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종 교수의 <골든아워> 2권까지 몰입해서 읽었다. 의사의 삶과 병원이 운영되는 현실을 조금은 들여다보는 기회였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갈길이 멀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국종이라는 한 사람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글자로 정리해 두어 많은 사람과 생각을 공유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의미가 크다.
정책을 수립하는 공무원들이나 현장에서 환자를 돌보는 의료진들이 이 책을 읽고 부조리한 부분을 바로잡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세 가지로 소감을 정리한다.
1. 수익추구형 대형병원의 현실
이국종 교수가 몸담았던 병원 내부에서의 갈등이 여러 번 등장한다. 특히 보직을 가진 사람들이 큰 틀을 보지 않고 돈과 지위만을 추구하는 듯하다. 한 사람의 생명보다도 병원의 수익성이 더 중요하다.
환자를 돌보는 전문인력을 채용하기보다 외양을 쾌적하게 만드는데 더 공을 들인다. 환자의 입장에서 무엇이 더 바람직할까 생각해 보면 좋겠다. 의사들이 한쪽으로 편중되는 시대다. 외과나 소아청소년과는 기피한다. 그럼 이를 바로잡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줄어가고 이로 인한 중장기적인 국가의 미래는 정해져 있다. 하지만 정책당국이나 직간접 이해관계자들은 근시안적인 결과에 치중하는 듯해서 걱정이다.
인구 고령화에 따라 의사나 간호사와 같은 전문인력의 수요는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젊은 인구의 유입은 감소하며 노동력 부족이 현실화될 것이다. 과거와 같이 전문인력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 병이 나서 치료를 하기 전에 예방 활동이 중요하다. 대형병원 중심의 의료체계와 수도권과 지방간의 의료 서비스 격차 해소가 필요하다. 중증 환자들이 수도권에 있는 대형병원으로 수시로 오가야 하는 현실을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다. 무엇을 위한 의료 시스템인가 묻고 싶다.
한국의 많은 병원들이 충분한 전문 의료인 채용을 통한 진료 내실을 다지기보다 화려한 외장과 외래 공간에 공을 들인다. 보이지 않는 부분은 선진국은 고사하고 중진국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많고, 그 수준을 좇을 생각도 없어 보였다. (...) 병원들의 형태가 과대 포장된 불량식품 같았다. (12~13)
대학 병원의 전문의 당직 시스템은 아래 연차의 교수진이나 임상강사진으로 채워지기 마련이다. 최고 실력을 가진 교수진은 멀리에서 자신을 찾아온 외래환자 진료에 집중한다. 그것이 병원의 수익성 제고에 도움이 되니 마치 한국 의료의 대도인 것 같았다. 이로 인해 발생되는 의료 공백은 많은 의료기간들의 공통적인 문제였으나 의료진의 희생만으로 이것을 메우라고 할 수는 없다. (52~53)
병원장들은 바쁘고 그들에게 중증외상센터는 국책사업 선정에 따라 현금이 들어오는 사업일 뿐이다. 그런 그들에게 중증외상센터의 국가적 설립 목표와 세계적 표준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기대할 수는 없다. 설명한들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211)
1990년대까지는 대학 병원들이 젊은 의사, 간호사 및 의료기사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컨베이어 시스템처럼 고도로 효율화된 진료체계를 구축해서 간신히 수지를 맞췄지만, 최근 20년 동안 국민이 지향하는 삶의 자세는 획기적으로 변했다. 적절한 휴식과 보상이 있어야 하고 어려운 일은 안 하면 그만이다. (279)
2. 세월호를 통해 근시안적인 국가 정책을 본다
이국종 교수는 세월호 사고가 발생하던 현장에 있었다. 응급구조헬기를 타고 침몰하는 배 상공에서 구조 기회를 기다렸으나 철수하라는 지시뿐이었다. 아이들이 산 채로 수장되고 있는 현실을 바라보고 있어야 했다. 어디서도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지 않고 행정절차만 오가는 시간이었다. '나라 꼴 잘 돌아간다'는 말에 모든 감정이 실려 있다.
저자와 함께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살려보자는 노력을 했던 공무원들이 자리를 옮기며 초기의 시스템 구축 노력은 물거품이 되었다. 주기적으로 보직이 바뀌어도, 선출직으로 정해진 기간에 일을 하는 공무원도 국가의 큰 그림을 그려가는 데는 변동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국가의 큰 그림이 없다. 정권이 바뀌면 그 그림도 변경된다. 변경된 담당자의 생각에 따라 수시로 변경되는 정책이다. 일관성 있는 정책 방향을 수립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얻었다면 변동 없이 추진돼야 한다. 짧은 호흡으로 일하는 정부 관료에 대한 비판은 적절하다.
배가 가라앉고 사람들의 생사 또한 알 수 없는 판국임에도 복잡한 행정 절차만은 견고하게 잘 유지됐다. '나만 급한 모양인가. 나라 꼴 참 잘 돌아가는구나.' 나는 입으로 뱉지 못한 말을 속으로 삼켰다. (70)
(...) 구조되어야 할 사람들이 산채로 수장되어 죽어가고 있는데 골든타임을 말하며 '적극적인 구조'를 논하고 있었다. 짜증이 치솟았다. 모든 것은 몇 년 전 TV 드라마 때문일 것이다. 당시에 자문받으러 온 제작진에게 드라마 제목을 '골든아워(Golden Hour)'라고 해야 한다고 거듭 말했는데도 제작진은 골든타임을 고집했다. (86~87)
기본적으로 국가의 정책이란 것 자체가 숨을 길게 쉬지 못한다. 5년짜리 단임제 대통령과 각종 선거로 자리를 꿰차는 수년짜리 정치인들, 1년이 멀다 하고 자리가 바뀌는 정부 관료들의 숨은 좀처럼 긴 호흡을 가지지 못했다. 정책을 움직일 만한 모든 이들은 입장과 상황에 따라 말을 달리했다. (228)
3. 돈과 지위보다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로 가야
우리 사회에서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목소리가 크다. 개개인의 가치가 비교와 경쟁으로 쟁취된 돈과 지위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으로 존중받아야 하지만 집에서 기르는 개보다도 낮아졌다.
돈과 지위가 세습되는 사회가 되었다. 교육이 세습되는 시대가 되었다. 자녀를 군대에 보내지 않은 자들이 큰소리를 친다. 군대에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 국가의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 병은 치료해야 할 것이 아니라 약을 팔고 병원의 수익을 만드는 원천이다. 국가의 존속을 위해 필요한 사람의 가치는 평가절하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이다. 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자존과 인권을 얘기하고 협력과 공동체를 가르쳐야 한다. 교사가 존중받고 학생들이 다양한 경험과 독서와 토론으로 자신의 철학을 키워야 한다. 그럴 때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돈과 지위에 부여된 가치를 인간에게 되돌릴 수 있다.
많은 전상 유공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잘 살려면 해외로 나가거나 군역을 면제받았어야 했다고 한탄하곤 했다. 아버지도 생전에 전상 유공자들에 대한 국가의 처우와, 참전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주도해 온 한국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시곤 했다. (174)
환자는 다시 공직에 복귀해 사람들을 구하고 세금을 내고, 건강보험료를 납부하며 다른 환자들의 진료비를 보조해 주는 입장으로 돌아갔다. 몸이 완쾌되면 다시 현장으로 나가 위험에 처한 누군가를 또 건져 올릴 것이다. 한 목숨이 살아서 여러 목숨이 살 가능성이 늘었다. (262~263)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만성질환으로 병치레하기 마련이고, 수많은 의료인들은 거기에 기대 생계를 유지한다. 각종 뉴스에 암, 알츠하이머, 당뇨 등에 탁월하다는 기적 같은 약품이 보도될 때마다 나는 신기루를 보는 것 같았다. (271)
한국 사회는 약육강식의 정글과 같고, 그 안에서 각자도생 하며 사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286)
내 외상센터장 사임원은 2020년 1월 28일부로 결제됐다. (328)
독서습관 775_골든아워 ②_이국종_2018_흐름출판(230904)
■ 저자: 이국종
'독서습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783]완전한 행복_행복은 뺄셈이라는 신유나가 만들어가는 공포스릴러 (0) | 2023.09.10 |
---|---|
[776]검은 대륙의 옥수수추장_옥수수 전문가 김순권 박사의 자전적 에세이 (0) | 2023.09.04 |
[774]골든아워①_이국종 교수가 추구하는 가치와 아덴만 여명 작전 등 중증외상 환자 사례들 (0) | 2023.09.03 |
[773] 위건 부두로 가는 길_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는 사회로의 길 (0) | 2023.09.02 |
[772] 유리갈대_한 알의 모래처럼 허무하게 흘러가는 삶 (1) | 2023.09.0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