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 본성을 고민한다면 <돈키호테>와 같이 비키치 즉 산문적이어야 한다
책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어떤 책은 어렵지만 다른 책을 먼저 읽었을 때 이해가 쉽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읽기 전에는 밀란 쿤데라의 <커튼>을 입문서처럼 읽으면 좋다. 또한 저자는 <마담 보바리>를 읽기 전에 <플로베르의 앵무새>를 읽으면 좋다고 추천한다.
사실 매주 몇 권의 책을 읽고 소감을 올리는 습관을 만들었지만 이런 조언은 처음이자 아주 유익하다. 많은 책을 읽으려고만 할 게 아니라 속도를 줄이고 정독을 하며 저자의 생각을 읽어가는 태도도 흡수해야 할 조언이다.
'커튼'이 무슨 의미인가 싶었는데 결국은 신화 속 인물들처럼 그들의 인간적인 실제의 삶의 모습을 걷어내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을 말한다. 가려주는 커튼이다. 하지만 돈키호테의 인간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세르반테스의 태도는 커튼을 없애고 있는 인간적인 연약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책을 읽으며 이런 관점에서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운다. 좋은 관점을 얻었다.
<마담 보바리>를 처음 읽은 건 고등학교 때였습니다. 그 뒤 한참이 지나서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의 <플로베르의 앵무새>를 읽고 다시 읽었죠. 이 책은 플로베르가 한 작품을 쓸 때 영감을 얻었다는 박제 앵무새를 찾아 작가의 고향 루앙을 방문하는 한 은퇴 의사의 이야기인데요. 이 책을 읽고 나니 <마담 보바리>가 완전히 다른 책이었어요. (...) <돈키호테>도 <커튼>을 읽고 들어가면 분명 다른 지점을 발견해낼 것 같습니다. (219)
세르반테스는 전설의 방랑 기사로 남고 싶었던 주인공을 높은 곳이 아닌 낮은 곳, 즉 산문의 세계로 보냈어요. 치통의 세계로 보낸 겁니다. 커튼 앞은 삶의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모습들, 즉 총상 후유증인 비 오는 날의 류머티즘 같은 것들은 전부 다 걷어내 버려요. 그런데 어떤 작가가 대담하게 이 모든 걸 다 소설 속으로 끌고 들어오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거죠. 밀란 쿤데라는 우리가 아는 신화와 <돈키호테>를 비교합니다. 신화 속 주인공들은 신화 속에서 그들의 구체성 혹은 육체성이 전혀 언급되지 않습니다. 돈키호테와 정반대의 인물들인 겁니다. (221)
비키치는 산문적인 것, 키치는 운문적인 것입니다. 운문적이라는 말은 걷어낼 것은 걷어내고 커튼 앞에 등장시킨 멋진 부분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치통 때문에 고생하는 모습 또한 빼놓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는 것을 산문적이라고 얘기하는 거죠. (222)
인간 본성을 고민한다면 이런 내용들을 고민하는 게 맞죠. 그런데 그 이전의 소설은 커튼을 드리우고 인간 본성을 드러내는 것과는 거리가 먼 얘기를 했습니다. 아름다운 모습만 보여주면서 말이죠. 그 커튼을 거두기 위해 세르반테스나 필딩 같은 소설가들이 노력한 것입니다. (230)
- 과학은 Better를 추구하고 예술은 Different를 추구!
과학은 과거를 바탕으로 더 나은 것을 추구한다. 그리고 과거의 것은 잊혀지고 버려진다. 하지만 예술의 세계는 기존과 다름을 추구한다. 그렇게 때문에 모든 것이 가치를 지니고 살아남는다. 아주 명쾌한 문장으로 이해되었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이전의 대가들과 다른 음악이나 미술을 추구하기 위해 특이하다고 할 정도의 작품을 보여준 것이구나 싶다.
과학이 추구하는 것이 '더 나은 better'의 세계라면 예술이 추구하는 것은 '다른 different'의 세계입니다. 남들과 어떻게 다른 것이냐. 과학의 역사와 예술의 역사 사이의 차이도 참 재미있지요? (234~235)
자기가 느낀 거예요, 간장게장에 대해서, 담쟁이에 대해서, 흐르는 강에 대해서, 미국미역취꽃에 대해서 시인 자신이 느낀 심상을 독자의 심중에 집어넣고 싶은 거예요. 중요한 건 내가 느낀 거죠. 객관적인 대상을 다루는 데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시선을 보여주죠. 그게 서정입니다. (246)
아직 플로베르의 소설을 읽지 않으셨다면, 혹시 읽으셨더라도 줄리언 반스의 <플로베르의 앵무새>를 읽고 플로베르의 책들을 읽어보세요. 이 책 좋습니다. 플로베르는 무척 건조한 글을 썼는데 그 책을 보면 왜 그런 글을 썼는지에 대한 이유가 나옵니다. "하찮은 것 하나라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이 작가다."라는 플로베르가 제자 모파상에게 한 이야기도 유명하죠. 플로베르는 자신의 서정을 파괴한 작가입니다. (248)
- 카프카에게는 상황이 중요하다.
카프카의 책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상황'과 '배경'을 설명한다. 카프카의 책에서는 거대 행정조직과 K라는 사람이 등장한다. 이는 개개인의 등장인물이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그 사람이 마주치는 '상황'이 중요한 구성요소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카프카의 책을 읽어야 이해가 쉽게 되겠다.
카프카 이전까지는 성격극이에요. 이 사람의 이런 성향, 이런 배경 때문에 이런 사람을 만나서 이런 관계를 형성하고 이렇게 됐는데 하면서 이야기가 흘러가는 거죠. 여기에서 상황은 배경으로 물러나 있어요. 그런데 카프카는 상황을 앞으로 내세웁니다. 이것이 카프카에게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카프카의 소설에는 전부 같은 소재가 등장하는데 거대한 행정조직과 K라는 사람이에요. (...) 그 사람의 성격이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소설을 구성하는 건 K라는 사람이 직면한 '상황'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K의 성격은 중요치 않아요. 이게 카프카의 소설 쓰기입니다. (250)
어떤 현실이 전혀 부끄러움 없이 되풀이된다면, 그 반복되는 현실에 직면한 사상은 결국 언제나 입을 다물게 되는 법이다.(254)
-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이미 읽었기에 저자의 설명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 이슬람 무함마드 모욕과 <종교의 종말>
살만 루슈디가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죽을 수 있는 위험에 처한 이야기는 <종교의 종말 The End of Faith>에서 읽었던 내용을 떠올리게 한다. 과학문명이 발달한 현재도 종교가 과거에 머물러 있어, 코란이나 성서에 나와 있는 문구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며 이를 신봉한다.
중세 시대에 교황의 권위를 유지했던 성서의 해석이 오늘날에는 누군가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인간의 생명을 경시하며 살인을 허용하는 쪽으로 활용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면서 인류가 극복해야 할 과제다.
https://bandiburi-life.tistory.com/1723
살만 루슈디는 <악마의 시>로 더 유명해졌습니다. <한밤의 아이들>은 1981년에 출간됐고, <악마의 시>가 1988년에 발표됐죠. 그 책에 이슬람 무함마드를 모독하는 내용을 썼다가 파트와(이슬람 범에 저촉되는지 묻는 이슬람 판결)에 의해 살해 위협을 당합니다. 전 세계 모든 이슬람교도들에게 알라의 이름으로 살만 루슈디를 죽여도 좋다는 살인 명령이 떨어진 것이죠. 실제로 전 세계 이슬람인들이 이 책을 번역한 사람을 잡아내고, 이 책을 파는 서점을 폭파시키는 등 난리가 납니다. (295)
이 책은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읽지 않거나, 사랑에 빠지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읽기 쉽지 않지만 일단 읽으면 사랑하지 않기가 쉽지 않습니다. 1947년 8월 15일, 인도 독립의 순간에 태어난 신비로운 능력을 지닌 1001명의 아이들, 인도 현대사와 맞물린 그들의 이야기가 마술처럼 펼쳐집니다. (297)
- <파우스트>는 각주를 꼭 읽어야 문맥을 이해할 수 있다.
괴테의 <파우스트>는 유명한 책으로 다른 책에서도 많이 인용되지만 제대로 읽기는 쉽지 않다. 저자는 '각주'를 꼭 챙겨서 읽으라고 권한다. 각주는 건성건성으로 읽으며 스토리에 집중하곤 한다. <파우스트>는 문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수라고 하니 다시 읽을 때는 천천히 각주를 보며 볼 일이다.
<파우스트>를 열어보면 첫 장부터 각주가 나옵니다. 매 페이지마다 각주가 달려 있어요. 빨리 읽겠다고 이 각주들을 그냥 지나치시면 안 됩니다. <파우스트>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책이 그런데요. 각주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문맥을 따라가게 해주거든요. 글의 맥락을 모른 채 지나면 진짜 깊은 뜻을 알지 못한 채 그냥 읽는 게 됩니다. (...) 문장이 어떤 연유로 시작됐고 펼쳐졌는지 맥락을 잡을 수 있어야 작가가 하는 말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맥락 없이 읽으면 절대 제대로 잡을 수 없는 문장들, 작품들이 있습니다. <파우스트>도 그런 대표적인 작품 중 하나고요. (316)
<파우스트>를 쓸 무렵 괴테는 일흔이 넘은 노인이었는데, 젊은 시절 집필을 하다가 만 작품의 영감이 다시 떠오르니 청춘이 된 것 같다는 얘기죠. (...) 서연에는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려는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세 사람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갖다 놓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극단주, 극작가, 어릿광대 바로 이 셋인데요. 이들은 오늘날 자본가, 순수예술가, 대중예술가로 대치시켜보면 매우 흡사합니다. (318)
- 인생의 문장을 찾는다는 생각으로 한 문장씩 읽자
어려운 책이지만 세계적인 문학작품으로 생존하고 있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파우스트>를 읽는 방법에 대한 조언을 준다. 첫째, 인생에서 아하라고 할 만한 문장을 찾듯이 한 문장씩 읽는다. 둘째, 책의 내용이 우리의 삶에 반영될 수 있도록 체화하는 과정을 거친다. 지식이 지혜로 소화돼야 한다는 의미겠죠.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줄 만한 한 줄을 찾겠다는 목표로 이 책을 읽어보면 어떨까요? 전체적인 스토리를 따라가려고 하다 보면 지루하고 어렵겠지만, 이렇게 무릎을 치게 하는 한 문장, 한 문장을 건져내다 보면 책 읽기가 즐거워질 수 있어요. (328)
책을 읽었으면 그걸 내 것으로 만들어내야 하는 겁니다. 바로 이 지점이 1강에서 이야기했던 쇼펜하우어의 <문장론>에 나오는 독법과 연결됩니다. 읽었으면 그 내용이 체화되어서 나의 내면에서 진정 우러나와야 합니다. 모든 지식이 마찬가지예요. (333)
- 젊음을 유지하는 비법!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에게 전하는 젊음의 비결이 풍족한 삶을 살고 있는 현재의 우리에게도 적용할 수 있기에 흥미롭다. 집에서나 사무실에서 정신노동을 하는 인구가 많다. 육체노동도 과거보다 기계나 로봇에 의지하기에 많이 줄었다. 또한 음식에서도 16세기 전후 괴테의 시대보다 훨씬 잘 먹는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소식을 하고 다양한 운동을 하며 건강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제한된 음식과 육체노동이 <파우스트>에서 젊음을 유지 비법으로 소개되고 있다니... 젊음과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시대를 떠나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모두 청춘을 유지하고 싶어합니다. 방법이 있습니다. (...)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에게 알려준 젊음을 유지하는 비법은 바로 이것입니다.(345)
좋아요! 그건 돈도 안 들고,
의사나 마술도 필요 없는 요법이지요.
당장 저 바깥 들판으로 나가셔셔,
괭이로 갈고 땅을 파는 일을 시작하시고,
당신의 몸과 마음을
극히 제한된 생활권 안으로 국한하고,
가공되지 않은 음식으로 몸을 보양하고,
가축과 더불어 가축으로 살면서, 추수할 밭에다
몸소 거름 주는 일을 약탈이라고 언짢게 여기지 마시오.
이것이 믿을 수 있는 최선의 요법이니,
팔십 고령에도 당신을 젊게 유지해줄 것이오!
독서습관677_다시 책은 도끼다_박웅현_2016_북하우스(2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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