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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490]파친코 ①_훈이 양진 순자 이삭 한수 노아 모자수 오사카

by bandiburi 2021. 12. 5.

조선인들이 일본이 승리하기를 바란다고? 천만의 말씀이다. 하지만 일본의 적이 이긴다면 조선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조선인들이 스스로를 구할 수 있을까? 분명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내 밥그릇이나 잘 챙기자는 것이 조선인들이 남몰래 품고 있는 속마음이었다. 가족을 구하고, 자기 배를 채우고, 관리자들을 경계하자. 조선의 독립주의자들이 나라를 되찾지 못한다면 아이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쳐 출셋길을 열어주자. 적응해서 살자. 이만큼 간단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모든 애국자나 일본을 위해서 싸우는 재수 없는 조선인 개자식이나 다들 먹고 살려고 애쓰는 만 명의 동포 중 하나일 뿐이었다. 결국 굶주림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267)
아내의 추천으로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를 읽게 되었다. 어디서 들었는지 꼭 읽고 싶다고 하기에 도서관에서 예약을 했다. 2달 정도가 지나서야 받아볼 수 있었다. 주말을 맞아 <파친코 1>과 <파친코 2>를 모두 즐길 수 읽었는데 재일 조선인들의 행적과 일본에서의 삶을 잘 들여다볼 수 있었다. 

1권에서는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선자(2권에서는 순자로 번역)의 할아버지가 부산의 작은 섬인 영도에서 하숙을 치며 생활하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1910년에 27세가 되는 건장한 청년 훈이는 언청이라는 유전병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성실하게 부모를 돕는다. 가난으로 인해 막내딸이었던 양진은 유전병으로 입이 벌어지고 다리가 휜 훈이와 결혼한다. 당시에 그런 질병을 갖고 태어나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었다는 언급이 나온다. 
몸이 불편했던 아버지는 자기보다 더 가난하게 자란 엄마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겼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적에는 하숙집 사람들에게 식사를 준비해주고 난 후, 세 식구가 나지막한 상 앞에 앉아 다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아버지는 여자들보다 먼저 먹을 수 있었지만 늘 함께 먹겠다고 했고, 다른 집 남자들처럼 상을 다로 차려주기를 바라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엄마가 자기만큼 고기와 생선을 먹고 있는지 확인했다. (117)

 

훈이는 양진과의 사이에 여러 자녀를 낳았지만 선자만이 살아남았고 다행히 유전병 없이 건강하게 태어났다. 훈이는 당시의 남자들과는 달리 양진을 알뜰히 살피고 함께 겸상을 하며 식사를 했다. 순자가 엄마를 대신해 하숙집을 위한 장을 보러 갔다가 고한수를 만나면서 이 소설 전체의 뼈대를 이루는 인물이 완성된다. 순자는 임신 후 고한수가 유부남인 것을 알고 절망하는데 우연히 찾아온 젊은 목사 백이삭과의 결혼을 통해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어쩌면 제 인생이 큰 의미가 될 수도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아니라 소수의 사람들에게요. 어쩌면 제가 그 어린 여자와 아이를 도울 수 있을지도 모르고요. 또 그들에게 도움을 받는 것일지도 모르죠. 저에게 가족이 생기는 것이니가요. 목사님이 어떻게 보시든 그건 큰 축복이 될 겁니다."(109~110)

 

양진이 돈이 놓여 있는 쟁반을 조 씨 쪽으로 밀었다. 조 씨가 그래도 거절한다면 양진은 부산의 쌀집이란 쌀집은 모두 찾아다녀서라도 흰쌀을 구할 작정이었다. 선자가 결혼한 날 저녁만큼은 흰쌀밥을 꼭 먹여주고 싶었다. (141~142)
목사의 아내가 된 선자는 연약한 남편을 위해 살기로 다짐하며 형인 백요셉의 초청으로 오사카로 가게 된다. 오사카에서의 삶은 부산에서 하숙집을 할 때와는 전혀 다른 삶이었다. 동서인 경희와는 잘 맞았지만 남자가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요셉은 갈등을 낳기도 한다. 요셉의 벌이만으로 어려워 선자와 경희가 김치를 만들어 팔면서 억척스럽게 살아간다. 큰 식당에 김치를 만들어주게 되고, 고한수와의 12년 만의 재회를 통해 그의 도움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삭이 투옥된 지 일주일 후, 선자는 처음으로 장사를 시작했다. 감옥에 가서 이삭의 식사를 넣어주고 나서, 커다란 김치 항아리를 나무 수레에 싣고 시장으로 밀고 갔다. 이카이노의 노천시장은 가정용품과 옷, 다다미, 전기용품을 파는 자잘한 가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집에서 만든 파전과 초밥, 된장을 파는 행상인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곳이었다.(244)

이삭이 교회 목사와 함께 경찰의 심문끝에 초주검이 되어 돌아왔지만 결국 사망한다. 고한수는 2차 대전이 끝날 무렵 오사카에 미국의 공습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알리며 자신의 아들이기도 한 노아를 포함한 일가족이 시골로 대피하는 것을 돕는다. 
"얘야, 사랑하는 아들아, 넌 내 축복이야." 이삭이 아들의 손을 놓아주며 말했다. (299)

 

1910년부터 1949년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한 가족이 생존을 위해 악착같이 살아가는 몸부림이 1권에 드러난다. 사람의 삶이란 것이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도 포함된다. 훈이의 죽음 이후 양진의 가족에서 이삭이 찾아왔고 이삭이 임신한 선자와 결혼한 것은 우연이었다. 운명이라고도 하겠다. 선자와 고한수와의 사랑도 순진한 것이었지만 이들의 삶을 노년까지 이어놓는다. 2권으로 이어진다. 

독서습관490_파친코_이민진_2019_문학사상(211204)

https://bandiburi-life.tistory.com/1255

 

[491]파친코②_좌절한 노아의 죽음과 파친코로 돌아온 모자수 그리고 여자의 일생

미국에서 활동하는 교포작가 이민진의 는 1910년부터 1989년에 이르는 격동의 한국 근대사를 배경으로, 재일교포들의 4대에 걸친 삶의 애환을 생생하게 그려낸 기념비적 대 서사시이다. 대단히 한

bandiburi-life.tistory.com

■ 저자: 이민진

한국계 1.5세대로서 제2의 제인 오스틴이라는 명성이 자자한 이민진은 유년 시절 가족 이민으로 뉴욕에 정착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함경남도 원산, 어머니는 부산 출신이다. 그녀는 일곱 살 때 미국으로 이민 가 미국인으로 살고 있지만 미국식 이름 대신 어릴 때부터의 한국 이름을 고수하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한국에서 화장품회사 영업사원으로 지내다가 새로운 삶을 찾아 1970년대 중반에 이민을 결행했다. '쥐가 나오는 방 한 칸짜리 아파트에서 다섯 식구가 살았던' 가난한 기억을 잊지 못하는 이민진은 일요일도 없이 일하는 부모님의 뒷바라지를 받으며 성장했다. 이런 부모님의 희생과 사랑으로 예일대 역사학과와 조지타운대 로스쿨을 졸업한 그녀는 기업 변호사로 일하며 한인 이민 사회의 성공 모델로 성장했다.

하지만 B형간염으로 건강이 나빠지면서 잘나가던 변호사 일을 그만두고, 고교 시절부터 재능을 보였던 글 쓰는 일을 시작했다. 2004년에 단편소설 <행복의 축 Axis of Happiness>, <조국 Motherland> 등을 발표해 작가의 입지를 굳혀 나갔다. 2008년 발표한 첫 장편소설 <백만장자들을 위한 공짜 음식 Free Food for Millionaires>은 11개국에 번역 출판되었으며 전미 편집자들이 뽑은 올해의 책, 미국 픽션 부문 '비치상', 신인작가를 위한 '내러티브상' 등의 결코 작지 않은 출판상을 받았다.

미국인으로 살고 있는 이민진의 소설적 뿌리는 이민이라는 소재를 자양분으로 뻗어나간다. 막연한 호기심만 품고 있던 재일교포에 대해 직접 알게 된 계기는 일본계 미국인 남편을 만난 것이었다. 그녀의 남편이 도쿄의 금융회사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그녀는 일본에서 4년간 생활하게 되었고, 이 기간 동안 다양한 취재와 연구를 통해 소설 <파친코>를 완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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