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지난달 군대 간 큰아들에게 넷플릭스 계정을 만들도록 권했고, 월 14,000원에 가족들까지 함께 볼 수 있게 되었다. 4년 전 인도에서 6개월 정도 단신 근무할 때 넷플릭스를 구독했는데 시리즈물의 경우 중독성이 있어 몇 달 구독하다 그만둔 적이 있다. 웬만해서는 넷플릭스를 보지 않는데 금년 추석 연휴에는 고향에서 하루 일찍 귀경해 연휴 마지막 날 여유 있는 오후 시간에 아내와 넷플릭스에서 영화라도 한 편 보기로 했다. 초화면을 보니 '오징어 게임'이 1위에 랭크되어 있다.
어제 유튜브를 통해 간단한 소개를 봤다. 괴상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나오고 과거의 어린이 게임 중에 하나인 '오징어 게임'이 제목이어서 내용이 궁금했다. 시리즈물을 한 번 보기 시작하면 연속해서 몇 시간을 봐야 하기에 피하는데 이것은 내용을 확인하고 싶어서 2시경부터 1편을 시작했다. 결국 밤 9시가 넘어서야 9화까지 모두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루하지 않고 다음 내용이 기대되는 아주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프로였다.
'오징어 게임'은 잔인한 장면, 선정적인 장면, 욕이 수시로 나오고, 게임은 어린이용인데 성인들이 나와 생명을 내놓고 게임을 하는 등 오락적인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 막내와 부부가 함께 봤는데 욕설이 많은 것 외에는 생각해 볼 여지가 많은 프로라고 생각되었다. '오징어 게임'을 아주 재미있게 보고 나서 생각한 점을 몇 가지 정리해 본다.
첫째, 한국 사회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게임으로 보여지면서 천박한 자본주의의 속성을 보여준다. 게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앞으로 어떤 게임을 해야 할지 모른다. 총 여섯 가지 게임이 진행되며 최종 1명이 선발될 때까지 계속된다. 첫 번째 게임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통해 참여자들은 게임의 현실을 직시하며 깜짝 놀란다. 게임 참여는 상금을 얻기 위한 옵션이 아니라 탈락하면 바로 목숨을 잃는 무서운 것을 깨닫는다.
한 사람이 목숨을 잃을 때마다 1억이 상금으로 적립된다. 게임 참석자들은 모두 여러 가지 사연을 가지고 빚을 지고 사회적으로 루저와 같은 쫓기는 삶을 살던 사람들이다. 우연히 접한 오징어 게임 관련 명함으로 연락하며 자신도 모르게 참여하게 된다. 외국 VIP들이 짐승의 가면을 쓰고 나와서 게임 참여자들이 목숨을 걸고 경쟁하며 다투는 모습을 보며 베팅을 하고 즐기는 모습은 기훈에 초반에 경마로 돈을 날리고 돈을 버는 장면과 대비된다. 돈이면 뭐든지 가능하다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현주소를 비판하고 있다.
돈이 있는 사람은 죄를 지어도 인맥과 돈맥을 통해서 요리조리 빠져나간다. 부모 잘 만난 자녀들은 경찰마저도 안하무인인 세상이다. 우리는 1억이란 타인의 목숨 값을 베팅하며 돈을 갈망하는 인생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된다. 타인이야 어떻게 살든 나만 돈을 벌면 된다는 생각이 오징어 게임에서 비판하고 있는 것이라고 본다. 게임 참가자들이 '말'이라고 하는 장면은 역겹기까지 하다. 우리의 삶도 말처럼 맹목적으로 달리기만 하는 것은 아닌지 주기적인 자기 점검이 필요하다. 기훈과 같은 순수하지만 사람을 살리고 인간적인 정을 가진 사람이 더욱 필요한 세상이다.
둘째, 해결해야 할 빈부격차 이슈, 다문화 사회로 가고 있는 현실 등이 담겨 있다. 오일남 노인은 가장 반전이 심한 등장인물이다. 약간은 코믹하면서도 자신의 유년시절 즐겼던 게임을 생각하며 다른 참가자들과는 달리 진정으로 게임을 즐긴다. 주인공 기훈의 배려로 도움을 받는데 '줄다리기' 게임에서는 자신의 경험을 반영해서 극적인 승리를 거둔다.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구슬 따먹기 게임이었다. 어떤 게임을 할 줄 모르는 상태에서 두 명씩 짝을 짓는데 모두가 친한 사람들을 짝으로 찾는다. 하지만 두 명이 구슬을 먼저 차지하는 사람을 두고 경쟁하게 된다. 인간의 살고자 하는 욕망을 절절하게 담고 있다. 기훈은 오일남 노인에게 거짓말을 하며 살아남는다. 노인은 알고도 모른 척한다. 이 노인은 마지막 9화에서 엄청난 부자로 판명되고 이 게임을 주관하는 사람이었음을 알게 된다. 기훈은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는 진실에 화가 난다. 부자가 되어도 어느 순간 삶의 재미가 없어 이런 가난한 빚진 사람들을 데려다가 목숨을 건 게임을 하도록 한다는 노인의 말이다.
또한 남동생을 보육원에 둔 소매치기를 주로 하는 탈북녀 새벽이 등장하고, 엄마를 살해한 목사 아빠를 죽이고 사회의 바닥 생활을 하고 있는 지영이 결국은 새벽에게 자신의 삶을 양보한다. 또한 파키스탄에서 온 이주 노동자 알리를 통해 한국사회가 이미 다문화 사회가 되었음을 드러낸다.
셋째, 학벌중심의 사회를 비판한다. 기훈이 쌍문동 친구인 '상운'을 언급할 때마다 '서울대 경영대 수석'을 강조한다.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학벌문화를 비판한다. 상운은 똑똑한 학생으로 서울대를 들어가 가문을 자랑거리가 되었다.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선물거래로 60억대 빚을 지고 쫓기는 신세가 된다. 상운은 기훈과 함께 생존하기 위해 협력하지만 게임이 진행될수록 상운은 죽음을 두려워한다. 결국 파키스탄인 알리를 구슬놀이에서 속여서 살아남는다. 이후로는 똑똑하지만 일신의 편익을 위해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고 사기 치는 상운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우리 주변에도 헛똑똑이 '상운'이가 많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만을 생각하며 살고 배려가 없다. 일이 잘되면 자신이 똑똑해서 그런 것이고, 안되면 주변을 탓한다. 인성이 아주 낮은 경우다. 지금도 SKY 대학을 가야지 인생이 성공하는 것처럼 부모들부터 착각을 하고 있다. 기훈과 같은 사람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지 성운과 같은 기회주의자가 아니다. 여전히 SKY를 가기 위해 학원과 학교와 집을 오가며 문제풀이 연습을 하는 수많은 학생들이 있다. 그 아이들에게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 자신의 인생을 생각하며 진지한 고민을 얼마나 했을까. 성적이 좋다고 하는 아이들이 성운과 같은 성격의 판검사가 되고 의사가 된다면 끔찍한 사회가 될 것이다. 자신의 이익이 공익보다 우선시 되고, 삶의 철학이 없이 돈을 좇는다.
넷째, 하나님의 사랑을 논하지만 결국은 자기의 생명을 우선시하는 이율배반적인 종교인들을 비판한다. 게임이 거듭되며 신을 찾는 기독교인이 등장한다. 기복신앙처럼 자신의 삶에 어려움이 닥쳤을 때 어쩔 줄을 몰라 중언부언 기도한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처럼 자신보다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이 사라지고 자신을 위해 타인의 목숨을 경시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그에게 신앙이란 무엇일까. 한국 사회가 기독교, 천주교, 불교 신자가 많이 있지만 세습과 돈에 대한 이슈로 비판을 많이 받는다. 특히 기독교와 불교 쪽이 언론에 종종 등장한다.
다섯째, 우리나라의 문화가 담겨있는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에 알려진다는 점이다. 외국인의 입장에서 이 드라마는 한국의 음지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어려운 삶을 리얼하게 체험할 수 있다. 탈북민의 입장과 외국인 노동자의 상황도 이해할 수 있다. 게임마다 서로 그룹을 만들 때마다 생존을 위해 여성과 노인을 피하는 게임 참여자들의 모습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여성인권이나 고령층에 대한 배려가 나아져야 함을 넌지시 보여주고 있다.
6시간 정도 푹 빠져서 본 '오징어 게임'을 다른 분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이런 멋진 작품을 한국에서 만들었다는 점이 자랑스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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