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완벽한 평등을 필요로 하지는 않지만 시민에게 공동체적 생활을 공유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려면 배경 사회적 위치 태도 신념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매일 생활하며 서로 마주하고 부딪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서로의 차이를 견뎌내고 이를 놓고 협상하고 공공선에 관심을 쏟는 법을 배울 수 있다. (275)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교수의 책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은 돈이 우리 사회 곳곳에 얼마나 깊숙이 영향을 미치고 있고 다양한 사례를 통해 우리의 도덕적 가치 판단의 경계선에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우리 사회 구성원 간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돈의 가치가 부풀려진다. 심지어 가난한 사람에 대한 인권과 권리는 돈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단계까지 악화되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사례들을 보면 평범한 시민들이 살아가는 일상에서 시장의 가치가 침투하며 인간의 내재적 가치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학교, 스포츠, 지하철, 보험 및 소설 속에까지 광고라는 이름으로 시장가치는 들어와 있다.
출간된 지 이미 10년이 넘은 책이지만 페이지마다 제기되는 사례들은 현재의 우리에게도 전하는 메시지가 많다. 수도권으로 집중화가 지속되고 지방은 소멸되어 가는 시대다. 도시화는 공동체적 생활과는 달리 가족 단위의 각자도생의 삶을 요구한다. 더욱더 사람과 소통하고 마주하며 부딪힐 일이 없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달려가고 공공선을 위한 기회는 거의 없다.
아래는 책에서 남기고 싶은 문장을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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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거나 나이 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명보험 증권을 사서, 피보험자가 살아 있는 동안 보험료를 불입하고 그들이 사망하면 사망보험금을 수령하라. 보험 종류에 따라 수백만 달러에 이를 수도 있다. (22)
지난 30여 년 동안 발생한 가장 치명적인 변화는 탐욕의 증가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시장과 시장가치가 원래는 속하지 않았던 삶의 영역으로 팽창한 것이다. (24)
정곡을 찌르는 말이다. 과거에는 비시장 규범이 지배하던 영역에 시장의 속성이 들어오며 인간의 가치가 절하되고 있다. 자신의 노력 여부에 관계없이 부를 가진 자들이 경제적 약자들 위에 군림하는 모습이다. 돈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처럼 개인을 부추기는 기사와 콘텐츠가 난무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올바른 삶의 방향성을 찾고 자신만의 가치를 끝까지 추구하는 것이 필요한 세상이다.
현대 정치는 도덕적 논쟁이 지나치게 많아서가 아니라 지나치게 적어서 문제다. 오늘날 정치판은 도덕적 정신적 내용이 거의 비어 있기 때문에 과열되어 있다. 또한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중대한 질문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32)
2023년 11월 현재 우리의 정치를 본다. 도덕적 논쟁보다 정당의 유불리를 위한 판단이 앞에 있다.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보다 정치인의 가족을 챙기기에 바쁘다. 국가의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국가 자원을 활용하기보다 정치인과 지역구의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정책에 치중한다. 정치란 무엇이고 자신은 왜 정치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으면 좋겠다. 이런 성찰을 통해 여야를 떠나 국가와 국민에게 진정으로 봉사하는 정치를 바란다. 도덕적으로 속물적인 말과 행동을 보이는 뻔뻔한 정치인이 많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어떤 재화나 사회 관행을 부패시키는 행위는 그 평판을 깎아내리는 행위고, 가치를 합당한 수준보다 낮게 평가하는 행위다. 이러한 의미에서 의회 공청회 방청권에 가격을 매기는 것은 일종의 부패다. (59)
이는 뇌물이 사람을 교묘하게 조종하기 때문이다. 뇌물은 수령인을 설득하는 절차를 생략하고 내재적 이유를 외재적 이유로 대체한다. (91)
어린이집 이야기는 비시장 규범이 지배했던 삶의 영역으로 시장이 팽창함에 따라, 일반적인 가격 효과가 유지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130)
핵 폐기장 유치, 자선기부금 모집, 어린이집에 아이를 늦게 데리러 가는 행위 등 세 가지 경우는 비시장 규범의 영향을 받는 환경에 돈이 도입되면 사람들의 태도를 변화시켜 도덕적 시민적 헌신을 밀어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시장관계가 발휘하는 잠식 효과는 때로 너무 강력해서 가격 효과 자체를 무효로 만들기도 한다. (166~167)
이타주의, 관용, 결속, 시민정신은 사용할수록 고갈되는 상품이 아니다. 오히려 운동하면 발달하고 더욱 강해지는 근육에 가깝다. 시장 지향 사회의 결함 중 하나는 이러한 미덕이 쇠약해지게 방치하는 것이다. 우리의 공공 삶을 회복하려면 좀 더 부지런히 미덕을 행사해야 한다. (180)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리더들의 솔선수범이 필요하다. 사람이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 어려운 환경을 이해하고 도우려는 마음, 열심히 살아가려 노력하는 청년들에게 응원하는 마음, 한마음으로 어려움을 돌파하려는 단합된 마음, 이런 따뜻한 시민정신을 리더들이 자발적으로, 지속적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런 훈훈한 사회에 살고 싶다.
청소부 보험은 직원이 살아 있는 것보다 죽었을 때 더욱 가치가 있는 조건을 만들어내면서 직원을 사물화한다. 즉 회사는 직원의 가치를 직원의 업무에서 찾지 않고 직원을 상품선물로 다루게 된다. (189)
말기환금과 좀 더 비슷한 예로 '데스풀(Death Pools, 유명인사의 사망 시기를 추측하는 게임-옮긴이)'이 있다. 데스풀은 말기환금 산업이 출범했던 때와 시기적으로 같은 1990년대에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던 섬뜩한 도박 게임이다. (196)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한 '더티 해리(Dirty Harry)' 시리즈의 마지막 영화인 <더 데드풀(The Dead Pool)>(1988년)에서는 명단에 오른 유명인사가 살해되는 불가사의한 사건을 이끈 데스풀을 그리고 있다. (198)
프로 스포츠가 시민 정체성의 원천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동시에 이익창출의 근원, 즉 사업이기도 하다. 최근 수십 년 동안 스포츠계에서는 돈이 공동체 의식을 밀어내고 있다. 명명권과 기업 후원 때문에 홈팀을 응원하는 경험이 변질되고 있다고 말한다면 과장일 것이다. 하지만 시민 명소의 이름을 바꾸는 행위는 곧 그 장소의 의미도 바꾼다. (237)
2001년 영국 소설가 페이 웰던(Fay Weldon)은 이탈리아 보석회사 불가리(Bulgari)의 의뢰를 받아 책을 썼다. 웰던은 외부에 금액을 밝히지 않은 거금을 받고 그 대가로 자신이 쓰는 소설에서 불가리 보석을 최소한 12번 언급하기로 했다. (248)
소설 속에도 의도적으로 광고를 넣는 행위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소설은 물론 소설가의 창작물이다. 소설가의 의도에 따라 환경은 다양하게 설정될 수 있다. 광고라는 이름으로 사전에 소설가에게 특정 브랜드를 노출하는 조건으로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소설가의 창작에까지 돈의 힘이 발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디어가 참신하면서도 씁쓸하다.
지역 교통운수당국은 지하철역에 적극적으로 광고를 판매하여 지하철 차량 전체를 광고로 감싸고, 지하철역 기둥 회전식 출입구 바닥을 광고로 도배했다. (261)
학교에 범람하는 상업화는 두 가지 면에서 부패했다. 첫째, 기업의 후원을 받아 제작된 교과자료의 대부분은 편견과 왜곡, 피상적 내용으로 가득하다. (...) 둘째, 설사 기업 후원자가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질의 객관적 교육도구를 제공한다 해도, 상업적 광고는 학교의 목적에 어긋나기 때문에 여전히 학교에 유해할 것이다. (272)
하지만 학교보다 더 큰 잘못은 우리 시민에게 있다.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데 필요한 공공자금을 늘리지 않고 버거킹과 마운틴듀에 아이들의 시간을 팔고 아이들의 마음을 빌려주겠다는 결정을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273)
독서습관 805_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_마이클 샌델_2012_미래엔(231121)
■ 저자: 마이클 샌델
2010년 이후, 한국에 '정의'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27세에 최연소 하버드대학교 교수가 되었고 29세에 자유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1982년)를 발표하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1980년부터 30년간 하버드대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그의 수업은 현재까지 20여 년 동안 학생들 사이에서 최고의 명강의로 손꼽힌다. 존 롤스 이후 정의 분야의 세계적 학자로 인정받는 그는 명실공히 이 시대의 최고 석학이자 철학계의 록스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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