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학년인 둘째 아들이 교양수업 숙제를 위해 구매한 책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를 일 년 가까이 미루다 읽었다. 대학생이나 일반인들이 기후변화와 관련된 이론적인 기초 지식을 얻고, 세계적으로 이산화탄소 저감을 위한 어떤 노력이 진행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추천할 만한 책이다.
책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기후변화에 대한 기초적인 내용을 다룬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과학이 어려운 독자들에게도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쓴 저자의 노력 덕분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2부에서는 기후변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기술을 설명한다. 수력, 풍력, 태양광, 조력, 지열 등을 이용한 발전으로 재생에너지를 만드는 방법이 설명된다. 그리고 전기화와 수소연료, 이산화탄소 포집기술에 대해 언급한다.
마지막 3부에서는 기후변화가 역사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를 논한다.
기후변화와 관련해서 많이 들어본 내용도 있지만 처음 알게 된 사실도 있어서 이해의 폭을 확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다음은 책에서 인용하고 싶은 내용과 소감을 간단히 정리했다.
텔러 Edward Teller는 그날, 당시로서는 그곳 참석자들은 거의 들어보지 못했을 희한한 주장 한 가지를 꺼내놓는다. 대략 아래와 같은 요지의 이야기였다.
" 자꾸 석유를 많이 쓰면, 석유가 타면서 이산화탄소라는 기체가 발생하기 때문에, 공기 중에 이산화탄소가 점점 더 많아집니다. 그런데 이산화탄소는 온실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물질이라서 이산화탄소가 많아지면 지구가 점점 더 따뜻해집니다. 그러다 보면, 북극과 남극에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얼음이 녹아서 물바다가 될 것이고 물이 따뜻해지면 양이 불어나니 세상이 바뀌게 될 것입니다. 해안가는 바닷물에 잠길 겁니다. 지금 우리가 회의를 하고 있는 뉴욕도 다 물에 잠기지 않겠습니까?" (28)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기체는 적외선이라는 빛을 더 잘 흡수하는 색깔을 띠고 있다고 생각해 보면 이와 얼추 비슷하다. 온실기체는 그냥 우주로 뻗어나가며 사라졌을 지구가 뿜는 적외선을 흡수해 그 열기를 품고 지구를 따뜻하게 감싸준다. (39)
이산화탄소가 공기 중을 날아다니면서 붙어 있는 모양이 흔들린다면, 중심에 있던 탄소가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그러면 좌우대칭이 깨지고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린다. 이것이 온실기체의 중요한 특징이다. 이렇게 움직이면서 치우치는 모양을 가진 물질이라면 지구에서 온실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아산화질소 nitrous oxide라든가 흔히 메탄가스라고 불리는 메테인 methane도 확대해서 원자들이 붙어 있는 모양을 보면, 흔들릴 때 좌우대칭이 깨지고 무게중심이 쏠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원자들 속에 들어 있는 전자를 띤 부분은 빛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사실 빛이란 전기의 힘이 전달되는 한 가지 특이한 현상이다. 적외선 정도의 색깔을 띤 빛은 붙어 있는 원자들의 무게중심이 쏠리는 현상과 영향을 잘 주고받는다. (40~41)
대개 우리는 이산화탄소나 메탄이 지구의 온도를 높이는 물질이라서 줄여야 한다는 정도만 알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 발 더 들어가서 왜 이런 물질이 온실효과를 일으키는지 설명한다. 원자구조상 적외선만으로도 무게중심이 쏠리며 열기를 흡수하여 품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아주 흥미로운 설명이었다.
20세기 초에 위대한 화학자 프리츠 하버 Fritz Haber가 공기 중의 질소 기체에서 질소 비료를 만들어내는 화학 기술을 개발하면서 인류는 멸망을 피할 수 있었고, 세상은 식량이 풍족한 시대로 서서히 진입하게 되었다. (53)
요즘 사용되는 플루오린 계열 물질들은 프레온가스처럼 오존층을 파괴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온실효과는 일으킨다. 공기 중으로 배출되는 양은 이산화탄소에 비하면 아주 적다. 하지만 온실효과를 일으키는 정도는 훨씬 심각한 물질인 경우가 많다. (54)
푸트는 유리관들 속에 성분이 조금씩 다른 공기를 담아 밀봉해두었다. 어떤 유리관에는 수증기나 이산화탄소를 좀 더 많이 집어넣었고, 어떤 유리관에는 그런 물질들을 뺀 공기만을 넣었다. 그러고는 그 유리관들에 빛을 비추어 열을 가하고 유리관 속의 공기 온도가 어떻게 변하는지 살펴보고 세밀하게 기록했다. 실험 결과, 푸트가 얻은 결론은 명쾌했다. 이산화탄소와 수증기가 있다면 온도가 더 많이 올라갈 확률이 높아진다. (106)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는 계속해서 점점 더 많아지고 있고 기후변화를 일으킬 만하다. 유니스 푸트 Eunice Newton Foote 가 짐작하고, 스반테 아레니우스가 예상하고, 가이 캘린더가 조사했던 그 결과, 그대로다. (135)
19세기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이었던 유니스 뉴턴 푸트 Eunice Newton Foot가 여러 실험을 통해 이산화탄소와 수증기를 넣은 경우에 온도가 상승하는 결과를 얻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사람의 호기심은 그래서 중요하다. 인류 문명의 발달은 누군가의 호기심과 이를 확인하기 위한 성과의 결과물이다. 이 책에서 처음 만난 푸트가 발견한 사실이 이산화탄소의 급증으로 인한 기후변화의 중심에 놓여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연구 성과의 발전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신기한 소식을 전하는 신문기사로만 과학기술 이야기를 접하다 보면, 천재 과학자가 어느 날 떠올린 위대한 발상이 하루아침에 세상을 뒤집는 사연만 많이 보게 된다. 하지만 대체로 과학기술은 많은 학자의 작은 연구들이 계속해서 쌓이면서 발전한다. (109)
다양한 분야의 기술이 자유롭게 발전하고, 새로운 기술이 다양하게 활용되고 시도될 수 있는 상황이 주어질 때, 의외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생각이 등장할 가능성이 더 높아질 것이다. (265)
과학기술 발전의 현실을 잘 정리했다. 에디슨, 아인슈타인이나 오펜하이머와 같이 유명한 과학자들이 인류의 진보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많은 학자들이 유사한 연구를 했고, 때로는 협력해서 노력하는 가운데 발전이 이뤄졌다.
이런 상상을 가리켜 생명의 씨앗, 즉 종자가 범우주적으로 어디에나 있고 그것이 지구에 들어와서 생물이 생겼다는 설이라고 해서 범종설이라고 부른다. (113)
고생 끝에 발표된 캘린더의 계산 결과는 지금 우리가 아는 사실과 일치한다. 이산화탄소 농도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에 따라 온실효과가 심해져 평균기온이 높아지는 방향으로 기후가 바뀌고 있다. (127~128)
결국 2001년이 되어, 일곱 번째 회의인 COP7이 열렸을 때 완전히 판이 뒤집히고 말았다.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나라이자, 2001년 당시 가장 많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해서 기후 변화문제에서도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던 미국이 교토의정서를 공식적으로 승인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164)
지구를 기후변화로부터 지키기 위해 모든 국가들의 참여가 필요하다. 하지만 기후변화의 주점으로 지목되는 이산화탄소의 배출에 있어서는 미국, 중국과 같은 일부 국가들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국가마다 첨예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어 매년 개최되는 COP 회의에서도 교토의정서 이후 발전적인 결론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2001년 교토의정서에 대해 승인 거부한 것은 인류의 공동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한국에서는 경상북도 포항 근처에 무려 4킬로미터에서 5킬로미터에 달하는 깊이의 구덩이를 파서 높은 열기를 얻는 데 성공한 실험 장소가 있다. (...) 그만큼 포항의 심부지열 발전소 실험 장치는 잘 작동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 실험은 실패로 끝이 났다. 2017년 11월에 일어난 포항 지진에서 피해가 컸던 것이 바로 이 공사에서 위험한 곳에 너무 깊이 구멍을 뚫었기 때문이라는 정부조사연구단의 연구 결과가 나온 것이다. (224~225)
포항역에서 조금만 가면 한동대를 담고 있는 산의 반대쪽에 지열 발전을 했던 지점을 볼 수 있다. 우리는 2017년 포항과 경주 지역의 지진을 경험하며 지열 발전을 위한 인간의 노력이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부생 수소와 개질 수소는 수소 기체를 얻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그레이 수소, 그러니까 회색 수소라는 별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재생에너지로 물에서 뽑아낸 수전해 수소를 그린 수소, 즉 녹색 수소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것과 비교해서 그런 이름을 붙인 것이다. (302)
수소에 대해서는 만들어지는 방법에 따라 그레이 수소, 그린 수소 외에도 탄소포집을 포함한 블루 수소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려지고 있다.
현재 널리 사용되는 아민 계통의 물질은 온도를 높이면 이산화탄소와 다시 분리된다. 따라서 아민을 사용하는 이산화탄소 흡수 장치에는 온도를 높여주고 낮춰주는 기계가 달려 있다. (340)
기후변화 적응 기술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개발도상국과 사회의 약자가 기후변화의 피해를 더 많이 받을 것이라는 사실은 점점 더 선명하게 보인다. (400)
기후변화는 점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인류가 이산화탄소 농도를 제어하지 않고 현재 추세대로 진행된다면 평균기온의 상승과 해수면의 상승, 그리고 태풍과 홍수와 같은 자연재해의 빈도 증가가 예상된다. 이런 피해는 우선적으로 빈곤국가와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해진다. 그래서 선진국을 중심으로 사회적 약자와 개발도상국에 대한 배려와 필요하다.
한국에서도 1889년과 1890년에 바로 이런 일이 문제가 된 적이 있다. 흔히 "방곡령 사건"이라고 부르는 사건인데, 일본 사람들이 높은 가격에 쌀을 사 가려고 하는 바람에 함경도 지역에서 그만큼 값을 지불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먹을 쌀이 부족해진 사건이다. 때문에 함경도에서는 "방곡령"이라는 명령을 내려 쌀 수출을 막는 조치를 시행했다. (401)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과 홍수는 식량 부족을 초래했고, 백성들은 굶주려야 했다. 부족한 쌀로 인해 함경도에서 있었던 방곡령 사건은 2022년 인도에서 자국의 밀과 쌀에 대한 수출금지를 선언했던 것을 떠오르게 한다. 기후변화 외에도 전쟁과 같은 인간이 초래한 사건은 직접적으로 글로벌 식량 무역의 흐름을 바꿔 빈곤국가에 더욱 큰 충격을 가한다.
플라스틱은 가죽과 상아를 내어놓아야 하는 동물들 대신에 쓸 수 있는 물건이거니와, 나일론과 폴리에스테르 같은 옷감도 일종의 플라스틱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플라스틱의 값이 싼 덕분에 수많은 가난한 나라 사람이 헐벗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플라스틱 제품을 아껴서 오래 쓰고, 잘 분리수거한다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에는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417)
<애틀랜틱>의 2014년 10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비닐봉지를 사용해서 장을 보면 1년간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는 7.52킬로그램가량이지만, 종이봉투를 사용하면 훨씬 많은 44.74킬로그램가량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고 한다. 비닐봉지보다 종이봉투가 자연적인 것 같아도 이산화탄소를 뿜어내는 양은 오히려 여섯 배 가까이 많다는 이야기다. (418)
플라스틱이 환경오염의 주범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플라스틱에 대한 사용을 줄이고 종이로 만든 빨대나 봉지를 권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보면 조금 다른 측면을 볼 수 있다. 플라스틱의 개발로 인해 동물을 보호할 수 있었고, 저렴한 의복을 만들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옷을 제공하게 되었다. 비닐봉지가 종이봉지보다 훨씬 적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고 한다. 플라스틱을 여러 번 사용하고 재활용하면 환경에 더 유익할 것으로 보인다. 플라스틱을 다시 보게 된다.
서로 다른 기준으로 계산한 탄소 발자국을 고려 없이 그냥 비교해서는 안 된다. 심지어 같은 기준에 따라 계산한 탄소 발자국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방식으로 계산했는지, 누가 계산했는지, 믿을 만한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429)
탄소발자국이라는 용어가 자주 들린다. 저자는 탄소발자국이 국가나 단체의 이해관계에 따라 계산 방법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국가나 단체에 유리하게 조작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탄소발자국 결과만 볼 것이 아니라 믿을 만한 자료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한다.
독서습관 824_곽재식_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_곽재식_2022_어크로스(240107)
■ 저자: 곽재식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이자 SF소설가. KAIST에서 공학사와 이학석사 학위를 연세대학교에서 기술정책 전공으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오랫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꾸준히 집필 활동을 이어와, <토끼의 아리아>를 필두로 <지상 최대의 내기>, <신라 공주 해적선>, <가장 무서운 이야기 사건>, <ㅁㅇㅇㅅ> 등 다수의 소설을 발표했다. 또한 <한국 괴물 백과>, <곽재식의 세균 박람화>, <곽재식의 미래를 파는 상점>, <휴가 갈 땐, 주기율표> 등 SF적 상상력과 방대한 과학 지식이 결합된 논픽션들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과학으로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일명 '괴담파괴자'로 불리며 방송에서도 활약 중이다. 최근까지 화학회사 환경 담당 부서에서 재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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