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재미있게 읽었다며 강력히 추천한 책 <인간은행>을 읽었다. 호시노 도모유키의 대표적인 단편소설을 모아 놓았다. 저자의 소설은 처음 읽는다. 소설에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져 현실인 듯하다가 상상 속으로 점프해 들어간다. 세상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담겨 있다. 무색무취의 글이 독자에게 공감을 얻을 수 없다. 작가가 소화하고 배출하는 언어의 무더기들이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이 책이 그렇다. 책에 실린 단편 순서대로 나에게 던져준 생각거리들을 중심으로 포스팅한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출산 자녀 수 의무화에는 혼인 의무화도 포함되는데? 서른까지 스스로 상대를 발견할 수 없다면 집단결혼 시킨다고. 그리고 여자는 3년 이내에 임신 의무가 있는 거야.(27)
일본의 저출산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겨 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22년 3분기 기준 0.79명이다. 2021년 기준으로 한국은 0.81이고 일본은 1.34였다. 일본을 훨씬 능가하면서 계속해서 감소하는 추세다. 하지만 이런 추세를 반전시키려는 정부의 실질적인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
결혼을 기피하는 사회, 결혼 연령이 점점 높아지는 사회, 결혼해서도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가 대한민국이다. 집단결혼을 언급하고 여자는 결혼 후 3년 이내에 임신을 해야 한다는 의무까지 언급하는 것은 현실의 심각성을 소설에 담은 것이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조금은 희생해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의견을 개진해 본다. 앞으로 10년, 20년 뒤에 후회해도 돌이킬 수 없다.
사라진 노인이 어찌 되었는지 정말로 알고 싶은 녀석은 이 세상에 거의 없기 때문이야. 싸게 노인을 처리한다고 하면, 다 처리할 수 없을 정도로 신청이 들어오겠지. 그런 녀석들은 그 후에 일어난 일을 절대로 알고 싶지 않은 거지. 그렇다고 노인 간병으로 고통받아 본 적이 없는 녀석들이 관심을 갖겠어? 우리를 집어넣어 버리면 고령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거야. 이렇게 모두가 함께 손을 잡고 있는 이상, 진실을 밝힌다면 모두가 곤란하지. (37)
저출산과 함께 또 다른 사회적 이슈가 고령화다. 태어나는 아이들이 감소하는 반면 인구가 가장 많은 세대들이 고령층으로 진입하고 있다. 노인층의 비율이 늘어나며 간병을 필요로 하는 인구도 늘어난다. 사회가 부담할 여력이 되지 않아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 일본도 간병에 대한 부담이 얼마나 크면 소설처럼 10만 원에 돌봐주겠다는 업체에 마지못해 맡기겠는가. 일본보다 복지 시스템이 덜 갖춰진 우리나라 가계에는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인간은행>
소유 재산이 백만 진엔을 넘을 때마다, 강제적으로 1진카와 교환하게 되어 있습니다. 즉 진엔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백만까지입니다.(...) 간토 씨도 돈을 위해 돈을 버는 사람이 되었네. 진카로 바꾸는 것은요, 재산을 가지려면 사람의 목숨이 귀중한 것임을 느끼라는 뜻이에요.(57~58)
아아, 그것이야말로 내가 셸터를 싫어하는 이유였던 것이다. 밖에서 주워 오는 것이다. 인간은 곧 돈이니까. 나도 그렇게 주워 온 것이다. 은행 열매라도 줍듯이. 그렇게 주운 사람들에게 빚을 안기고 인간화폐로 만든다. 그러니 곧바로 인간화폐가 될 수 있는 빈털터리가 좋은 것이다. 신참이야말로 재원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인간센터는 커뮤니티 전체의 재산을 늘리면서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지금 센터 외부로 손을 뻗어 시를 집어삼키려 하고 있다. (70)
돈이 신이 된 사회를 살고 있다. 돈이 많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사람들에게 주입되고 있다. 작가는 인간의 존엄성이란 것도 돈으로 치환되는 사회를 경고하고 있다. 물물교환의 편리한 도구로 신뢰하며 사용하는 '돈'이다. 도구가 목적이 되었다. 돈이 없으면 자신이 '인간화폐'가 되는 사회, 돈이 있으면 많은 인간화폐를 둘 수 있다. 돈과 인간의 구분이 모호해진다. 두려운 사회다.
<스킨 플랜트>
사람들의 머리에 꽃이 피어나기 시작한 때로부터 3년 뒤에, 인류의 마지막 아기가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 아이는 친구가 없어서 쓸쓸한 삶을 살았을 테지요. 세상에서는 아기의 모습이 사라졌습니다. 꽃이 피면 동시에 숨이 끊어지는 고령자도 늘었습니다. 화장시키지 않고 그대로 땅에 묻으면 스킨 플랜트가 흙 속에서 모습을 나타내고, 흙 속에 뿌리내려 무덤을 만듭니다. (81)
생명공학의 발달로 몸에서 원하는 식물을 자라게 할 수 있는 사회가 된다. 더 나아가 식물이 사람의 양분을 흡수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식물의 생식이 가능해지면서 인간의 생식능력은 사라진다. 인류는 자신의 생식능력을 기꺼이 버리고 멋지고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만드는 쪽을 선택한다. 그리고 인류의 마지막 아기가 사라진다. 디스토피아적 상상이다.
사람이 죽어 흙에 묻히면 스킨 플랜트가 싹을 틔운다. 열매가 땅에 떨어져 싹이 나서 새롭게 열매를 맺는데 사람의 형상을 가진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땅에 떨어져 인간이 된다. 다만 생식능력이 상실된 인간이다. 인간과 식물의 주객이 전도된 세상이 되는 것이다.
<모미 초아요>
한류로서 세계에 파는 것은 남자 얼굴이나 몸인지도.(101)
대한민국은 외모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사회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많이 의식하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가정에서 학교에서 과도한 비교와 경쟁, 성적만을 중요시하는 분위기가 개개인의 자존감을 높여 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개성이 있고 존재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드러나는 숫자인 성적, 드러나는 외모, 드러나는 집과 자동차로만 비교하고 열등감과 우월감을 느낀다. 이런 사회 풍조를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얼짱과 몸짱의 세상이다. 저자가 언급했듯이 우리가 세계에 팔고 있는 것은 남자나 여자의 얼굴과 몸인지도 모른다.
<선배 전설>
나도 힘들지만, 아버지도 해고당한 거 알고 있어요. 나보다 먼저 해고당했으면서 감췄죠? 그래서 나는 집을 나왔어요. 주택론 갚을 돈이 없으니까 집 따위 팔아버리면 되잖아. 왜 나랑 어머니에게 밝히지 않는 거죠? 그렇게 못 믿겠어요? 내가 길바닥에서 지내는 게 부끄럽다고 했지? 내가 홈리스라고 말하니까 때렸죠? 홈리스는 누굴까요? 네? 홈이 없는 건 똑같잖아요! 중요한 사실을 밝힐 수 없다면 그건 자족이 아니죠! 가족보다 집이라는 건물 쪽이 중요한거니까, 홈이 없어진 거지. 그러니까 나도 홈리스가 된 거야. 아버지가 사실은 무엇을 잃었는지, 내가 정말 무엇을 잃었는지, 길 위에 나와서 제로 상태가 돼서 비로소 깨달았어! 이런 무의미한 건물, 부숴버리면 돼. 이런 집, 무너뜨리고 아버지도 어머니도 길 위에 나와서 일단 제로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는 거야. (151)
부동산에 대한 집착과 투기가 과도한 나라 대한민국을 비판하는 듯한 소설이다. 집을 가진 자들이 일하지 않고도 쉽게 자산을 불리는 것을 허용하는 나라다. 부동산과 얽혀 있는 건설사, 건설사가 주인으로 있는 언론, 그리고 부동산을 보유한 땅과 집 부자들이 하나의 카르텔을 형성하며 부동산 광풍을 이어온 것은 아닐까. <선배 전설>은 집을 가진 자와 집이 없는 자의 입장을 거꾸로 본 소설이다. 아래에 역자가 설명한 내용을 인용한다.
<선배 전설>에서는 빈부의 위치가 뒤집힌다. 집 없는 사람, 집 없이 살기를 자처한 사람이 사회의 다수이고, 집을 가진 자가 소수인 세상을 그림으로써 갖지 못한 자에 대한 멸시의 시선을 그대로 가진 자에게 돌려주기도 한다. (248)
<지구가 되고 싶었던 남자>
모리세는 커다란 해방감을 맛보았다. 인간다움에 넘쳐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결국 인간을 먹어버렸다. 그 후에도 멈출 줄 모르고, 흙인 모리세는 흙을 먹으며 흙을 낳고 살쪄갔다. 흙과의 경계는 이미 없어져버렸지만, 모리세는 둥글게 살쪄 있었다. 적색 거성처럼 비대하게 팽창되어 갔다. 지구의 모든 흙을 삼키고 암반을 삼키며, 그 아래 마그마와 맨틀을 삼킨다. 이윽고 금속 덩어리인 핵까지 삼키고 모리세는 지구 그 자체와 일체가 되었다. 모리세는 지구였다. (178)
가족이 있지만 아내와 딸은 위층에 살고 혼자 반지하에 살고 있는 인간적인 교류가 단절된 모리세는 우리의 모습이다. 반지하에 물난리가 나고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꿈과 현실이 뒤섞이면서 어느새 모리세는 지구가 된다.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기 어려운 소설이었다. 분해되었던 인류가 다시 하나가 된다는 의미인지...
<눈알 물고기>
에리카의 눈알 물고기들에게는 근사한 먹이였다. 눈알 물고기들은 계속 사쓰키의 입 주변에 무리 지어 다니며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이라는 말을 모조리 먹어치운다. 결국 사쓰키는 중얼거리던 말을 모조리 잃었다. 입을 다물었다. (...) 그리고 사람이 있는 곳엔 반드시 에리카의 눈알 물고기가 무리를 지어 언어를 쪼아 먹고 있는 것이다. (198~199)
이미 신체를 가지지 않은 바다생물, 눈이 된 고로와 사쓰키와 카피와 그 가족과 호크, 만난 적도 없었던 호크의 남자친구, 몇 년이나 전에 암으로 죽은 고로의 삼촌, 사쓰키의 할아버지 할머니, 그 밖에 고로의 인생에 관계했던 모든 사람이, 아니 고로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인생에 관계했던 사람들, 탄생 이후의 인류 모두가, 눈의 형태를 한 바다생물이 되어 그 하나하나가 개체인지, 점균처럼 개도 전체도 아닌 것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상태로 집을 나와 바다에 흩어지며 지구의 구석구석까지 펴져나간다. 이미 인간은 없다. (200)
저자의 소설을 여러 편 읽으면서 특징을 보게 된다. 처음에는 현실 세계로 시작하다 점차 SF적 상상의 세계로 나간다. 산 자와 죽은 자가 모두 눈알 물고기가 되어 바다생물로 하나가 된다. 작가의 상상력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쿠엘보>
아야코는 얼굴을 찡그리며 정말 시끄러운 까마귀, 하고 중얼거리더니, 방으로 돌아가 창문을 꽝 닫았다. 그 손가락의 손톱이 너무 길어진 것까지 내 눈에는 선명하게 보였다. 근시이며 노안일 터인 내 눈에.(220)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도 다른 편과 비슷하게 급격하게 변한다. 까마귀의 감시를 받고 있는 주인공이 어느 순간 높이 올라가서 알을 낳고 까마귀로 변한다는 내용이다. 근시에 노안까지 있지만 멀리 있는 아내의 손톱의 길이까지 알아볼 정도로 새의 눈을 가졌다는 것을 암시한다.
최근에 읽었던 책들은 모두 책의 뒷부분에 해설이 있어 책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인간은행>도 동일했다. 작가의 의도를 이해하기 어려운 소설들이었는데 해설을 읽으며 조금은 해소할 수 있었다. 해설 부분에서 저자 호시노 도모유키에 대해 설명한 부분을 인용했다.
호시노는 자주 데칼코마니와 같은 미러링을 통하여 인류의 존재 방식을 묻는다. 그 미러링은 때로 공간의 반전, 시간의 반전을 의미하기도 하고, 젠더, 빈부, 내셔널리즘의 반전을 가져오기도 한다. 젠더, 빈부, 내셔널리즘에 대한 강력한 문제의식은 호시노의 주요 이슈인 동시에 현생인류의 존재론적 화두이다. (247)
에리카는 사람의 눈 옆을 서성이며 신문, TV, SNS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문자를 먹어버린다. 혼잣말도 먹어버린다. 그리하여 고로는 소리 없는 세계, 바닷속 같은 세계로 빠져든다. 그리고 지금까지 사용했던 언어가 아닌 '뭐라 부를지 알 수 없는 존재 방식으로 응축되고 농밀한 의미의 덩어리가 눈뿐인 전신을 통해 교환' 되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어느새 신체를 갖지 않은 존재가 되어 모든 사람의 인생에 관계했던 사람들, 탄생 이후의 모든 인류와 하나가 된다. <지구가 되고 싶었던 남자>의 마지막 부분을 상기시키기도 하는 이 장면은 우리가 인지하고 욕망하는 세계가 나 하나만의 것이 아니라 '탄생 이래 모든 인류'가 쌓아온 역사 속에서 얻어진 세계임을 말해 준다. 그리고 무수한 네트워크로 이어진 오늘날의 지구 세계를 의미하는 듯도 하다. (251)
호시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며 사상가다. 새롭고도 친근한 이야기들이 때로 에로틱하게, 때로는 SF적인 호기심을 자극하며 흥미진진 펼쳐진다. 그는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안고 있는 크고 작은 모순을 파헤친다. 멜랑콜리에 호소하지 않고, 자극을 연료로 하지 않으면서 때로는 긴 호흡으로, 때로는 긴박한 호흡으로 인간의 내면을 두드리며 설렘 뒤에 성찰을 주는 작가다. 남녀 간의 하이어라키, 내셔널리티에 대한 거부, 인간과 식물, 쾌락과 윤리, 거짓과 진실의 경계, 빈부, 안과 밖... 끊임없이 전복시키고 역전시키며 반전을 꾀한다. 그는 상상력을 무기로 하는 게릴라다. (252~253)
독서습관685_인간은행_호시노 도모유키_2020_문학세계사(230125)
■ 저자: 호시노 도모유키
1965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태어나 세 살 때 일본으로 귀국, 도쿄 인근을 옮겨 다니며 살고 있다. 대학 졸업 후에는 2년 6개월간 신문사에서 기자로 근무했고, 1990년대 초 멕시코로 유학을 떠났다. 1995년에 귀국한 뒤에는 자막 번역가 등으로 활동하다가 1997년에 <마지막 한숨>으로 미시마유키오상, <판타지스타>로 노마문예 신인상, <오레오레>로 오에겐자부로상, <밤은 끝나지 않는다>로 요미우리문학상, <호노오>로 다니자키준이치로상을 수상했다. 최신작으로 <주문> <어수룩한 사람> 등이 있다. 다시 태어난다면 난초로 태어나길 희망한다.
'독서습관' 카테고리의 다른 글
[686]밀란 쿤데라 커튼①_소설을 둘러싼 일곱 가지 이야기 중 연속성의 의식과 세계 문학 (0) | 2023.01.28 |
---|---|
[687]스페인 기행①_부르고스 살라망카 아빌라 마드리드 (0) | 2023.01.28 |
플로베르의 앵무새_플로베르의 인생과 문학에 대한 정보를 담은 소설 (2) | 2023.01.24 |
[682]시대를 훔친 미술⑥_민족주의 대공황 그리고 전쟁 (0) | 2023.01.19 |
[682]시대를 훔친 미술⑤_전쟁과 혁명 중의 예술가 (0) | 2023.01.1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