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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797]학교 없는 사회①_산업소비사회를 위한 봉사에서 능동적 자율적 교육으로

by bandiburi 2023. 10. 27.

이반 일리치의 <학교 없는 사회>는 우리에게 학교의 존재이유에 대해 질문을 던지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요구하는 졸업장, 성적표, 자격증을 얻기 위해 유치원부터 대학교, 대학원까지 학교를 다닌다. 동일한 장소에서 같은 교과과정을 거치는 동안 학생 개개인의 욕구는 제거된다. 그게 학교라고 생각했지만 무엇을 위한 학교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없었다. 

책에 대한 소감을 세 번에 나눠서 포스팅한다. 

'피억압자들의 교육학'이라는 부제가 달린 <페다고지>에서 프레이리는 전통적 교육의 수동적 성격이 억압을 더욱 촉진시키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하면서, '은행적금식'의 주입식 교육보다는 '문제제기식'의 교육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머리말 중)

프레이리와 이반 일리치는 지향점이 달랐다. 하지만 당시의 교육제도의 문제점을 제기한 점은 동일하다. 수동적인 주입식 교육은 여전하다. 능동적으로 문제를 제시하고 토론하는 교육이 절실하다. <페다고지>도 읽어봐야 할 책이다. 

 

 

중산층 아동이 자주 이용할 수 있는 교육적 기회 대부분을 빈민 아동은 갖지 못한다. 이러한 이익은 가정에서의 대화와 책으로부터 방학 중 여행, 자아를 인식하는 방법의 차이에까지 확대되며, 이는 그런 것을 누리는 아동에게 학교 안팎에서 유리하게 적용된다. (33)

부모의 경제력과 교육에 대한 관심의 차이는 자녀들에게 반영된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동들에게 기대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래서 세대 간 교육의 불평등이 이어지지 않도록 국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교육의 비학교화를 서서히 진행하는 계획을 추진하는 경우, (...) 궁극적으로 누구든 그 생애의 어느 때나 수백 개의 기능 중 하나를 선택해서 공공비용으로 배우는 데 아무런 장애도 없게 될 것이다. (45)

학교화된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대안은, 공식적인 기능의 취득과 그 교육적 이용을 위한 새로운 공식적 메커니즘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비학교화된 사회란 우연적이고 비공식적인 교육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뜻한다. (59)

배움은 학교 밖에서 다양한 기능을 얻기 위해 이뤄진다. 이것이 비학교화다. 특히 여기에 공공이 참여할 때 그 사회의 교육 수준은 한 단계 점프할 수 있다. 

 

 

이러한 숨은 교육과정은 정말 필연적으로 부자에게나 빈민에게나 마찬가지로 경제성장 지향의 소비사회로 들어가게 하는 의식으로 봉사하게 된다. (78)

우리는 무엇보다도 학교가 무엇을 가르친다고 해도 강제적인 학교교육이 필연적으로 소비자사회를 재생산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소비자사회를 극복할 수 없다. (87)

학교에서 배우는 과정이 산업화 시대에 적합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학생은 졸업장과 성적을 통해 기업에 필요한 능력을 갖췄다는 것을 보여준다. 기업은 생산하고 피고용자는 소비하는 사회가 된다. 그리고 이 순환은 반복된다.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학교는 여전히 그곳에서 기업의 요구에 대응하고 있는 모양새다. 

2부에서 계속된다.

https://bandiburi-life.tistory.com/2106

 

[797]학교 없는 사회②_공부는 의미 있는 상황에 참여한 결과

사실 공부는 타인에 의해 조작될 필요가 거의 없는 인간 활동이다. 모든 공부는 수업의 결과가 아니다. 도리어 그것은 타인의 개입 없이 의미 있는 상황에 참여한 결과다. (...) 그러나 학교는 개

bandiburi-life.tistory.com


독서습관 797_학교 없는 사회_이반 일리치_2009_생각의 나무(231028)


■ 저자: 이반 일리치

192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했다. 로마의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잘츠부르크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1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아일랜드 - 푸에르토리코 교구에서 보좌신부로 일했으며, 1956년부터 1960년까지 푸에르토리코의 가톨릭대학교 부총장을 지냈다. 그러나 사제 확대정책에 반대한 것, 피임정책을 지지한 것 등 일련의 교회 정책에 반대한 것이 빌미가 되어 교황청과 마찰을 빚다가 1969년 사제직을 떠났다. 사제직을 떠난 후 <학교 없는 사회>를 비롯하여 근대문명에 대한 비판적 글들을 쏟아내기 시작했고, 서독의 카셀 대학과 괴팅겐 대학에서 유럽 중세사를 강의하는 등 저술과 강의활동에 전념했다. 2002년 12월 2일 독일에서 향년 7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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