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죽음은 필연이지만 무관한 것처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진지하게 죽음을 직면하도록 안내하는 김현아 교수의 책 <죽음을 배우는 시간>를 읽었다.
저자가 병원에서 경험한 다양한 죽음의 사례들은 일반 독자들이 접하기 어려운 상황들이어서 관심 있게 보게 된다. 죽음은 나이에 관계없이 질병으로도 사고로도 찾아올 수 있다. 중요한 점은 병원에서 맞이하는 죽음에 대해 저자는 의사임에도 불구하고 솔직하게 반대의사를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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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입장에서 봤을 때 만성적인 질병이나 노환으로 자연스러운 임종의 과정인 경우가 있다. 그럼에도 가족들의 돌봄이 불가능한 경우나, 가족들이 환자의 고통을 두고 보기 힘들어서 병원 응급실로 실려온다고 한다.
의사는 병원에 온 환자의 생명을 살릴 의무가 있기에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폐가 기능을 상실하면 인공호흡기를 부착하고, 심장이 기능을 못하면 에크모를 연결한다. 그리고 중환자실에서 신체의 기능을 확인하고 대신하는 온갖 줄을 주렁주렁 매달고 누워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신체의 기능은 서서히 저하되어 죽음에 이른다. 결국은 가족과의 만남도 대화도 하지 못하고 간다.
일단 인공호흡기나 에크모를 연결하면 보호자의 요구에도 뗄 수 없다고 하니 남아 있는 가족들의 경제적인 부담도 증가하고, 임종을 앞둔 환자도 작별인사도 못하고 의식도 없이 죽어간다. 좋은 죽음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책을 보니 건강할 때 연명치료를 절대 하지 말라는 사인 서류와 갑작스럽게 다가올 수도 있는 죽음에 대비해 '엔딩노트'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기적으로 수정할 수 있으니 삶에 대해서도 돌아보고 현재를 좀 더 행복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비타민 역할도 할 것 같다.
<죽음을 배우는 시간>은 작가의 경험과 깊은 사색이 담겨 있어서 추천할 만한 책이다. 중간중간에 삽입되어 있는 그림을 담은 인문학 강의도 맛있다.
아래는 책에서 남기고 싶은 문장들이다.
많은 환자와 가족들이 죽음에 준비되지 않았던 의사들에게 거꾸로 죽음을 가르쳐준다. 죽음이 언젠가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즉 어떤 이에게만 벌어지는 특별한 비극이나 천벌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렇게 나는 의사로서 죽음을 준비하는 방법을 점차 배워갔다. (47)
반드시 실력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 랭킹이 떨어지는 병원에서 일하거나 개원을 한 의사들은 이래저래 도매금으로 병원 수준과 동일하게 취급되는 것이 보통이다. 의료 전달 체계가 엉망이라는 것은 '빅 4' 병원의 외래 진료실이 경증 환자로 미어터지는 현실을 보면 알 수 있다.(59)
나는 아직도 스스로 죽음에 준비된 의사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좋은 의사는 최선을 다할 때와 이제 그만 놓아야 할 때를 분별할 줄 알고, 가족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75)
죽음이 병원으로 떠넘겨진 다음 수순은 당연히 죽음이 치료해야 하는 질병으로 둔갑하는 거예요. 요즘은 한술 더 떠서 노화조차도 치료가 필요한 병으로 치부되고 있지요. 자본주의 사회는 죽음과 노화를 병원의 일로 만들고 가족들이 그 시간에 노동을 하고 재화를 축적하도록 작동해왔고요. (81)
문제는 이런 급성 치료에 중점을 두어온 의료기술이 전혀 다른 문제인 만성 질환자의 치료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 이것은 환자와 가족에게는 고통스러운 죽음의 과정을 연장시키고 커다란 경제적 손실을,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제한된 의료자원의 낭비를 초래한다.
또한 반드시 이런 치료가 필요한 환자에게 치료의 기회를 박탈함과 동시에 의료비용의 천문학적인 증가를 가져왔다. (87~88)
미국의 경우 20세기 초까지는 병원에서 임종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가 20세기 후반 50 퍼센트를 넘게 되고 2000년대 들어서는 80퍼센트가 병원에서 임종을 맞이했다. 죽음이 병원으로 '외주'되고 있는 것이다. (102)
나도 어렸을 때 소설 <작은 아씨들>에서 둘째 딸 조가 유언장을 작성하는 장면을 인상 깊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젊은 아가씨가 자기가 가지 얼마 안 되는 물건을 누구누구에게 주겠다고 하는 것이 왠지 멋져 보여 나도 '죽으면 내 책들은 우리 학교 도서관에, (...)' 이런 생각을 하다가 왠지 서글퍼지기도 했다. (106)
그러나 너무 자주 맞으면 관절 손상이나 인대 파열 등이 진행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모든 치료와 마찬가지로 오요, 남용은 금물이다. 연골 주사는 퇴행성 관절염 환자의 손상된 연골을 치유한다고 잘못 알려져 있는데, 기대할 수 있는 효과는 100퍼센트 진통 효과뿐이다. 경구약이 효과가 없거나 부작용 우려가 있을 때 이용한다. (125)
임종 환자의 가래 끓는 소리를 의학적으로 임종천명 death rattle이라고 한다. 임종천명은 신체기능이 쇠약해져 기관지에 고인 분비물을 뱉어내거나 삼킬 수 없어지면서 기도 내에 분비물이 쌓여 발생한다. 임종을 맞는 환자의 절반 정도에서, 임종 약 17~57시간 전에 들리는 것으로 보고 된다. (132)
임종을 앞둔 환자와 완화치료 전문의 8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의하면 가장 평화로운 임종은 다음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한다.
① 불안함에서 벗어날 것
② 혼자서 임종하지 않을 것
③ 아이들과 함께 있을 것.
모두 병원, 특히 중환자실 임종에서는 지켜지기 어려운 조건이다. (134)
나는 CT 촬영으로 방사선 폭탄을 투하할지를 다시 한번 보호자와 이야기했다.
사람들이 쉽게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CT촬영의 방사선 피폭량은 자연 상태에서 노출되는 피폭량을 고려할 때 짧게는 3년, 조영제를 쓰는 경우 7년 동안 맞을 양을 한 번에 맞는 것과 같다.
암 환자가 흔히 찍는 양전자방출 컴퓨터 단층촬영 PET-CT은 8년 치를 한 번에 맞는 수준이다. (139)
우리나라에서도 삼성미술관 리움에 가면 그의 '알약 시리즈' 중 하나인 <죽음의 춤> Dance of Death을 관람할 수 있어요. 스테인리스 스틸 진열장 위에 무수히 많은 예쁜 알약이 배열되어 있습니다. 작가는 사람들이 약에 투사하는 치유의 희망을 비웃으면서 또 한 번 죽음 앞에 우리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157)
마지막으로 일본 사진작가 히로시 스기모토의 바다 풍경 작품입니다. <에게해, 필리온> 1990년. (...) 그가 대놓고 죽음을 묘사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왠지 죽음이 두렵지 않게 느껴집니다.
이 작품의 중심이 되는 수평선은 우리 정신세계의 한계를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 같기도 합니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오함이 오히려 마음을 편안하게 만듭니다.
이런 엄숙하고 심원한 세계 앞에서 우리를 아등바등하게 만드는 욕망이 허무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161~162)
인공호흡기를 단 상태에서는 자발 호흡을 어떤 형태로든 죽여놓지 않으면, 제정신으로는 버티기가 힘들다. (...) 인공호흡기를 견뎌내기 위해서는 결국 자발적인 호흡중추까지 마비되도록 진정제를 투여해서 환자를 깊은 무의식으로 떨어뜨리는 방법밖에는 없다. (169)
환자나 그 가족은 끝없이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의료 서비스에 집착하고, 의료진들은 의료분쟁의 위험을 피하고자 방어 진료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라며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임종 전 마지막 2~3개월을 가족들과 생을 마무리하는 시간으로 보내기보다 중환자실에서 보내는 관행이 그 가족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185)
현재의 기술로 영생할 수 있는 방법이 단 하나 있는데, 불법이다. 바로 클로닝 기술이다. 폴로 경기의 말들은 클로닝으로 영생을 한다. 아르헨티나의 대표 폴로 선수인 아돌포 캄비아소의 애마 아이켄 큐라가 경주 중 일어난 사고로 안락사를 당할 당시, 그 세포를 뜯어내면서 시작되어 지금은 대규모 사업으로 성장했다. (282~283)
영국에서 1999년 발간된 <밀레니엄 백서>는 다음 열두 가지를 좋은 죽음의 조건으로 제시했다.
1. 죽음이 언제 닥칠지 예상할 수 있다.
2. 앞으로 일어날 일을 통제할 수 있다.
3. 죽음에 임했을 때도 존엄성과 사생활을 보호받는다.
4. 통증을 완화하고 증상을 관리받을 수 있다.
5. 죽을 장소에 대해 통제와 선택이 가능하다.
6. 전문가로부터 조력을 얻는다.
7. 영적 정서적 요구를 충족한다.
8. 어디에서든 호스피스 간호를 받을 수 있다.
9. 임종 시 함께할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
10. 생명유지장치를 쓸 것인지 사전에 결정하고, 그 결정을 존중받는다.
11. 작별을 고할 시간을 갖는다.
12. 언제 떠날지를 예상하고, 무의미한 생명연장을 하지 않는다. (299~300)
나는 여기에 덧붙여 좋은 죽음을 위해 반드시 챙겨야 할 것 세 가지를 추가하고 싶다. 죽음에 대한 준비는 아무리 해도 지나치지 않기 때문이다.
1. 재산을 정리한다.
2.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 작성이 끝이 아니다.
3. 죽음의 장소를 결정한다. (304~306)
수급 대상자는 65세 이상의 노인 또는 치매 뇌혈관성 질환 등 노인성 질병을 앓는 65세 미만의 환자 가운데 6개월 이상 혼자서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인정되는 사람이다.
장기요양 대상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건강보험공단에 의사의 소견서를 첨부하여 장기요양 인정 신청을 해야 한다.
이후 공단 직원이 방문하여 수급 자격이 되는 지를 조사한 후 등급판정위원회에서 등급을 결정한다. (309~310)
독서습관591_죽음을 배우는 시간_김현아_2020_창비(220704)
■ 저자: 김현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병원 내과에서 전문의/겸임의를 수료했다. 현재 한림대학교 류마티스내과 교수로 있으며, 관절염의 기초 임상연구에 다양한 업적을 남긴 한국 류머티즘 연구를 대표하는 의학자다. 대한의학회 분쉬의학상, 일본류마티스학회 젊은의학자상 등을 수상했다. 2012년부터 대한내과학회 정책단 및 대한류마티스학회 보험이사로 활동하면서 우리나라 의료 정책의 다양한 분야에서 실무를 맡아왔다.
30년간 의사로 살면서 준비 없이 맞이하는 죽음이 얼마나 큰 비극을 초래하는지 수없이 지켜봤다. 현대의학의 발달로 늙음과 죽음을 치료해야 하 질병처럼 인식하게 되면서, 역설적으로 우리는 죽음을 덜 준비하게 되었다. 건강을 유지하고 목숨을 이어가는 것과 죽음을 배우고 준비하는 일이, 좋은 삶이라는 목표를 위해 똑같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병원 안팎에서 이어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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