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블랜더 거실
독서습관

[781]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_에너지소비량과 운송수단의 증가와 불평등의 관계

by bandiburi 2023. 9. 17.

박홍규의 책 <내가 읽다가 늙었습니다>에서 소개된

이반 일리치의 책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를 읽었다. 원제는 <Energy and Equity>로 내용과 더욱 잘 부합한다. 왜 한글본에서 전체적인 맥락에서 지엽적인 '자전거'를 제목에 넣었는지 의문이다. 한국 독자들에게 '에너지'나 '공정'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면 쉽게 손이 가지 않기에 좀 더 가벼운 제목으로 결정한 것이라 생각한다. 

박홍규가 그의 책에서 언급했듯이 교수들의 업적이 번역이 아닌 논문으로 평가되고, 상업성이 우선되기에 우리나라에 번역되는 서적들은 다양성이 부족하다. 저명한 사상가인 이반 일리치의 이 책도 박홍규 자신이 번역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번역해 소개한 책이다. 출판사와 협의해서 결정했다면 번역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책은 원제에 나와 있는 에너지와 공정성에 대해 얘기한다.

자동차, 비행기, 선박과 같은 이송수단의 급속한 성장에 따라 인간의 이동 속도는 빠르게 증가했다. 엔진이 개발되기 전만 해도 기껏해야 말을 타는 정도였다. 하루에 인간이 이동할 수 있는 반경은 한정되어 있었고, 인간의 형평성은 유사했다. 하지만 자동차가 보편화되고 일부는 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인간의 불평등은 커졌다. 에너지 사용량의 차이도 동시에 커졌다. 

자산의 불평등은 에너지 사용의 불평등과 연계되고

이러한 불평등의 고착화는 인간이 인간을 비교하고 평가절하하는 원인이 된다. 비행기를 타는 사람의 시간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의 시간보다 귀중하다는 착각을 만든다. 

우리 사회를 돌아본다. 고급차를 타는 사람, 명품을 소유한 사람, 퍼스트 클래스를 이용하는 사람을 다른 눈으로 보는 것도 일종의 착각이라고 본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운송수단의 사용가치 자체만 바라보자. 교환가치는 상황에 따라 아무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본연의 사용가치는 그대로 의미가 있다. 

박홍규가 역자후기에 신고전파 이론과 복지경제사상을 비교 설명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아픈 사람,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사람은 각자도생의 사회에서 도태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신고전파 이론이 현대 대한민국의 마음 아픈 뉴스의 배경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기본소득을 지원하는 복지경제사상이 내가 바라는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자동차가 많아지면서 도로의 주인이 자동차가 되었다.

보행자는 자동차를 피해서 걸어야 하며 길을 건너려면 우회하거나 육교를 지나야 한다. 아이들이 교통사고의 피해자가 되고 음주운전으로 선량한 시민이 피해를 보면서 점차 법령이 개선되고는 있다. 하지만 여전히 도로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사회적 부담을 충분히 지고 있지 않다는 지적은 옳다고 본다. 환경오염 방지, 보행자 우선 도로 조성, 소음 공해, 도로로 인한 녹지 파괴 등의 피해는 주변의 시민들이 받게 된다. 

책이 출간된지 오래되었지만 이반 일리치의 생각은 여전히 우리에게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자가용보다는 대중교통을, 대중교통보다는 자전거를 자주 이용해야겠다. 하지만 생활반경이 넓어진 세상에서 자전거 이용은 제한된다.  

아래는 책에서 남기고 싶은 부분은 인용했다.

수송수단 (출처: freesvg.org)


내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1인당 소비하는 에너지가 어떤 적정한 수준을 넘어서면, 어떤 사회의 정치체제나 문화적 환경도 필연적으로 타락하게 된다고 하는 점이다. 일단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이 한계를 넘어서면 반드시 관료체제라고 하는 추상적인 목표를 향한 교육이 인간의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주도권을 합법적으로 보장해 주었던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16~17)

에너지위기는 에너지를 더욱 많이 투입한다고 해서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즉 삶의 질이란 인간이 조종할 수 있는 에너지 노예의 수로 결정된다고 하는 환상이 없어져야만 비로소 에너지 위기도 해소될 수 있는 것이다. (23)

자기의 힘으로 스스로 움직여 왔던 인간의 공동체가 어쩔 수 없이 자동차에 의존하게 되면, 수송수단의 개량에 의해 얻을 수 있으리라고 예정하였던 가치, 바로 그 가치를 상실하게 된다. (29)

부유한 나라의 교통이 가난한 나라의 교통과 다른 점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활시간을 체험하는 속도가 빠르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수송산업에 의해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대량의 에너지를 더 많은 시간동안 소비하게끔 강제된다는 것이다. (34)

속도가 한계를 넘어서면, 누군가가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반드시 타인의 시간 손실을 강요하게 된다. 빠른 수송수단의 좌석을 구하는 인간은, 자신의 시간이 보다 느린 수송수단을 이용하는 승객의 시간보다도 귀중하다고 주장한다. (47)

에너지가 어떤 일정한 수준을 넘어 증가하게 되면 그만큼 공정성이 상실된다. (51)

자전거 (출처: stockvault)

자전거는 부족한 공간이나 에너지 또는 시간을 그 정도 대량으로 빼앗지 않고 인간을 상당한 속도로 이동시킨다. 항상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자동차를 타는 사람들보다 1마일 당 소비하는 시간은 더욱 적으나, 그 연간 이동거리는 더욱 길다. (66)

일리히는 에너지소비가 일정한계를 넘게 되면 산업화된 타율적인 수송체계가 사회공간을 지배하게 되고, 인간의 생활시간을 수탈하게 되며, 또 풍부한 사용가치(자율적으로 이용하는 힘)를 인간이 누리기 위한 여러 조건을 제약하게 됨을 지적한다. (82)

80일간의 세계일주 (출처: 정약용도서관)

최고속도 시속 25마일의 운수기관망이 충분히 발달되어 있다면 픽스는 80일의 절반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세계를 일주하여 필리어스 포그를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91~92)

쥴 베르느가 지은 <80일간의 세계일주>에서 필리어스 포그Phileas Fogg는 80일간의 세계일주가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2만 파운드를 걸고 출발한다. 픽스 Fix는 런던 경시청의 형사로서 포그를 영란은행의 절도범이라고 믿고 추적한다 

저설비는 인간을 비능률적인 노동으로 좌절시키고 인간이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원시적인 상태에 몰아넣는다. 과잉산업화는 인간을 자신들이 숭배하는 도구의 노예로 만들고, 직업상의 서열을 더욱 첨예하게 강화하며, 불평등한 권력이 엄청난 소득의 차이를 낳는 결과를 초래한다. (98)

엄청난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로가 계속 건설되고 자동차, 특히 마이카가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러한 문제에 대해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본래는 자동차의 소유주나 운전자가 부담해야 할 사회적 비용을 보행자와 주민에게 전가하고 스스로는 아무런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었고(...) (131)

기본소득 (출처: Flickr)

만일 어떤 사람이 노동에 대한 시장의 평가가 낮아서 생존에 필요한 수입을 얻을 수 없다고 한다는 그는 죽어야 하는데, 신고전파 이론에 의하면 그것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복지경제사상은, 각자가 설령 시장에서 평가받을 수 있는 자원을 갖지 못하여도 건강하고 쾌적한 생활을 하기 위하여 필요한 서비스를 향수할 수 있는 기본적인 인권을 갖는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신고전파 이론은 인간을 생산요소로만 파악하고 있다. (136~137)

공해 또는 환경파괴 현상은 사유를 허용하지 않는 자연적 사회적 환경의 오염 파괴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환경파괴는 실질적인 소득분배를 더욱 불공정한 것으로 만든다. 또 환경파괴는 불가역적인 과정임을 신고전파는 해명할 수 없다. 공해가 발생하면 고소득층은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 있으나 저소득층은 경제적 또는 직업적 사정에 의해 이주할 수 없는 것이 보통이다. (138)


독서습관 781_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_이반 일리치_2004_미토(230917)


■ 저자: 이반 일리치

이반 일리치는 1926년 오스트리아의 비인에서 출생했다. 로마의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찰스부르크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1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아일랜드-푸에르토리코 교구에서 보좌신부로 일했으며, 1956년부터 1960년까지 푸에르토리코의 가톨릭대학교 부총장을 지냈다. 하지만 가톨릭 사제로 있으면서 평범한 신자들만이 교회를 구원해 줄 것이라 믿으며 사제 확대정책에 반대한 것, 피임정책을 지지한 것 등 일련의 교회정책에 반대한 것이 빌미가 되어 교황청과 마찰을 빚다가 1969년 사제직을 떠났다. 

사제직을 떠난 후 <학교 없는 사회>, <병원이 병을 만든다> 등 근대문명에 대한 비판의 글들을 쏟아 내기 시작했고, 서독의 캇셀대학과 괴팅엔대학에서 유럽 중세사를 강의하는 등 저술과 강의 활동에 전념했다. 

2002년 12월 2일 독일 브레멘 자택에서 향년 7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가디언>, <르몽드>, <뉴욕 타임스> 등은 사후 특집 기사 등을 통해 그에게 20세기 최고 상상가 중의 한 명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