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의 대한민국에 필요한 것은?
대한민국은 어떤 사회라고 인식되는가 생각해 본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농담이 아니라 진담인 사회다. '빈익빈 부익부'가 현실인 사회다. 태어나면서부터 형제간에 이웃 간에, 친구 간에 경쟁이 조장되는 사회다. 낙오된 사람에 대해 무자비한 사회다. 연대와 공존에 대한 철학이 부재한 사회다. 한 번의 실패로 낙오될 수 있기에 실패가 허용되지 않는 사회다. 복지에 의존해서 생존할 수 없기에 나와 나의 가족의 안녕에 집착하는 사회다. 권위주의에 대한 순종을 요구하며 열린 토론이 없는 사회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현실에 만족하고 마음의 여유를 가지기 어려운 사회다.
한 사람의 변화가 필요하다. 사회의 현실을 솔직하게 드러내서 공유하고 함께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가는 한 사람이 중요하다. 뉴스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통찰을 가진 한 사람이 필요하다. 연대하고 토론하며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실행력을 가진 한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현실은 암담하다. 국민의 권한을 위임받은 국회의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라의 대표자로 선출된 대통령은 어떤 비전을 가지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국가를 위해 일하고 있는가. 고위 공직자들은 돈과 권력의 노예가 되어 자신의 철학이 없이 지시에 따라 춤을 춘다. 성적만으로 평가받는 사회에서 성적이 좋은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 제시한 문제를 잘 푸는 사람이다. 주체성보다는 시키는 일 잘하는 순종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이 노예처럼 굽신거리며 정치를 하고 정부를 이끌고 있다고 생각하니 우울하다. 뉴스에 드러나는 모습이 그렇다.
결국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올바른 교육이다. 다음 세대의 아이들은 연대, 공존, 토론, 철학 등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 되야 한다.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이란 용어는 사라져야 한다.
코로나의 폐허 속에서 우리는 한국인의 삶이 얼마나 아슬아슬한 벼랑 끝 삶인지 철저하게 깨닫는다. 누구라도 한순간에 추락할 수 있고, 어떤 이도 한 발짝에 실족할 수 있다. 국가는 나의 삶을 지켜주지 않는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 최악의 기업 살인율, 최저의 출산율은 그런 '낭떠러지 생존'의 징표일 뿐이다. 어떤 안전망도 보호장치도 없는 불안사회가 대한민국을 "현대 니힐리즘의 가장 급진적인 형태"(프랑코 베라르디)로 만들었다. (17)
한국인은 무한 경쟁 속에 각자도생하는 개인들이다. 지구상에서 '사회적'이라는 가치가 이렇게 천대받는 공동체는 없다. '사회적'이라는 말이 기피되는 정도를 넘어, 불온시되고, 낙인이 되는 곳이 이 나라다. (19)
각자도생의 극단적 개인주의 사회에서 벗어나 모든 국민이 생존의 불안없이 존엄한 존재로서 살 수 있는 연대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20)
카프카의 소설 <변신>이 현대인의 삶의 본질이 '벌레' 같은 실존임을 알레고리로 폭로했듯이, 이번 사건이 한국인의 삶이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 벼랑 끝에 매달려가는 것임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아무리 훌륭한 조건을 갖추고, 아무리 성공적으로 적응해온 자도 한 걸음만 삐끗하면, 한 손만 잘못짚으면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할 수 있는 곳이 한국 사회다. (26)
- 학교에서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교육이란 무엇인가? 개인이 가진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단순 지식을 암기하고, 문제 푸는 연습을 통해 정해진 시간에 정답을 잘 찾아내는 것이 교육의 결과가 아니다. 이 책에서 교육에 대해 두 가지 키워드를 제시한다. 첫째. 사유하는 사람을 양성하는 교육이다. 둘째는 학생들의 자아를 강화시켜주는 교육이다.
독서하지 않고 토론하지 않아도 성적이 잘 나오는 교육이 우리 현실이다. '너의 생각은 뭐니?'라고 질문을 받았을 때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성인으로 자라야 한다. 누군가의 의견에 대해 존중하고 비웃지 않는 교육이 돼야 한다. 우리의 시험제도하에서 성적이란 여러 능력 중에 한 면만을 보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방면의 재능이 필요하다. 학생들의 다양한 재능을 이끌어내고 독려하고 도와주는 교육이 돼야 한다.
독일 지방 교육부의 기본 지침이 우리와 상당히 차이가 있다. 부당한 지배 관계와 억압에 대한 저항 능력 그리고 관련된 지식, 기획하고 실현할 수 있는 능력, 사회에서 요구되는 규범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거부하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들이다.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성인의 기본 능력들이다. 이런 건전한 마인드의 성인이 가득한 사회가 선진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사회에는 구성원들이 사유하는 사람, 강한 자존감을 보유한 사람이다.
반면에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대학입시를 중심으로 시험성적 위주의 교육이 건재하다. 어쩌면 기득권을 가진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들이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아닐까. 사회 시스템을 결정하고 운영하는 사람이 누군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다른 선진국의 좋은 점을 받아들여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도록 돕는 시스템 운영자가 필요하다. 소수를 위한 사회가 아니라 다수를 위한 사회로 가기 위해 우리의 교육은 많은 부분이 변해야 한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교육부의 기본 지침에는 "수용할 수 없는 지배 관계와 사회적 억압에 대한 저항 능력", "저항 기술에 대한 지식", "개혁적 혹은 혁명적 성격의 기획을 실현하는 능력", "주어진 사회적 규범을 자유로이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규범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되어 있다. (36~37)
토론은커녕 대통령의 '말씀'을 받아적기에 여념이 없는 장관들, 대통령의 수족에 불과한 청와대 인사들, 대통령의 '상머슴'을 우두머리로 모시고 있는 여당 정치인들, 권력자의 한마디에 즉각 수십억 원을 갖다 바치는 재벌들, 부당한 압력에 무릎 꿇고 이득을 취하는 교수들 - 이들의 행태는 주인 앞에서 설설 기는 노예의 모습 그 자체다. 민주공화국에서 '지도층 인사'란 자들이 사실은 하나같이 권력의 노예였던 것이다. (40)
나치즘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사유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이 대륙을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대중문화를 통한 주도면밀한 우민화가 만들어낸 이 '무사유사회'에서 그는 새로운 유형의 파시즘의 싹을 본다. (50)
'민주주의의 최대 적이 약한 자아'라면, 한국 교육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최대 적이다. 학생의 자아를 철저히 약화시키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아가 강한 아이도 한국의 교육 체제에 발을 딛는 순간 온전한 자아를 보존하기 어렵다. 학교는 학생들을 '존엄한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고 점수로 줄 세워 우열의 질서 속에 배치한다. 그럼으로써 한쪽에는 일상적인 모욕과 무시 속에서 열등감과 좌절감을 내면화한 '열등생'을 만들어내고, 다른 쪽에선 턱없는 우월감과 오만한 심성을 가진 '우등생'을 길러낸다. 이들은 모두 자아를 파괴하는 거대한 폭력기구의 희생자들이다. (53)
https://bandiburi-life.tistory.com/1718
독서습관 668
■ 저자: 김누리
통렬한 성찰로 우리 사회의 민낯을 직시하며 우리가 나아갈 길을 깊이 고민해 왔다. JTBC <차이나는 클라스>의 세 차례 강의와 '2020년 서점인이 뽑은 올해의 책' 등에 선정된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를 통해, 뿌리 깊은 '한국형 불행'의 근원을 제시하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중앙대 독문과와 동 대학원 독일유럽학과 교수이다. 한국독어독문학회 회장을 지냈다. 독일 브레멘 대학에서 독일 현대 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귄터 그라스의 문학을 연구하면서 독일 통일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
2013년 중앙대 독일연구소가 도쿄대, 베이징대에 이어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독일 정부의 지원을 받는 '독일유럽연구센터'로 선정되었고, 현재 이 연구센터의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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