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의 커튼>이나 박웅현의 <다시 책은 도끼다> 등 여러 곳에서 인용되었던 고전 <돈 키호테>를 읽었다. 유년 시절 인형극이나 만화를 통해 파편적으로 만났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이 소설을 완독 했다. 학창 시절 수많은 추천도서를 많이 읽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늘 남는다. 그랬다면 조금 더 세상을 이해하고 삶을 살아가는 지혜가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른 법이다. 느지막하게 시작된 독서에 대한 관심과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호기심은 소소한 낙이 되었다.
저자 세르반테스의 삶을 알면 <돈 키호테>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다. 소설을 모두 읽고 나면 마지막에 '작품해설 및 작가 연보'가 나온다. 세르반테스가 생계를 위해 글을 쓰기도 하고, 추기경의 시중 역할도 하고, 유명한 레판토 해전에서 부상도 입고, 해적에게 잡혀 노예 생활도 했고, 스페인 무적함대의 식량 조달인으로 나섰으나 전쟁의 패배로 직업을 잃었고, 부정 사건으로 감옥에도 갔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이 모든 경험이 1605년에 출판된 <돈 키호테>에 녹아들었다.
1571년에 스페인은 신성 동맹으로 오스만과의 해전에 참전해 승리했다. 하지만 1588년 영국과의 해전에서 패하며 무적함대의 명성도 사라졌다. 스페인 국민들이 의기소침 해진 때에 <돈 키호테>가 출간되고 현실과 상상 속에서 살아가는 한 귀족의 삶은 즐거움을 주었을 것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돈 키호테'라는 인물에 대해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하며 살았다. 많은 곳에서 반복해서 인용되는 인물이라서 어림짐작으로 그럴 것이라라며 글을 읽어도 무난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점은 돈 키호테가 추앙하는 여인 '둘시네아'는 초반에 한 번 어떤 인물인지 언급되고 난 뒤로는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반면 시종 산초 판사와 애마 로시난테는 끝까지 돈 키호테와 함께 한다.
기사도 소설에 빠져 자신의 정체성을 기사로 재정의하고 현실과 괴리된 삶에서 모험을 찾아 떠나는 돈 키호테의 이야기가 큰 틀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내용의 반 이상은 돈 키호테가 아닌 주변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다. 대부분의 내용은 아름다운 여인과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들에 관한 것이다.
오늘날과 달리 전기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어 주로 사람들 사이에 이야기가 늘 중심이 되었을 시기의 이야기다.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은 일부 계층에 속하고 대부분은 문맹이었던 시대다. <돈 키호테>에서 대부분의 등장인물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나타난다. 그 이야기들이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오늘날 소설의 서사는 시종일관 인물과 사건이 지속되지만 <돈 키호테>는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700페이지가 넘는 장편이라서 조금은 지루한 감도 없지 않다. 하지만 세르반테스가 왜 이 이야기를 글로 썼을까 생각해 보며, 16세기의 스페인을 상상하기도 하며 읽다 보니 마지막 페이지다.
16세기의 경험으로 17세기에 출간된 책 <돈 키호테>는 18세기, 19세기를 거치며 긍정과 부정의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고전문학은 역사와 사회 등 다양한 점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우리는 다만 글을 읽으며 상상하면 된다. <돈 키호테>를 완독 했으니 앞으로 인용되는 글은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겠다.
아래는 책에서 남기고 싶은 문장을 인용했다.
이 귀족이 할 일이 없을 때마다(1년 내내 거의 그렇기는 하지만) 기사도 소설에 탐닉한 나머지 결국에는 사냥도 잊어버리고 재산 관리마저 잊어버렸다는 점이다. 기사도 소설에 대한 과도한 탐독과 호기심 때문에 경작지 마저 팔아버렸으며, 그렇게 해서 손에 넣은 기사도 소설들로 집 안을 채웠다. (10)
이 불쌍한 귀족은 책을 읽는 데 열중하느라 며칠 밤을 하얗게 지새우곤 했고, 낮에는 비몽사몽으로 지냈다. 그리하여 잠자는 시간은 극히 적고 읽는 것은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의 두뇌는 매우 건조해져 마침내 제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의 머리는 책에서 읽은 모든 것, 즉 마법을 비롯하여 논쟁, 전투, 결투, 사랑의 밀어, 연애, 고뇌 등으로 가득 찼으며, 이런 허구적인 이야기가 진실이라고 믿었고, 이 세상에서 이보다 더 확실한 이야기는 없을 거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11~12)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이름과 어울리며, 공주나 고귀한 여인에 알맞은 이름을 지으려고 고심한 끝에 그녀를 '둘시네아 델 토보소'라고 부르기로 했다. (15)
기회나 사태는 지금껏 보지도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법이다. (72)
참으로 강물은 건너 봐야 알고 사람은 지내봐야 안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요. (159)
시간이 지워버리지 못하는 기억이란 없으며, 죽음이 없애 버리지 못하는 고통이란 어디에도 없는 법이니라. (162)
우리 방랑 기사들은 지금껏 한 번도 자기가 묵은 여관에서 숙박비는커녕 물건 값 하나라도 지불한 일이 없음을 이 몸은 확실히 알고 있도다. 그러니 우리에게 바쳐지는 환대는 방랑 기사의 당연한 권리로다. 한겨울이든 한여름이든 도보든 기마든 굶주림과 추위와 더위와 목마름을 견디며 모든 무자비함과 고생을 참고 밤낮 없이 모험을 찾아 헤매는 노고의 보답에 대한 정당한 권리로다. (189)
산초여! 그대는 이 몸이 하늘의 뜻에 따라 언제나 입에 담아 온 그 황금 시대를 오늘날에 부활시키기 위해 이 철기 시대에 태어났음을 알아야 하느니라. 갖가지 위험, 대위업 혹은 용감한 사적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 바로 이 몸이니라. (240)
다만 방랑 기사는 그들의 잘못을 보지 않고 그들의 고역을 직시할 뿐 곤경에 놓인 자와 마찬가지로 그들을 구원할 뿐이로다. 이 몸은 처참한 불행에 놓인 일련의 인간을 희롱하여 이 몸의 종교가 이 몸에게 요청하는 바를 실천했을 뿐 그 밖의 일은 스스로 해결되리로다. (397)
독서습관 711_돈키호테_미겔 데 세르반테스_2014_신원문화사(230402)
■ 저자: 미겔 데 세르반테스
에스파냐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시인으로, 마드리드 부근 알칼라 데 에나레스에서 태어났다. 가족과 함께 각지를 전전하면서, 비정규적인 교육을 받았다. 1569년, 이탈리아에 건너가 추기경 G. 아쿠아비바의 시중을 들었으며, 그 후 레판토 해전에서 부상을 입어 왼팔이 불구가 되었다. 1575년 튀니스 원정에서 귀국하던 중 해적에게 습격을 당해 알제리에서 5년 동안 노예 생활을 했다.
1580년, 자유의 몸이 되어 귀국했지만 주위의 냉대와 극작의 실패로 불행을 겪은 그는 1587년 무적함대의 식량 조달인으로서 일했다. 하지만 밀 구입 건으로 교회와 시비가 일어나 파문되었고, 1597년과 1602년 공무상의 실책으로 투옥되기도 했다.
1605년 <돈 키호테> 제1편이 출간되었으며, 그 후 <모범 소설>(1613), <파르나소로의 여행>(1614), <신작 희곡 8편과 막간 희극 8편>(1615)을 발표했다. 그리고 1615년에 <돈 키호테> 제2편을 간행했다. 그 다음해 4월 23일, 셰익스피어와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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