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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676]헬렌 켈러 자서전_사흘만 볼 수 있다면 ①_어린시절과 설리번 선생과 만남

by bandiburi 2023. 1. 4.

 시각과 청각을 잃어버린 아이를 알아가는 과정

  헬렌 켈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냐고 묻는다면 솔직하게 별로 없다. 청각과 시각 복합장애를 가졌지만 설리번 선생의 도움으로 좌절하지 않고 이를 극복한 삶을 살았다고 어렴풋이 아는 정도다. 뭘 어떻게 극복하고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구체성이 많이 떨어진다. 

  헬렌 켈러의 자서전인 이 책으로 그녀의 삶을 조망해 볼 수 있었다. 생후 19개월 만에 갑작스러운 열병으로 시력과 청력을 잃어버렸다. 손으로 글자를 익히고, 말하는 법을 배우며 대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장애인의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데 헌신했다.

그녀는 1880년 미국 남부 앨러배마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남북전쟁 당시에 노예제도 유지를 지지했다. 노예를 두고 살았고, 어린 시절 절친도 노예의 딸이었다. 새롭게 알게 된 부분이다.

그러는 사이 의사표현의 욕구는 점점 커져갔다. 내가 만들어 사용해온 신호가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는 데 그다지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이 갈수록 자주 드러났다. 그럴 때마다 상대방을 이해시키는 데 실패한 나는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고스란히 폭발시켰다. (38)

<얼음나라 임금님> 사건을 이렇듯 적지 않은 지면을 할애하여 옮기는 이유는 이 사건이 나의 삶과 교육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132)

이 모든 경험으로 인해 엄청나게 많은 새로운 용어들을 알게 되어 어휘가 풍부해졌다. 뿐만 아니라 박람회에서 보낸 3주를 통해 요정 이야기와 장난감을 좋아하던 어린아이가 살아 움직이는 현실세계의 실제성과 진정성에 눈을 뜨게 되었다. (141)


1887년 설리번 선생을 만나 세상과 소통을 배운다


복합 장애를 가진 딸이 스스로 자립해서 살 수 있도록 그녀의 부모는 여러 곳을 수소문한 끝에 설리번을 만났다.
1887년 헬렌 켈러가 7살이었다. 그녀를 이해하고 그녀의 입장에서 사물을 알아가도록 반복해서 설명해 주었다. 

컵에 담긴 물을 느끼며 '컵'과 '물'을 배운다. 복합 장애로 배우는 과정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설리번 선생은 섬세하게 답답해하고 난폭해지기도 하는 헬렌 켈러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그리고 그녀의 가이드에 따라 헬렌 켈러는 세상 속으로 한 걸음씩 나아갔다. 

우리는 사람들을 모방하며 말을 배운다. 시력과 청력을 잃은 사람은 혼자서 배울 수가 없다. 그래서 방법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설리번 선생은 헬렌 켈러에게 배움의 나침반같은 사람이었다. 주변 자연환경을 이용하고 손바닥에 글자를 써주면서 단어를 익히게 하고 문장을 만들게 도왔다. 바닷물 속에 들어가며 소금맛을 느끼고, 파도의 웅장함을 깨닫는다. 말하는 법을 연습하고 교정하며 정상적으로 발음하도록 도왔다.

지금은 비장애인들이 의도적으로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고 있진 않은지 자문해본다. 스마트폰과 수많은 앱이 우리를 둘러싼 자연 속에서 우리를 멀어지게 한다. 헬렌 켈러가 그렇게 보고 싶고 듣고 싶었던 환경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에 헬렌 켈러가 19세기의 그녀처럼 성장할 수 있을까. 경제적인 여력이 된다면 이곳에서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경제적인 여력이 없다면 희망은 많이 않다. 특히 설리번과 같은 스승을 만날 가능성은 의문이다. 모든 것이 자본과 연결되어 돈으로 환산되는 시대라서 그렇다. 사람에 대한 온정과 기다림의 미덕이 우리에게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생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날이 있다면 바로 이날, 내가 앤 맨스필드 설리번 선생님을 만난 날이다. 무엇으로도 측량할 길 없으리만치 대조적인 우리 두 삶이 이렇게 연결되다니. 생각할수록 놀라움을 금할 길 없다. 1887년 3월 3일 만 일곱 살을 꼭 석 달 남겨놓은 때였다. (45)

펌프가에서 있었던 이 사건은 내게 배움의 열의를 불어넣었다. 모든 사물은 이름을 갖고 있으며, 각각의 이름은 새로운 생각을 불러왔다. 집에 돌아오자 만지는 모든 것에서 생명의 떨림이 느껴졌다. 이제는 내가 사물을 이전과는 다른 태도로,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는 의미였다. (51)

1890년 봄 나는 비로소 말하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늘 소리 내어 말을 하고 싶었다. 어찌나 말이 하고 싶었던지 자주 한 손으론 입술의 움직임을 읽으면서 다른 한 손은 목에 댄 채 소리를 만들어내곤 했다. 소리는 낸다는 게 좋았다. 어떤 소리든 상관없었다. (107)

내가 부르는 소리에 동생 밀드레드가 달려오고, 내 명령 한 마디에 개들이 복종한다. 그걸 보고 내가 얼마나 기뻤을지, 그런 아이가 아니라면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누군가 나를 대신해서 말해주지 않아도 내 입에서 뱉어낸 말이 다른 이에게 전해지다니, 이는 내게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였다. 입 벌려 말을 할 때면 공연히 손가락에 담기느라 애를 쓰던 행복한 생각들이 낱말들에 담겨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111)

내게 충고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호레이스만학교의 사라 풀러 교장 선생님이었다. 나는 당장 그분에게 데려다 달라고 설리번 선생님을 졸랐다. 인자하고 애정이 넘치는 풀러 교장은 직접 나를 가르치겠노라 했다. 그리하여 나는 1890년 3월 26일, 드디어 말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110)

나는 진작부터 주위 사람들이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의사소통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듣지 못하는 아이도 말하기를 배울 수 있다는 걸 알기 훨씬 전부터 나는 내 의사소통 방식이 불만스러웠다. 전적으로 수화 알파벳에만 의지할 수밖에 없는 사람은 항상 그 제한된 한계 속에서 갑갑증에 시달린다. (108~109)

내가 열한 차례의 수업을 통해 습득한 요령만 가지고 나머지는 혼자 힘으로 헤쳐 나갔을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 또한 사실이 아니다. 설리번 선생님의 천재적 자질과 끊임없는 인내 그리고 헌신이 없었던들 자연스럽게 말하고 싶다는 내 소망은 아무런 진척이 없었을 것이다. (112)


 헬렌 켈러의 섬세하고 풍성한 문장에 놀라다

이 책을 보며 대필을 의심할 정도로 시력과 청력을 잃은 사람이 느끼지 못했을 시각과 청각에 대한 표현이 넘쳐난다. 그녀가 나이아가라 폭포에 갔을 때 사람들이 그녀에게 했던 말과 동일한 질문이다. 그녀가 얼마나 어휘를 많이 알고 그 어휘에 맞는 경험을 머릿속에 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어쩌면 두 가지 감각의 부재가 다른 감각의 민감도를 높여주었을 수도 있다.

그녀의 자서전의 내용은 상당히 섬세하다. 마치 촉각으로 느꼈던 사건들을 기억 속에 잘 간직하고 있다가 글로 쓸 때 봇물처럼 언어로 쏟아져 나오는 듯하다. 그녀는 노력으로 잃어버린 감각을 대신해 언어기능을 더욱 활성화했을 수도 있다. 눈을 감고 소리가 들리지 않는 상황을 잠시 상상해 본다. 후각과 촉각, 미각 그리고 이를 가공하는 두뇌로 생존해야 하는 상황 말이다.

설리번 선생이 자리를 비웠을 때, 헬렌 켈러가 나무 위에 앉아 있다가 느낀 공포감은 보지 못하는 공포다. 크고 작은 공포와 기쁨들이 기억의 회로를 활성화시키고 오랜 기간 흔적을 남겼을 것이다. 헬렌 켈러보다 건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고, 더욱 풍족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녀는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을까.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라고 하지 않을까.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아이가 대화의 즐거움을 알아가는 일은 정말이지 어려운 노릇이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가운데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을지 짐작되지 않는가? 그런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결코 말하는 사람의 의중이 담겨 있을 소리의 높낮이며 길고 짦음을 구별할 수 없다. 그뿐인가. 영혼의 거울이라고 하는 상대의 얼굴 표정조차도 볼 수 없다. (64)

앵무조개의 외투막이 물에서 흡수한 재료를 변화시켜 제 몸의 일부를 만들어내는 놀라운 작용을 하는 것처럼 사람들도 모아들인 지식의 파편으로 그 비슷한 변화를 수행하여 마침내 생각의 진주를 만들어낸다. (73)

내가 나이아가라 폭포가 준 놀라움과 아름다움에 감동받았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긴다. 그들은 묻곤 한다. "당신은 지금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음악 운운하는데 대체 그 모두가 당신에게 무슨 의미란 말입니까? 솔직히 일렁이는 파도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으르렁거리는 포효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대체 당신이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건가요?" 보았으면 또 들었으면 다 안 것인가. 다 설명한 것인가. 사랑이 무엇이며 종교란 무엇이고 또 선함이란 어떤 것인지 설명하는 것이 어려운 만큼이나 나이아가라, 이 대자연의 스스로 그러함을 설명하기 어려운 건 피차 마찬가지 아닐까 (136~137)

https://bandiburi-life.tistory.com/1743

 

헬렌 켈러 자서전_사흘만 볼 수 있다면②_문학은 나의 유토피아 나는 당당한 시민

'사흘만 볼 수 있다면'에 담긴 갈망! 헬렌 켈러에게 하루라도 보고 듣고 싶은 갈망이 얼마나 컸는지 느껴지는 '만약'이란 가정이다. 그런 소망을 가지고 살며 그녀는 아름다운 글을 썼다. 삼 일간

bandiburi-life.tistory.com


독서습관676_사흘만 볼 수 있다면_2019_사우(230105)


■ 저자: 헬렌 켈러 Helen Adams Keller

1880년 미국 엘라베마 주에서 출생. 19개월 만에 열병을 앓고 난 후 시력과 청력을 잃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삼중의 장애를 딛고 하버드 부속 래드클리프 대학을 졸업했다. 이후 전 세계 장애인들을 위한 사업에 평생 헌신했다.

헬렌 켈러는 풍부하고 예민한 감수성과 섬세하고 수려한 문장력이 빛나는 문필가이기도 했다. 그녀의 진정한 모습은 바로 그녀가 쓴 글 속에 살아 있다. 빛과 소리는 잃었지만 건강하고 활발했던 어린 시절, 설리번 선생님의 도움으로 들어설 수 있었던 지성과 학문의 세계, 그리고 자연과 인류에 대한 순수하고 솔직한 사랑, 이 모든 것이 헬렌 켈러라는 위대한 여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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