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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독서습관495_나와 가족의 생각이 담긴 집이 필요_작은 집 큰 생각_임형남&노은주_2011_교보문고(211212)

by bandiburi 2021. 12. 12.

임형남&노은주 부부 건축가는 유튜브를 통해 독특한 집을 소개하는 프로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건축관을 보유했는지 모르고 있었다. 이 책 <작은 집 큰 생각>에서 부부가 어떤 건축가인지 알 수 있었다. 집에 대한 생각, 결혼에 대한 생각, 사교육에 대한 생각이 나와 일치했다. 거품이 잔뜩 끼어 있고 형식이 지나치게 내용을 앞서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퇴계가 만들어 놓은 공간은 작지만 겸손하고 조용하며 경건하다. 경敬을 바닥에 깔고 실용성과 합리성을 추구한 그의 건축은 퇴계 자신이라는 현실과, 자신을 만들어 주고 지탱해 주는 책이라는 과거와, 그에게 학문을 배우는 학생들이라는 미래를 담는 집이다. 작고 소박한 집에 우주가 담긴다... 그 말만 들어도 마음이 두근거린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달에서도 보일 정도로 큰 신전과 같은 거대한 집이 아니다. 생각이 담긴 집, 더군다나 그 생각이 높고도 향기롭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48)

 

물론 그것이 사람들의 탓이라기보다는, 자본주의 체제가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그런 욕망을 부추기고 그 동력으로 돌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좋건 싫건 우리는 그 사회의 구서원으로서 충실하게 주어진 역할을 수행하는 것일 수도 있다. (52~53)

 

반부에서는 퇴계 이황 선생의 도산서원을 참고로 해서 건축주의 의뢰로 설계한 '금산주택'이 소개된다. 이 장을 통해 건축가가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인가 이해하게 되었다. 건축주의 의뢰로 장소와 컨셉을 듣고 이에 적합한 설계를 하고 완성된 설계도면에 따라 시공자가 건물을 만드는 과정이다. 서로 간의 소통과 협조가 필요한데 어떤 경우에는 건축가와 시공자 간에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달팽이처럼 평생 집을 등에 들쳐 업고 엉금엉금 기어간다. 집을 장만하기 위해 몇 년이 걸린다는 정보를 우리에게 알려 주고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길을 알려 주면, 앞뒤를 가리지 않고 그리로 뛰어간다. 과연 이게 맞는 걸까? 너무 무거운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내달려야지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집이 날아간다. (62)

 

집값이 오른다는 말에서 '오르다'란 언뜻 보기에는 진행형 동사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그것은 완결형이자, 수동태다. 그 '오른다는 것'은 주체인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되지만 결국 주체를 소외시킨다. 특히 수치적 가치로서 '오르다'는 적어도 자본주의에 속한 시간에서는 '소유'의 다른 이름이다. 그것은 소유한 사람에게는 더 큰 여유를, 소유하려는 사람에게는 상실감을 안겨 준다(88)

 

 

누구나 아파트 공화국에서 벗어나 텃밭이 있고 마당이 있는 집을 지어서 살고 싶어 한다. 도심을 개발한다는 명목으로 뉴타운을 내세우며 아파트를 짓는다. 구 도심에 살던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없다. 일방적인 국가의 횡포 속에 누군가는 부를 늘린다.

아파트 속에 소파와 침대를 놓고 냉장고, 김치냉장고, 건조기, 세탁기, 싱크대, 옷장 등을 들여놓으면 우리가 살 공간은 그만큼 줄어든다. 더 넓은 아파트를 원하게 된다. 이런 가구나 가전기기들이 마치 필수인 것처럼 광고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직장인들이 쳐다볼 수 없을 정도로 오른 아파트에 과도하게 물건을 넣을 필요가 없다. 단출하게 생활하면 40평이 30평으로 30평이 20평으로 20평이 10평대로 필요는 감소할 수 있다. 

 

주자학에서는 세계가 '리'와 '기'라는 두 가지의 질서 원리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하였다. '리'라는 것은 어떤 사람과 사물이 왜 그렇게 존재하며, 또 어떻게 해야만 하는가를 가리키는 것이고, '기'라는 것은 세계(사물, 사람)의 현실적 모습이며, 비록 불완전하지만 그 배후에는 그 불완전함을 규제하고 보다 완성된 상태로 이끌어 갈 수 있는 참모습(선한 바탕)이 있다고 믿었다. (94~96)

 

돌이켜 보면 예전에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노후에 부양을 받기 위한 일종의 사회보장 시스템이었다. 농경 사회에 존재했던 친족 커뮤니티가 해체되고 도시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국가나 도시 시스템이 부양을 맡아 주는 것도 아니니 결국은 개인의 경제력에 의해 노후 생활이 좌우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족을 만들고 돌보기보다는 개인 각자가 일을 하고 능력을 키우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고 있다. (133)

 

아파트는 우리가 보유한 차량과 비슷하다. 차를 소유한다는 것은 대부분이 출퇴근용으로 나머지 시간은 주차되어 있다. 아파트도 거주하는 공간이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공간이 활용되지 않고 있다. 과시용일 수도 있고 부를 축적하기 위한 방 안으로 본다. 

 

저자는 사교육이나 결혼에 대해서도 우리의 생각이 없이 주변에서 하니까 나도 한다는 고민 없는 삶을 지적한다.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학원을 다니지 않는 친구들이 거의 없다고 한다. 주변 직장 동료들에게 어쩌다 교육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있어 학원을 보내지 않는다라고 하면 자녀교육에 무관심한 사람 취급받는다. 그만큼 학교교육 외에 사교육이 당연한 듯 우리 주변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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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들이 좋은 직장에 들어간다면 더 좋은 데 없나 두리번거리고, 남들이 명품을 사면 따라가서 똑같은 가방을 사고, 남들이 학원 보내면 같이 보내고, 남들이 집 사면 같이 샀다. 늘 남들처럼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처럼 살아왔다. 무슨 혈압 약 이야기도 아니고 시작하면 그만둘 수 없는 시스템에 모두가 발을 담그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기준에는 정작 가장 중요한 '나', '자기 자신'이 없었다. (137)

 

사람들은 무척 똑똑한 것 같은데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허점들을 가지고 있다. 약은 사람들은 그 허점을 교묘히 파고들어 아주 짧은 시간에 부를 거머쥔다. 우리의 주택 시장이 그랬고, 우리의 사교육 시장이 그랬고, 가까이는 지금의 연예 산업이 그렇다. 정상적인 상식을 가지고는 이해할 수 없는 지점에서 잭팟이 터지고, 그 부를 거머쥔 자들이 내리누르면 사람들은 즐거이 그 아래 복속하고 봉사하며 가진 것들을 기꺼이 내놓는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사람들은 그동안 맹신해 왔던 '통념'과 '약속'들이 헛된 것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144)

 

결혼에 대해서도 다이어트가 많이 필요하다. 저자가 적나라하게 호텔이나 결혼식장에서 이뤄지는 예식행위들을 기술하고 있다. 결혼을 진정으로 축하할 일가친척이나 일부 친구들 정도를 초청해서 단출하게 검소한 장소에서 하면 되는 것이다. 예식장은 한 시간 단위로 다음 스케줄을 적어두고 공장에서 상품을 생산하듯이 결혼식을 만들어낸다. 

 

그런 결혼에 대한 매뉴얼들이 사실은 혼수품 시장과 결혼에 거품을 씌워서 먹고사는 사람들의 편의에 의해서 만든 이상한 고정관념이라는 생각에 동의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결혼이라는 것을 양쪽 집안의 큰 행사로 여긴다. 집안 어른 상견례에서 시작하여 길일을 잡고, 예단과 인사로 준비하는 여러 물품을 두고 치열한 협상이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결혼의 당사자들은 배제된다. 참 이상한 진행이다. 그리고 결혼식은 예식장에서 한다.

그러나 그 예식장에서 이루어지는 결혼식은 마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돌아가는 공장의 생산물처럼 약 20분 동안 일사불란하게 진행된다. 모두들 예식에는 큰 관심이 없이 돈 봉투를 내밀고 이름을 써내고, 밥을 한 끼 먹고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정신없이 빠져나온다. 그리고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주례사가 고장 난 테이프처럼 늘어져서 흐른다. (149~150)

 

후반부에는 저자가 서울에서 살았던 주택 생활에 대해 기록하며 생각을 덧붙였다. 마당이 있는 집, 개와 오리가 함께 사는 집, 이웃과 교류하는 집이 과거에는 대부분이었는데 지금은 큐브형 아파트에서 아래층도 앞집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 집은 추억을 남긴다. 집 안과 밖에서 주변 환경에서 시각으로 청각으로 후각으로 기억을 만들어내는데 지금은 밖이 사라졌다. 언젠가는 아파트를 벗어나 여유 있게 거닐 수 있는 마당 있는 집을 꿈꾸게 되는 책이다

 

집이란 그렇게 자기를 실현하는 곳이고, 우리가 가족과 모여서 사는 곳이다. 너무 뻔하고 단순한 이야기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오랫동안 삶의 형식으로서 표준화된 아파트 문화가 지배해 오면서, 집은 재산, 그것도 무척 유동적인 재산이며, 때로는 과시의 수단으로 인식되어 왔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자신에게 맞는 집이 아닌 남들이 사는 집, 남들과 비슷한 집을 선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표준화된 공간에서는 삶 또한 표준화된다. 결국 의식도 표준화되어 버린다. (163)

 

그러던 어느 날, 애초에 뉴타운에서 제외되었던 방아닷골도 편입이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중략) '이게 웬 마른하늘에 떨어지는 날벼락이냐?' 하면서도 '"나가!" 이 한마디에 "억울하다"느니 "어떻게 좀 안 되겠냐?"느니 하며 안타까운 심정을 하소연할 만한 곳도 없었다. 꼼짝없이 당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럴 때 공공 기관이라는 곳을 보면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고 기계들이 있는 곳 같았다. 그것도 못된 기계들... 어떤 일을 당해도 그냥 '일'로 처리할 뿐이었다. 그 안에 담긴 사정이라든가 구구한 인간적인 사연들은 택도 없는 이야기였다.

 

 

(출처: studio-gaon.com)

■ 저자: 임형남 & 노은주

노은주 임형남은 함께 날아다닌다. 그들의 비행은 같이 홍익대학교 건축과를 다닐 적부터다. 그 후로 두 사람은 같이 두 아이를 키우고, 같이 건축설계 일을 하고, 같이 글을 쓴다. 노은주는 일에는 꼼꼼하지만, 일상에서는 뭘 잘 잃어버리고 다닌다. 그걸 챙기는 사람이 임형남이다. 임형남은 일에 겁이 없다. 그러나 그 일을 마법사처럼 마무리하는 건 노은주다. 

노은주는 좀 이상하다. 만화도 좋아하고, 아이돌 가수도 좋아하는데다, 딴생각으로 곧잘 빠지는 산만한 성격인데도, 어떻게든 일의 매듭을 야무지게 지어 놓는다. 임형남도 좀 이상한 사람이다. 임형남은 이매방의 춤을 좋아하고, 감축파의 가야금을 좋아하는 향유자고, 평생 낮잠을 자 본 적이 없는, 정신 차리고 사는 사람이지만, 일을 쫘 펼쳐 놓고는 이성복의 시집을 읽는다. 그러면 서태지의 노래를 듣던 노은주가 스르르 다가와 자판을 두드리며 어느새 일을 끝낸다. 그리고 임형남이 노은주에게 이성복의 시를 읽어준다.

이 두 사람이 일하는 방식이 이러하다. 부부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친절하며, 건축설계 일이 직업이지만, 사실은 베푸는 게 직업인 사람들인 것 같다. 둘의 몸집은 작지만 그들의 베풂은 주변의 사람들과 온 동네, 그리고 건축과 문학과 인문학을 다 덮고도 남는다. 그들의 삶이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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