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된 지 15년이 된 책이지만 현대 사회에서 우리의 귀에 익숙한 질병들이 제약회사들에 의해 어떻게 정의되고 마케팅에 활용되었는지 적나라하게 알려주는 좋은 책이다. 정보의 불평등으로 의료 및 제약 전문가들이 정의한 질병과 치료 방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몸에 이상이 있어 의사를 찾을 때나 건강검진 결과에 대해 의사의 소견을 들을 때 우리는 의사의 의견을 대체로 받아들이는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의 판단과 처방은 매우 중요하다.
<질병 판매학>에서는 대부분의 중년 이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을 질병과 이를 치료하기 위해 처방받아 복용하는 약을 둘러싼 가려졌던 진실을 보여준다. 제약회사는 신약을 개발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데이터를 주로 활용해서 전문가들을 통해 효과를 광고한다. 효과를 부각하고 부작용은 감추는 방법으로 상당한 수익을 올린다.
책에서 소개하는 사례는 우리 동료나 부모님들이 드시는 약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만 이런 거다.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으면 건강에 해롭다. 그러니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약을 복용해야 한다. 혈압이 높아 고혈압 가이드라인에 맞춰 혈압약을 드세요. 나이가 들수록 골밀도가 낮아지니 골절 예방을 위해 골다공증 예방약을 드셔야 합니다. 우울증 소견입니다. 항우울제를 복용하세요. 사회불안장애 혹은 주의력결핍장애를 가지고 계시네요. 처방전 드릴게요."
고혈압과 골다공증 두 가지 질병에 대한 부분이 특히 깊은 인상을 주었다.
먼저 고혈압은 최근에 읽은 책 <고혈압은 병이 아니다>와 유사하게 고혈압의 범위를 넓혀 환자의 수를 늘려 고혈압약을 팔고 있는 현실을 고발한다. <고혈압은 병이 아니다>에서 저자 마쓰모토 미쓰마사는 일본에서 고혈압 가이드라인을 지정하는 협회 사람들이 제약회사의 후원을 받고 있다고 고발했는데 <질병 판매학>에서도 미국의 사례를 고발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고혈압 가이드라인에 따라 혈압이 높으면 대부분의 의사는 혈압약 복용을 권한다.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약을 탈 수 있기 때문에 매달 한 번씩 내과에 들려서 진료를 받는다. 진료는 별거 없다. 혈압 측정하고 전월 대비 어떻다 한 두 마디면 끝난다. 그리고 약국에서 혈압약을 구매한다. 매달 반복적으로 의사와 약국을 방문하며 개인과 건강보험의 비용이 들어간다. 반면에 의사나 약사는 수많은 고정 정기 고객을 확보한다. 돈벌기 쉽다. 질병으로 정의하고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의 좋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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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다공증은 노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골밀도가 감소하는 것이다. 하지만 제약회사는 이를 질병으로 정의하고, 노년에 가장 위험하다고 하는 골절과 연계해서 약을 판매하고 있다.
고향에 계신 부모님을 방문하면 식탁 주변에 종종 골다공증에 좋다는 건강보조식품이 놓여 있다. 골다공증에 좋다며 우유를 냉장고에 두고 선식과 함께 드신다. 골밀도를 측정했는데 골밀도가 낮다고 의사가 골다공증 예방에 좋다는 약을 처방해 줬다고 하신다.
조금만 들여다보면 노화현상과 골절이라는 두 가지 근본적인 이슈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을 외면하고 있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골밀도 저하를 골절에 대한 두려움과 접목해서 약을 판매하는 것만 집중한다. 노화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골절을 예방하기 위한 생활습관과 환경을 바꾸도록 안내해야 한다.
<질병 판매학>을 보며 우리가 너무 많은 질병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두려움을 의사와 약사를 배부르게 만든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개개인이 스스로의 건강을 위해 좋은 식습관을 가지고, 주기적으로 운동하며 긍정적인 마인드로 살아갈 때 질병을 멀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약을 먹기 전에 이 약이 꼭 필요한 것인지 생각해 보자. 화학약품인 약은 항상 부작용이 동반된다는 사실을 직시하자. 우리 몸의 회복력을 믿자.
아래는 책에서 남기고 싶은 글을 인용했다.
제약회사 입장에서 광고 확대를 통한 마케팅은 자신들은 물론 소비자들을 위한 매우 가치 있는 서비스다. 그러나 비판적 입장을 지닌 사람들에게 이것은 인간의 삶 한가운데로 질병을 밀어넣는 몰지각한 행위다. (20)
30여 년 전 이반 일리치는 날로 점증하는 의학 기술이 인간의 삶 자체를 '의학화(medicalising)' 하며, 이로 인해 고통과 죽음에 대처하는 인간의 수용력을 위태롭게 하고, 너무나도 많은 정상적인 사람들을 환자로 만들고 있다고 경종을 울린 바 있다. (21)
2023년 2분기에 이반 일리치의 책 3권을 연이어 읽으며 그의 통찰에 감탄했다. 그래서 <질병 판매학>에서 다시 만나는 이반 일리치의 문장은 <전문가들의 사회>를 떠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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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중요한 것은 콜레스테롤에 맞추어진 판촉의 초점이 건강하게 오래 살도록 만들어주는 다른 효과적이고 능률적인 방법으로부터 대중의 관심과 주의를 돌린다는 것이다. (41)
크레스토와 다른 스타틴 계열 콜레스테롤 저하제의 미래가 어떻든, 더욱 독립적인 약품 규제와 더욱 공정한 가이드라인에 대한 전망이 어떻든 높은 콜레스테롤을 심각한 질환이라고 광고하는 것과 그것을 치료하기 위한 약의 가치에 대한 회의가 커지고 있다. (48)
약물 치료 역할 축소에 대한 강력한 지지자이자 웨이크 포레스트 대학 교수인 커트 퍼버그 Curt Furberg는 "고혈압 기준을 낮추어 수백만 명 이상의 건강한 사람을 아프다고 재정의하는 것 때문에 점점 더 골치를 썩고 있다"며 분통 터져 했다. (...) 퍼버그 교수는 심지어 160의 혈압을 가진 사람이라도 젊고 현재 건강하며 담배를 피우는 등의 다른 위험 요인이 없다면 굳이 치료하지 않아도 된다고 믿는다. (56~57)
'정상'의 범주가 점점 더 좁게 정의됨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건강한 부류에서 건강하지 않은 부류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이 문제란 것이다. (...) "고혈압은 전혀 혈압이 없는 것보다 낫다." (70)
이 책에서 시종일관 주장하는 바다. 제약회사의 프레임은 새로운 질병을 정의하고 그 범주에 새롭게 들어가는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약을 판매한다. 고혈압이 좋은 사례다. 고혈압 기준을 180에서 160으로, 다시 160에서 140으로 낮추면서 고혈압 환자는 급격히 늘어났고 고혈압 약 판매는 급증했다.
이 캠페인이 도외시한 것은 골밀도 검사의 가치가 매우 논쟁 거리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며, 관련 약품들이 가끔 효과를 보이기는 하지만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이것을 질병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도 의문의 여지가 있다. 매우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골밀도가 낮아지는 것은 많은 사람에게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자연적이며 정상적인 과정이다. 뼛속 무기질 밀도가 (...) 살아가면서 고려해야 할 여러 요인 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74)
엉덩이 골절은 물론 다른 부위 골절까지 막을 수 있는 많은 방법이 있다. 생활 방식을 바꾸거나 다이어트를 하는 것, 가사 도구들을 일목 요연하게 정리하는 것 등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골밀도 검사와 더불어 골밀도 소실을 늦추는 새로운 신약 판매에만 초점을 맞추어 가는 경향이 관찰되고 있다. (75)
사람들이 골다공증을 생활 방식과 식이요법 변화를 통해 예방할 수 있는 것으로 보지 않고 무조건 약물로 치료받아야 할 질병으로 정의하면 "그것은 질병을 파는 것이다"고 헨리는 잘라 말한다. (78)
영국의 보건 시민 단체 유전자 감시(GeneWatch)는 이미 생명공학 기술과 제약 회사가 사람들로 하여금 흔한 질병에 대해 유전자 검사를 하도록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유전자 검사와 이로 인해 발견된 장래의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약물 치료는 거대한 시장으로 팽창할 수 있기 때문이다. (90)
의사들과 세일즈맨, 의학 교육 단체, 광고 회사, 환자 옹호 단체, 가이드라인 조정자, 유명 인사, 각종 학술 대회 개최, 대중을 대상으로 한 질병 경각심 높이기 캠페인, 학계 권위자와 보건 당국까지 서로 꼬리를 물고 연결되어 불건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각각의 고리들이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제약 회사는 돈으로 이른바 기름칠을 한다. (111)
짖기는 하나 물지는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실체가 없는 규제의 겉모습이다. 이번 사례에서도 다른 많은 경우에서처럼 심지어 미국식품의약국이 광고에서 규칙 위반을 결정하고 제약 회사에 통보했음에도 아무런 처벌이 없었다. (114)
유럽의약품평가위원회 심사위원단은 "월경 전 불쾌장애는 유럽에서 인정할 수 있는 공인된 질병이 아니다. 국제 질병 분류 목록에도 없으며 단지 미국 의사들의 진단 기준인 <매뉴얼>에서 연구자를 위한 진단으로만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문제 제기는 월경 전 불쾌장애 치료를 위한 사라펨의 마케팅을 멈추게 한 가장 강력한 이유가 되었다. (160)
독서습관 745_질병판매학_레이 모이니헌&앨런 커셀스_2008_알마(230614)
■ 저자: 레이 모이니헌 & 앨런 커셀스
레이 모이니헌
호주방송(ABC) 건강 전문기자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의학 저널리스트로, <시드니 모닝 헤럴드>와 <멜번 에이지>, <오스트레일리언 파이낸셜 리뷰>,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 <랜시트> 그리고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 등에 글을 싣고 있다.
앨런 커셀스
캐나다 빅토리아 대학에서 의약 정책을 연구하고 있으며, 의학 저널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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