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년의 사랑과 존엄한 죽음에 대해 생각
부모의 축하를 받으며 이 세상에 태어났다.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기르고 성장하고 독립하는 모습을 봤다. 이제 둘만이 시간을 보내는가 싶었는데 어느새 80세를 넘었다.
노화의 과정에서 점차 육체적인 불편함을 마주친다. 배우자가 쓰러져 돌봐주고자 하지만 육체적으로 힘에 부친다. 간호 서비스가 필요하고 돈이 소비된다. 세상살이에 힘들어하는 자녀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 점차 증상이 심해지고 돌보는 사람도 정신적 육체적으로 한계에 달한다. 남편 조르주와 아내 안나가 처한 상황이다.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 <아무르>는 관객에게 인생과 죽음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조르주와 안나가 생활하는 아파트가 주 배경이다. 쇠약해져 정신줄을 놓고 고통을 호소하며 횡설수설하는 안나는 점차 죽음으로 다가간다. 그 옆에서 모든 돌봄을 책임지고 과정을 지켜보는 조르주의 마음은 어떨까. 자신에게도 유사한 과정이 다가올 거라는 두려움, 아내를 잃는다는 두려움, 자신의 육체적 경제적 한계에 대한 슬픔이 동시에 찾아오지 않았을까. 그래서 최후의 선택을 하게 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 우리의 삶에서 무엇이 중요한 것일까
80세가 넘도록 함께 하는 노부부의 모습은 아름답다. 서로를 챙겨주고 존중하는 건강한 노후가 모두의 바람이다. 하지만 죽음은 어느 순간 찾아온다. 혹은 스스로의 육체를 감당하기 어려운 건강상태가 될 수 있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인생의 단계다. 우리는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두렵다.
쓰러진 안나를 돌보는 조르주에게 무엇이 소중한 것이었을까. 걱정하는 딸과 이웃들도 아니었다. 자신의 삶이다. 아내와 함께 하는 완전체가 부서졌다. 아내를 위한 돌봄 서비스를 충분히 사용할 만큼의 경제적인 여력이 없다. 조르주 자신의 정신적 건강도 소진되고 있다. 그에게 무엇이 필요했을까. 넓지만 두 노부부만 사는 아파트는 쓸쓸하다.
첫째, 그들과 함께 할 사람이 필요하다. 돈을 받고 돌봄을 제공하는 거래관계가 아닌 진정한 사랑으로 돌봐줄 사람이다.
둘째, 경제적인 지원이다. 국가는 노인이 노인을 돌보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돈이 없는 사람들이 사각지대에 방치되면 환자도 보호자도 인간적인 존엄을 잃게 된다. 존엄한 죽음을 언급하는 시대에 존엄을 잃고 살아야 하는 것은 실질적인 죽음과 같다.
- 삶의 마지막은 가족과 함께 임종을 맞아야
삶의 마지막 시간은 중환자실에서 보내지 않고 가족과 함께 생의 마지막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 <아무르>를 보니 노부부만 남아 배우자가 독박 돌봄을 해야 하는 상황은 피해야 한다. 프랑스와 대한민국의 문화적 차이가 있을 수도 있다. 가장 행복한 삶의 마지막 길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우울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영화지만 누구나 찾아오는 노년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조르주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할까. 안나의 입장이라면, 딸의 입장이라면. 양가 부모님이 모두 건강하신 80대와 70대를 보내고 계신다. 남의 일 같지 않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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