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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549]불멸의 신성가족_판검사와 변호사의 현주소와 지향점

by bandiburi 2022. 3. 26.

대한민국 사법 시스템의 실체가 무엇이고 판사와 검사, 변호사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책입니다. 지금은 폐지된 사법시험의 합격과 불합격 여부로 사람의 인생이 완전히 바뀔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신성가족' 속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이 책의 장점은 사법 시스템 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판사, 검사, 변호사, 브로커, 기자, 변호사 사무소 직원들을 직접 인터뷰해서 분석하고 정리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시스템 밖에서 간접적으로 접한 정보와는 달리 그들의 실제 삶을 보여줍니다. 

세 가지로 책의 소감을 정리합니다. 



첫째, 사법연수원을 졸업하고 바로 변호사가 되는 변호사와 판검사 출신의 전관 변호사로 구분되고 브로커들이 의뢰하는 수준이 다르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전관 예우의 문제점에 대해 언론에 자주 등장하지만 구체적인 실체를 몰랐습니다. 판사나 검사를 했던 변호사들이 현직에 있는 자신의 후배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서 결과를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는 힘입니다.

기존에도 어렴풋이 알았지만 왜 현직에 있는 판검사들이 자신의 소신대로 하지 못하지라는 의문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선배들의 영향을 벗어나 소신껏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모두 한 배를 탄 '신성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저자가 택한 '신성가족'이란 용어가 판사, 검사, 변호사로 구성되는 사법 시스템의 좁은 울타리를 잘 표현합니다. 전현직 판검사들이 자신의 평판을 유지하며 결국은 변호사로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원만하게 지내야 합니다. 

둘째, 판검사의 업무가 과중해 모든 사건을 상세하게 검토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자신들이 처리해야할 일은 많은데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판사가 매 건마다 모든 자료를 보지 못하고 판결해야 합니다. 기존의 판례를 참고해 가장 문안한 결론을 내게 됩니다. 이로 인해 누군가는 선의의 피해를 봅니다.

그래서 저자는 변호사의 수를 늘리는 것뿐만 아니라 판검사의 인원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법 앞에 서는 상황이라면 제대로 검토하고 판단해줄 판사와 검사가 필요합니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판사가 시간 부족으로 변호사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거나, 권위를 내세우고 반말을 하게 된다고 합니다. 



셋째, 사법 시스템 개혁안으로 판사와 검사가 변호사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전관 변호사가 되어 자신의 이름이나 전화 한 통으로 몇 천만 원의 수임료를 받는 관행이 사라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현직 판검사가 자신의 판단에 따라 사건을 진행하고 국민은 올바른 법의 판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판사가 은퇴해서 변호사를 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우리도 그쪽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불멸의 신성가족>을 읽고나니 판검사의 권력이란 것이 결국은 엘리트 의식과 좁은 울타리 안에서 그들 간의 끈끈한 챙겨주기로 유지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해방 이후 가난의 시기에서 선진국의 위치까지 급속하게 성장한 대한민국에서 사법부 출신들이 입법과 정부조직까지 많은 영향력을 행사해 왔습니다. 이제는 신성가족을 확대하고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서 워라벨을 중시하며 가야 합니다. 더 이상 불법과 비리가 자리 잡도록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아래는 책에서 인상깊은 문장을 인용했습니다.

 

 

판검사들이 일정한 틀을 미리 짜 놓고 사건을 꿰어 맞추려 한다는 것은 당사자나 변호사들이 많이 느끼는 문제입니다. 거기에서부터 소통이 단절되는 것이지요. 판검사들이 틀을 짜는 이유는 그들의 독선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사건을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입니다. (72)

검사들이 다함께 용기 있는 개인으로 살기를 결단한다면 문제 되지 않을 터이지만, 개인보다는 조직의 힘이 중요하고 그 조직의 평가가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에서 모든 검사에게 이런 용기를 기대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 용기를 포기하면 동료들과의 뜨거운 연대의식 속에서 적절한 용돈도 챙길 수 있습니다. (108)

 

전두환 치하에서 대학생활을 한 김승헌 부장판사는 고시공부를 하면서도 늘 "떳떳지 못한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판사가 되면 잘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지요. 그러다가 사법연수원에 들어가자 자신과 "똑같은 코스를 밟은 사람들이 친구가 되고" 그때부터는 그런 부담을 덜게 되었습니다. 이건 김부장판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법시험 합격자들이 경험하는 일입니다. (...) 그 과정에서 결국 친한 친구들은 어디를 둘러봐도 법조인뿐인 상황이 되게 마련입니다. (134)

 

신성가족은 자신의 힘으로 창조한 것이며, 사악한 사회에서 자유롭기 위해 스스로 자신을 사회에서 해방시킨 존재입니다. 신성가족의 가장 큰 상징인 '거룩'은 처음부터 '구별'을 의미하는 단어이기도 했습니다. 마르크스는 "불경스러운 대중과 모든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기 위해 어마어마한 투쟁을 겪어온 비판적 비판주의는 마침내 고독하고 신을 닮았으며 자기만족적이고 절대적인 존재로 되는 데 성공했다"고 그들을 묘사합니다. (157)

 

미국의 보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중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과 함께 우리나라를 가족주의가 지배하는 대표적인 '저신뢰사회'로 규정했습니다. 가족주의사회에서는 혈연관계로 엮이지 않은 사람들이 서로를 신뢰할 만한 토대가 없기 때문에 자발적인 결속력이 약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결국 고비용으로 연결되게 마련입니다. (163)

 

검찰 출신 변호사는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은 채로 검사에게 전화로 청탁함으로써 세금 기록을 남기지 않을 수 있지요. 이런 경우 자기 이름이 공식 기록에 남지 않으므로 사건에 대한 책임감도 적습니다. 선임계도 내지 않고 전화 변론을 하는 사람들이 대개 '검찰 가족'인 까닭에 검찰은 이런 탈세 관행을 오랫동안 눈감아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위직을 지낸 검찰 출신 변호사들의 "전화 한 통"에 수천만 원을 받는 일도 생깁니다. (172)

 

한번 '신성가족'의 일원이 되면 검찰에서 퇴직했다 해도 그 '가족'의 지위를 유지합니다. 그 가족관계 안에서는 퇴직한 고위 검사들도 여전히 "권력의 인프라"를 누립니다. 이 거대한 가족구조 안에서 혼자 깨끗한 척해봐야 검찰 분위기가 바뀔 리도 없고, 싸가지 없다고 찍힌 검사 꼴만 될 뿐입니다. (175)

 

 

그는 일본과 우리나라의 사법시스템을 비교해 서로 다른 점이 있다면 "일본의 판사가 변호사 개업을 해도 돈을 못 버는데, 우리나라는 돈을 번다"는 사실이라고 지적합니다. 일본은 판사가 변호사 개업을 해봐야 뽑아주는 곳도 없고, 사건도 없는 데다 심지어 "이상한 사람"이라는 이야기까지 듣기 때문에 승진을 못해도 그냥 남아서 정년까지 근무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법의 문제는, 판사들이 승진 못해도 법원에 그냥 남으면 대부분 해결된다는 것이 김부장판사의 생각입니다. (184)

 

그러나 우리 사회 어떤 분야도 판검사들만큼 막강한 재량과 권한이 없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단 한명의 검사가 기업을 완전히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습니다. 판사 한 사람의 결정이 한 인생을 완전히 망가뜨릴 수도 있습니다. 매일 그런 엄청난 일들을 처리하는 흔치 않은 직업이 판검사입니다. (187)

 

사건 수임이 그만큼 절박한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변호사라 해도 의뢰인이 찾아오지 않으면 당장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립니다. (...) 변호사는 겉으로 고상해 보이지만, 매달 사건 수임에 쫓기는 절박한 인생입니다. 의뢰인을 직접 만나 설명하고 책임지는 것을 귀찮아하는 변호사들의 상향도 오랜 세월 브로커를 키워온 원인입니다. (196)

 

남을 배려하지 않는 이런 사회 분위기의 배경에는 잘못된 교육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정점에 바로 사법시험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훌륭한 판검사가 되기 위한 열정, 헌신, 인간에 대한 애정 같은 것은 전혀 평가하지 않은 채, 오로지 "지적인 능력 하나를 테스트하는 방식"으로 "살인적인 경쟁"을 거쳐서 특권을 갖게 하는 사법시험이야말로 우리의 잘못된 교육시스템을 상징했습니다. (236)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가 그런 이야기를 퍼뜨렸느냐가 아니라, 기자들이 왜 그런 이야기를 검증 없이 "받아쓰느냐"입니다. 황영범 기자는 근본적으로 "법원이나 검찰 쪽 이야기에 신빙성을 두고, 그에 배치되는 주장은 귀담아듣지 않는 "엄청난 시간과 품"을 들여야 하는데 늘 시간에 쫓기는 기자들로서는 그럴 여유가 없습니다. (307)

 

저는 판검사의 대폭 증원이 한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사법개혁은 주로 변호사의 증원에 중점을 두어 진행되었습니다. 그런 목적으로 사법시험 합격자 숫자를 늘리고 로스쿨을 만들었습니다. 시장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 것이지요. (327)

 

(...) 신성가족 시스템이 유지되는 데는 시민들의 무지와 무관심도 일정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판검사들이 장벽 밖에 있는 시민들을 은근히 두려워하고 그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쓸데없이 목소리를 높였던 것처럼, 시민들도 장벽 안쪽을 들여다보기를 두려워했지요. 이 두려움은 원래 높은 장벽을 더욱 높였고, 장벽 밖의 시민들은 그 장벽 안쪽을 그저 짐작이나 하며 불안, 불, 불만을 키워갔습니다. (338)

 

검사가 지켜야 할 선을 넘는다고 생각되면 부장검사에게 가서 이야기해보십시오. 부장검사가 이야기를 안 들어준다면 차장검사를 만나고, 안 되면 검사장에게 면담을 신청하십시오. 그렇게 뛰어다닌다고 누가 잡아가지 않습니다. 전화 한통한 통 걸어줄 사람이 없다고 너무 빨리 포기하지 마십시오. 전화 한 통을 돈 주고 살 필요도 없습니다. (341)

 

비폭력 환경에서 자유를 공기처럼 맛보며 자라나 삶의 균형을 추구할 줄 아는 세대의 등장은 이런 세상의 변화를 보여주는 산 증거입니다. 조직을 위해 개인을 과도하게 희생하고 뒤늦게 보상을 바라는 '불멸의 신성가족' 시대를 끝장낼 '개인'의 탄생이기도 합니다. (369)

독서습관549_불멸의 신성가족_김두식_2019_창비(220326)


 

김두식 교(출처: 나무위키)

■ 저자: 김두식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군법무관, 서울지검 서부지청 검사, 변호사로 일했다. 코넬대 로스쿨에서 석사학위(LL.M.)를 취득한 후 한동대 법학부 교수를 거쳐 2006년부터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에서 형법, 형사소송법, 형사정책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 출판문화상을 받은 <헌법의 풍경>을 비롯해 <평화의 얼굴> <불멸의 신성가족>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불편해도 괜찮아> <욕망해도 괜찮아> <공부 논쟁>(공저) <법률가들> 등 몇 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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