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란 용어만 들어도 이해하기 어렵고 지루한 책이나 강의를 들었던 경험이 떠오른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철학이나 철학자는 시험을 위해 억지로 암기했던 과목의 일부분이었다. 교사들조차도 충분히 삶에서 이해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지 못한 것을 학생들에게 주입식으로 전달한 것이 아니었을까. 왜냐하면 자신의 것으로 소화된 철학이라면 제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재미있게 설명해줬을 것이기 때문이다.
경영자든 직장인이든 모든 비즈니스맨은 철학을 통해 '비판적 사고'의 핵심을 배울 수 있다. 철학의 역사는 모두, 지금껏 세상에서 상식으로 인식되거나 당연하다고 여겨진 일들에 대한 비판적 고찰의 역사다. (중략) 과거 철학자들이 마주해 왔던 물음은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라는 'What의 문제'와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How의 문제' 이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10)
일정 연령의 아이들을 같은 장소에 모아 단위 시간을 구분해 똑같은 과목을 가르치는, 우리에게 익숙한 교육 제도는 메이지 시대(1868~1912)의 부국강병 정책 아래서 수많은 아이에게 획일화된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인류는 탄생 이래 줄곧 아이들을 교육해 왔고 그 역사는 수만 년에 이른다. 이 오랜 역사 속에서 현대 교육 시스템은 극히 짧은 시간 동안 채택된 제도일 뿐이다. (8~9페이지)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은 회사 임원이 최근에 읽었던 책 중에서 추천한 책이다. 예전 같으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겠지만 지금은 독서의 즐거움에 빠져 있어서 바로 메모해 두었다가 도서관에서 빌려봤다. 이 임원은 평소에 직원들에게 프로세스, 조직, 리더십, 비교, 철학 등에 대한 정의를 강조하고 수시로 묻고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는 편이다. 그래서 직원의 입장에서 부담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30년의 직장생활을 통해 누적된 삶의 철학이 있는 사람이고 그의 철학이 일부분 이 책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르상티망은 사회적으로 공유된 가치판단에 자신의 가치판단을 예속 또는 종속시킴으로써 이루어진다. 자신이 무언가를 원할 때, 그 욕구가 '진짜' 자신의 순수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지 혹은 타인이 불러일으킨 르상티망에 의해 가동된 것인지를 판별해야 한다. (53)
다시 말해 사람이 창조성을 발휘하여 리스크를 무릅쓰고 나아가는 데는 당근도 채찍도 효과가 없다. 다만 자유로운 도전이 허용되는 풍토가 필요하다. 그러한 풍토 속에서 사람이 주저 없이 리스크를 무릅쓰는 것도 당근을 원해서도 채찍이 두려워서도 아니다. 그저 단순히 자신이 그렇게 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69)
다양한 철학자들이 소개되고 있고 그들의 주장이 역사 속에서 우리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쉽게 설명하고 있다. 철학자들의 주장만을 그대로 옮겨놓았다면 난해할 것이다. 하지만 저자의 시각으로 재정리되어 길지 않게 요약되어 있어 독자는 행복하다.
지금이라면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고관이지만 로크가 살던 당시 사회에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누구나 태어날 때 마음 상태가 백지라는 것은 인간에게 타고난 우열이 없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귀족과 왕족의 자손이든 장인이나 백성의 자식이든 타고난 우열은 없다. 개인의 소양은 모두 태어난 후에 어떠한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고, 이는 교육에 의해 인간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이 사고관은 프랑스에서 대중도 교육을 받게 됨으로써 사회적인 예속 상태에서 해방되어 모두가 평등한 입장에 선다는 신념을 형성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84)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파시즘의 심리학적 기원을 밝혀 민주주의 사회가 취해야 할 처방전을 제시했다. (85)
2018년부터 책을 읽고 블로그에 포스팅하는 습관을 이어오고 있다. 다양한 책을 읽었다. 그 중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철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교과서에는 없었지만 이 책에는 있는 20세기 후반의 철학자들이다. 여전히 충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책과 책이 이어지는 느낌이 든다. 이 책을 통해 파편적으로 이해한 지식이 다른 책의 파편을 통해 조금 더 큰 파편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결국은 온전한 페이지로 머릿속에 정리될 것이다.
프롬의 분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자유에는 견디기 어려운 고독과 통렬한 책임이 따른다. 이 고독과 책임을 감당하고 견디면서, 더욱이 진정한 인간성의 발로라고 할 수 있는 자유를 끊임없이 갈구함으로써 비로소 인류에게 바람직한 사회가 탄생하는 법이다. (86)
평범한 인간이야말로 극도의 악이 될 수 있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포기한 사람은 누구나 아이히만처럼 될 가능성이 있다. 그 가능성에 관해 생각하는 것은 두려운 일일지 모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그 가능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사고하기를 멈추면 안 된다고 아렌트는 호소했다. (101~102)
한 예로 마르크스의 '소외'라는 용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노동으로부터의 소외나 노동 생산물로부터의 소외라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었다. 책에서 사용한 '휘둘리다'라는 말이 도움이 되었다. 노동이란 우리가 하고 싶을 때 필요에 의해서 하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며 휘둘리면서 해야 하는 일이 노동이다. 내가 만들어낸 생산물이 내 것이 아니고 회사나 조직의 소유물일 뿐이고 나는 돈을 내고 사야 한다.
소외란 인간이 만들어 낸 개념이지만, 이것이 인간에게서 떨어져 나와 오히려 인간을 조종하는 양상을 보인다. 많은 해설에서 주로 '서먹서먹해지다'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서먹해지는 것뿐이라면 소외된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두면 되므로 실제로 심각한 피해는 없다. 소외가 큰 문제인 까닭은 인간이 만들어 낸 시스템에 인간이 휘둘리게 된다는 데 있다. (중략)
마르크스는 그의 <경제학 철학 초고>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필연적 귀겨로 네 가지 소외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첫째는 노동 생산물로부터의 소외다.
둘째는 노동으로부터의 소외다.
셋째는 위의 두 가지를 토애 다다르는 것으로 바로 유적(類的) 소외다. (중략) 마르크스는 인간을 유적 존재, 즉 어떤 '종류'에 속해 있어 그 속에서 건전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생물체로 정의했다. 하지만 분업이나 임금 노동에 의해 건전한 인간관계는 파괴되고 노동자는 자본가가 소유한 회사나 사회의 기계적인 부품, 즉 기어가 되고 만다. 이것이 유적 소외다.
넷째는 인간, 즉 타인으로부터의 소외다. 더 알기 쉽게 설명하면 '인간다움으로부터의 소외'라고 할 수 있다. (194~196)
좋은 책은 늘 짜릿한 흥분과 만족감을 준다. 이 책을 성인이 된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주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권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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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 같은 광신적인 지도자가 중추가 되어 깃발을 흔드는 것만으로 사람이 죽지는 않는다. 실제로 총이나 독가스를 이용해 자신의 손으로 죄도 없는 사람들을 벌레처럼 죽인 사람들은 나치의 지도자가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일반 시민이었다. 이때 그들의 자제심과 양심은 왜 작동하지 않았을까? 아렌트는 '분업'에 주목한다. 유대인 명부작성을 비롯해 검거, 구류, 이송, 처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많은 사람이 분담하기 때문에 시스템 전체의 책임 소재는 애매해지고 책임을 전가하기에 아주 수월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120~121)
<군주론>은 당시 피렌체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메디치가의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헌정된다. 요즘에는 컨설팅 회사나 비즈니스 스쿨이 전 세계의 대기업에 경영자의 인재 요건을 제안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데, 아마도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세계 최초의 '최고 지도자의 인재 요건에 관한 제안서'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132)
미지의 것을 알기 위해서는 지금은 알지 못하는 일을 접할 필요가 있다. 지금 알지 못하는 일을 알지 못한다는 이유로 거절하면 알게 될 기회를 잃게 되고, 알게 됨으로써 변화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잃고 만다. 그러므로 알지 못하는 사람, 즉 타자와의 만남은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것이 바로 레비나스가 말하는 타자와의 해후가 가져다주는 가능성이다. (164)
가능한 한 젊을 때 많은 실패를 맛보는 것, 여러 조직과 커뮤니티를 경험하면서 인적 자본과 사회 자본을 한 장소가 아닌 분리된 여러 장소에 형성하는 것 등의 요건이 중요해진다. 하나하나의 조직과 커뮤니티는 취약할지도 모르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직과 커뮤니티의 존속보다고 그 사람의 인적 자본과 사회 자본의 축적이다. 만약 속해 있던 조직과 커뮤니티가 소멸된다 하더라도 소속된 사람들 사이에 신뢰가 형성되어 있다면 그 사람의 사회 자본은 줄어들거나 사라지지 않고 아메바형으로 분산되어 유지될 수 있다. (190)
우리는 언어를 사용해서 사고한다. 당연한 말이다. 하지만 그 언어 자체가 이미 무언가의 전제에 따라 달라진다면 어떻겠는가? 언어를 이용해 자유롭게 사고해야 하지만, 그 언어가 의지하고 있는 틀에 사고를 의지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롭게 사고할 수 없고, 그 사고는 우리가 의거하고 있는 무언가의 구조에 의해 불가피하게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이것이 구조주의 철학의 기본 입장이다. 소쉬르가 언어학자이면서도 구조주의 철학의 시조라고 불리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296)
그러나 책의 앞머리에서 언급한 대로 눈앞에서 일어난 일이나 현상을 더욱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통찰력을 길러 준다. 개념이 통찰력을 길러 줄 수 있는 것은, 개념이 바로 새로운 세계를 파악하는 관점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297)
우리가 갖고 있는 객관적인 세계관은 애초에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그 세계관을 확신하지도 말고 버리지도 않는, 이른바 어중간한 경과 조치로 일단 잠시 멈춰 보는 중용의 자세가 바로 에포게다. 그러니 이 에포게의 사고관이야말로 지금 이 시대에 더더욱 필요한 지적 태도가 아닐까? (303)
포퍼가 지적하는 '반증 가능성'이라는 과학의 요건은 우리에게 과학에 대한 인식을 바꾸라고 채근한다. 다시 말해 진정한 의미에서 과학적이라는 것은 반론의 가능성이 외부를 향해 열려 있다는 것이며, 과학 이론은 반증 가능성을 가진 가설의 집합체일 뿐이라는 것이다. (306)
이 신기한 능력, 즉 주변에서 발견하는 뭔지 잘 모르는 물건을 비예정조화 차원에서 수집해 두었다가 여차할 때 요긴하게 활용하는 능력을 인류학자이자 구조주의 철학의 시조로 불리는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브리콜라주'라고 명명하고, 근대적이고 예정조화적인 도구의 조성과 대비해 고찰했다. (중략) 실은 전형적인 근대 사상의 산물로 여겨지는 기술 혁신에서도 브리콜라주의 사고방식은 매우 효과적이다.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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