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에 이어 <칩워>에서 인용한 내용과 느낌을 포스팅한다.
리궈딩 같은 관료는 모리스 창에게 한 섬나라의 반도체 분야 전부를 사실상 지배할 수 있는 자리를 제안하면서, 그가 무슨 일을 하든 간섭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 창은 근본적으로 다른 구상을 갖고 있었기에 그 비즈니스 플랜을 성사시키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뜻대로 된다면 전자 산업 전체를 뒤집어 버리고, 모리스 창과 대만이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기술을 통제할 수 있게 될 것이었다. (293)
대만이 미국에 있던 모리스 창을 데려와 반도체 산업을 주력 산업으로 세우려는 초창기 노력을 보여준다. 그 결과 대만은 TSMC라는 대표 기업이 있고 관련 여러 업체들을 포함한 반도체 제조 중심의 국가가 되었다.
ASML이 필립스를 모태로 출발했다는 역사마저 놀라운 방식으로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대만의 TSMC와 돈독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발판이 되었던 것이다. 필립스는 TSMC의 창업 단계에서 투자를 했던 회사로, 신생 파운드리 기업에 반도체 제조 노하우와 지식재산권을 제공하며 협력했다. 결국 ASML은 판매 시장을 안고 출발한 셈이 되었다. TSMC의 팹이 필립스의 반도체 제조 공정을 따라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322)
글로벌 반도체 네트워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ASML과 TSMC의 관계를 보여준다. TSMC는 칩을 설계하지 않기 때문에 설계 업체들이 경쟁사로 인식하지 않고 의뢰할 수 있다. 이 점은 설계와 파운드리를 모두 하는 삼성에게는 불리한 점이다.
여러 해 동안 반도체 제조 기술의 각 세대명은 트랜지스터의 게이트 gate 폭에 따라 붙여졌다. 게이트는 실리콘 칩의 해당 부위가 전도체가 될지 부도체가 될지 결정하는 곳으로, 게이트의 여닫는 힘에 따라 회로 내 전자의 흐름이 달라진다. (370)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 출신의 레이저 과학자 두 명이 만든 회사 사이머Cymer는 1980년대 이래 리소그래피용 광원 제조 분야의 핵심 업체로 자리 잡았다. 사이머의 엔지니어들이 찾아낸 가장 효율적인 극자외선 생성 방식은 다음과 같다. 진공에서 시속 321.8킬로미터로 날아다니는 직경 0.003밀리미터의 주석 방울을 레이저로 두 번 맞춘다. 첫 번째 펄스는 주석 방울을 달구고, 두 번째 펄스는 주석 방울을 폭발시켜 태양 표면보다 몇 배 더 뜨거운 섭씨 50만도 정도의 플라스마 상태로 만든다. 이렇게 주석 방울을 폭발시키는 과정을 초당 5만 번 반복하면 반도체를 제작하기에 충분한 양의 극자외선이 생성되는 것이다. (385)
극자외선을 만들어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기술인지 실감 나는 부분이다. ASML이 만드는 EUV 장비는 위에서 설명한 사이머의 극자외선 생성장치 외에도 레이저를 만드는 업체, 반사경을 만드는 업체 등의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 대에 1억 불이고 이후로 나올 업그레이드된 EUV는 대당 3억 불이라고 한다. 칩 제조사들의 규모의 경제와 최고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의 하나다.
ASML의 극자외선 장비는 비록 대부분 네덜란드에서 조립되고 있다 한들 실제로는 네덜란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핵심 부품은 캘리포니아의 사이머와 독일의 자이스, 트럼프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독일 기업 역시 결정적인 요소는 미국이 만든 장비에 의존하고 있다. (391~392)
이 부분을 읽고 ASML이 미국의 중국 반도체 제재에 동참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용되는 기술을 분해해서 근원 기술을 파헤쳐보면 결국은 미국의 기술과 장비가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는 것이다. 미국이 주변국이나 기업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원인이다.
첨단 로직 칩, 메모리 칩, 아날로그 칩의 경우 중국은 미국의 소프트웨어와 설계, 미국, 네덜란드, 일본의 기계 장치, 한국과 대만의 제조에 결정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시진핑이 근심에 빠진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421)
<칩워>를 읽기 전까지는 중국이 우수한 인재풀을 이용해 미국의 반도체 견제가 있더라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체적으로 반도체 생산기술을 찾아내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중국이 아무리 노력해도 개별 기술을 모두 직접 찾아내기는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ZTE 대소동을 통해 분명해진 사실이 하나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테크 기업들 모두가 미국 반도체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 그 자체가 엄청난 파괴력을 지니는 무기로 사용될 수 있었다. (499)
미국은 이 무기를 휘두르고 있다. 중국은 이 점이 아주 아프게 다가올 것이다.
미국 정부는 미국에 새로운 설비를 열도록 TSMC와 삼성을 설득했다. TSMC는 애리조나에 새로운 팹을 계획하고 있으며 삼성은 텍사스 오스틴 근교의 설비를 확충하려 한다. (...) 미국이 이런 것을 자국 내에서 생산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회사 모두 생산 역량의 대부분, 최첨단 기술은 자국 내에 두고자 한다. 심지어 미국 정부가 제시하는 보조금의 당근으로도 이런 결정을 바꿀 수는 없다. (541)
미국의 설득으로 TSMC와 삼성이 미국에 제조설비에 투자하기로 했다. 하지만 최첨단 기술에 대한 부분은 자국내에 두려고 한다. 당연한 일이다. 기업의 생존과 한국과 대만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트랜지스터의 크기를 줄이면 양자 터널링이 발생하고 성능 저하가 생기는 것을 최소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562)
반도체는 미국이 개발한 기술을 전 세계가 함께 발전시켜서 만들어 낸 공급망의 산물이다. 동시에 미국 중심의 평화로운 세계 무역 체제가 낳은 거대한 글로벌 시장이 수요를 견인했고 기술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점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미국의 기술로 미국에 제품을 팔면서 일본은 '우리가 미국을 이길 수 있다'는 착각에 빠졌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우리가 앞으로도 세심히 들여다보며 공부해야 할 타산지석이다. (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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