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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773] 위건 부두로 가는 길_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는 사회로의 길

by bandiburi 2023. 9. 2.

유튜브 '알릴레오 북' 67회에서

조지 오웰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책 <그리스인 조르바>의 주인공 조르바와 같은 삶을 살았다고 소개했다. 조지 오웰은 소설 <동물농장>이나 <1984>의 저자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삶에 대해서는 몰랐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그의 책을 읽어보며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고 싶었는데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삶과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1부는 탄광촌 노동자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객관적으로 그들의 거주환경을 기술했다. 어쩌면 한국전쟁 직후의 우리 사회의 모습이 유사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2부는 자신의 성장과 영국의 계급문제 그리고 정치적 견해를 담고 있다. 책에 대한 느낌을 세 가지를 포스팅한다.

https://bandiburi-life.tistory.com/465

 

[소설]140_그리스인 조르바_니코스 카잔차키스_2018_민음사(190217)

저자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한 장소에 오래 머물러 있으면 나는 그만 죽을 것 같다."라고 고백하며 인간이 가진 자유로움을 노래한 영혼의 순례자이자 그리스의 이방인,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

bandiburi-life.tistory.com


첫째, 1930년대 영국 탄광 노동자와 가족의 삶을 보여준다. 

책의 시작부터 탄광 속 비참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객관적인 자료도 담고 있어 사료적인 가지도 있다. 노동자들이 일하는 시간, 출퇴근 하는데 소요되는 시간과 교통비용, 가족을 이루고 살아야 할 공간에 대한 집세, 집들의 구조에 대한 치수를 포함한 다양한 집세의 사례, 주급을 받아서 가족들이 어떤 항목에 얼마나 사용하고 있는지 지출 내역 등이다. 

세계 대공황 직후에 수많은 실업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배회하는 시기에 남아도는 노동자들의 값은 생존의 선상에 있었다. 탄광에서 사고로 장애인이 된 사람들은 수당으로 가까스로 살아간다. 중산층 이상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석탄을 채굴하는 노동이지만 편안한 삶을 사는 그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다. 

가족의 생존을 위한 돈을 벌기 위해 위험한 작업 환경에서도 일자리 자체에 만족하며 살아야 했던 탄광 노동자들의 모습은 반려견이라는 이름으로 대접받으며 공존하는 우리 주변의 개들과 상반된다. 개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1930년대 영국 탄광촌 주민들만은 아니다. 현재 우리 주변에도 있다.


둘째, 모든 사람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한다. 

제목은 <위건 부도로 가는 길>이지만 1부나 2부에서 '위건 부두'와 관련된 내용은 없다. 다만 '위건'이란 지명은 등장한다. 옮긴이의 해석에 의하면 비참한 노동자들도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로의 길이다. 조지 오웰이 2부에서 사회주의에 대해 많이 언급한다. 다만 사회주의자들에 대해서는 비판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만들어낸 가치가 자본가에 의해 독점되지 않고 공평하게 점유되는 사회다. 

중산층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고 버마에서 경찰로도 근무했던 조지 오웰이 자신이 살아온 과정과 상반되는 탄광촌의 비참한 환경을 취재하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영국이 민주적 사회주의로의 길로 가야 한다는 확신이 더 커졌을 것이다. 끊임없이 자신의 경험을 기록하고 생각하고 책을 썼다. 결국은 <동물농장>과 <1984>의 역작으로 세계의 독자들에게 남았다. 


셋째, 현재의 우리 사회는 삶이 나아졌다고 할 수 있나

1930년대의 영국의 상황이 2023년 대한민국의 현실과 유사한 점이 보인다. 국민들에게 신자유주의와 민간의 역할을 강조하며 새로운 계급간 불평등을 조장하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기존의 성장동력이 힘을 잃으며 청년들의 일자리는 감소하고 있다. 출생아 수가 급감하면서 미래의 소비층이 점차 얇아지고 국가의 지원이 필요한 고령인구는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탄광촌 노동자들이 주급을 받아 25퍼센트를 집세로 지불한 것처럼 국민들이 1800조가 넘는 부채를 지며 은행에 이자를 내거나, 집주인에게 전세나 월세의 형태로 집세를 낸다. 청년들의 안정된 사회생활과 결혼과 출산 감소 문제 해소를 위해 집값의 하향 안정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소수의 부동산 기득권 층이 의사결정을 하는 구조 속에서 요지부동이다. 도리어 지금도 요원한 집값을 유지하거나 더 올리기 위해 각종 수단을 강구하고 있다. 

사람에 대한 생각이 우선되야 하는데 돈과 권력을 앞에 둔 사람들이 국민의 대표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조지 오웰 시대의 기득권을 가진 자들의 태도나 지금의 기득권을 가진 자들의 태도나 인간의 욕심은 동일하기 때문 아닐까. 

아래는 책에서 남기고 싶은 문장을 인용했다. 


어떤 면에서는 광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도 자괴감을 느낄 만하다. 그럴 때 우리는 잠시나마 '지식인'으로서의, 전반적으로 우월한 존재로서의 자기 지위를 의식하게 된다. 적어도 지켜보는 동안에는, 우월한 인간들이 계속 우월하기 위해서는 광부들이 피땀을 흘려야만 한다는 자각을 똑똑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49)

런던은 버려진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소용돌이와도 같은 곳이며, 워낙 거대해서 고독한 익명의 생활이 가능하다. 그리고 법을 어기지 않는 한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며, 자기를 아는 이웃들이 많은 곳에서는 가당치도 않을 정도로 망가질 수도 있다. (108)

탄광노동자 (출처: Rawpixel)

계급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먼저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지를 알아야 한다. 중산층은 '속물'이라는 말에서 그쳐버린다면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속물근성이란 일종의 이상주의와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다. (177)

세인츠버리에 따르면, 실업보험은 "게으른 밥벌레들을 먹여 살리는 데 기여할" 뿐이다. 그리고 모든 노동조합운동은 일종의 조직적인 구걸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180)

속물근성이 사라질 줄을 모르며, 너무나 세련되고 미묘하게 길러지다시피 하는 곳 치고 영국의 사립학교만 한 곳이 없을 것이다. (185)

전쟁 당시 청년층은 희생을 했으나, 노년층은 지금 시점에 봐도 끔찍할 정도로 비겁했다. 말하자면 그들은 아들들이 독일군의 기관총 앞에 짚단 쓰러지듯 픽픽 넘어가는 동안에 안전한 곳에서 단호하게 애국을 요구했던 것이다. (186)

1차 세계대전의 영국군 (출처: Flickr)

일단 그 세계에 들어가거나 그 일부가 된 듯하면, 과거에 어떤 존재였는지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들이 세계는 모두가 평등한 작은 세계인 셈이며, 작고 누추하긴 해도 아마 영국에서 가장 민주적인 세계일 것이다. (209)

사회주의가 성장하는 것을 막는 것은 스스로 사회주의자라고 칭하며 다른 생각을 가진 자들을 사회주의자라고 비난하는 소위 선봉에 선 자들이다. 책과 이론에 기준을 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억압에 반대하는 모든 사람이 사회주의자임을 오웰은 다시 한번 강조한다. (247)

부디 이렇게 배에 기름기 찬 '진보'관은 사회주의 사상의 본질이 아님을 아시기 바란다. 단,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 타고나는 보수성 때문에 사회주의에 반발하기 쉬운 만큼, 그런 관을 본질이나 마찬가지인 것으로 볼 필요는 있다. (256)


즉 일류 인사가 딜레탕트로 사는 게 아직 가능하던 시기에 살았기 때문에, 그가 보기엔 모든 게 일종의 지적 유희 같았다. (258)

딜레탕트란 학문이나 예술에 대해 전문적으로 파고 들지 않고 취미 삼아 즐기는 이들

파시즘은 쾌락주의와 '진보'라는 값싼 관념에 반발하는 모든 충동을 이용할 수 있었다. 달리 말해 파시즘은 유럽 전통의 옹호자 시늉을 할 수 있었으며, 기독교 신앙과 애국주의와 군사적 가시체 호소할 수 있었던 것이다. (288)

우리가 효과적인 사회주의 정당을 출범시키지 못한다면, 내가 이 책의 1부에서 기술한 여전을 바로잡거나 영국을 파시즘에서 구할 가망은 없어진다는 것이다. (308)

작가로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오웰은 1936년 1월, 한 진보단체로부터 좋은 제의를 박게 된다. 대공황기이던 당시 대량실업으로 고통 받는 잉글랜드 북부 노동자들의 실상을 취재하여 책을 써달라는 제의였던 것이다. (315)

위건 부두 (출처: Wikimedia Commons)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란 무슨 뜻일까? 대중의 자조를 끌어와 책의 제목으로 가는 길'이란 무슨 뜻일까? (...) 굳이 한 가지 해석을 내놓아야 한다면, 나는 그것을 '밑바닥 사람들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로 가는 길'이라고 하겠다. (325)

아무 힘없는 빈자와 약자와 소수자가 시장 독재에 압살당하지 않고 공공의 영역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로 가는 것, 그게 이 책이 우리에게 비춰주는 하나의 방향이 아닐까 싶다. (327)



독서습관 773_위건 부두로 가는 길_조지 오웰_2017_한겨레출판(230901)


■ 저자: 조지 오웰

본명이 에릭 아서 블레어 Eric Arthur Blair이다. 1903년 6월 25일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 태어났다. 책에서 말하듯 "하급 상류 중산층'에 속한 그는 영국 사립 최고 명문인 이튼 스쿨을 마치고 명문대학이 아닌 버마로 향한다. 식민 통치기구인 '인도 제국 경찰'에서 일하기 위해서였다. 

식민지 경찰 활동에 대한 양심의 가책 때문에 영국으로 돌아와 런던과 파리에서 자발적인 부랑자 생활을 하고, 이 체험을 바탕으로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1933)을 펴내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나선다. 조지 오웰이라는 필명도 이때부터 쓰기 시작한다. 

작가로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은 오웰은 1936년 1월, 한 진보단체로부터 잉글랜드 북부 노동자들의 실상을 취재하여 글을 써달라는 제의를 받고, 두 달에 걸쳐 위건, 리버풀, 셰필드, 반즐리 등 랭커셔와 요크셔 지방 일대의 탄광 지대에서 광부의 집이나 노동자들이 묵는 싸구려 하숙집에 머물며 면밀한 조사활동을 한다. 바로 이 취재의 결과물이 <위건 부두로 가는 길>(1937)이다. 같은 해 일어난 스페인 내전을 예의 주시하던 그는 이 책의 원고를 출판사에 넘겨주자마자 "파시즘에 맞서 싸우러" 스페인으로 떠났고, 이후 이 전쟁 체험을 <카탈로니아 찬가>(1938)을 통해 전한다. 

영국 북부 탄광 지대와 스페인 내전에서의 경험은 조지 오웰의 지향점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고 이후 <동물농장>(1945)과 <1984>(1949)를 구상하는 밑거름이 된다. <1984>의 집필 중 폐결핵 판정을 받은 그는 1950년 1월 21일, 마흔여섯 나이로 숨을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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