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환상으로 그리고 현재로 돌아오는 구성의 소설이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을 운명이란 말에 저항하며 떠나는 여행길은 신화 속 괴물처럼 다양한 존재들과의 싸움이다. 죽음을 향해 가는 이안과의 만남은 생명을 더 연장하기 위해 여행하는 구수정의 여행과 상반된다. 하지만 종착점은 동일하기에 함께 가는 여정이 된다. 마주치는 괴상한 존재들은 컴퓨터 게임의 단계를 넘을 때마다 등장하는 것들과 유사하다.
마치 어린 시절의 동화처럼 시작하면 끝까지 정주행 하게 되는 소설이다. 작가는 왜 이런 존재들을 만들어냈을까 의문을 가지게 된다. 눈으로 된 존재, 허수아비, 청소부, 내일이라는 개, 일곱 아이와 일곱 노인 등. 작가의 상상력의 결과물은 의도한 역할이 있을 것이다. 환상 속을 여행하는 수정과 이안과 함께 따라가며 독자는 상상한다.
수정이 여행하는 세계에서 질서는 “모든 사람과 사물의 제자리”(72쪽), 엄정한 경계와 숫자, 생사 여부이고, 그것은 청소부로 대변되는 기성세대가 정한다. 질서 정하기란 세계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임무이므로 “어린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 (76쪽)이 아니다. 청소부의 궤변에 따르면, 세계에서 중요한 역할과 노동을 수행할 능력이나 자격이 없는 자는 죽어도 무방한데, 그런 사람들에 미성년도 포함될 것이다. (…) 수정은 기득권자의 이익을 보수하기 위해 미성년의 생존이 경시되는 세계에서 미성년의 죽음이야말로 질서에 어긋난다고 전복적으로 인식한다. (144~145)
마지막에 소설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청소부에 대한 설명인 인상 깊었다. 청소부는 마을에 인구를 유지될 수 있도록 조절한다. 아이가 태어나면 누군가는 죽거나 쫓겨나야 한다. 이는 현실의 기성세대를 의미한다는 설명이다. 기존에 확립된 사회의 틀 안에서 미성년을 포함해 맞지 않는 존재는 제거대상이다. 작가는 수정과 이안이 청소부를 호수 속으로 사라지게 하는 것을 통해 기성세대의 체제에 저항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러한 문화적 형식을 대학 입시가 대체했다.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인생의 특정 시기에 이르면 반드시 그것을 치러야 한다고 세뇌받고, 그것을 통과하지 않는 다른 삶들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데 방해를 받는다. 미성년의 시야에 대학 바깥의 삶은 거의 비가시화되어 있다. 대학이냐, 아니냐, 연명이냐, 단명이냐.
모든 미성년 주체는 성년기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어떤 삶의 방식을 선택하고 일구든 동료 시민들 사이에서 차별 없이 환대받고 자긍심을 갖출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대학 입시 결과에 따라 정상성 세계의 진입자 아니면 낙오자로 갈린다. 능력과 성과의 이데올로기가 초월적 권력자로서 지배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대학 진학에 성공함으로써 목숨이 연장되거나 대학에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단명자로 취급을 받는다. (141)
저자가 열아홉 살의 주인공인 수정이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을 운명이라고 한 것이 대학입시를 강조하는 이 사회를 비판한 것이라는 설명에 공감한다. 대학 합격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강조하는 사회다. 대학에 가지 않거나 불합격한 사람은 그 관문을 통과하지 못했기에 단명자가 돼야 한다는 사회다.
사실과 다르지만 그렇게 세뇌되어 살고 있다. 인서울 대학과의 구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구분, 취업자와 백수의 구분 등 여러 가지 관문을 가지고 사람을 연명자와 단명자로 구분한다. 이 모든 불합리에 대해 생각해 보고 저항하고 전복을 향하는 소설이다.
길지 않은 소설이지만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다. 또한 박지리라는 작가를 알게 된 것도 소득이다. 지병으로 31세에 단명했지만 문학을 배우지 않았지만 자신만의 책을 남기고 떠난 작가다. 그의 책도 읽어야 할 책 목록에 담겼다.
<단명소녀 투쟁기>는 한마디로 구비 전승 설화의 세계관, 온라인 플랫폼에서 창발하는 허구 유희, 그리고 제도적 문자 인쇄 매체로서의 소설을 융합한, 오늘날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주요한 서사 창작의 흐름 안에 있다. (139)
※ 박지리문학상
박지리문학상은 참신한 소재와 독특한 글쓰기로 인간 본질과 우리 사회를 깊이 천착해 한국 문단에 독보적 발자취를 남긴 박지리 작가의 뜻을 잇고자 사계절출판사에서 2020년에 시작한 문학상 공모입니다. 미등단 신인 및 단행본 출간 5년 이내의 기성 작가를 대상으로 합니다. 원고지 100매 내외의 단편소설 3편 또는 300매 내외의 경장편소설을 모집하며, 대상 1편에 창작지원금 5백만 원을 드립니다.
박지리 작가는 2010년 <합체>로 사계절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맨홀> <양춘단 대학 탐방기>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대하여> <번외>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세븐틴 세븐틴>(공저) 일곱 작품을 출간했고, 2016년 31세의 나이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128)
독서습관619_박지리문학상 수상작_단명소녀 투쟁기_현호정_2021_사계절(220827)
■ 저자: 현호정
1993년 경기도에서 맏딸로 태어났다.
거북이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보이고 들리는 것들을 쓴다.
<단명소녀 투쟁기>로 1회 박지리문학상을 수상했고,
희곡 <그리고 거북이는 고개를 끄덕였다>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주최 '봄짓 새로운 작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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