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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803]온 삶을 먹다①_대지의 청지기 웬델 베리의 먹거리 농사 땅에 대한 성찰

by bandiburi 2023. 11. 15.

웬델 베리의 <온 삶을 먹다>는 산업화 이후 도시로 인구가 집중되며 낙후된 산업으로 기억에서 점점 희미해지는 농촌, 농업, 공동체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는 80년대까지만 해도 마을 공동체 속에서 서로를 도와가며 자급자족에 가까운 생활을 살았다. 채소를 직접 기르고, 소와 돼지도 몇 마리씩 키웠다. 웬만한 도구는 직접 만들었다. 집에서 발생한 음식물 쓰레기는 짐승의 먹이가 되었고 화장실의 분뇨는 식물의 양분이 되었다. 버릴 것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생활 수준의 향상, 기술의 발전, 농업의 선진화 등의 이름으로 기존의 농업 방식을 버리고 빚을 얻어 기계를 사고, 농자재를 구입하고, 땅을 얻어 소품종 대량생산으로 산업형 농업을 장려한다. 농업을 하면서도 자신의 먹거리를 먼 곳에서 생산하거나, 공장에서 내가 모르는 방식으로 만들어진 가공식품을 사먹고 있다. 

웬델 베리는 교수직을 버리고 직접 농사를 지으며 자신의 생태학적 농업의 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다양한 문학작품으로 성찰의 결과물을 독자들과 공유하고 있다. 건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때 주변에서 당연하게 보이는 것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게 하는 좋은 책이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사용하는 수단은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 확실히 영향을 끼친다. (...) 노새를 몰며 자라다가 트랙터를 몰게 된 소년은 갑자기 농장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될 수밖에 없다. (26)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활용하는 눈과 기계를 이용해서 자연을 극복하는 눈은 차이가 있다. 너무나 많은 부분을 기계에 의존하고 있고 그것이 자연의 순리에 역행하는 것이라도 복원의 길로 가지 못하는 상태다. 편리에 익숙해졌다. 

살림은

우리와 우리가 사는 장소와 세계를 보존 관계로 이어 줌으로써 생명을 지속시키는 모든 활동이다. 우리를 지속시켜 주는 생명의 그물망에 있는 모든 가닥이 서로 계속 이어져 있도록 해 주는 일이다. (28)

반면에 산업농업의 방식은

농가가 자신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것이 '비경제적'인 일이라 주장했다. 거기에 드는 노력과 땅을 영리 위주의 생산에 쓰는 게 낫다는 주장이다. 그 결과, 인간사에서 전혀 새롭고 이상한 현상이 나타났다. 농가 사람들이 자기 먹거리를 전부 사먹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29)

생산성을 강조하며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산업농업의 결과는 농민들의 빚이다. 자연이 제공하는 햇빛과 식물과 동물을 제외하고 화학비료, 농약, 농기계에 비용을 기꺼이 지불한다. 누구를 위한 산업농업인가? 누가 이익을 취하는가? 

자기가 다른 것들의 기분을 좋게 해 준다는 걸 알게 되면, 자기 기분도 좋아진다. (33)

돈을 추구하며, 돈이 만능이 된 세상을 살고 있다. 돈의 가치가 사람의 가치보다 앞에 있다. 사람의 목숨보다 돈을 소중히 여긴다. 사람의 목숨보다 집에서 기르는 반려동물이 더 관심을 받는다. 사람이 재산이고 사람이 소중하다. 사람을 제대로 볼 때 자연이 보인다. 주변의 모든 것들 기분 좋게 해주다 보면 스스로의 기분도 좋아지는 법이다. 이런 삶을 살고 싶다. 

사람이 사람을 비방하고, 타인의 존재를 부정하는 뉴스가 난무하는 시대에 귀를 닫고 눈을 감고 싶은 심정이다. 이럴 때일수록 주변의 존재를 기분 좋게 해 보자. 우리 자신의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해.

산업농업은 농부를 과학자와 경제학자의 진단에 따라 움직이는 '노동자'로 보는 경향이 있다. 낡아 빠졌지만 아직 버릴 수는 없는 기계 같은 존재 말이다. 우리는 건실한 농부가 최고 단계의 장인이라는 사실을, 일종의 예술가라는 사실을 간과해 왔다. 먹거리를 장기간에 걸쳐 넉넉하게 확보하는 것은 건실한 작업의 결과이지 다른 게 아니다. (62)

농부는 장인이다. 다년간 축적된 자신만의 기술이 있다. 먹거리를 재배하는 기술, 자급자족형으로 살아가는 능력 등 우리가 평소에 보지 못하는 농부의 철학이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실질적으로 생산의 질을 보장하는 유일한 방법은 생산자가 자신이 생산한 것을 기본적인 생존 수단으로 이용하며 사는 원칙에 있음을 점점 더 확신하게 된다.

이는 산업농업 때문에 너무 경시되어 사실상 사라지다시피 한 원칙이다. (63)

에릭 길은 사업화로 인한 노동의 이러한 분절화 현상에서 짓기making와 하기 doing의 차이에 주목하여, 일이 짓기에서 하기로 변하면서 초래된 '정신의 퇴보'를 설명한다. 이렇게 정신이 퇴보하면 그 여파가 없을 수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생산물의 퇴보다.

일하는 사람이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에 책임을 못 느끼게 됨으로써 그 정신이 퇴보하면 판단력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 사람들은 업무 종료시간을 위해, 주말을 위해, 휴가를 위해, 은퇴를 위해 일한다. 더구나 그러한 바람은 조립라인에서 만큼이나 중역실에서도 간절한, 계급을 초월한 현상 같다. (69)

신시나투스 Cincinnatus

로마 공화정 시대의 귀족 정치인으로 집정관 및 독재관을 지냈다. 작은 농장을 일구며 살다가 침략으로 위태로운 로마를 구하기 위해 독재관이 되었으나 외적을 물리친 뒤 스스로 권좌에서 물러남으로써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었다.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 신시내티는 신시나투스를 기리는 단체의 이름을 땄다. (77)

이러한 의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번째 과제는 농촌에서 이웃과 공동체를 되살리는 일이다.

우리는 농촌에서 이웃과 공동체가 붕괴되거나 상실되는 것을 보고서 그 가치를 확실히 알게 되었다. 우리는 그들 없이 살아 보려다가 그들이 우리에게 영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인지를 알게 되었다. (82)

아미시 삶의 방식 (출처: 뤼튼으로 그림)

내가 권하고 싶은 것은 아미시의 다음과 같은 원칙들이다. (85)

  • 가족과 공동체를 지킨다. 
  • 이웃과 함께 농사짓는 방식을 고수한다. 
  • 요리, 농사, 가사, 주택에 관한 기술을 대대로 이어 간다. 
  • 기술의 이용을 제한하여, 이용 가능한 인력이나 태양광, 풍력, 수력 같은 무료 에너지원을 배제하지 않는다. 
  • 농장을 작은 규모로 제한하여, 이웃과 의좋게 농사를 짓고 저출력 기술을 최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 앞서 말한 방식들로, 비용이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한다. 
  • 자녀가 가족을 떠나지 않고 공동체를 지키며 살도록 교육한다. 
  • 농사짓기를 실용적인 기술이자 영적인 수양으로 존중한다. 

로컬푸드 경제에서는,

집에서 조리할 싱싱한 농산물을 다루며, 그럼으로써 수송업자와 제조업자와 포장업자와 조리업자 등이 없어도 되기에 에너지 예산이 훨씬 더 적을 태고 먹거리 값도 싸지고 농장의 수입도 높아질 것이다. (100)

푸드 마일리지라는 용어가 있다. 스스로 재배해서 먹는 것이 가장 수송거리가 짧다. 하지만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마트에서 먹는 채소도 푸드 마일리지가 상당한 거리를 보여준다. 길이가 길어질수록 채소를 재배한 농부에게 돌아가야 할 이득과, 소비자가 지불해야 하는 비용 모두가 손실을 입는다. 중간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이윤이 커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가공식품의 경우에는 어떤 재료가 사용되는지도 모른 채 우리는 광고나 포장만을 믿고 기꺼이 사 먹고 있다. 지금의 생활방식은 과거의 방식에 비하면 기형적이라고 할 수 있다. 


2부에서 계속

https://bandiburi-life.tistory.com/2130

 

[803]온 삶을 먹다②_산업농업 속에서 수지맞는 삶을 추구한다

1부에 이어서 책의 후반부에서 발췌한 내용에 대한 생각을 포스팅한다. 이 책은 3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1부가 건실한 농업이 어떤 것인지를 말해 주는 에세이들로서 이론에 가깝다면, 2부는 건

bandiburi-life.tistory.com


독서습관 803_온 삶을 먹다_웬델 베리_2011_낮은산(231115)




■ 저자: 웬델 베리 Wendell Berry, 1934~

미국의 시인, 소설가, 에세이스트, 문명 비평가이자 농부.

켄터키에서 5대 이상 농사를 지은 집안 출신의 부모에게서 태어나, 몇 년의 타향 생활을 제외하고 생의 대부분을 고향에서 살며 농사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켄터키대학교와 스탠퍼드대학교에서 문학 공부를 한 그는, 스탠퍼드대학교와 뉴욕대학교를 거쳐 켄터키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고향에서 교수로 지내던 1965년(31세), 15만 평의 농장을 마련하여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래로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같은 장소에서 생활하며 40여 권의 시, 소설, 에세이를 발표했다.

많은 작가들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작가이기도 한 그는, 삶의 토대를 훼손하는 파괴적인 산업문명의 폐해를 고발하며 농본적인 이상을 제시하는 탁월한 저술로 전 세계의 지성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소설들은 '포트윌리엄'이라는 상상의 농촌이 겪는 변천사를 다양한 각도에서 그려 낸 하나의 유기적 연대기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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