '브라만좌파'이고 다른 하나는 자본축적에 몰두하는 '상인우파'로서, 이 두 집단이 역할을 분담해 권력과 자원을 독점하고 통치의 정당성을 구현한다. 그 외의 다수 시민은 선거 때에만 유권자로 호명될 뿐, 정치적 대의구조에서 소외된 채 주요한 정책 결정과정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282~283)
이 책 전반을 통해 계속 강조했던 바이지만, 능력주의를 극복해야 하는 궁극적 이유는 능력주의가 재생산하는 불평등과 차별, 혐오와 배제 때문이다. 개인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점진적으로나마 개선해 나가려면 반드시 집단 해법이 필요하다. 집단 해법은 크게 정당정치와 사회운동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284~285)
비유컨대 능력주의는 '화석연료'다. 한때 그것은 성장의 필수 연료로 각광받았지만, 오늘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는 족쇄가 되었다. 현장 역량보다 학업 성적 위주인 각종 공채시험 제도, 소선거구제 등 승자독식적인 정치제도, 제왕적 대통령제, 엘리트의 부정부패와 선민의식, '재벌'에 대한 특혜,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극단적으로 분절된 노동 및 고용체제 등 사회 전 영역에 격차와 특권을 당연시하는 제도와 문화가 만연해 있다. 그 소산 중 하나가 '민주주의의 지체'다. (302)
독서습관 903_한국의 능력주의_박권일_2021_이데아(240621)
■ 저자: 박권일
월간 <말> 기자였다. 참여정부 출범과 거의 동시에 기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여러 '개악'과 노동, 사회 현장을 취재했다. 기자를 그만둔 뒤 2007년 공저한 <88만 원 세대>가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참여정부 마지막 해에 국정홍보처 주무관으로 채용돼 <참여정부 경제정책 5년> 집필에 참여, 당시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 실패에 대해 가감 없이 평가했다.
그 뒤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며 '다문화반대카페', '일간베스트저장소' 등을 수개월 동안 취재해 한국 '넷우익' 담론 분석을 시작했다. 그 결과의 일부가 <우파의 불만>, <지금, 여기의 극우주의> 등의 책으로 출간했다. 현재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대학원에서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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