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웅현의 <다시 책은 도끼다>에서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를 읽기 전에 입문서처럼 읽으면 좋다고 한 책이 <플로베르의 앵무새>다. 노란색 표지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는 선입견을 줬다. 하지만 첫 페이지부터 집중해야 했다. 주인공이 누구이고 실제와 가상의 세계의 구분이 모호했다. 기존에 귀스타브 플로베르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는 더더욱 소설의 흐름을 찾는데 시간이 걸렸다.
최근에 읽었던 모옌의 <열세 걸음>처럼 소설을 읽는 중에는 정리가 되지 않았지만 마지막에 있는 '해설' 부분을 읽고 소설의 구조가 머릿속에 정리됐다. 이 책은 플로베르란 19세기 작가의 삶과 그의 책에 대한 정보를 잘 담고 있다. 그래서 플로베르의 작품을 읽기 전에 읽으면 좋은 필독서라고 하겠다. 책에서 여러 번 인용된 <마담 보바리>, <감정 교육>, <부바르와 폐퀴셰>는 플로베르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해 읽어야 할 책이 되었다.
해설 부분 중 이 책을 잘 설명하는 곳을 인용했다.
<플로베르의 앵무새>(1984)는 이른바 메타픽션의 대표작으로 포스트모더니즘 작가들의 발상과 기법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걸작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다. 예술은 인생을 반영하고 역으로 예술은 인생을 형성한다. 예술과 인생의 오묘한 관계를 파고드는 이 작품은 반스 특유의 감각과 재치, 독창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301)
<플로베르의 앵무새>는 19세기 프랑스 소설가 귀스타브 플로베르에 대한 영국의 퇴역 의사 제프리 브레이스웨이트의 집념에 가까운 탐구 이야기이다. 그의 아내가 사망하고 나서, 브레이스웨이트는 플로베르와 관련된 유적 또는 유물을 찾아 프랑스를 방문한다. 프랑스 북서부의 노르망디 지역에 있는 플로베르의 고향 루앙 시를 5일간 방문하는 것이 이 소설의 기본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소설의 제목이 시사하듯 브레이스웨이트의 주요 목적은, 플로베르가 그의 작품 <순박한 마음>에서 여자 주인공 펠리시테가 소중히 여겼던 애완동물 앵무새의 이야기를 쓰면서 영감을 얻기 위해 그의 책상 위에 놓고 있었다는 박제 앵무새를 확인하는 것이다. 반스는 플로베르를 좇는 주인공을 통해 인생과 예술의 관계, 전기적 진실의 모호성, 결혼과 사랑의 의미, 나아가서 과거의 포착 가능성 그리고 진보의 문제 등 폭넓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302)
어떤 이야기가 있고, 인물이 소개되고, 명확한 시작과 끝이 있는 소설을 기대하는 독자에게 이 소설은 기괴하기 짝이 없다. 전통적인 플롯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앵무새의 신비와 브레이스웨이트의 결혼 이야기뿐이다. 전자는 사실에 입각한 이야기이고, 후자는 완전한 허구이지만 이것들은 모두 부차적인 이야기일 뿐이고, 이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플로베르의 인생에 대한 전기적 정보와 그의 문학에 대한 비평적 에세이이다. (304)
<플로베르의 앵무새>를 읽으며 작가 줄리언 반스의 박식함에 놀라게 된다. 소설을 쓰기 전에 플로베르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입수하고 어떤 짜임새로 글을 만들어 갈 것인지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되어 만들어진 작품이다. 읽기 쉬운 소설은 쓰기도 쉽겠다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어려운 소설은 따라가기도 힘들지만 그런 글을 만들어낸 작가가 대단해 보인다.
소설의 내용 중에는 플로베르의 삶과 관련된 장소와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는 진실이다. 하지만 소설을 이끌어가는 브레이스웨이트는 허구의 인물이다. 하지만 마치 작가 자신이 설명해 가듯이 자연스럽다. 처음에는 브레이스웨이트가 실존인물인지, 그리고 어디까지가 그의 말인지 혼란스럽다. 그래서 조금은 어려운 소설이다.
아래는 책에서 좋은 글이라고 생각되어 인용했다.
줄어들기만 하는 펠리시테의 사랑의 대상들 가운데서 마지막으로 남는 것이 앵무새 룰루이다. 시간이 흘러 그 새도 죽고 펠리시테는 그것을 박제로 만든다. 그녀는 자신의 곁에 그 사랑스러운 유물을 간직한다. (23)
1846년. 귀스타브의 아버지가 죽고, 이어서 사랑하는 누이동생 카롤린이 21세의 나이로 죽게 되자 귀스타브는 조카딸의 대부 역할을 맡게 된다. 일생을 통하여 그는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으로 계속 상처를 받는다. (42)
1850년. 이집트에서 귀스타브는 매독에 걸린다.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고 살이 찐다. 이듬해, 로마에서 그를 만난 플로베르의 어머니는 변해 버린 아들을 좀처럼 알아보지 못했고, 그의 성격이 매우 거칠어졌음을 발견한다. 중년에 접어든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썩어 가기 시작한다.> 몇 년이 지나면 그의 이는 하나만 남고 모두 빠질 것이다. 수은 치료를 받았기 때문에 그의 침은 언제나 새까맸다. (43)
삶 속으로 뛰들면, 당신은 삶을 명확히 보지 못한다. 당신은 삶 속에서 지나치게 고통을 받든가, 아니면 지나치게 즐기게 된다. 예술가란, 내 생각에 자연을 벗어난 어떤 것, 괴물과 같은 존재이다. 하느님이 예술가에게 가하는 불행은 예술가가 고집스럽게 자신이 괴물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데서 온다.(...) (76)
이제까지 우리는(그 역시 아마 그랬을 것이다) 짙은 색 곰들, 즉 미국의 누런 곰, 러시아의 검은 곰, 사보이의 붉은 곰을 상상해 왔다. 그러나 1845년 9월, 귀스타브는 단호하게 자신은 <흰곰>이라고 선언한다. (...) 흰곰 이외의 다른 곰은 인간들에게 이용되었다. (80~81)
스타키 박사는 일깨워 주는 것이 많은 이 구절에 대해 알지 못했던 것 같다. 결국 스타키 박사는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자신에게 많은 돈벌이를 제공해 준 게 틀림없는 한 작가를 오히려 작가를 오히려 자기가 주인인 것처럼 소홀히 대한 것이다. 단지 그 사실이 나를 화나게 만든다. (125)
<예술가란 자신이 존재한 적이 없다고 후세가 믿도록 노력해야 한다.> 종교가에게 있어 죽음이 육체를 소멸시켜 영혼을 육체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라면, 예술가에게 있어 죽음은 인간을 소멸시켜 작품을 작가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다. (133)
한 인간의 삶이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렇다고 한 인간의 삶에서 성공적으로 숨겨진 것 또한 전부는 아니다. 한 인간의 삶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거나 성공적으로 숨겨진, 이제는 믿을 수 없는, 거짓들이 전부는 아니다. 실현되지 못한 것 또한 삶이다. (191~192)
즉 현재는 과거가 정치적으로 만족스러웠다고 판결함으로써 과거를 보호하려 함과 동시에 과거가 현재를 추어 주고, 등을 두들겨 주면서 좋은 일을 계속하라고 격려해 주기를 바란다. (206)
가장 위대한 애국심이란 자기 나라가 수치스러운 일, 어리석은 짓, 옳지 못한 행동을 할 때 그것의 부당함을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작가는 국경을 초월하는 포용력이 있어야 하고 성격상 나라에서 버림받은 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는 분명하게 볼 수 있다. 플로베르는 항상 소수의 편, <베두인족, 이교도, 철학자, 은둔자, 시인> 쪽에 서 있었다. (208)
플로베르는 진리의 결과를 외면하지 말고 직시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몽테뉴와 마찬가지로 의심의 베개를 베고 잠잘 것을 가르친다. (212)
(...) 그것을 역사적 상상력을 소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그저 한 세계의 시민이 아니라 모든 시대의 시민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을 플로베르는 <기린이나 악어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살아 있는 모든 것과 하나님 안에서 형제가 되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런 것이 바로 작가이다. (215)
형식은 사고의 육체(이 낡은 비유는 이미 플로베르 시대에도 진부했다) 위에 걸친 외투가 아니다. 형식은 사고의 육체 그 자체이다. 내용 없는 형식이 없듯이, 형식 없는 내용은 상상할 수 없다. 예술의 모든 것은 어떻게 표현되는가에 달려 있다. (216)
부예가 귀스타브의 문학적 분신이었다면, 뒤 캉은 그의 사회적 분신이었다. 그의 회상록에서 귀스타브의 간질을 언급한 후 문학계에서 추방당했다. (246)
장 폴 사르트르. (...) 단지 혼자 있기를 바랐던 귀스타브를 끊임없이 괴롭혔던, 루이즈 콜레 같은 지식인. (248)
실로폰. 생상스는 그의 <죽음의 무도>(1874)에서 뼈들이 덜컹대는 소리를 내기 위해 이 악기를 사용했다. 귀스타브가 그 소리를 들었더라면 즐거워했을 것이다. (251~252)
나는 쥘 드 공쿠르가 천천히 무너져 가는 것을 생각한다.(...) 나는 모파상이 같은 병으로 무너져 가는 것을 상상한다. 미친 사람에게 입히는 구속복을 입고 파시의 블랑슈 박사 요양소로 실려 가고, 블랑슈 박사는 자기에게 온 유명한 환자의 소식을 파리의 사교계에 알려 그들을 즐겁게 한다. 보들레르 역시 똑같이 잔혹하게 죽어 간다. 언어 상실증에 걸린 그는 신의 존재에 대해 나다르와 논쟁하며 말없이 석양을 가리킨다. 다리를 절단당한 랭보는 남아 있는 팔다리도 서서히 감각을 잃어 가자 그 자신의 천재성을 스스로 거부하고 절단하며 - <시詩는 개똥이다>라고 말한다. 또 알퐁스 도데는 <45세 장년에서 금방 65세 노인이 되어> 관절염에 걸리고, 하루 저녁 동안 원기 있고 재치 있게 되려고 자신이 직접 다섯 대의 모르핀 주사를 연달아 놓고, 자살의 유혹에 빠졌다가 <그러나 인간은 자살할 권리가 없어>라고 말한다. (265~266)
연인들이란 하나의 영혼에 두 개의 몸을 가진 샴쌍둥이와 같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먼저 죽으면 살아남은 자는 시체를 끌고 다녀야 한다. (268)
비평가! 천재들을 모독하고 강탈하며, 천재들에 빌붙어 사는 영원히 평범한 사람들! 가장 훌륭하고 예술적인 책을 난도질하여 넝마 조각으로 만드는 풍뎅이 족속들! 나는 인쇄물과 인쇄물의 오용에 너무나 넌더리가 나서 황제가 내일이라도 모든 평론의 인쇄를 금지시킨다면 파리까지 무릎을 꿇고 가 그의 엉덩이에 감사의 입맞춤을 하겠다.> - 루이즈 콜레에게 보낸 편지, 1853년 7월 2일 (274)
독서습관684_플로베르의 앵무새_줄리언 반스_2005_열린책들(230124)
■ 저자: 줄리언 반스
1946년 영국 중부의 레스터에서 출생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근대 유럽어학을 공부한 반스는 1967년에서 1972년까지 3년간 <옥스퍼드 영어 사전> 증보판을 편찬했으며 이후 <뉴 스테이츠먼>과 <뉴 리뷰> 등의 잡지에 평론을 기고하는 한편 문예 편집자로도 일했다. 탄탄하게 다져진 공력을 드러낸 첫 장편소설 <메트로랜드Metroland>(1980)로 서머싯 몸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단한 줄리언 반스는 이후 <그녀가 나를 만나기 전에 Before She Met Me>(1981), <플로베르의 앵무새Flaubert's Parrot>(1984), <태양을 바라보며 Starting at the Sun>(1986) 등 10권의 장편소설과 2권의 단편집, 그리고 여러 권의 수필집을 현재까지 펴냈다.
19세기 사실주의의 대가 플로베르가 한 작품을 쓸 때 영감을 얻었다는 박제 앵무새를 모티프로, 플로베르라는 거장을 다루는 평전의 외양을 띠고 있는 소설 <플로베르의 앵무새>는 거장에 대한 창의적인 평전이자 예술과 비평의 관계, 창작자와 수용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수용 미학과 그 자장 안에서 벌어지는 긴장에 대한 정신 분석적 탐구이기도 하다. 깊이 있는 인문학적 지식과 현대적인 다양한 형식의 실험이 잘 결합된 이 소설은 전 세계적인 비평적 지지를 이끌어 내며 줄리언 반스를 현대의 중요한 작가로 부상시킨 계기가 된 작품이다.
역사와 진실, 그리고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들을 진지하고도 독특한 시각에서 다룬 줄리언 반스의 작품 세계에 대해 세계 각국은 만장일치의 찬사를 보내는데, 1986년 프랑스에서 메디치상, 같은 해 미국 문예 아카데미에서 수여한 E. M. 포스터상, 1987년 독일에서 구텐베르그상, 1988년 이탈리아에서 그린차네 카부르상, 1992년 다시 프랑스에서 페미나상을 수상했고, 1993년 독일의 FVS 재단에서 수여한 셰익스피어상, 그리고 2004년에는 오스트리아에서 수여한 오스트리아 국가 대상 등을 수상했다. 프랑스 정부는 이례적으로 세 차례에 걸쳐 줄리언 반스에게 1988년 슈발리에 문예 훈장, 1995년 오피시에 문예 훈장, 2004년 코망되르 문예 훈장을 서훈했다.
줄리언 반스는 현재 런던에 살면서 나이와 함께 더욱 원숙해진 시각과 여전히 왕성한 창작력으로 작품을 집필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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