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권장해서 읽은 책이다. 추천받은 많고 많은 책들 중에 내가 직접 흥미를 보인 책이었다. 일차적으로는 책의 두께에 비해 글의 양이 얼마 되지 않아서 만만해 보였기 때문이었고, 그다음으로는 ‘잉여인간’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게을러서 자기 역할에 충실하지 않은 사람들을 비판하는 의도로 쓰인 책인가 생각했다. 하지만 책 상단의 ‘미래 사회의 인간 생명 윤리와 이기심을 다룬~’이라는 문구는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완전히 다른 주제임을 짐작하게 함과 동시에 내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책이라는 믿음을 주었다.
과학과 의학이 발달하고 장수약이 개발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늙어 죽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는 곧 인구 증가와 자원고갈 문제를 초래한다. 그 대안으로 탈퇴자를 제외하고는 아이를 낳는 것을 금지하는 ‘포고령’이 제정된다. 포고령을 어긴 부모는 감옥으로, 그들의 자식은 잉여인간이 되어 수용소로 보내진다.
그레인지 수용소는 핀센트 소장과 선생들이 영유아부터 청소년 500명에게 잉여인간은 자원을 낭비하고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며 합법적 인간에게 봉사하며 사는 법을 가르치는 곳이다.
‘안나’는 영유아 시절부터 그 수용소에서 지내온 열네 살 소녀이다. 성씨는 합법적 인간들만 가질 수 있는 것이었기에 안나는 ‘잉여인간 안나’라 불린다. 새로 수용소에 들어온 ‘피터’라는 잉여인간은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다. 소장의 말은 모두 거짓이라고 하며 사실은 자신이 안나를 구출하러 왔고, 그녀의 이름은 ‘안나 커비’이며, 피터를 입양한 안나의 부모님이 그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고 전한다.
워낙 소장의 세뇌가 잘 되었기에 안나는 끈질긴 그의 말을 부인하고 예전에 합법적 인간인 샤프 부인에게 받은 일기장에 피터의 계획과 자신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몰래 적는다.
그러나 어느 날 소장이 피터를 죽일 계획과 안나가 세뇌가 잘 되었다는 말을 엿들은 안나는 그제야 피터가 그렇게 말하던 ‘세뇌’의 참뜻을 파악하고, 자신이 수용소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닫는다.
여러 고비 끝에 독방에서 만난 피터와 안나는 숨겨진 땅굴을 통해 수용소 탈출에 성공한다. 하지만 수색대원의 눈을 피하기는 쉽지 않던 터라 샤프 부인의 도움을 받고 나서야 부모님이 있는 안전한 장소에 도착한다.
안나는 난생 처음으로 부모님의 따스한 사랑을 받으며, 모든 생명은 존재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걸 깨닫는다. 그러나 같은 시각 잃어버린 일기장을 소장에게 들켜(자신을 두고 탈출했다고 생각한 쉴라의 복수) 위치를 발각당하고 안나 일행은 수색대원에게 붙잡힌다.
결국 안나의 부모님은 안나와 벤(동생)을 위한 목숨이라며 스스로 핑크약을 먹고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때마침 피터의 할아버지가 와서 피터는 죽은 줄 알았던 소장의 아들이고 소장의 남편의 죽음으로 인해 합법적 인간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후 합법적 인간이 된 안나와 피터는 장수약을 먹지 않고 자연의 순리대로 살기로 마음먹는다.
이렇게까지 몰입해서 읽었던 책은 중학교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 술술 읽히는 글로 인해 얼핏 보면 굉장히 쉬워 보이는 책이지만, 알고 보면 영원히 늙지 않고 죽지 않는 삶이 과연 바람직한 삶인지 생각해보게 만드는 굉장히 철학적인 책이다. 소설은 약 100년 뒤 장수약으로 완전히 뒤바뀐 세계의 디스토피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데, 나는 이를 통해 인간의 이기심은 끝내 모두를 파멸의 길로 갈 수도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소설 속에 등장한 인간의 이기심은 ‘지나친 젊음과 아름다움의 추구’였지만, 어쩌면 현실 세계에도 인류는 물론 지구촌을 위험에 빠뜨릴 이기심이 충분하고도 남을지도 모른다. ‘나만 편하면 돼’라는 현대인의 이기적인 면만 봐도 지구온난화와 빈부격차가 어디서 비롯됐는지 금방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지금껏 세계가 발칵 뒤집힐 만큼 혁신적인 발명품 혹은 개발품은 우리에게 막대한 이익과 함께 완전히 바뀐 생활습관을 요구했다. 2007년 1월, 스티브 잡스의 손에 들린 그 작지만 대단한 물건은 우리에게 무슨 변화를 가져다주었는가? 물론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이 소형화된 컴퓨터는 전화, 인터넷, 게임, 카메라 등 여러 기능을 탑재하여 모두가 예전부터 고대해온 생활의 혁신을 촉진했지만, 인터넷 중독, 게임 중독, 시력 저하와 같은 여러 건강 문제와 인간관계 속 소통의 단절 역시 유발했다.
여기서 우리는 생각해보아야 한다. 새로운 것은 늘 즐겁고 짜릿하다. 그러나 언제나 그 즐거움을 기대할 순 없다. 발명품이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발명품이 유발하는 부작용을 감수하고 책임질 준비가 항상 되어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책에 등장하는 장수약 역시 마찬가지이다. 합법적 인간들은 겉은 젊고 생기가 넘쳐 보이지만, 그들은 한 세기를 당연하듯이 뛰어넘고 살기 때문에 세상일은 점점 따분해지고 황폐해진다(샤프 부인만 해도 그렇다). 이는 그들이 미쳐 약의 부작용을 고려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계급 사회에는 신분제도가 있었다. 물론 지금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폐지된 제도이지만, 계급 사회는 불공정한 차별이 완전히 근절되지 않는 한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한다. 그리고 그 사회는 가끔 극단적으로 사람을 쓸모있는 사람과 쓸모없는 사람으로 나누어 많은 이들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뜨린다.
이처럼 나도 살아가면서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 눈앞에 닥칠 때, 내가 과연 사회가 필요로 하는 쓸모 있는 인간일지 고민했던 적이 있다. 이에 대한 해답은 내가 인상 깊게 본 문구에 담겨있다: ‘잉여인간이란 쓸모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필요 없는 존재라는 말이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그를 필요로 할 경우, 그는 더 이상 잉여인간이 될 수 없는 법이다.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 잉여인간이란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스스로의 존재가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문구이다.
이 짧은 책이 정말 많은 유익한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니, 신기하다. 가끔 책 한 권이 어느새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걸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깜짝 놀란다. 이래서 사람들이 독서를 강조하는구나, 싶다. 공상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보기를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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