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인문학>이란 제목이 부담스럽고 하드커버로 되어 있어 마치 어려운 전문서적 같은 느낌의 책이다. 실제로 저자 주영하가 서문에서 '이번 책은 그전에 출판했던 책들과 달리 제법 어렵다. 왜냐하면 1999년 이후 내가 학회지나 연구논문집에 발표한 글들을 수정, 보완한 내용이기 때문이다.'라고 어려운 책이라고 고백했다. 음식에 대해 상식선에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라 제도, 역사, 문화, 음식 등 여러 주제에 대해 저자가 깊이 있게 조사하고 정리한 산출물이다.
그래서 총 13개의 주제에 대해 담고 있고 주제와 관련된 그림과 사진에 대해 상세한 해설에 놀라게 된다. 주변에서 쉽게 마주치는 음식들의 유래를 찾아간다면 대부분의 음식은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책의 내용을 두 번에 나눠서 포스팅한다. 1부는 아래와 같이 전반부의 세 가지 인상 깊었던 내용을 정리한다.
첫째,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인 붉은 김치에 대한 내용으로 책의 3장에 있는 <한국음식의 매운맛은 어떻게 진화했는가-거슬러 올라가는 매운맛을 역사>에 잘 소개되어 있다. 배추 자체에 대한 이력도 다르지만 붉고 맵게 만들어주는 고추가 조선에 도입된 시기와 관련되어 있다. 임진왜란 시기에 왜구를 통해 유래된 고추가 한반도에서 재배되기 시작했다.
하나의 가설로 18세기에 소금이 부족해지면 이를 보완하기 위해 매운맛이 있는 고춧가루가 더해져 양념으로 사용되었다는 이야기다. 음식과 식재료에 대한 역사를 추적하는 것도 시대상황을 이해하고 왜 서민들의 식사문화가 변하게 되었는지 인자를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고추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17세기 초 이수광의 <지봉유설>에서 찾을 수 있다.
18세기 후반 한국음식에 고추가 들어간 일, 20세기 이후 고추장에 엿기름이나 설탕이 가미되면서 만들어진 단맛 강화, 1980년대 고추의 소과종인 청양고추의 개발과 유행을 통한 매운맛 강화, 1990년대 이후 칠리소스의 매운맛을 첨가시킨 불닭 등으로 그 매운맛의 전개가 변환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05~106)
만약 기무라 슈이치의 실험결과를 수용한다면, 고추가 김치의 양념으로 쓰인 18세기의 조선사회에서 소금의 양이 부족했는가를 살필 필요가 있다. 소금은 기원전부터 왕실에서 직접 관리했다. 소금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식품이지만, 그 생산은 한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사회에서도 소금을 국가에서 직접 생산, 유통, 관리했다. 지금의 경기도 서해안에 조선왕실의 재산으로 염전들이 운영되고 있었고, 염전을 운영하는 염한들은 비록 관리가 아니었음에도 왕실의 통제를 받았다. 그런데 17세기에 들어와서 소금의 수요가 급증한다.
그 급증의 원인은
첫째, 관혼상제가 피지배층에까지 퍼지고, 향교 서원의 증가로 제사가 급속히 확산되자 제수용품으로써 어물의 수요가 증가했다. (중략)
둘째, 이앙법과 대동법의 실시는 곡물, 특히 쌀의 생산을 증가시켰다. 이로 인해 이전에 비해 곡물을 섭취하는 양이 증가하고, 밥 중심의 식단 구조가 진행되면서 반찬들이 짠맛 중심으로 변해갔을 가능성이 많다. (중략) 이에 짠맛을 상쇄하면서 동시에 밥맛을 좋게 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 모든 음식에 고추나 고춧가루가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121~122)
한국의 경우에는 이미 20세기 중반 이후에 고추의 매운맛이 전국적으로 퍼졌기 때문에 매운맛 자체가 단맛과 결합하여 상품 고추장이 탄생했거나, 재래종 고추와 멕시코 고추를 결합한 청양고추의 유행으로 매운맛이 강화되는 변환이 있었다.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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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한류를 대표하는 음식인 '비빔밥'에 대해 정리한 4장 <비빔밥의 진화와 담론 연구>도 재미있었다. 현재까지 알려진 비빔밥에 대해 최초로 기록한 문서는 1890년대에 쓰인 <시의전서>라고 한다. 한자로는 '骨董飯'이라고 했다는데 '골동반'이란 말을 어디선가 들어봤는데 결국은 비빔밥이란 의미였다. 이후에 일제강점기에 비빔밥에 대한 약간 다른 방법이 언급되어 있는데 지역과 시대에 따라 환경의 영향을 받는 듯했다. 특히 진주의 육회비빔밥은 냉장시설이 없던 시절에 우시장이 생기고 우시장에서 나온 육회를 바로 넣어서 먹을 수 있는 비빔밥이었다.
전주비빔밥은 한류 열풍을 타고 궁중음식으로까지 연관성을 찾으려 했지만 실제와는 다르다는 인식이다. 또한 비빔밥은 먼저 비빈 뒤에 고명을 놓는 가정식 방법과 식당문화가 발달하며 오래 보전할 수 있도록 밥 위에 재료를 놓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집에서 먹는 비빔밥은 바로 비벼서 가족들이 나눠먹고, 식당에서 파는 것을 손님이 직접 비벼 먹도록 나온다.
셋째, 5장에 있는 <식탁 위의 근대> 편으로 조일통상장정 기념 연회도를 중심(아래 그림)으로 역사적 배경과 참여 인물 그리고 식탁 위의 음식에 대해 설명한다. 이 그림은 1883년에 안중식이라는 화가가 독일인 묄렌도르프의 요구로 그린 그림이라고 하는데 개인적으로 처음 보는 그림이라서 흥미로웠다.
이미 그 시대에 사진을 찍을 수도 있었음에도 그림으로 남긴 것이다.
조선과 일본 간의 조약을 위한 것임에도 묄렌도르프 부부가 참석하고 있고 조선에서는 민영목을 대표로 김옥균, 민영익 등 낯익은 이름도 보인다.
또한 당시에는 연회라면 기생이 항상 참여를 했기에 국가 간의 조약 만찬에도 기생이 참여했다는 점은 새로운 발견이다.
식탁 위의 음식 배치를 보면 전통적인 고임음식이 식탁 중앙에 배치되고 개인별로는 서양식으로 준비된 점은 이미 나이프나 포크와 같은 도구들이 수입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그림(조일통상장정 기념 연회도)을 그린 사람은 심전 안중식으로 알려져 있다. 안중식은 1881년에 영선사의 연수생으로 중국의 칭다오에 갔다. 안중식은 당시 화원의 일원으로서 서양식 제도법을 배우기 위해 파견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역시 1882년 영선사가 귀국할 때 묄렌도르프와 함께 조선으로 돌아온다. 아마도 안중식은 묄렌도르프의 부탁을 받고 이 그림을 그렸을 것으로 여겨진다. 중국에서 돌아온 안중식은 장승업의 문하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산수화를 배운다. 이후 그는 조선에서 서양식 그림을 이해한 근대적 화가로 알려진다. (165)
고임음식은 조선의 전통을 견지하고 있던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원래 고임음식은 서양 음식이 아니라 조선의 연회에 자주 등장하는 축하 음식이다. 고구려의 벽화로 알려진 중국 동북의 지안 무용총 <접견도>에서도 보이는 이 고임음식은 주로 열매가 작은 과일을 접시에 고여서 만들거나, 과일을 재료로 하여 만든 정과를 고이거나, 강정을 고이거나, 여러 가지 종류의 떡을 층층이 고여서 만든다. (182)
한때 서울 상왕십리에 즐비했던 곱창구이 골목은 한국인이 내장구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그런데 왜 일본인은 조선인을 다른 말로 '내장'이라 불렀을까? 적어도 에도시대 일본인은 공식적으로 육식을 할 수 없었다. 불교가 일본에 전래된 이후 인간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 1871년 메이지유신 4년째 되는 해, 12월에 천황은 스스로 육식을 실시하여 육식금지령을 해제했다. 서양인들이 대단한 육체와 지적 능력을 가진 이유는 육식을 하기 때문이라고 당시의 문명개화파들은 믿었다. 그들은 일본인의 체력을 서양인처럼 만들기 위해서라도 육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81~82페이지)
서양 음료의 대명사인 커피는 1895년 고종황제가 아관파천으로 러시아공사관에 머물 때에 처음으로 마셨다. (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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