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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소설]53_소금_박범신_2013_한겨레출판(180417)

by bandiburi 2018. 4. 21.

작가 박범신은 충남 논산 출신으로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가 데뷔하고 만 40년이 되는 해에 펴내는 40번째 장편소설이 <소금>이고, 자본에 대한 저자의 발언을 모아 빚어낸 세 번째 소설이 <소금>이다. 

이 소설에는 이야기를 진행해 가는 화자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초반부에는 화자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다가 점차 아버지 선명우와 그 주변인물들의 이야기가 뒤섞여든다. 흡인력 있게 빨려 들어가는 내용이지만 중반을 지나면서부터는 이야기가 약간은 혼란스럽게 다가온다. 

아버지 선명우가 자신을 위해 염전에서 고꾸라져 죽을 때까지 일한 자신의 아버지를 기억하며 췌장암 진단을 받고 막내딸 생일선물을 가지러 가는 중 우연히 만나게 된 김승민이라는 가난한 노동자와 추락사고, 그리고 인생이 180도 변화된다. 

자본의 노예가 된 아내와 세 딸들을 버리고 김승민이라는 사고로 반신불수가된 가족의 가장처럼 살아간다. 잉여와 생산성이란 말을 싫어한다. "자본의 저 거대한 '깔때기'와 무분별한 '빨대'가 사랑하는 그 애들을 제 입맛에 맞는 노예로 만드는 걸 다시 또 방치하지 않을 작정이었다."라고 언급하는 아버지 선명우! 원하지 않는 부잣집 딸과의 결혼과 자본에 길들여진 모녀들의 탐욕 속에서 그는 단순한 통장의 역할밖에 하지 못했다. 

부득이한 사고를 통해 새로운 가족을 만나고 췌장암으로 몇 개월밖에 살지 못할 것이라던 그의 인생은 건강을 회복하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잉여로 인해 소비를 추구하는 삶을 증오하여 최소로 남기고자 노력하는 아버지 선명우의 모습을 본다. 그는 새롭게 구성된 가족속에서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며 부족한 가운데 만족을 추구하며 사는 행복을 깨닫게 된다. 

오늘날 자녀를 키우는 부모로서 더 많이 모으고 더 좋은 대학을 가라고 종용하며 성적을 최우선으로 강조하는 것, 돈 잘 버는 직업을 가지로고 설득하는 것이 아이들을 오도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소설이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세희누나와의 진정한 사랑을 맺지 못하고 두 사람이 원치 않는 삶 속에서 서로를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세희 누나의 죽음 후에 그녀의 입양된 딸을 통해 들어서 알게 된다. 독자에게 안타까운 마음을 일으킨다. 

친딸이자 자신과 그나마 연결된 느낌을 주는 시우는 화자와 아버지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실종 속에 어머니는 급격한 무너짐과 교통사고 사망은 남겨진 세 자매의 삶에 큰 생채기를 남기고 자신의 탐욕을 좇아 살게 된다. 그 가운데 시우는 자신의 꿈을 찾아 연극을 하며 살고 화자를 통해 아버지 선명우의 흔적을 알게 되고 마지막에는 먼발치에서 아버지의 노래를 듣는다. 

"아비가 빨아 오는 단물이 넉넉하면 가정의 평화가 유지되고 그 단물이 막히면 가차 없이 해체되고 마는 가정을 그는 너무나 많이 보았다. 아버지가 실직하면 가족이니 더 뭉쳐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해체였다. 그는 그래서 가끔 생각해보았다. 자신이 좀더 적극적으로 아이들에게 개입했다면 달라졌을까, 저 거대한 문명에게 어떤 개인이 맞짱 뜨는 게 과연 가능한 세상일까 하고."

많은 가정의 현실이 이런 것은 아닐까. 과거에는 분명 그랬다. 하지만 요즘은 맏벌이가 대세라서 상황이 조금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단물을 추구하는 것은 동일하다고 할 수 있겠다. 

"밤이 깊었을 때, 가끔 딸들의 방을 돌아다니면서 한참씩 잠든 얼굴들을 들여다보던 기억은 언제 생각해도 가슴에서 모닥불처럼 타올랐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 세상의 모든 희망, 세상의 모든 감동이 잠든 그 애들 얼굴에 있었다. 그 애들 때문이라면 어떤 시련도 무섭지 않았다."

잠들어 있는 자신의 분신인 아이들을 들여다보는 애틋한 부모의 마음을 잘 보여주는 표현이다. 

"그 대신 자식들은 늙은 아버지를 돌볼 필요가 없었다. 여력도, 시간도 없다고, 그러니 늙은 아버지는 체제가 돌봐야 한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노인 요양원을 더 많이 지어 자식들의 짐을 덜어야 한다는 주장을 복지라고들 불렀다. 철저히 불공정한 비윤리적 거래였으나 아버지들은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 모든 것에 침묵하는 게 최선의 미덕으로 간주했다. 늙은 아버지의 죄는 더 이상 생산성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생산성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늙은 아버지들은 '폐기품'을 처리할 수밖에 없으며, 그렇게 간편히 처리해야 하며 이미 성장해 또 다른 자식들을 거느린 자식 출신의 젊은 아버지들은 체제가 마음 놓고 부려먹을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가리켜 역사 발전이라고 말한다."

씁쓸한 현실은 대변하는 표현이다. 

"그가 돈을 모아서 하고 싶은 것은 김승민의 휠체어를 사는 일과 네 식구가 나란히 누울 만한 텐트를 사는 일 정도였다. 모든 문제는 잉여 재산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을 그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잉여는 소비를 부르고, 소비는 더 큰 욕망과 더 큰 잉여를 부르도록 운면 지워져 있었다."

명답이다. 

저자가 2010년에 지은 소설 <비즈니스>를 읽어봐야겠다. 자식의 과외비를 벌기 위해 '거리'로 내몰린 어머니의 이야기를 적은 것이라고 한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도 역시 자본주의의 어두운 면, '자본의 폭력성'에 대한 저자의 목소리를 적은 것이라고 한다.  

한 번쯤 일상이 고달프고 부모 역할이 힘들다고 생각될 때 읽어보면 힘이 되고 삶에 대해 긍정적인 고민을 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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