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책을 통해 기회주의자 '조제프 푸셰'라는 인물을 알게 되었다. 호기심이 발동했다. 바로 그에 관한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이 있었다. 이 책 <조제프 푸셰>는 프랑스혁명으로부터 나폴레옹이 재집권했다가 몰락하기까지의 혼돈의 프랑스 역사를 생생하게 조망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책이다. 프랑스 근대사에 대해 관심 있는 분들에게 강추한다. 프랑스 혁명사를 전문적으로 다룬 책이 있지만 전공자가 아니라면 이 책만 읽더라도 충분히 그 시대를 경험할 수 있다고 본다.
1789년부터 1815년까지 푸셰의 삶의 여정을 따라가며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퇴위와 혁명을 통한 공화정, 로베스피에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루이 18세 등의 부침도 함께 들여다볼 수 있다. 역사 시간에 단편적으로 듣고 암기했던 기억인데 이런 좋은 책을 일찍이 알았다면 훨씬 쉽게 프랑스혁명 전후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할 수 있었겠다.
왕정, 공화정, 총재정부 그리고 다시 왕정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조제프 푸셰는 언제라도 모호한 입장을 취하다가 대세가 기우는 쪽으로 지지를 선언함으로써 권력의 중심으로 진출했다. 이런 인물은 학교에서 바람직한 인물로 소개하기에는 부적절하기에 널리 알려지지 않을 것이 아닐까. 어쩌면 나만 모르고 있었을 수도 있다.
수도사로 시작해서 국민의회 의원으로 선출되고 리옹에서 반동을 원하는 사람들을 대포 앞에 60명씩 세워두고 살해했던 사람, 그리고 다시 나폴레옹 시기에는 혁명을 원하는 사람들을 등지고 경찰의 우두머리 역할을 한다. 나폴레옹이 러시아 전투에서 패배하고 유배가자 루이 16세의 형인 루이 18세를 왕으로 추대하며 장관직을 맡는다.
그리고 나폴레옹이 엘배섬을 탈출하여 재집권하자 힘이 빠진 나폴레옹과 신경전을 벌이고 결국 끝까지 살아남는다. 마치 카멜레온과 같이 인생을 살아간 사람, 그래서 독자로써 읽는 즐거움을 주는 사람, 조제프 푸셰의 일대기였다.
조제프 푸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의 인생 여정에 함께 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 대해서도 인간적인 면모를 접하게 된다. 우리에게 나폴레옹은 영웅이요 천재로 기억되어 있다. 하지만 기회주의자 푸셰와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 속에서 나폴레옹의 나약한 부분도 보게 된다.
결단을 내려야 할 것 같은데 과감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 지나칠 정도로 주변국과의 전쟁에 몰두하는 듯한 모습도 보인다. 그리고 요즘도 권력자들의 친인척들의 비리가 왕왕 드러나지만 나폴레옹도 그의 주변 가족들의 돈과 권력에 대한 욕심을 보여준다. 역사는 반복된다.
아래는 책에서 생각해 볼 부분을 인용했다.
후세 사람들은 그들 모두가 피에 굶주린 야수이고 송장 냄새에 황홀해하는 살인마였다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들 모두 사람을 처형하는 일을 혐오한다. 레닌과 러시아 혁명의 다른 지도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정적들을 꼼짝 못 하게 만들기 위해서 처형하겠다고 협박했을 뿐이다. (67페이지)
같은 날 블토 들판의 대포는 첫 번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향해 발포되고 이렇게 해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용기'는 더욱 굳건해진다. 이번에 도살된 사람은 210명이다. (75)
유배 생활 당시 푸셰는 돈의 힘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여태껏 권력을 섬겼던 것처럼 지금은 돈을 섬기게 된다. 너무나 오랜 세월을 그는 밑바닥에서 극심한 고통을 견뎌 내야 했다. 빈털터리로 멸시받으며 시궁창 바닥에서 뒹굴어야 했다. 이제 그는 위로 올라가기 위하여 자신이 가진 힘을 모조리 동원한다. 저 위의 세계에서는 돈으로 권력을 사고 권력으로 다시 돈을 찍어 내고 있으니 그리로 가야 한다. (138~139)
홀이 텅 비자 푸셰는 느긋하게 문으로 걸어가서 문을 잠그고 열쇠를 주머니에 넣는다. 그가 문을 잠근 순간에 진정한 의미의 프랑스혁명은 끝이 난다. (145)
정말이지 세계사가 아무리 도덕 법전이 아니라 할지라도 브뤼메르 18일 나폴레옹과 푸셰가 바라스에게 한 짓처럼 철두철미하게 배은망덕했던 경우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나폴레옹이 자신의 후원자를 배은망덕하게 다룬 것은 그가 천재였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변명의 여지가 있다. 그의 강력함이 그에게 특별한 권리를 부여한다는 얘기다.(169)
(중략) 그런 전투들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이루어 낸 전대미문의 업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가 이룬 전대미문의 업적은 당파 싸움으로 분열되어 파탄 지경에 이른 프랑스를 다시 생명력 있는 국가로 만들어 낸 것이다. 그는 가치를 잃은 아시냐를 제대로 된 화폐로 교체하고 새로 나폴레옹 법전을 편찬하여 법과 풍속을 엄중하고도 인도적인 형태로 정형화한다. (171)
나폴레옹이 혼자 프랑스로 온 것이 아니라 욕심 많고 권력에 기갈난 대가족을 달고 왔다는 사실을 역사가들은 자주 간과하곤 한다. 어머니와 실직자였던 네 형제는 처음에는 자신들의 영도자인 나폴레옹이 부유한 공장주의 딸과 결혼해서 누이들에게 드레스를 두어 벌 장만해 주기만 해도 흡족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가 뜻밖에도 최고 권력을 쥐게 되자 전 가족은 황급히 그에게 매달려서 한꺼번에 신분 상승을 하려고 든다. (174)
한 사람을 속이는 것으로 - 설사 그가 속이는 사람이 나폴레옹 같은 거물이라 할지라도 - 푸셰는 만족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을 속이는 것이야말로 그의 유일한 낙이다. 그는 누구에게도 확약을 하지 않고 모두를 유혹하고 싶어 하며 모든 정파를 데리고 노는 동시에 모든 정파를 적으로 삼아 놀고 싶어 한다. (296)
라파예트는 뤼시앵에게 호통을 친다. "(중략) 아프리카의 모래사막, 구아탈키비르와 타호의 해안, 바이크셀 강변, 모스크바의 빙판에서 1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3백만 명의 프랑스군이 한 사람을 위해서 싸우다 죽었소. 바로 그 한 사람은 오늘도 우리의 목숨을 담보로 유럽과 맞서 싸우려 하고 있소. 한 사람을 위해서 그만큼 했으면 충분하고도 남소. 이제 우리의 의무는 조국을 구하는 것이오."(313)
영원성의 변호인인 역사는 언제나 순간만을 생각했던 사내에게 가장 잔인한 복수를 한다. 역사는 푸셰를 산 채로 매장해 버린다. 이렇게 오트란토 공작은 잊혔기에 1819년 메테르니히가 마침내 오트란토 공작이 트리에스테로 이주하는 것을 허락했을 때 오스트리아 경찰 몇 명 말고는 아무도 그 사실에 주목하지 않는다. (354~355)
대의와 이념을 구실로 삼아 폭력을 행사하는 국가, 권력과 돈의 끈끈한 관계, 음습한 정보기관이 뿜어내는 공포, 표리부동한 철새 정치인과 같은 정치의 어두운 이면은 언제 어디서건 비슷한 골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의 이름이 다르고 구체적 상황이 다를 뿐이다. (383)
독서습관 413_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시대를 산 기회주의자_조제프 푸셰_슈테판 츠바이크_2019_이화북스(210714)
○ 저자에 대해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1881~1942)는 1881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태어나 베를린대학과 빈대학에서 철학과 문예학을 전공하고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럽 각국의 언어와 문학에 정통했으며 신문과 잡지에 다양한 글을 기고했다. 시와 단편 소설을 발표해 명성을 쌓아 나갔고 세계 여행을 하면서 여러 나라의 작가, 유명인사들과 교류했다. 1934년 나치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피신했다가 미국을 거쳐 브라질로 망명했다. 우울증을 겪다가 1942년 부인과 동반 자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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