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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습관

독서습관485_료마의 두 번째 배의 침몰과 막부 전복의 움직임_료마가 간다⑦_시바 료타로_2011_동서문화사(211127)

by bandiburi 2021. 11. 27.

막부는 신센조를 이용해서 위협이 되는 세력을 살해하며 최후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료마의 가메야마 동문들은 가쓰마 조슈 연합 이후로 자신들의 배를 이용해 상업을 하려 했지만 막부에 의해 배가 없이 무위도식하는 상태가 된다. 료마는 계급이 없는 평등한 일본을 꿈꾸며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를 하며 자신의 생각을 펼쳐간다.

 

밤이면 아무도 모르게 수첩에 적곤 하는 비밀 어록이 있었다. "세상에 생을 얻는 자는 모두 중생이므로, 그 상하가 있을 수 없다. 이 세상에서는 오로지 자신만을 최상으로 여겨야 한다." 개인주의의 확립이라고 해도 좋았다. (117)

 

경우에 따라서는 무력에 호소할 작정이었지만, 우선 료마의 장기인 만국공법에 의해 압력을 가할 대로 가해 볼 작정이었다. 이 료마의 배와 기슈 번 메이코마루의 충돌 사건은 일본의 근대 해운 사상 최초로 벌어졌던 사건이었다. (172~173)

 

어렵게 범선을 얻어 가메야마 식구들과 무기를 나르는 일을 시작하지만 첫 출항에서 기슈 번의 커다란 배와 충돌해서 다시 침몰하고 만다. 료마가 이 사건을 통해 국제법에 준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부분은 자신의 사명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좌절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것은 조슈 번의 가쓰라 등의 지원을 받기도 한다. 

 

 

준법주의자라고 해도 좋으리라. 이에야스 이래 막부는 교토의 조정이 전혀 활동할 수 없도록 물 샐 틈 없는 규제를 만들어, "천황은 조상에 대한 제사와 학문, 가도(歌道)에만 전념하고 있으면 된다."는 규정을 내리기까지 한 정도였다. 일본의 정치와 군사 문제는 천황이 임명한(형식적인 것에 불과했지만) 정이대장군이 맡아보며, 일단 위임한 이상 천황은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구실이었으나, 고메이 천황은 이것을 준수했다. (125)

 

메이지 시대적인 표현을 한다면 나카오카는 국권주의자고 료마는 민권주의자라고 할 수 있으리라. 료마가 유신사의 기적적인 존재라고 일컬어지는 것은 이렇듯 막부 붕괴 이전부터 이미 공화 제도를 꿈꾸고 있었고, 자유 민권 사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물론 료마의 지식은 그 출처가 따로 있었다. 가쓰 가이슈, 요코이 쇼난 등이 료마에게는 그런 지식의 잡화도매상격 존재였으며, 또한 그가 그런 지식과 사상을 실제로 확인한 것은 이 나가사키에서 외국 상인을 접촉하기 시작한 후부터였다. (127)

 

막부를 타도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천황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고, 수 십개로 나뉜 번을 하나의 일본으로 통합하고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일본국을 지향하는 료마의 행보는 막부와 주요 번을 넘나 든다. 당시 일반인의 생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움직임이다. 그의 탁견은 당시 리더 계층에 공감이 되었고 그의 생각이 점차 현실이 돼가고 있다. 

 

녹을 먹고 산다는 것은 새장의 새와 마찬가지여서, 스스로 먹이를 찾는 고생을 하지 않아도 먹이통에까지 먹이가 날라져 오는 것이다. 그런 습성이 몸에 익은 이상, 별안간 새장에서 놓여나 스스로 산과 들을 헤매며 먹이를 찾아야 하게 된다면 당황할 것이 틀림없으리라.(169)

 

료마가 다케치의 예언대로 '용이란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활약을 겨우 시작한 것은, 33살이 된 무렵이었다. 그는 유례없는 활동가가 되었다. 일본 지도 위를 밟고 뛰어다니는 것 같은 신출귀몰의 활약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185)

 

야타로라는 인물이 무사 출신이지만 돈을 버는 것에 재주가 있어 무사를 버리고 상업 쪽으로 전환해 활약하는 것이 나온다. 이 인물이 현재의 미쓰비시를 설립한 사람이라고 한다. 료마와는 시종일관 통하지 않는 면이 있다. 료마는 료마대로, 야타로는 야타로 대로 일본의 근대사에서 역할을 한 것이다. 

 

 

유신 당시의 혼란 중에 중신이었던 고토는 멋대로, "도사 번의 오사카 번저와 에도 번저, 그리고 기선 같은 것도 모두 줄 테니 장사를 한 번 해 보아라"하고 그가 사랑했던 번리 이와사키 야타로에게 선뜻 재산을 주어 버리고 말았다. 이와사키가 영문도 모르고 고토로부터 받은 재산 중에는 료마의 가메야마 동문 재산도 적지 않게 들어 있었다. 이와사키는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무일푼의 몸으로 입신해서 료마의 사업을 계승했고 후일 미쓰비시 회사로 발전하는 기반을 쌓아 올렸다. (34)

 

야타로는 개성이 강했다. 그 나름의 인생이 이 사나이에게도 있었다. 번에서도 근왕파에서도 한 걸음 떠나, 그는 독특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고향으로 도망친 후, 그는 관리를 집어치우고 칼도 내던진 채, 주판을 들고 재목상을 시작했다. 무사로서는 어지간히 결단성 있는 전향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이 서른이었다. '시대는 바뀐다.' (137)

 

"나카오카는 금두운을 가지고 있다"고 흔히 지사들 사이에서는 말하고 있었다. 금두운이란 <서유기>의 손오공이 타고 다니는 그 구름을 말한다. (12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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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은 영국 공사관의 통역관인 어네스트 사토였다. 사토는 일본의 문서 같은 것도 줄줄 읽어 내려갈 수 있을 정도의 어학력을 지니고 있었고 무엇보다도 정세에 대한 뛰어난 분석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사토가 요코하마에서 발행되는 <재팬 타임스>에 일본의 혼란을 수습하는 한 방안을 기고한 것이다. (209)

 

혁명에는 끈질긴 정치공작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최후에는 전쟁이 필요하다. 포연 속에서 역사는 전환된다는 것이 오래전부터 나카오카의 주장이었다. 이제 그는 자신이 말하는 최후의 단계까지 정세를 몰고 온 셈이었다. 그 정세에 몰려서 궁지에 빠져 버린 것은 당장은 막부라기보다, 요도와 같은 기회주의적 인물이라고 해도 좋았다. (287)

 

"어쨌든 사쓰마 조슈를 전쟁에서 이기게 하면 영국에만 이익이 돌아가 좋지 않다. 전쟁 없이 대업을 이룩한다면 영국도 프랑스도 모두 어리둥절할 게 아닌가. 일본인 자신의 손에 의해 독자적인 혁명이 이루어지는 거란 말이야. 그 혁명에 도쿠가와 요시노부마저 참가시킨다. 그를 혁명의 공신으로 만들어 주는 거다. 그렇게 되면 영국도 프랑스도 손을 댈 여지가 없어질 것이 아닌가?"(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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