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서 '옥수수 박사'에 대한 프로를 본 적이 있다. 하지만 큰 관심은 없었기에 지나쳤다. 그런데 2023년 여름 큰아들과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얘기하는 중 김순권 교수의 이야기가 나왔다. 한동대 석좌교수로 계신데 그분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도 모색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김순권 교수에 대한 책 <검은 대륙의 옥수수추장>을 보게 되었다.
자신의 학창시절과 유학시절, 한국으로 귀국해서 강원도 옥수수 품종을 개발하고 다시 아프리카로 건너가 17년 동안 그곳에 맞는 품종을 연구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대한민국이 한창 어려웠던 시절에 미국 유학길에 올라 누구보다 부지런하게 연구하고 현장을 누볐던 이야기는 오늘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의미를 찾고 그 일에 빠져서 노력하고 결과물을 얻는 과정의 가치를 김순권 박사의 삶을 통해 느끼게 된다.
서양의 어떤 학자가 "사람에게 있어 최대의 영광은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쓰러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는 데 있다"고 말한 바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잘못된 교육제도 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 땅의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54)
이 책이 나온지 10년 이상이 되었지만 여전히 잘못된 교육제도는 고쳐지지 않았다. 학생이든 성인이든 누구에게나 자신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실패라는 과정을 불가피하다. 실패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실패가 없다는 점이 부끄러운 일이다.
(...) 이때의 경험은 내가 옥수수 육종에 몸을 담은 이래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칙을 어기지 않고 지켜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① 가난한 농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육종, ②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환경친화적인 육종, ③ 직접 밭에 나가서 농민과 함께 일하면서 연구하는 육종이 그것이다. (59)
저를 이 세상에서 가장 적은 월급을 받으면서도 가장 많을 일을 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63)
가장 적은 월급을 받으며 가장 많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김순권 박사의 기도는 돈과 물질이 만능인 시대에 구석기시대의 유물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저자의 기도는 더 울림이 크다. 어쩌면 소명감을 가지고 자신의 일에서 사회적 가치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노력하고 있기에 사회가 유지되는지도 모른다.
노만 블록은 병충해에 강한 저항품종의 밀을 육종하여 인도와 파키스탄의 기아문제를 해결한 세계적인 병리학자였다. (69)
우장춘 박사와 김순권 박사만 알고 있었는데 노만 블록이란 인물이 밀을 주식으로 하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배고픔을 해결하고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은 새로운 정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한다. 내가 모르는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래서 독서가 필요하고 여행이 필요하다. 요즘 독서를 통해 시야가 확장되어 가는 과정을 즐기고 있다. 기회가 되면 노만 블록에 대한 책도 도전해 보련다.
이처럼 미국 유학은 내 눈과 귀와 가슴을 세계를 향해 열어 주는 계기가 되었다. (85)
저자의 책을 보며 유학시절의 대한민국과 미국의 생활수준의 차이를 잘 볼 수 있다. 대한민국 안에서는 볼 수 없는 세상을 본다. 지금은 해외여행이 자유롭지만 가난하고 배고픈 시절의 유학이란 소수의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시대였다. 김순권은 그중의 한 명이 되었고 대한민국과 아프리카 사람들의 위해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쳤다. 그를 버티게 한 큰 힘은 기독교 신앙이었으며 바로 옆에서 내조한 아내가 있었다.
육종학에서는 품종과 계통이 서로 다른 종자를 최초로 교배한 잡종 제1세대(F1)를 원래의 종자보다 수확량이 높고 건강한 품종으로 간주한다. 이처럼 잡종 제1세대가 수확량이나 내병성의 측면에서 개량되는 현상을 잡종강세(Heterosis, Hybrid Vigor)라고 한다. (115)
아프리카의 경우 일년 내내 더운 날씨가 계속되므로 연중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에, 병충해의 피해가 크다는 것이 커다란 단점이다. 온대지방은 웬만한 병균이나 해충들이 추운 겨울을 거치면서 죽어 버리지만, 아프리카에서는 자연에 의한 소독기간이 없으니 일 년 내내 병충해가 기승을 부렸다. (155)
교잡종 옥수수는 1960년대 동부 아프리카와 남부 아프리카에 전해졌다. 중서부 아프리카를 제외한 이 지역에 교잡종이 전해진 이유는 이곳이 아직까지도 남아프리카의 영향과 유럽 식민지 시절의 잔재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186)
자연은 인간에게 유익한 생물이건 피해를 주는 생물이건 간에 모두가 종족을 보존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모든 생물이 '공생'하는 공간이 바로 자연인 것이다. (194)
학창시절에 오로지 공부만 하던 모범생은 사회에 나와서 어려움이 닥치면 좌절하는 경우가 많지만, 공부를 하면서도 세상물정을 알 만큼은 적당히 놀기도 하던 사람이 오히려 잘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 현상이라고 할까. (212)
우리 사회는 학창 시절에 모범생이라고 부르던 사람들이 이끌고 있다. 시험성적이 좋은 사람들이 모든 능력이 뛰어난 것처럼 간주된다. 자신의 자존감이 성적인 학생들은 자기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들과 만날 때 좌절하기 쉽다. 한창 다양한 경험과 독서를 통해 성인을 준비해야 하는 학창 시절에 오로지 시험 보는 연습으로 일관한다. 자신의 생각이 없고 자신의 주장이 없다. 스스로 문제를 만들기는 서툴고 주어진 문제는 잘 풀어낸다. 반면에 학창 시절 좌충우돌하며 놀던 아이들이 사회에서 잘 적응해 간다는 말에 일부 동의한다.
인생은 길다. 인생은 문제만 풀기에는 너무 길다. 그래서 인생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많이 알고 있는 사람, 폭넓게 세상을 보는 사람, 작은 것에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 긴 인생 여정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본다.
아프리카의 부패상을 직접 목격하면서 나는 옥수수 밭에서 스트라이가 방제법을 찾아낸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도 '인간 스트라이가'들을 뿌리 뽑을 수 있는 제대로 된 지도자가 빨리 나와 주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 본다. (275)
독서습관 776_검은 대륙의 옥수수추장_김순권_2009_한송(230905)
■ 저자: 김순권
대학 졸업 후 농촌진흥청 작물시험장을 거쳐 IITA 연구원으로 17년간 아프리카에서 옥수수종자 개발에 헌신하다 95년 귀국.
'독서습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782]조국의 법고전 산책_열다섯 권의 책으로 우리 사회를 조망한다 (0) | 2023.09.10 |
---|---|
[783]완전한 행복_행복은 뺄셈이라는 신유나가 만들어가는 공포스릴러 (0) | 2023.09.10 |
[775]골든아워②_세월호와 대형병원으로 보는 돈과 지위가 인간보다 우선인 사회 (1) | 2023.09.04 |
[774]골든아워①_이국종 교수가 추구하는 가치와 아덴만 여명 작전 등 중증외상 환자 사례들 (0) | 2023.09.03 |
[773] 위건 부두로 가는 길_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는 사회로의 길 (0) | 2023.09.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