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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739]그림자 노동_자급자족에서 임금 노동으로의 변화에 대한 역사적 통찰

by bandiburi 2023. 5. 29.

이반 일리치의 <깨달음의 혁명>을 읽고 그의 탁월한 통찰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같은 출판사에서 그의 전집으로 출판한 <그림자 노동>과 <전문가들의 사회>를 추가로 빌렸다. 먼저 <그림자 노동 Shadow Work>를 읽었다. 

아내는 전업주부다. 늘 자신은 집에서 일하지 않아 미안하다는 말을 한다. 그럴 때마다 얘기해 줬다. 아내가 집에서 식사, 청소, 양육을 하지 않으면 누군가 해야 한다. 언론에 난 기사를 보면 그런 가사노동을 돈으로 환산하면 수백만 원의 가치가 있다고 한다. 당신은 월급을 벌지는 않지만 그만한 돈이 가정에서 나가는 지출을 통제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중요한 역할을 부부가 함께 나누고 있다고 위로했다. 그런데 내가 설명한 가사노동에 대한 설명이 이 책에 심플하게 잘 나타나 있었다. 

임금 노동을 하는 남성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여성의 그림자 노동이다. 그림자 노동이 없으면 임금 노동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돈으로 치환할 수 있는 임금 노동만이 의미 있는 것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사회에서 그림자 노동은 존재하지만 좀처럼 언급되고 조명되지 않았다.

이 책 <그림자 노동>에서 이반 일리치는 중세부터 현대까지의 역사를 관통하며 자급자족 경제에서 임금 노동과 그림자 노동이 분리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생소한 학자들의 이름과 사회과학 용어가 어렵게 다가오는 면도 있다. 어쩌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물질 만능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림자 노동의 상당 부분이 임금 노동으로 변하고 있다. 여성의 사회 참여가 활발해진다는 것은 그림자 노동의 주체였던 여성이 임금 노동으로 전진 배치되고 있다는 의미다. 여성의 임금 노동자로의 전환은 그만큼 그림자 노동의 임금 노동화를 뜻한다. 초저출산으로 미래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대한민국에서 그림자 노동이 임금 노동으로 전환하며 가정에서의 돌봄 역할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인구구조의 변화와 사회 경제적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는 대한민국의 현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아래는 책에서 인용한 문장을 포스팅한다.

https://bandiburi-life.tistory.com/1932

 

깨달음의 혁명_이반 일리치의 종교와 교육에 대한 새로운 시각

을 통해 이반 일리치란 혁명적 사상가를 처음 만났다. 책의 도입부에 에리히 프롬이 언급한 '모든 것을 의심하라'는 급진주의적 접근방식은 이반 일리치를 한 마디로 잘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bandiburi-life.tistory.com


산업폐기물을 묘지(매립지)에 매장하려면 양동이 값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든다. 경제학 업계용어로 '외부비용'이라는 것인데, 플라스틱 양동이 생산으로 얻는 이윤과 제조 과정에서 지급한 임금을 다 합친다 해도 이 비용에는 못 미친다. (20)

대다수 사람들에게 학교 교육은 유전적 차이를 왜곡해 신분 하락 자격증을 발급하는 것과 다름없고, 건강의 의료화는 감당 가능하고 유효적절한 한도를 훨씬 넘는 의료 수요를 발생시킴으로써 상식적인 의미의 '건강' 즉 환자의 유기적 대처 능력을 떨어뜨린다. (...) 교육, 의료 및 기타 복지 제도가 발전하면서 애초에 이런 사업들을 구상하고 자금을 투자할 때의 목적으로부터 수혜자 대부분이 오히려 배제되는 결과가 빚어지는 것이다. (21)

두 가지 무급 활동 - 임금 노동의 보완물로서의 그림자 노동과, 임금 노동 및 그림자 노동 모두에 대해 경쟁하고 대항하는 자급자족적 노동 - 사이의 진짜 차이점은 여전히 간과될 수 있다. 이렇게 자급자족 활동이 점차 희귀해짐에 따라 모든 무급 활동은 가사 노동과 비슷한 구조를 띠게 된다. (29)

기실 네브리하가 제안한 것은, 가르치는 공식 언어를 독점함으로써 가르치지 않은 토박이말을 읽지 못하도록 억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네브리하의 주장 - 사람들이 천박한 즐거움을 위해 아무 글이나 읽는 것을 막으려면 표준화된 국어를 강제로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 - 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당시 인쇄술의 지위가 어떠했는지 알아야 한다. 네브리하는 활판 인쇄가 등장하기 전에 태어났다. (...) (73)

네브리하는 토박이말을 아르티피키오로 대체해야만 하는 이유로 세 가지를 든다. 첫째, 군주의 지배권이 미치는 범위와 지속기간이 늘어날 것이고, 둘째, 왕실의 결정에 따라 문예를 육성할 수 있으며, 셋째, 방종한 독서와 인쇄가 야기하는 위협에 맞서 기존 질서를 수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92)

사실상 네브리하는 자급자족과 싸울 준비를 하고 있는 새 국가에게 선전포고문을 작성해준 셈이었다. 토박이말을 '가르치는 모어'로 대체하는 것이 그것이었고, 이것이야말로 보통 교육의 요소를 최초로 고안한 사건이었다. (93)

당시 고르즈 수도원이 훗날 유럽 열강의 제국주의적 팽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신기술 - 즉 말을 경작에 이용한 것 - 을 전파하는 중심이었으리라는 생각에는 충분한 타당성이 있다. 아시아의 네 가지 발명품인 편자, 고정식 안장과 등자, 재갈, 목사리 덕에 중요하고도 광범위한 변화가 가능해졌다. 말 한 마리는 소 여섯 마리 몫을 할 수 있다. 끄는 힘이 소의 여섯 배인데도 속도는 더 빠르고 먹는 양도 소 두 마리분에 지나지 않는다. (109)

토박이말과 교습되는 모어는 구어라는 스펙트럼의 양 끝과도 같다. 언어는 철저히 교습될수록 철저히 비인간적이 된다. (126)

산업사회의 삶에 맞춰 인격을 형성한 사람들이 지금 우리가 논하고 있는 차이점 - 즉 자본화된 언어와 경제학적으로 값을 측정할 수 없는 토박이말의 차이점 - 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모종의 저항감 때문이다. 이것은 때로는 종교적 금기만큼이나 강력하게 작용한다. (127)

이들의 연구와 R&D의 차이점은 직관적으로도 쉽게 알 수 있다. '민중에 의한 연구'에서는 자신들에게 직접 도움이 되는 도구와 환경을 만들고 개선하고 아름답게 하는 데 치중하며, 남들이 자신의 연구를 모방하거나 개작해도 개의치 않는다. 이런 차이는 실제적인 쓸모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 그 좋은 예로 보레만스의 정의를 들 수 있다. "민중에 의한 과학은 (...) 시장이나 전문가에 대한 종속을 심화하지 않으면서 일상 활동의 사용가치를 증대시키는 연구이다." (137)

12세기 중엽은 역사상 드문 시기였다. 학자들은 과거 저작들이 지닌 영향력이 거의 끝물에 달했다고 확신했다. 그리스, 로마, 교부시대의 사상도 완전히 흡수되어 사상가들은 과거의 성취를 자유자재로 활용했다. 베르나르, 아벨라르, 생빅토르의 위그는 1110~1150년 사이의 짧은 시기에 꽃핀 전혀 새로운 유형의 천재를 대표했다. (144)

위그가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자연을 사이비 낙원으로 바꾸기 위해 그것을 통제하거나 지배하거나 정복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부족함을 채우는 것이었다. (147)

과학을 이렇듯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게 됨에 따라 기술적 수단들에 대해서도 새로운 태도가 생겨났다. 새 물레방아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지배를 상징했으며, 새 시계는 시간에 대한 지배를 상징했다. C.S. 루이스의 말마따나 이 관계는 자연을 수단 삼아 일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행사하는 권력임이 밝혀졌다. (164)

나는 미겔의 이 말이 지난 천 년간의 상황과 태도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임금 노동으로 먹고사는 사람은 삶의 토대가 되는 가정이 없고, 자급자족을 영위할 수단을 빼앗겼으며, 배고픈 사람을 도와줄 엄두를 내지 못한다. 미겔에게 임금 노동은 아직 거울 속 세상에 붙들린 상태가 아니었다. (184)

성별의 경제적 구분, 경제적 개념으로서의 가족, 가정과 공공 영역 간의 대립 같은 전례 없는 현상들로 인해 임금 노동은 삶의 필수요소가 되었다. 이 모든 과정을 완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노동하는 남성을 가사일하는 여성의 일대일 관리자로 임명하고, 이런 후견자 임무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의무로 만든 데 있었다. 양과 거지에 대한 인클로저가 실패한 지점에서 여성에 대한 인클로저는 성공을 거두었다. (189)

자급자족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자본과 노동은 근본적으로 동맹 관계에 있었지만, 이런 관계는 계급투쟁이라는 제의를 통해 은폐되었다. (...) 산업 노동의 상호보완적 형태인 임금 노동과 그림자 노동은 이렇게 하여 가족 안에서 가족을 통해 하나로 섞이게 되었다. 남성과 여성은 자급자족 활동으로부터 사실상 소외된 채 고용주의 이익과 자본의 투자활동에 상대방이 착취되도록 돕는 발판이 되고 말았다. (191)

의료인과 교육자는 이렇듯 사람들을 불능화하는 전문 직업의 대표적 예다. 이들은 자기들의 서비스를 소비하는 데 필요한 그림자 노동을 고객에게 떠안기고는, 직접적이든 세금을 통해서든 고객에게서 대가를 지급받는다. 돌봄을 생산하는 근대의 전문가들은 이런 식으로, 노동으로 결합된 근대 가족의 유형을 한 단계 더 진전시켰다. (202)

여성의 현 상황을 현대판 '푸르다 purdah'로 해석해야 한다고 우기는 사람들은 변죽만 울리고 있는 셈이다. (204~205)
 * purdah : 이슬람이나 힌두 사회에서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히잡을 씌우거나 집안에 있도록 격리하는 관습

사용가치 지향적 활동, 비화폐적 거래, 묻혀있는 경제 활동, 자급자족 경제학 등의 용어들 모두 시도한 결과 이 글에서는 '자급자족'을 고수하기로 했다. 나는 '자급자족 지향적 활동'을 유급이든 무급이든 공식 경제에 이바지하는 활동과 대립시키고자 한다. 그리고 경제 활동의 영역에서는 공식 부문과 비공식 부문을 구분하고자 한다. 임금 노동은 공식 부문에, 그림자 노동은 비공식 부문에 대응한다. (217)


독서습관 739_그림자 노동_이반 일리치_2017_사월의 책_230603


■ 저자: 이반 일리치

192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잘츠부르크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1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교황청 국제부 직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빈민가의 아일랜드-푸에르토리코인 교구에서 보좌신부로 일했다.

1956년 서른 살에 푸에르토리코 가톨릭 대학의 부총장이 되었고, 1961~1976년에는 멕시코 쿠에르나바카에 일종의 대안 대학인 <문화교류문헌자료센터>(CIDOC)를 설립하여 연구와 사상적 교류를 이어갔다. 교회에 대한 잦은 비판으로 교황청과 마찰을 빚다가 1969년 스스로 사제직을 버렸다. 80년대 이후에는 독일 카셀 대학과 괴팅겐 대학 등에서 서양 중세사를 가르치며 저술과 강의활동에 전념했다.

<학교 없는 사회> <공생공락을 위한 도구>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전문가들의 사회> <그림자 노동>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등 성장주의에 빠진 현대 문명과 자본주의 사회에 급진적 비판을 가하는 책들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사회 경제 역사 철학 언어 여성문제 등에 대한 깊은 통찰을 남겼다. 2002년 12월 2일 독일 브레멘에서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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