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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566]사라지지 않는 사람들_20세기를 온몸으로 살아간 49인의 초상

by bandiburi 2022. 5. 15.

역사의 기억이란 단순히 개인들의 경험을 보존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응당 기억해야 할 것들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라고. 그리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다음 세대에 전달하고 다시 그들과 함께 기억을 공유하면서 사회적 기억 = 사회적 관계망을 확장해가야 한다고. 그리하여 암담한 현실에 저항하고 어두운 기억에서 밝은 미래를, 희망을 이야기하자고. 기억이 정치적 문화적 산물이라는 말은 그래서 가능하다. 이런 기억의 속성 때문에, 우리가 사는 지금 이곳에서는 서로 다른 '기억들 간의 싸움'이 매일 치열하게 반복된다. 과거의 역사를 애써 외면, 왜곡, 망각하려는 자들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자들의 싸움. 이 책에 실린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의 기억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며 잊어서는 안 될 우리의 자산이다.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 '기억의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335~336)
실제로 내가 집필을 맡은 인물들은 대부분 사형, 전사, 암살, 객사, 자살로 삶을 마감한 사람들이다. 이렇듯 선명한 '죽음'을 통해 그들은 이 시대에 맞서 자신의 '정체성'을 주장했던 것이다. 얼핏 특별해 보일 수도 있을 그들의 '죽음'의 형태는, 이 20세기를 진실하게 살아가려는 이들에게는 피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332)

 

 

다른 책에서 인용된 책이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마지막 페이지를 마치며 죽음이란 것에도 의연하게 맞선 이들에 대한 존경심과 감동이 몰려왔다. 좋은 책이란 통찰이나 지혜를 준다는 면에서 한국적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나와 가족의 생존에 집중하던 삶의 태도에 대해 겸허하게 돌아보게 한다. 나 자신에 대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든다. 안네의 일기에서 굶주림 속에서 세상의 썩어가는 음식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 풍족한 음식으로 비만과 성인병을 걱정하는 이 시대의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지금도 식량의 불평등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1973년 칠레에서 일어난 쿠데타에 대해 이해하게 되었다. 쿠데타로 아옌데 대통령이 죽고, 피노체트가 등장한다. 이 과정에서 음악가 빅토르 하라가 <벤세레모스>를 부르며 군인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는 모습은 장엄하다. 기타로 노래를 부르고, 기타가 부서지자, 박수를 치며 부르고, 손이 부서지자, 입으로 부르고, 결국은 화가난 군인들의 총탄에 죽어갔다. 5.18을 경험한 우리들에게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군부독재에 저항한 위인들이 있어 빅토르 하라에 관한 글에 마음이 뭉클했다. 그리고 유튜브에서 '벤세레모스'를 찾아들어봤다. 빅토르 하라의 노래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이 외에도 이전에는 잘 몰랐던 재일 한국인으로서 살다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사람들,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에 조작된 사건으로 고문을 당한 사람들, 외국에서 들어오지 못한 음악가, 월북했다고 언급되지 않은 사람, 그리고 세계대전으로 인해 고난을 받다 죽어간 사람들, 인종차별로 고통받던 사람들이 소개된다. 역사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다르다.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 기억하고 싶은 자와 지우고 싶은 자들이 있다는 역자의 말이 마음 깊이 와닿는다. 한국 사회가 깊이 있게 성찰하지 않고 모든 것에 대해 좌우로 나뉘어 다투고 있지 않은가 곰곰히 생각해볼 문제다. 자신의 권력과 경제적 이득을 위해 타인의 존재를 부인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짧게 소개되었지만 관련된 책들이 말미에 언급되어 있어 조금 더 깊이 있게 알 수 있는 방법도 제공하고 있다. 

아래는 책에서 남기고 싶은 문장을 인용했다.  

 

 

이 책은 본래 일본 사회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쓴 것이다. 오랫동안 이어진 권위주의체제의 종언과 함께 희망을 안고 1990년대를 맞이한 한국과 달리, 일본의 1990년대는 그때까지의 보수 대 진보라는 구도가 무너지고 사회의 성원 대다수가 무력감과 냉소주의에 빠진 시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지식계층에 그런 경향이 강했다. 이 경향은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으며, 내가 보기에 일본 사회 우경화의 가장 큰 원인도 여기에 있다. (6~7)

국제여단(International Brigades): 2차대전의 전초전이자 파시즘과 진보적 민주주의의 국제전이던 스페인 내전(1936~1939)에서 인민전선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공화파 국제의용군. 내전 발발 3개월 후인 1936년 10월 14일 의용군 500명이 스페인 알바세테에 도착한 것을 시작으로, 국적과 언어를 넘어 총 4만여 명이 파시즘을 저지하기 위해 참가했다.  (35)

20세기 초, 특히 제1차 세계대전 이전 10년 동안에 일어난 회화 사상 유래 없는 사건은 러시아, 동구 출신의 많은 유대인 예술가들의 등장이었다. 20세기 프랑스에서 동구 출신의 유대인들이 남긴 작품은 유대인 사회가 과거 수세기에 걸쳐 만들어낸 것보다도 훨씬 많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샤갈과 수틴이었다. (56)

'대상'을 단순화하거나 변형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나아가 전면적으로 제거하는 작업. '대상'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형태와 색채만으로 예술가의 '내적 필연성'에 직접 응답하는 것, 그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이 같은 칸딘스키의 발상은 그 이전의 미술사에서는 전례가 없던 것이었다. '추상화'라는 장르가 20세기 초두에 들어서서 비로소 이곳 뮌터하우스에서 발효하고 꽃을 피웠던 것이다. (62)

바우하우스 Bauhaus: 1919년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가 독일 바이마르에 세운 조형학교. '집을 짓는다'는 뜻의 하우스바우를 도치한 이름으로, 순수예술과 공예는 동일한 것의 두 변형이라는 생각 아래 미술학교와 공예학교를 병합한 것이다. 바로크 이후 상실된 총체예술 이념의 복구, 기술과 장인성의 가치에 대한 재평가, 실용성을 근간으로 한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통합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지향했으며, 위계적인 교수법 대신 상호협동과 공동체 정신을 강조하고 협동 워크숍 체제를 지향했다. (66)

"세계의 어느 곳에서는 먹을 것이 남아돌아 썩는 일조차 있다고 하는데, 어째서 한편에서는 사람들이 굶어 죽어야 하는 걸까요? 도대체 인간은 왜 이렇게 어리석을까요? 나는 전쟁의 책임이 위대한 사람들과 정치가, 자본가들에게만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책임은 일반 사람들에게도 있습니다. 정말 전쟁이 싫었다면 너도나도 들고일어나 혁명을 일으켰어야지요." - 안네의 일기 중 (84)

빅토르 하라는 스타디움에 연행된 사람들을 격려하기 위해 기타를 집어 들고 인민연합 찬가 <벤세레모스>Venceremos(우리 승리하리라)를 부르기 시작했다. 군인들은 화를 내며 그의 기타를 빼앗았다. 하라는 손뼉을 치며 노래를 계속 이어갔다. 화가 치밀어 오른 군인들은 소총 개머리판으로 그의 두 팔을 짓이겼다. 그래도 하라는 일어서서 노래를 부르려 했다. 그러자 군인들이 그를 향해 총을 쏘았다. 마치 그가 되살아날까 두려워하기라도 하듯, 수십 발의 총탄이 그의 몸 곳곳을 파고들었다. (93)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향한 아옌데 정부의 꿈이 피노체트의 쿠데타로 좌절하는 과정을 그린 대표적인 두 영화. 엘비오 소토의 1975년 작 <산티아고에 비는 내리고>는 1973년의 쿠데타 상황을 재현한 영화이다. 쿠데타 당일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산티아고에 비가 내린다'라는 말은 쿠데타군의 작전 암호였다. 빅토르 하라가 쿠데타군에게 폭행당하면서도 인민연합 찬가 <벤세레모스>를 부르는 장면, 쿠데타 발발 며칠 후 사망한 네루다의 장례식 장면 등이 인상적이다. 1980년 '서울의 봄'을 연상시켜 한국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파트리시오 구스만의 1979년 작 <칠레 전투> 3부작은 군부 쿠데타가 발생하기까지 혼란스러웠던 칠레 상황 전반을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인민연합으로 표출된 민중의 꿈과 자본가 파업을 비롯한 반대 세력의 대결 등을 사실적으로 담은 이 작품은 칠레 현대사 전반을 살펴볼 수 있는 교과서이기도 하다. (99)

앙가주망 engagement: 본래 구속, 계약 등의 뜻으로 쓰였으나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 이후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 (113)

알제리를 프랑스의 '또 다른 영토'로 간주하고 적극적으로 프랑스화 정책을 폈던 132년의 식민지 역사를 반영하듯, 15만 명의 아르키 Harki(프랑스 쪽에 가담한 알제리 출신 군인 관료)가 프랑스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FLN의 보복에 의해 희생되었다. (119)

아우슈비츠 이후, 인류의 역사는 생환을 기약하기 힘든 '오디세우스의 항해'에 내던져졌다. 바다는 어두컴컴하고, 항해는 목적지도 정하지 못한 채 계속되고 있다. 아우슈비츠는 끝나지 않았고, 레비는 결국 그곳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생각하는 것 자체가 죽음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레비의 자살은 인류 자체의 자살 과정을 상징하고 있는 것일까. (124)

다이쇼 데모크라시: 다이쇼 천황 재위 기간(1912~1926)을 중심으로 일본의 정치 사회 문화 각 방면에서 나타났던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경향. 1905년 러일강화조약 체결에 반대한 시민운동을 시작으로 군비확장 반대, 악세 폐지운동 등을 거치면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사회적인 흐름이 형성되었다. 정당내각제 성립, 보통선거제 실시를 통해 정치적 민주주의의 진전이 이루어졌으며, 대학 아카데미즘의 확립과 출판 저널리즘의 발전 등 문화적인 자유주의 경향도 확대되었다. 

1925~1926년 성립된 노동농민당, 사회민중당, 일본노동당 등 합법무산정당의 보통선거 참여로 다이쇼 데모크라시는 정점을 맞이하지만, 추밀원, 군부 등 의회정치를 제약하는 기관의 힘을 축소하지 못함으로써 실질적인 체제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1925년 치안유지법 제정 등으로 정치적 자유가 크게 왜곡되었다. 결국 1930년대 들어 군부와 우익단체 등이 의회주의를 부정하는 '혁신운동'을 전개하면서 다이쇼 데모크라시는 붕괴하고 일본은 군국주의의 길로 치달았다. (145)

참화의 기억과 파국의 예감에마저 편안하게 익숙해져 버려 이를 기이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병들어 있는 것이다. '유일한 피폭국 일본'이라는 상투적인 문구가 있다. 하지만 이는 진실이 아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는 적지 않은 수의 조선인, 중국인도 희생되었다. (181)



"나는 박열에게 동화되거나 부화뇌동해서 천황과 황태자를 타도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내 스스로, 천황은 불필요하며 있어서도 안 되는 존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라고 진술하고, "지상의 자연적 존재인 인간으로서 그 가치로 말한다면, 모든 인간은 완전히 평등"하며 "천황의 실체는 한낱 고깃덩어리이고, 소위 인민과 완전히 똑같으며 마땅히 평등해야 할 존재"라고 주장했다. - 가네코 후미코 (186)

조선은 38도선을 경계로 미-소에 분할 점령되고, 남조선에 군정을 선포한 미국이 김구가 임시정부 대표라는 공적 자격으로 귀국하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에 27년간의 망명과 투쟁의 나날 끝에 개인 자격으로 조국의 땅을 밟아야 했던 것이다. (239)

김구 암살 이후에도 민주화와 통일운동에 앞장선 안중근 가문은 그러나 5.16 후 군사정권에 의해 반국가사범으로 몰려 안경근이 7년형을, 숙부 안태건의 손자 안민생이 10년형을 선고받는 등 탄압을 받았다. (241)

조선어학회사건은 해방 후 한국에서 일본 식민지 시대의 대표적인 탄압사건으로 이야기되어왔다. 그러나 그 중심인물인 이극로에 대해서는 대개 간단히 언급하는 정도에 그쳤다. 그 이유는 그가 '월북자'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냉전이 격화되고 남북 분단이 고착화하는 과정에서 38도선을 넘어 북으로 간 사람들을 월북자로 규정하고 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정치적으로 금기시해왔다. 이극로의 이름을 한국에서 공공연하게 들을 수 있게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264~265)

"설령 영혼만이라도 이 세상 어딘가를 떠다니고 싶다.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면, 누군가의 기억 속에라도 남아 있고 싶다. 경성의 북쪽 교외, 북한산의 꼭대기, 백운대의 절벽에 새겼던 내 이름은 아직도 남아 있을까. (...) 친구들아 아우들아, 자기의 지혜와 사상을 지녀라. 지금 나는 내 죽음을 앞두고 나의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기가 막히는구나. (...) 왔다. 이제 때가 온 듯하다. 이것으로 이 기록을 맺는다. 이 세상이여, 행복하여라." - 조문상의 유서 (271)

<오적>: 1970년 5월 <사상계>에 발표된 김지하의 서사시. (...) 오적, 즉 다섯 도적은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가리키는 것으로, 김지하는 개발독재의 과실을 누리며 부정부패를 일삼은 이들 특권층을 인간의 탈을 쓴 짐승으로 묘사하며 1905년 당시 나라를 팔아먹은 을사오적에 비유했다. 이 다섯 도적이 서울 한복판에서 도둑질 대회를 벌이는데, 이를 단속해야 할 포도대장은 오적을 잡아들이기는커녕 도리어 이들을 고발한 민초 꾀수를 옥에 가둔다. 작품은 오적과 포도대장이 어느 날 아침 갑자기 벼락을 맞아 급사하는 것으로 끝난다. (294)

오기순은 재일조선인 1세 여성으로서 차별과 빈곤을 겪었다. 40년이 지나 재회한 조국은 군사독재의 암흑 그 한가운데에 있었다. 고통으로 가득했던 그 60년의 생애는 금세기 조선민족이 경험한 식민지배와 민족분단을 온몸으로 체현한 듯하다. 그것은 제국주의와 군사독재시대의 학대받고 멸시당하는 민중들, 특히 그 어머니들의 삶을 관통하고 있다. 뜻하지 않은 때에 예측을 뛰어넘어 빛을 발하는 저 민중들의 강인함과 지혜는 오기순의 것이기도 하다. (327)

독서습관566_사라지지 않는 사람들_서경식_2007_돌베개(220514)


서경식 (출처: 채널예스)

■ 저자: 서경식 

1951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나 와세다대학교 프랑스문학과를 졸업했다. 도쿄케이자이 대학교 현대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07년 현재 성공회대학교 연구교수로 한국에 체류하고 있다. <소년의 눈물>로 1995년 일본 에세이스트클럽상을,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마르코폴로상을 받았다. 그 외에 <나의 서양미술 순례>, <청춘의 사신>, <디아스포라 기행>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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