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흘만 볼 수 있다면'에 담긴 갈망!
헬렌 켈러에게 하루라도 보고 듣고 싶은 갈망이 얼마나 컸는지 느껴지는 '만약'이란 가정이다. 그런 소망을 가지고 살며 그녀는 아름다운 글을 썼다. 삼 일간 무엇을 하겠다는 내용을 보며 곧 우리가 소중히 여겨야 할 우선순위가 아닐까 싶다.
아, 만일 사흘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무엇을 할까요. (...) (268) (...) 내게는 후회나 그리움에 빠져 낭비할 시간이라곤 없습니다. 볼 게 너무나 많습니다. 첫째 날은 소중한 친구들과 추억이 깃든 물건에 집중했습니다. 둘째 날에는 인류의 역사와 자연에 몰두했습니다. 오늘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평범한 삶을 살펴보고 싶군요. (276)
가끔은 이 모든 것을 직접 보고 싶다는 갈망으로 가슴이 터질 듯합니다. 만지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즐거운데 직접 본다면 얼마나 더 아름다울까. 그러나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 더 적게 보는 듯합니다. 온갖 색채와 율동으로 가득한 세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가진 것을 감사히 여기기보다 갖지 못한 것을 갈망하는 모습이 어쩌면 인간적으로 보일 수 있겠지요. (263)
- 배움에 대한 즐거움과 갈망!
책의 곳곳에서 그녀가 지식과 정보를 습득하고, 소화하며 자신만의 언어로 재창조하는 능력에 수시로 감탄하게 된다. 그 원천은 배움에 대한 열정이다. 어린 시절부터 빠르게 체득하는 능력이 있었다. 장애를 가졌지만 세계 최고의 대학에 진학하겠다는 야망을 선포했다. 그리고 자신의 노력과 주변의 도움으로 성취했다. 헬렌 켈러의 삶은 나에게 새롭게 조명되는 시간이다.
1896년 10월 나는 래드클리프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예비학교에 해당하는 케임브리지여학교에 입학했다. 어렸을 때 웨슬리대학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꼭 대학에 갈 거야. 그것도 하버드대학엘 갈 거라고!"라고 말하여 친구들을 놀라게 했다. (152)
케임브리지학교를 다니면서 난생처음 나는 성한 귀와 눈을 가진 또래 소녀들과 어울리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159)
1897년 6월 29일부터 7월 3일에 걸쳐 나는 래드클리프에 들어가기 위한 예비시험을 치렀다. (...) 모두 합격했을 뿐만 아니라 독일어와 영어에선 우수한 성적을 받기까지 했다. (160)
이렇게 개인지도를 받는 것으로 대학입시 준비는 차질 없이 진행되었다. 이로써 교실에서 수업을 따라가기보다 개인지도를 받는 편이 훨씬 쉽고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서두를 일도 당황할 일도 없었다. (169)
나는 열심히 공부했다. 아름다움과 빛을 향해 활짝 열린 신세계가 내 앞에 있었다. 내게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일 능력이 있음을 나는 확신했다. 인간 정신의 놀라운 왕국 안에서 나 역시 누구 못지않은 자유인이요. 이 나라의 사람들, 경치, 풍습, 기쁜 일 슬픈 일 모두가 실제 세계를 알리는 살아 숨 쉬는 통역자들인 것이다. (175)
다른 학생들은 밖에서 웃고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나는 이렇게 꼼짝없이 들어앉아 못다 읽은 몇 페이지를 붙잡고 씨름해야 했다. 이 때문에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상해 몸이 빳빳하게 굳는 것도 모를 만치 긴장하고, 치밀어 오르는 반항심에 시달리는 날도 있었다. (179)
래드클리프에서 보낸 대학생활을 손꼽아 기다리던 시절, 내게 대학은 낭만 그 자체였다. 그러나 막상 닥치고 보니 낭만이 다 무엇이더냐. 낭만이 현실로 곤두박질치는 하루하루 속에서 나는 실제 해보려 하지 않았다면 결코 알지 못했을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 가운데 하나는 인내라는 값진 학문이다. 인내는 가르친다.
교육이란 우리가 시골길을 산책할 때 오감을 활짝 열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우리 안에 찾아드는 갖가지 인상을 받아들이는 것과 꼭 같다고, 그렇게 우리 안에 들어온 지식은 차고 넘쳐 깊이 있는 사고의 물결을 이루고 밀물처럼 밀려와 소리 없이 보이지 않는 영혼을 적신다. "아는 것이 힘이다." 아니, 아는 것이야말로 행복이다. 폭넓고 깊이 있는 지식을 소유함으로써 무엇이 참된 목적이며 어떤 것이 더 가치 있는 것인지 분별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188)
- 책을 읽으며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었다
시공간을 초월해서 인간에게 책이란 것은 영감의 원천이다. 또한 헬렌 켈러에게 독서는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장애를 뛰어넘어 세상을 알아가고 세상과 소통하는 통로였다. 그녀가 읽었던 몇 권의 책이 감상과 함께 소개된다. 매번 독서 감상평을 쓰고 있지만 헬렌 켈러의 풍부한 어휘력과 표현력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다.
그건 바로 이제껏 내가 책에 얼마나 많은 빚을 졌는가 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기쁨과 지혜를 얻었고,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쌓은 지식을 건네받았다. 책이 내가 받은 교육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말하라면 다른 누구보다 더욱 크다고 하겠다. (190)
돌이켜보건대 내가 책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소공자>를 읽으면서부터였다. (196)
<일리아스>의 아름다운 구절을 읽을 때마다 나는 이보다 더 갑갑한 게 있을까 싶으리만치 비좁은 내 삶이 처한 한계 상황을 뚫고 솟구쳐 오르는 또 다른 나를 의식한다. 육체의 결함을 잊은 채 점점 더 높이 더 멀리 올라 아아, 마침내 드넓은 하늘이 나의 것, 내 세상이다. (201)
- 문학은 나의 유토피아요, 나는 그 나라의 당당한 시민!
너무나 멋진 표현이다. 현실에서 장애를 가진 헬렌 켈러에게 문학의 세상에서는 장애는 문제 되지 않는다. 눈과 귀를 가졌지만 주변에 민감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집중하고 귀를 기울여서 자세히 볼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우리는 축복인 것을 안타깝게도 알지 못한다. 과도하게 눈과 귀에 의존하며 다른 감각은 성장하지 못한다. 우리는 현실에서도 문학의 세계에서도 당당한 시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알고리즘의 노예가 되고, 책과는 담을 쌓으며 우리의 감각을 잃어버리고 있진 않은가.
한 마디로 말해서 문학은 나의 유토피아요, 나는 그 나라의 당당한 시민의 한 사람이다. 내가 나의 유토피아인 책의 나라에서 내 친구들과 친교를 나누는 데에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내 육체적 장애 따위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214)
각 개인의 잠재의식 속에 이러한 기억, 다시 말해 푸른 대지와 졸졸 흐르는 물에 대한 인상이 남아 있으므로 혹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게 되더라도 지난 세대의 눈과 귀를 거쳐 내게 이른, 이 귀하고 복된 선물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 타고난 능력이야말로 제6감, 보고 듣고 느낀 바를 한데 묶는 여섯 번째 감각, 즉 영감이 아닐까. (221)
우리 몸엔 여러 기관이 있건만 오로지 눈과 귀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내가 도시의 보도를 걷는 것과 시골길을 걷는 게 다르다는 것, 더욱이 다르기만 한 게 아니라 정말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그들은 내가 온몸으로 내 주변 상황에 반응한다는, 다시 말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리는 것 같다. (223)
- 뛰어난 사람들과의 교류는 인생의 축복
헬렌 켈러가 아무리 열정이 있어도 주변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면 그녀의 이름은 기억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뛰어난 사람들과의 교류는 책과 함께 그녀의 삶을 풍성하게 해 줬다. 현재의 우리에게도 시사점이 많다. 온라인 속에서 많은 시간을 소비하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오프라인에서의 인간적 교류가 의미하는 바는 크다.
내 인생에서 너무도 복된 일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많은 뛰어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는 점을 들고 싶다. 브룩스 주교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와 나누는 우정이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지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241)
-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보다 눈으로 보는 사람이 더 적게 본다?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 우리는 그 존재의 가치를 깨닫는다. 우리의 몸이 아플 때 건강할 때가 행복했음을 안다. 눈으로 볼 수 있지만 주변의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 없다. 반면에 헬렌 켈러는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더욱 많은 것을 보고 있다. 우리는 시력과 청력이 살아 있지만 제대로 보고 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헬렌 켈러는 집중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 아름다움을 느끼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의 능력과 감각을 사용하는 데도 그러한 무감각이 작용하고 있지 않은가 걱정이 됩니다.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만이 청각의 가치를 알고,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만이 시각에 담긴 다채로운 축복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각이나 청각이 손상되는 경험을 못한 사람은 자신이 갖고 있는 축복받은 능력을 잘 활용하지 못합니다. 눈과 귀는 집중하지도, 제대로 감상하지도 못하면서 모든 풍경과 소리를 흐릿하게 받아들입니다. (261)
https://bandiburi-life.tistory.com/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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