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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독서습관493_신중년에게 시간은 가장 소중한 자산_생애 전환 학교_고영직 외_2021_서해문집(211206)

by bandiburi 2021. 12. 6.

책 표지에 신중년, 생애, 전환, 학교 등의 단어를 포함하고 있어 50세 이상의 중년을 대상으로 앞으로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일반적인 가이드 정도로 생각했다. 단숨에 읽을 수 있는 보편적인 내용이라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일종의 철학서처럼 각 장의 저자들이 남긴 글들은 쉽게 읽히지 않았다.

 

유엔이 2020년에 발표한 새로운 연령 구분은 그보다 더 급진적이다. 그에 따르면 0~17세가 미성년자, 18~65세가 청년, 66~79세가 중년, 80~99세가 노인, 100세 이상이 장수 노인이다. 청년기가 50년 가까이 지속되고 80세까지 중년이라니, 21세기 인간의 생애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26)

 

육신은 쇠퇴하지만 내면은 더욱 넓고 깊은 세계로 확장될 때 인간으로서 존엄과 품위를 지키면서 일상의 격조를 가꿔갈 수 있다.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를 풍요롭게 일구면서 자아를 보살필 수 있다. 노욕에 사로잡히지 않고 주어진 삶에서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존재가 거기에서 자각된다. (43)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책은 읽을 만한 책을 많이 소개하는 종류인데 <생애 전환 학교>가 그렇다. 접하기 어려웠을 저자들의 작품을 소개해주고 영화도 몇 편 담겨 있어 찜해두었다.

 

 

"내게 무엇이 일어났는가가 나는 아니다. 내가 무엇이 되고자 선택하는가가 나다 I am not what happened to me. I am what I choose to become" 정신의학자 카를 융의 말이다. 경험과 이력을 내세우면서 허세를 부리거나 어떤 상처나 회한에 시달리는 것 모두 과거에 내게 일어난 일을 자아로 동일시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내게 벌어진 상황이 아니라, 앞으로 내가 주도적으로 창조해 나가는 삶이 정체성의 핵심이라고 융은 말한다. (44)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를 보면 의사와 환자가 명사, 동사이 중요함을 놓고 의견을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의사가 주인공 미자에게 알츠하이머에 걸렸음을 알리면서 처음엔 명사를, 점차 동사를 잊어버리게 될 거라고 설명하자, 미자는 "명사가 제일 중요하잖아요"라며 동의를 구한다. (51)

 

일부 청년을 대상으로 한 글도 있지만 대부분은 50세 이상의 중년을 대상으로 한다. 지금까지 가족을 위해 살았다면 이제부터는 자신을 위해 살 수 있는 시기다. 하지만 아파트 공화국에서 서로 간에 담을 쌓고 살고 있어 인간적인 교류가 어렵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만날 수 있는 관계 맺기에 대해 강조한다.

선인과 악인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우리가 다가가기에 따라 늘 선인이 될 수 있다. 인식의 전환을 통해 우리의 반 평생을 즐겁고 유익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단순히 소일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한 것도 아니다.

중년의 감각을 깨우고, 20대의 내가 나를 바라보는 체험도 하며, 사진이나 글쓰기 등의 관심있는 분야를 통해 소통하면서 살아가는 인생 후반전이 되기 위한 책이다.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와 그를 위한 전담 우편배달부 마리오의 교류를 그린 영화 <일 포스티노>는 예술이 매개가 되어 한 존재를 변모시키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시인과의 만남이 가져다주는 경이로운 자극에 자신의 삶 전부를 쏟아 부으며 몰입하는 우편배달부의 새로 태어남은 놀랍다. (중략)

시인은 "난 내가 쓴 글 이외의 말로 그 시를 설명하지 못하네. 시란 설명하면 진부해지고 말아. 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감정을 직접 경험해보는 것뿐이라네"라는 말로 답한다. (중략)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몇 마디 말을 더듬거릴 뿐이었던 마리오가 노동자가 운집한 광장 집회에서 시를 외칠 수 있게 된 믿기 어려운 전환은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5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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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소개된 실천 프로그램중에서 목포의 '괜찮아마을'의 컨셉이 마음에 들었다. 청년들이 교육과 직업을 찾아 수도권으로 모여든다. 높은 생활비와 낮은 임금으로 수도권 살이가 쉽지 않다.

하지만 목포와 같은 지방에서 저렴한 생활비에 많이 웃으며 자기가 해보고 싶은 일을 하며 미래의 직업을 준비해 가는 과정이 청년들에게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을 줄 것이다.

그리고 수도권이 꼭 좋은 것이 아니고 때로는 누군가에게 지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박차고 나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많은 청년들에게 소개되고 이런 마을이 많아지면 좋겠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낙화> 중에서

 

우리가 내일 부르는 노래가 명랑한 노래가 되고자 하는가? 그건 오늘 내가 어떤 노래를 부르느냐에 달렸다. 그러므로 신중년의 '짝다리 짚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오늘'을 제대로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노후 대책이라는 점을 우리는 제대로 배울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나이 듦에 대해 수용적 자세가 필요하다. 더 좋은 삶을 위하여. (88)

 

육현주 강사의 얼굴에서 '화안시和顔施'의 실천을 보게 된다. 화안시란 다정한 얼굴로 상대를 대함으로써 베푼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말한다. 일본에서 100세의 정신과 의사 할머니로 잘 알려진 다카하시 사치에는 나이가 들수록 화안시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상대의 마음을 단 1밀리미터만 흔들어도 그것은 어엿한 베풂"이라는 것이다. (109)
​50+에게 시간은 가장 중요한 자산이며 그 결핍의 의미를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낀다. 시간의 자산을 한껏 지니고 있던 청춘의 나는 무엇이라 말할까? 세대가 다른 나 자신과 만난다면 대화의 내용은 진지할 수밖에 없다. '빈 의자'는 연극 치료에서 사용하기도 하는 드라마 기법이다. (148)

 

​어느 날 2년간 동거한 남자 친구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다가 실명 위기에 이를 정도로 맞고 난 후 그 얼굴을 클로즈업해 사진을 찍어두었다. 이 사진은 처참하지만 날것 그대로의 '그날'을 박제한다. 낸은 다시는 그때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다짐하기 위해 셀프포트리트(자화상)를 찍었다고 말한다.

'고통 없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세계의 진실은 고통 속에 있고, 고통을 외면하고는 진실을 마주할 수 없다'는 프랑스의 사상가 시몬 베유의 역설처럼 낸 골딘은 사진을 통해 고통과 직면함으로써 진실과 마주한다. (181)

 

​사진을 찍고 함께하는 사람들의 공감을 통해 자신의 경험에 대해 재의미화를 할 수 있었다. 즉 타인의 공감과 소통, 격려와 지지가 숨통을 트이게 해 주었고, 연대의 가능성을 경험하면서 슬픔의 무게를 덜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사진이라는 언어에는 삶을 바라보고 말하고 의미화하면서 새로운 성찰과 전환을 얻을 수 있는 힘이 담겨있다. (187)

 

​인류학자인 아구스틴 푸엔테스는 그의 저서 <크리에이티브: 돌에서 칼날을 떠올린 순간>에서 인류 진화는 창의적 협력을 통해 가능했으며, 창의성은 인간의 진화와 현재 인류의 존재 방식을 말해주는 뿌리라고 설명한다. 그는 무수한 개인들의 창의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인간이 하나의 종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이며, 모든 창의적 행동이 처음 형성되는 조건은 협력임을 인류 진화의 역사적 과정을 통해 증명한다. (198)



 

​현대인은 도시에서 분자화되어 있다. 그 강력한 원심력이 개인을 방에 가둔다. 사람들은 외로움에 익숙해진다. 사람들을 갈라놓은 도시를 떠나면 다시 그룹을 형성하려는 구심력이 작동한다. 도시를 떠나면 스스로 무장을 해제하고, 익숙하지 않은 비도시에 적응하기 위해 사람들과 함께한다. (206)

 

​말의 속도는 결국 삶의 속도다. 삶의 속도가 내 존재의 속도를 앞질러 나가면 존재에 대한 인식이 희미해진다. 현대인도 비슷한 말을 격언으로 삼는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228~229)
​개인의 말과 생각의 변화가 세계의 방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우리를 흥분하게 만든다. 이를 손쉽게 과장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세계와 개인이 맺는 관계 방식의 전환이 인식과 사고의 전환에서 출발한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237)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런데 이 말의 출처를 따라가 보면, 타인이 언제나 내게 해를 끼치는 악이라는 뜻과는 거리가 멀다. 사르트르가 이 말을 쓴 건 희곡 <출구 없는 방>(1944)의 대사를 통해서였다. 희곡에 나온 대사는 "지옥, 그것은 타인들이다"였다.

사르트르 본인의 말을 들어보자면 그는 1965년 이 연극에 대한 강연에서 이 말이 항상 사람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타인과의 관계는 언제나 해가 되고 지옥처럼 된다는 뜻이라고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내가 말하고자 한 건 좀 다르다. (중략)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옥에서 살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타인의 판단과 평가에 지나치게 의존하기 때문이다."(238)

​이 사업단이 맨 처음 꺼내든 책은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였다. 두 차례 토론을 했지만 죽음을 다룬 철학서여서인지 만만치 않았다. 이번엔 영화 <엔딩노트>를 함께 보며 여러 갈래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266)

 

​지금 인생학교의 맥락에서 보면 유보된 3개월 기간이 있다. 그동안 열심히 몇십 년 뛰었으니까 좀 쉬어 갈 수도 있다. 먼 산도 좀 쳐다보고, 영 아니다 싶으면 개기기도 한다. 그렇게 가다가 내켰을 때 달려들고 뭔가 와닿는 것이 있을 때 움직이는 것이다. 오히려 그 힘이 더 센 것 같다. 중요한 것은 내면의 힘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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